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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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의존 오웬의 신학 - 내재하는 죄, 유혹, 죄죽임약 십오 년 전 어느 해 봄날이었습니다. 열린 교회를 개척한지 일 년이 되던 때 저는 무리한 사역으로 몸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영혼의 침체까지 찾아왔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며칠 동안 몸져누워 있었습니다. 존 오웬의 전집 6권에 실린 본문들을 읽은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특별한 기대 없이 존 오웬이 그저 청교도들 중 뛰어난 인물이라는 정도만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제일 먼저 접한 부분이 '죄 죽임에 관하여'(On Mortification)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한나절 동안 그 논문을 읽으며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혀 마음이 떨렸습니다. 침…[더보기▶]




김남준 목사님의 <존 오웬의 신학/부흥과개혁사>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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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존 오웬의 신학은 보물단지

불같은 성령의 역사라 할지라도 칼날 같은 논리가 지성을 설복하지 않는다면, 간증이 될 수는 있으나 결코 신학사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굳게 붙들었던 신학의 원리였습니다.
즉, 찬란한 성경 계시와 불같은 성령의 역사, 그리고 그런 깨달음들을 이성으로 조직화한 신학의 결과물,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세 기둥입니다. 존 오웬은 이러한 원리를 따르는 '신학함'에 있어 탁월한 본을 보였습니다.
저의 생애에 있어 존 오웬을 신앙과 신학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은 구원의 은혜 다음으로 가장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책들은 결코 내용이 쉽지도 않고 편집도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물단지입니다.

2.존 오웬의 회심

존 오웬은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교육을 받았으나,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유명한 장로교 설교자인 에드먼드 칼라미 박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의 교회를 방문하였다가 칼라미 박사는 부재중이었고 그를 대신하여 시골에서 올라온 무명의 목회자가 강단에 서서 마태복음8:26절의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는 성경본문을 읽고 설교하였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한편의 설교는 존 오웬의 마음을 오랫동안 혼란스럽게 하였던 의심점들을 정확히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주었다. 거기서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깊은 영적 생활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강조하는 성경적 경험 신학은 그가 물려받은 청교도들의 전통과 함께 이러한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에 양향 받은 바가 크다.

3.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에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지적인 행위자다. 그는 지상 세계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하시는 일을 통해 당신 자신의 영광을 창조 세계 속에서 펼치시고 영원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당신의 지혜와 사랑이 시간 세계 안에서 드러나게 하심으로 기뻐하신다. 

4.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지혜를 창조세계 안에 구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실현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탁월한 영혼은 하나님을 닮은 것인데 이는 하나님을 닮지 않고는 하나님을 닮은 통치로써 이 세계를 가꿀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 세계 안에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타락과 함께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살기에 적합하지 않도록 파괴된 영혼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그의 마음과 삶이 같은 목적을 향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한 객관적인 역사는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고 주관적인 적용은 중생과 성화다. 이처럼 인간의 구속은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5. 중생의 변화

신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책에서 용서받을 뿐 아니라 그의 영혼 안에 심오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존재론적으로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인간의 영혼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향성이 생긴 것이다. 중생은 인간의 영혼과 본성에 근본적인 변화를 도입한다. 그것은 사랑의 경향성의 변화다. 
인식론적으로는 중생하기 전 육신의 감각을 통해 사물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영적인 감각으로 사물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존 오웬은 인간은 중생과 함께 세 가지 감각을 일시에 회복한다고 보았는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감각이 그것이라고 보았다.

6. 인간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를 죽이는 일의 주인공은 성령님 자신이시며 의무에 대한 인간의 순종은 도구일 뿐이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성화의 과정을 통해 회복하게 되는데 죄와의 끊임없는 싸움과 성화에서의 진전은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셨던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그 인간 본연의 존재의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그러므로 오웬의 인간론의 맥락에서 보자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당시에 의도하셨던 인간 됨을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본래 인간에게 위탁하셨던 소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7. 성화와 성령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는 신자의 어떤 행실이나 공로, 종교적 의무의 실천 같은 것들로 죽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했던 오류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 유행하였다. 그러나 로마서 8장13절을 해설하면서 그는 오직 죄가 성령에 의해서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신자의 성화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단지 죄를 죽이는 일에만 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발견하고 또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게 하고 죄와 싸울 수 있는 복음적인 동기를 제공해 주는 주체로 활동한다.

8. 도구인으로서의 의지

중생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에 의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역사이지만 회심은 인간의 협력을 통해 결실하며 성화에서도 이러한 성령의 주도권에 협력하는 인간의 의지가 강조된다. 신자의 성화에 있어서 작용인(作用因)은 성령이시고 신자의 의지는 도구인(道具因)일 뿐이다. 영적인 선행을 행함에 있어서 신자라 할지라도 그 의지는 작용인이 아니라, 도구인일 뿐이다. 비록 구원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오직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써만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은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초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오는 것이다. 

