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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45: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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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5·10·15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기쁜 소식을 듣기 어렵습니다. 정치나 경제가 그렇고, 사회적인 문제들도 우울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서남아시아의 쓰나미 재앙에 이어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앙,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 등 안타까운 소식들뿐입니다. 그나마 지난 수요일 밤에 국가 대표 축구팀이 이란과의 평가전에 이겼다는 것이 요즘 들을 수 있었던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기쁜 소식을 간직하고 전하는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처럼 큰 축복과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입니다.
기쁜 소식
요셉은 드디어 형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커밍아웃을 한 것입니다.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자기들이 팔아버렸던 요셉이 살아 있다니요?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바로 자기들이 팔았던 동생 요셉이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후 아버지께 전할 중요한 메시지를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치 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유가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9-11절)
요셉의 말은 어서 돌아가 아버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요셉이 살아 있으며,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에게 이 소식이야말로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야곱의 온 가족이 극심한 기근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기근이 심해서 애굽에 곡식을 사러 왔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몇 번 곡식을 사가지고 가면 조만간에 이 기근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기근이 아직도 5년이나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기근이 5년이나 더 계속된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가나안에 살고 있던 야곱의 가족들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에 기근이 극심하지만 애굽에는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모든 가족이 사는 길은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셔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가족들은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에 와서 이 기근이 끝날 때까지 염려 없이 살 수 있었고, 혹독한 기근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셉의 형들이 야곱에게 전해야 할 큰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러나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심판과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힘써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살아 있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은 자신이 바로 그들의 동생 요셉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설명했습니다.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당신들은 나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당신들의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고하여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하니라”(12-15절) 형들은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으며, 자기들 앞에 있는 애굽의 총리가 바로 요셉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요셉이 베냐민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울며, 또 자기들과도 그렇게 한 후에야 형들은 비로소 요셉의 말을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길양식과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렇게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비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비에게 길에서 공궤할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21-23절) 요셉이 어차피 애굽으로 오게 될 형제들에게 이렇게 선물을 준 것은 그들로 하여금 애굽에서의 일들이 더욱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하여 먹을 양식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있는 애굽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하면 그 무서운 기근 중에도 아무 염려나 부족함 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큰 구원의 축복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된 자들임을 실감하도록 여러 가지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은혜와 축복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자녀들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러한 부모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이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자녀들이 그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늘 야단이나 치고 잘못했다고 매나 때린다면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기들을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무제한적으로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다 주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준다든지, 큰 돈이 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자녀들은 부모님이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 당신의 가정이 평안합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업에 복을 주셨습니까? 자녀들이 잘 되고 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요 축복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특별히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당신을 영광스런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이라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러한 축복을 많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망각해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웃기는 일이 되겠습니까? 만일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이 준 선물만 좋아하고, 부모인 당신은 안중에도 없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런데 혹시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화목을 당부하는 요셉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속히 가서 아버지와 온 가족을 애굽으로 오게 하라고 당부하면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형들은 보복 대신 선물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형들을 보내면서 돌아가는 길에 다투지 말도록 당부했습니다.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24절)
사실 요셉이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형들에게 정말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죽어버렸다면 그들은 영영 살인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요셉을 팔아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살아 있었고, 이렇게 애굽의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은 형들에게 정말 다행스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왜 형들에게 다투지 말라고 당부했을까요?
요셉의 형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과거에 그들이 요셉을 팔았던 문제를 자연스럽게 거론하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 때 누가 요셉을 죽이자고 했었느냐고, 또 누가 팔자고 했었느냐고 서로 책임을 추궁하며 다툴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면 쓸데없는 불화와 증오가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지난번에도 형들이 이 문제로 다투는 것을 보았습니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42:22) 그래서 요셉은 염려가 되어 형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이렇게 축복하셨으니 더 이상 이 문제로 형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허물을 들추어내어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죄를 끄집어내어 자신을 학대하거나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여 상처를 주거나 다투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다투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
요셉의 형들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이 모든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25-26절)
야곱은 아들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15년 전에 죽은 것으로 단정했습니다. 그 때 아들들이 피 묻은 요셉의 옷을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셉이 살아 있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요셉에 대한 말을 들을 때 야곱에게는 오히려 슬픔과 상처가 되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돌아와서 요셉이 살아 있다고 외칠 때 야곱은 잠시 기절을 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후 실의와 절망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요셉은 의롭고 경건한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놀라우신 계획을 이루실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요셉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유일한 소망이었던 요셉을 빼앗아가셨을까?”하고 원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요셉을 잃어버린 야곱은 더 이상 삶의 소망과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던 야곱에게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야곱은 도저히 아들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들은 간곡한 말로 아버지에게 설명했으며, 요셉이 보낸 선물들을 보여드렸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으며,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27절) 정신을 차리고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야곱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28절)
풍성하게 되돌려 주시는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유일한 소망이었던 소중한 아들 요셉을 빼앗아가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은 침체되었고, 그는 절망과 슬픔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빼앗아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병들고 지친 노예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애굽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요셉을 되돌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넘치는 축복으로 갚아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야곱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진정 믿음으로 살려는 성도는 많은 손해와 어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정말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기회를 놓칠 때도 있고, 예수님 때문에 직장을 잃는 일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가족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내가 믿음으로 살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시는 것일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잃어버린 것은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몇 갑절로, 풍성한 축복으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감격하여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 때문에 좋은 기회를 포기한 성도가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직업을 포기한 성도가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당한 성도가 있습니까? 주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까? 낙심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몇 갑절로 돌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 받으시고 나를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될 때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그것으로 인하여 결국 놀라운 승리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도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 가정과 주변으로부터 땅 끝까지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며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도 아낌없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드린 것은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복음전파에 헌신하며, 하나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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