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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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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 장사치의 이해에 휘둘리는 교회공동체
‘상업적 이해’에 휘둘리는 ‘세속화 현상’ 심각
교회가 장터로 변했다는 지적이 거세다. 순수한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할 교회가 상업적 논리에 휘둘리고, 금전적 이익을 내려는 사람들의 순수하지 못한 활동에 잠식됐다는 한탄도 나온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이해를 기초로 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으나, 너무 노골화되고 일반화돼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심지어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장사를 매개로 한 관계가 판을 치고 있을 정도다.
금전적 이익을 내려는 사람들 횡행, 순수한 신앙공동체를 위협
교회내에서의 ‘상업적 이해’로 건강한 관계 파괴되는 문제 심각
◇교회내에 상업적 이해가 침투하여, 순수한 신앙공동체의 본질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상술에 휘둘리는 교회공동체
‘교회의 세속화’의 한 범주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건강성을 좀먹는 결정적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상업적 논리에 지배당하는 한국교회는 결국 사회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이익집단의 한 그룹으로 전락될 위험성이 있기에 심각하다.
물론 같은 신앙과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돕고 사는 것은 미덕이고,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상부상조하며 사는 것은 한민족 특유의 전통임과 동시에 성서에서 가르치는 신앙생활의 좋은 점이다. 어려운 형제자매를 도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들이 새 삶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다.
그러나 모든 영역에서 장사를 매개로 한 관계가 일반화돼선 곤란하다. 신앙을 기본으로 해야 할 성도간의 관계가 이해를 기초로 한 관계로 된다면, 그 신앙공동체는 영속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상업적 질서가 교회에 만연되면, 신앙은 허울이고, 상업적 이익을 기초로 한 성도간의 관계가 지배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더 심각한 것은 상업적 이해로 인해 교인간의 관계가 소원해질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신앙공동체가 깨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안면 장사를 하고자 교회에 출석하고, 교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장사를 해 이익을 남긴다. 만약 아는 교인이 자신의 물건이나 재화를 이용하지 않으면, 그 관계가 소원해질 뿐 아니라, 갈등이 생긴다. 심지어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성경에서도 돈거래를 하거나 빚보증을 서는 것에 대해 상당한 경계를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돈거래는 신앙공동체를 기초부터 흔들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교인 사이에 고리의 이자놀이를 하는 모습이나, 이익을 남기려는 장사치들의 얄팍한 상술이 교회에 만연해지면, 그 공동체는 이미 건강성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한 교회
네이버 지식인에 한 네티즌이 “아버지께서 얼마 전 종합설비가게를 차리셨는데 일거리가 안 들어오고 있네요. 아들로서 보기가 참 안타깝습니다. 좋은 홍보방법 없을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일차적으로 귀군의 부친께서 하시는 설비가게라면 우선 교회 등에서 홍보하는 방법이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스티커 등을 통해서 홍보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방법은 단기적이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으로 교회를 다니신다면 홍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고 답변글이 달려 있다.
이 정도로 교회를 홍보의 공간으로 보아, 가게 홍보를 위해 다니는 것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3대 지남철 인맥이 바로 교회와 해병전우회, 그리고 일부 사립 명문대라는 말이 있다. 이런 교회의 인맥을 자신의 직업상 또는 상업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경우가 빈번해 문제가 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집사는 “교회를 다니면 자연스럽게 가게를 홍보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이 아닌 일부러 가게 인근의 교회를 많이들 다닌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모교회 권사는 방배역 부근에 찜질방을 개업했다. 교인들에게 찜질방 무료이용권을 나눠주며 찜질방 홍보를 했다. 교인들은 무료로 찜질방을 한 번 이용했으니, 이왕이면 다른 찜질방보다 이 곳에 가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 후로도 많이들 이용한다고 한다.
소위 엘리트계층이라고 불리는 의사나 한의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정민집사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최근 한의원을 개업했다. 이집사는 “아무래도 같은 교인들이니까 다른 환자들에게처럼 한약조제비 등을 다 받지는 않고 싸게 해주는 편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교회를 통해 한의원이 홍보되는 효과가 꽤 크기 때문에 오히려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해관계로 갈등과 다툼 심각
애초 돈거래로부터 출발한 교인 관계에서는 신앙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다. 또 이해를 앞세운 이들이 교회로 침투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한다. 아는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사지 않고 다른 곳에서 사면 섭섭해지는 것이 장사치들의 심정이다. 그 때문에 장사치들이 교회로 파고드는 것이다.