9. 의무로서의 언약관계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신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한없는 용서와 무한한 은혜의 공급을 보증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의 시여는 결코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는데, 만약 그렇게 해석한다면 언약관계 안에서 쌍방의 당사자인 신자가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의무에 충실하는 신자들이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신자들이 언약의 은총적인 성격들 자신의 의무를 해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적 긴장을 조성한다.

10.존재하는 경향성으로서의 죄

죄의 본질은 실재적인 면에서와 도덕적인 면에서 각각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실재적인 면에서 보면 죄의 본질은 경향성이고 도덕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적의다. 실재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죄의 본질은 경향성인데 이것은 도덕적인 면에서의 본질과 분리될 수 없다. 즉 경향성으로서의 죄가 흐르는 물이라면 작용하는 적의의 성향으로서의 죄는 물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경향성은 그것으로 하여금 사물을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성질로 나타난다.

11. 작용하는 성향으로서의 죄

인간의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작용하는 성향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적의(敵意)다. 그리고 이 적의는 다시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반감이고 다른 하나는 대적이다. 그리고 이 죄는 인간의 영혼과 마음 안에서 속임과 강압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역사 한다.
이러한 죄에는 다음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인간의 마음 안에서 역사 하는데 첫째로 미친 기운 곧 이성의 판단을 뿌리치고 역사 하는 광기(狂氣)다. 둘째로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데 있어 드러나는 맹렬함이다. 셋째로, 죄의 성향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때 그는 담대함 내지는 무모함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 바, 이것이 바로 죄가 신자 안에서 역사 하는 특성들이다. 

12.죄에 대한 적극적인 정의

존 오웬은 죄를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지 않으려는 인간의 반항과 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이라고 규정한다. 율법을 따라 살지 않으려는 반역과 살지 못하는 무능은 구별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다.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서의 죄의 성향은 인간의 영혼 안에 힘으로 존재하고 그것이 마음에 영향을 미침으로 실제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외적인 모든 행동과 삶은 그의 영혼과 마음 안에 있는 경향성이나 성향과 도덕적으로 필연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들은 구분되기는 하지만 나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3.은혜의 결핍으로서의 죄

인간이 영적 선을 행하는 것은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악을 행하는 것은 악한 의지를 통해서인데 이것은 곧 선한 의지의 결핍이며 은혜의 결핍이다. 그리하여 선을 행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적극적으로 작용을 하지만, 악을 행하는 것은 선을 행하게 하는 그 요인이 결핍되므로 악한 의지에 굴복하여 발생한다. 전자를 작용인, 그리고 후자를 결함인이라고 볼 수 있다.

14. 실효적인 힘으로서의 죄

 인간이 그 지성이 계명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어느 정도 의식하고, 마음이 선에 이끌리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이것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내재하는 성향화 된 악한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영혼의 무게'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악을 행함으로써 만족을 느리지만 그 사람의 마음 안에는 지속해서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성향이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악을 행하게 하는 필연의 원인이 된다.

15. 두 가지 법

존 오웬은 법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첫째는, 객관적인 규범으로서의 법으로 이것은 인간이 제정한 규칙이나 혹은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주신 율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둘째는, 주관적인 성향으로서의 힘이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에 있어 필연성을 구성하는데 이는 이것이 다양하지 않고 한 가지 방향으로 일관되게 몰아붙이는 내적인 강제력을 지나기 때문이다.
신자 안에는 거듭난 새 본성과 옛 본성이 내재하며 죄는 바로 이 옛 본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는 신자의 옛 본성에 기생하며 거듭난 새 본성에 반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옛 본성은 신자 안에서 중생하기 전과 같은 유리점을 갖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중생과 함께 자신을 힘쓰게 하던 '죄와 사망의 법'이 괴멸되고 '생명과 성령의 법'이 심겨졌기 때문이다.  

16.  시험에 대한 적극적 정의

우리는 시험을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죄를 짓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가 시험에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존 오웬은 "시험이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모자라는 상태"라고 규정한다. 성경적으로 볼 때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뿐 아니라 발견한 그 뜻에 마음을 기울여 즉각적으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보았다. 이는 마치자루에 가득한 곡식을 찌를 때에 그 곡식이 터져 쏟아지는 것처럼 신자의 내면은 완전하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충일해져 있어야 하며 이에서 모자라는 것이 곧 시험의 상태라고 보았던 것이다.

