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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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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5·12·23
지난 한 해를 지내오면서 우리 성도들이 매우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들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그리고 그만큼 힘들게들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생활이 바쁘다 보면 주님과의 교제가 소홀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빠지거나 말씀묵상과 기도에 힘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너무나 많은 것들로 꽉 차 있어서 우리 마음에 주님께서 계실 곳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갈릴리에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해서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방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가 이제 곧 해산을 하려고 하는데 방을 구할 수가 없었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마리아는 할 수 없이 어느 집 마구간으로 찾아들어가서 해산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아 보자기로 싸서 말구유에 뉘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당시 유다는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세금 징수의 기초 자료를 얻기 위해서 제국 내에 있는 모든 민족의 인구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명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1절) 여기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는 흔히 시이저, 또는 카이사르라고 불리는 로마의 가장 위대한 황제였습니다. 그는 라이벌이었던 안토니를 제압하고 로마의 통치자가 되었는데, 41년 동안 로마를 통치하면서 팍스 로마나의 기초를 튼튼히 세웠습니다. 본문은 이 인구 조사가 행해질 때 팔레스틴을 관할하고 있던 사람은 수리아 총독 구레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2절)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이렇게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했습니다. 가이사의 명령으로 요셉과 마리아는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그러므로 로마 황제 가이사가 인구조사를 위해 호적을 명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가이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통치자도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세상의 왕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쓰임을 받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간 마리아
그런데 요셉은 왜 굳이 만삭이 된 마리아를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갔을까요? 아내를 집에 있게 하고 자기만 다녀오면 안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이 일을 다음과 같이 추측합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처음에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매우 실망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조용히 파혼을 할 작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마1:18-19)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분부대로 그의 아내 마리아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도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결혼하고 아직 해산할 때가 되지 못했는데 마리아가 만삭이 되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요셉은 이런 마리아를 두고 먼 길을 혼자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그가 없는 동안에 마리아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시달리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삭이 된 마리아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해산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말구유에 나신 왕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인간들이 드린 것은 고작 말구유였던 것입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6-7절) 이 얼마나 기가 막한 일입니까?
만삭된 마리아와 요셉은 해산할 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산부인과 병원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작고 허름한 방 하나를 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임신이 확인된 순간부터 수도 없이 병원을 찾아다니며, 예정일을 짚어가면서 만반의 준비를 다 합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출산을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출산할 방을 구할 수 없어서 마구간에서 출산을 해야 했습니다. 이천년 전에 세상에 오셨던 주님께서는 이렇게 있을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에 역시 있을 곳이 없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9:58)
이러한 일은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중심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을 마음이 중심에 모시려하질 않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모든 방이 이미 차 있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요셉과 마리아가 방을 구하지 못하여 아기 예수께서 말구유에 나시게 된 것은 여관의 모든 방들이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방이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방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주님께서 탄생하실 방 하나를 내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는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을 만나 뵙고 늘 모시고 동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에 이미 다른 것들이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일들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차차 시간을 내서 말씀도 묵상하고 기도도 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더 바빠지기만 합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마음이 이렇게 세상 것들로 가득 차서 정작 주님께서 계실 곳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좀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 중심에 주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불러댄다 해도, 가장 먼저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그 어떤 사람도 주님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차차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우리의 왕이시며 구주이신 주님께 얼마나 송구스러운 태도입니까? 지금 당신 마음의 왕좌를 비우십시오. 당신 마음 중심에 주님께서 좌정하시고 다스리시게 하십시오. 이번 성탄절은 당신의 마음에 주님을 위한 자리가 마련됨으로써 가장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알지 못했다.
요셉과 마리아가 방을 구하지 못한 것은 모든 방이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빈 방이 없었다 해도 태어나실 아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방을 비워드렸을 것입니다. 자기가 쓰던 방을 내드리든지, 객실이 없다면 내실이라도 내드렸을 것입니다.
비행기 좌석이 아무리 없다 해도 언제나 VIP를 위한 좌석은 비어둔다고 합니다. 일류 호텔 역시 아무리 객실이 없다 해도 VIP를 위한 객실은 준비해 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VIP가 필요할 때는 비행기 좌석이나 호텔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이야말로 VIP중의 VIP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빈 방 하나를 내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바쁘고 살기가 힘들다고 해서 주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피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주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의 고통과 연약함을 함께 당하셨으며, 아무 죄도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주님보다 더 귀한 존재가 또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심을 새롭게 깨닫는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나의 마음과 시간과 열정과 재물을 기꺼이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정했다.
양보하고 양보해서 이미 모든 방들이 꽉 차 있었다고 칩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리아에게서 나실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다고 칩시다. 그래도 이제 막 해산하려는 마리아가 빈 방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어떻게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너무나도 무정했습니다. 그래서 인류를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말구유에서 탄생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포근하고 따듯한 환경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춥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주님과 동일시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2-45)
기쁘고 복된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남이야 어찌됐건 나만 따뜻하고 행복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번 성탄절을 계기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정한 시대가 되었지만 불우한 이웃들에게 더 이상 무정하지 말기로 합시다. 이제는 어려운 이웃에게 더욱 따뜻한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까? 이번 성탄절에는 주님을 위해 마음을 열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쁘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더욱 더 이제부터 주님께서 당신 마음의 왕좌를 차지하시게 하십시오. 그리고 형제를 향해서도 마음을 열고, 특히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잘 섬겼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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