교회가 다단계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속출하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인천에 소재한 모교회에서는 한 교인으로부터 출발한 다단계 사기로 인해 많은 교인이 생활적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발생했다. A라는 교인은 평소 신실한 교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다단계에 빠졌다. 그는 우선 교회의 교인들에게 손을 뻗쳤다. 누구보다 친숙한 관계가 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A씨로부터 출발한 다단계 마수가 교인 3분의 1 이상이 연루될 정도로 퍼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인들의 신앙생활이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기도회에 참여하는 인원이 갈수록 줄어 들었다. 교인들 간에 다툼과 분쟁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주일예배 참여수도 갈수록 줄어 들었다. 그때까지 그 교회 담임목사나 교역자들은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졌다. 불신자인 한 여집사의 남편이 교회로 찾아와 소동을 벌인 것이다. 교회가 다단계의 소굴이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가정이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고 고발했다.
그 교회 담임은 이에 충격을 받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실상은 엄청났다. 많은 교인들이 다단계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그 다단계는 취약할 뿐 아니라 건강하지도 못한 곳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다단계 상층부가 사기를 치고 잠적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수습하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결국 많은 교인이 그 교회를 떠났고, 그 교회는 그 여파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다단계 피해사례는 교회공동체가 상업적 이해에 결부됐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상업적 이익위해 큰 교회 선호
상업적 이익에 휘둘리는 모습은 큰 교회일수록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큰 교회 주변에서 장사를 하려면 그 교회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이는 전도의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교회가 상업적 이해에 깊이 관계돼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신앙이 기초가 되어야 할 교회공동체가 개인의 이해를 기초로 한 관계성으로 전락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도의 모습에서도 잘못된 관점이 드러나곤 한다. 전도의 과정에서 큰 규모의 교회로 나와야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나온다. 교회에서 당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은 전도대상자에게 은근하면서도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기 위한 전도가 아닌 사람 머리수를 채우기 위해 상업적 이익을 부추기는 행태가 빈번한 것이다. 이것은 올바른 전도태도라고 할 수 없다.
큰 교회 주변에서 상업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교회에 출석한다. 순수한 전도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서울의 B교회 주변에서는 ‘그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면 장사할 수 없다’는 말이 횡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큰 교회를 선호하는 경향은 개인의 상업적 이익과 무관하지 않다. 큰 교회일수록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물론, 교인들 간에 서로 돕고 생활을 보살피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이해를 기초로 엮어질 때, 그 공동체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이해가 상충되면 갈등이 빚어지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한 교인은 서초동에 수입차매장에서 근무하는 영업사원이다. “집은 일산이지만, 영업실적을 위해 강남에 큰 교회에 다니고 있다. 수입차를 팔기 위해서는 일산보다는 강남쪽 교인들과 사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굳이 먼 곳까지 교회를 다니는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차를 팔기 위한 목적으로만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보험회사 같은 경우는 직원들 대다수가 큰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같은 교회 교인들에게 자동차보험이나 상해·생명보험 등을 들어달라고 하면 거절을 못하고 쉽게 가입해 주는 편이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일수록 보험영업이 수월한 것은 물론이다
본질적인 부분의 회복이 필요
교회에서도 상업주의에 물든 교인들에게 잘못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감사헌금을 내면 가게 광고를 내주는 등 오히려 부추기는 입장이다. 광고시간에 어떤 교인이 가게를 개업했다는 등 개업소개 등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한 교회 주보를 보니 운동화까지 그려있는 운동화전문 세탁소의 홍보문구가 그대로 실려 있었다. 그 홍보문구에는 세탁소의 약도와 전화번호까지 상세히 나와 있었다.
이런 일들에 눈살을 찌푸리는 교인들도 많지만, 계속해서 겪다보면 점점 불감증이 되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믿음이 좋다는 교인들도 상업적 이익논리에 빠져 있기가 쉽다. 이 때문에 장사를 하는 교인들은 장사가 잘 되면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장사가 안 되면 시험에 들어 교회에 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상업적 이익과 믿음을 결부짓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 15절에서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에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에 만연해진 상업주의가 예수님 당시의 상황과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없다. 교회를 홍보의 수단으로 보는 것은 ‘장사하는 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예배하는 곳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윤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예배자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영혼구원’과 ‘생명’이다.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개입하는 비본질적인 것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홍순현,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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