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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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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비밀
악성부채나 극난한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빠듯한 실정인데 거기에다가 십일조까지 내라고 한다면 교회가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곳이 아니라 강도의 집단처럼 비쳐질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십일조는 뜨거운 감자처럼 취급받으며 오해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일조를 신자들의 의무로서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해 명령하신 것이며,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고, 십일조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30배, 60배, 100배로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어느 정도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목회자나 다른 성도들의 눈을 의식해 마지못해 드리기도 하고, 엄청난 재정적인 축복을 내려주신다는 말에 현혹되어 빚을 내어 드리기도 합니다. 혹은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려 집안에 나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드리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원칙이다.
살렘왕 멜기세덱은 모세가 나기 오래 전의 인물로서 그는 족보도 없는 인물로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전임자로 성경은 묘사합니다. 그에게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리고 축복을 빌고 응답을 받는 것은 십일조가 모세가 선포한 율법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재정적인 축복의 원칙으로 사용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율법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도 십일조의 폐지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빙자해서 하나님에게 드렸다고 핑계를 대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지 않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의로운 행위와 믿음을 버려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십일조의 행위를 계속 지켜야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십일조가 율법의 행위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해주시는 통로이자 원칙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십일조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말라기 3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틀림없이 축복을 받고 재정이 형통해진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심각한 재정문제와 악성부채를 타결하고 재정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면서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십일조를 열심히 드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점점 어려워지고 재정은 더욱 악화되기도 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일까요? 율법의 행위를 지킴에 있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따라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수입의 십일조를 얼마나 정확하게 드렸든지 밭에서 나는 채소의 종류대로 꼼꼼하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책망을 받게 되었느냐면 이 행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는 태도와 마음의 상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재정적이 축복을 받는 통로이기는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에 불과합니다. 십일조만 드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의 자세와 동기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고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목적이 재정적인 축복을 바라고 드린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잡신처럼 자신에게 재물만 드리고 숭배하기만하면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십일조는 수익성이 높은 투자 상품이 아니라 나에게 온 재물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의 징표로 기꺼이 드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을 갖추고 있어야 축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가?
십일조는 재정적인 도움을 위한 믿음의 징표이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에 꼭 보시는 것은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천한 이방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도 그 믿음을 보시고 치료해주셨지만, 고향인 나사렛에 가서는 사람들의 믿음이 없음으로 인하여 능력을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었으며, 죽은 자를 살리는 사건의 공통분모는 믿음입니다. 심각한 가뭄으로 굶어죽은 지경에 처한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엘리야가 찾아와서 재정적인 축복을 내려주기 전에 요구하신 것이 믿음의 징표로 남은 음식을 원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는 야박하기 그지없는 요청이었으나 이것은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베푸시기 전에 먼저 믿음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연유로 재정적인 축복은 먼저 재물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표징으로 십일조를 요구하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므로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얻는 수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수고하여 벌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재정적인 축복의 씨앗이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과 하늘나라의 창고에 심기 위한 씨앗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씨앗이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그래서 이 씨앗을 심어 싹이 트고 이파리가 나고 꽃이 피어 가을에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씨앗을 하늘창고에 쌓아둠으로 우리가 필요할 때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거나 불우한 이웃을 도와줄 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용도로 십일조를 사용하고 계시므로 많은 설교자들이 십일조가 축복의 통로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만 드리면 하늘 문을 열고 내려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십일조를 통해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밀을 깨달아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재물을 받아 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쓰임을 받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산을 맡기는 관리자를 위한 자격시험이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광야에서 오랫동안 먹지 못하여 굶주린 무리들에게 물고기 2마리와 떡 5개로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빌립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먼저 시험해보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였지만 안드레가 이를 만족시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지를 시험하여 자격을 갖추고 준비된 자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 큰돈을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큰돈으로 인해 신앙과 가정을 잃고 영혼마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충성스런 관리자로 하여금 자신의 재산을 맡기고 성실하게 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관리자의 자격요건은 주인의 뜻을 잘 알고 충성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자는 그 돈이 자신의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라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십일조를 요청하시며 이를 행하는 태도와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재산을 맡을 관리자의 자격을 꼼꼼하게 확인하시고 자격에 합당하다면 더 큰 재산을 맡겨 관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악성부채를 해결하는데 왜 십일조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악성부채나 극난한 돈 문제를 해결하는데 왜 십일조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악성부채란 말 그대로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해결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해결책이라고 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만 공급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계좌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돈이 입금이 되었다거나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그런 방법보다는 주변의 사람을 통해 도와주게 하시거나 환경을 열어주시는 등 자연스러운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우주를 운행하시고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사용하시는 것은 스스로 세우신 자연의 법칙에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악성부채를 해결해 주십사하고 눈물로 기도하여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이 되었다 하더라도 주위사람들의 도움이나 열심히 일해서 해결되었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능력을 찬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악성부채나 극난한 돈 문제를 해결해 주셨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극심한 재정부족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십일조를 아끼지 않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악성채무자나 극난한 돈 문제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은 심각한 재정부족으로 상상도 못하는 괴로움 속에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평상시의 몇 배의 고통과 망설임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배고픔을 참고 겨울을 견디고 눈물로서 지킨 씨앗을 뿌린 사람에게 가을의 풍성한 소출을 기대할 수 있듯이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십일조를 드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떨리는 손길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 어려운 결정을 한 믿음은 어두움 속에 빛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마침내 소원하던 해방의 날이 올 것입니다.
빛과 소금 9월호 칼럼 '신상래의 재정클리닉'에서
http://blog.Godpeople.com/looker/?B0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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