17. 시험의 보편성과 개별성

시험은 본질에 있어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이 그것이다.
시험의 일반적인 본질에 대하여는 시험이 대수롭지 않은 것들 가운데서 온다는 것이다. 이 시험이, 시험이 되는 것은 우리의 내적인 상태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험이 자기를 성찰하는 약이 될 수 있고 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시험과 함께 미끄러지는 독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시험의 개별적인 본질에 대하여서는 그 시험이 악으로 연결될 때 그것은 적극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은 인간의 의지적인 참여를 통해 적극성을 갖게 되는데 때로는 이 시험이 악을 가지면서도 괴로움을 동반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고난이라고 이해하였다.
하나님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인간을 시험하시지만 개별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누구도 시험을 하거나 누구에게 시험을 당하지도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18. 시험과 시련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

'시련'이라는 것은 시험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이며 이것이 죄와 결부되어 개인의 삶에 적용될 때 시험이라고 본다.
이러한 시험을 받는 신자는 단지 환경에 대해 객관적인 피해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내고 작용함으로써 시련을 이기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져 악에 빠지기도 하는 존재이다. 물론 어느 특별한 순간에 신자가 사탄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시험이든지 그것이 참으로 시험이 되기 위해서는 신자가 그 시험에 대해 욕망과 불순종으로 반응하게 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 시험과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하여 시험하신다.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속임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은혜와 부패 모두 신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어느 것도 신자에게 충분히 그 실재의 상태를 바로 알게 해주지 않는다. 이때 하나님은 그를 경고하거나 격려하실 목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시험하시는데, 이로써 그는 어떤 특별한 환경에 반응하는 자신의 마음의 작용 안에서 은혜와 부패의 상태 여부에 대해 바르게 알게 된다. 

20. 시험과 하나님의 지혜 2

하나님은 시험을 통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신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때로는 은혜를 막으심으로써 시험받기 전에는 자신의 힘으로 산다고 믿던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은 하나님이 자신을 붙드셨기 때문에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 때로는 은혜를 새롭게 하시는 방법으로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신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과 능력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시험을 통해 신자는 다시 새롭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힘과 은혜를 확인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더 많이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21.  시험의 양면성

시험은 본질적으로 신자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가 되도록 신자를 이끌지만 이것은 신자의 마음 안에서 단독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즉 객관적 요인인 환경과 주관적 요인인 신자의 마음이 상호 작용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똑같은 환경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주관적인 요인, 곧 그의 마음 때문에 시험이 되고 도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으로 떨어질 마음의 성향은 그것이 발현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날 때 유혹에 이끌릴 수 있는 좋은 이점을 갖는다. 신자가 단순히 시련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들어가는 것'이다.  

22.  영혼의 파괴

영혼의 파괴를 말할 때 의미하는 영혼의 경향성의 상실은 자연적인 경향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경향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을 좋아하는 선한 성향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 때 저해 받은 영혼의 기능은 그의 마음을 악으로 기울어지게 한다. 이렇게 될 때 신자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지고 악한 욕망에 붙잡히게 되며 의지는 건전한 판단보다는 욕망의 충동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마음의 상태에서 악을 행하고 은혜의 원리를 따르지 않을 때 신자의 영혼은 죄의 경향성이 강화되고 그의 내면과 삶은 더욱 강력한 죄의 성향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신자는 거룩한 은혜에서 더욱 더 멀어지게 되고 삶은 실천적인 무신론의 상태에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파괴이다. 

23.  우주적 계획

죄는 인간의 마음 안에 욕망으로 역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그 목적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해한다. 인간의 본분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인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혜를 입고 중생을 통해 생명과 은혜의 원리가 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본분을 떠나 하나님과 원수 된 감정으로 전방위적으로 그분께 반항하며 육욕을 따라 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죄의 궁극적인 목표다.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이렇게 불순종의 도구가 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지정하신 질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 우주적인 계획 아래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유혹이 이루어진다.

24. '죄 죽임'의 의미

죄 죽임은 영혼 안에 있는 죄의 경향의 약화이며,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성향의 소멸이다. '죄 죽임'이란 영혼 안에 있는 경향성으로서의 죄를 약화시키고 소멸함으로써 그의 고유한 작용을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자의 영혼 안에 있는 죄의 경향성의 약화는 마음 안에서 작용하는 죄의 성향을 죽임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러나 신자가 죄를 죽인다는 것은 완전히 죽여 존재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을 지향점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현세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가 아무리 성령 충만하여도 자기 안에 있는 죄를 존재하지 않도록 괴멸할 수 는 없다. 뿐만 아니라 죄를 죽인다는 것은 죄의 성향을 감추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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