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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0: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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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3.12.3
한 평생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산 "죽으면 죽으리라" 안이숙 여사를 알 것입니다.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각료들 및 정부요인들을 만나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행위 및 기독교 박해에 항의하고 일제망국을 예언한 분입니다. 일본의 신사참배를 비난하면서 일본 국회의사당까지 들어가 한반도 독립을 외치다 일경에 체포돼 6년 동안 감옥살이 하다 사형집행 불과 몇 시간 전 조국이 해방되어 기적적으로 사신 분입니다.
그분이 쓴 책 중에『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안 죽어요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숯불사랑"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경자와 순애는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는데 경자가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계모 밑에서 힘들게 살던 순애는 경자가 너무 보고 싶어 미국으로 편지를 했습니다. 경자는 비행기표를 사서 순애를 미국으로 초청했습니다. 불법으로 오래 있을 수가 없어 자기 부부가 이혼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순애가 자기 남편과 결혼한 것처럼 하여 영주권을 얻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순애가 경자를 배신하고 그 남편과 사랑에 빠져 경자를 내쫓고 말았습니다. 고통을 달랠 길 없어 방황하다 지쳐 쓰러졌는데 한 미국 노인이 그를 돌보아 주었답니다. 그를 통해 신앙도 갖게 되었고 부유하고 마음씨 좋은 미국 노인과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경자는 순애와 전 남편이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응급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예전에 자기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었던 지난날의 고통스런 기억보다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떠올랐답니다. 나를 이용하고 배신하고 나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가 버린 그런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응급실로 달려갔답니다. 그때 두 사람 다 의식을 잃은 채 비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의식을 차린 순애의 손을 붙잡고 울먹였습니다.“순애야, 내가 도와줄게 염려하지 마, 정말이야 내가 다 도와줄게”그 말을 듣던 순애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자는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순애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모든 수발을 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라는 말씀의 숯불 사랑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자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와이에 몰로카이라는 작은 섬, 문둥이들이 모여사는 절망적인 섬에 다미앙이 들어가 '희망의 섬', '감사의 섬'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차라리 문둥이기 되게 해 주십시오. 그는 자신도 문둥이가 되어 16년 간 1천 6백 명의 문둥병자를 장사지내고 자기 손으로 1천 개의 관을 만들었습니다. 교회를 짓고 절망하는 그들을 소망을 갖고 살게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생명이 점점 죽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으며 최후까지 그들을 위해 49세까지 자신의 인생을 불태웠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살게 하였을까요? 선하신 목자 우리 예수님 때문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사셨던 예수님 때문입니다. 모두가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이익이 되는 곳, 편한 곳, 기쁨을 주는 곳을 찾아간다하여도 목숨을 버려서까지도 양을 사랑하는 선하신 목자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그들은 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일평생 본받아야할 선하신 목자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11)
1.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11, 15).
1) 본문
(1)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11).
(2)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버립니다(18).
(3)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17).
권세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버릴 권세와 다시 얻을 권세가 있습니다(17).
2)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1)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여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700년 전에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 53:8)"
(2)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목숨을 버리기까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3)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삯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삯군은 양에 대한 애착이나 책임감이 없습니다. 양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13절).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양이 위협을 당할 때 싸웁니다.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입니다.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목숨을 버려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짧은 본문에서 목숨을 버린다는 말을 네 번 반복해서말씀하고 계십니다.(11,15,17,18)
실수 잘하고 허물많고 죄많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선한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16절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안에 드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 들지 않는 양, 우리고 인도하시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는 양같이 다 제 갈길로 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신 것은 우리를 사랑해서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주)영성 회장이자 서울 서대문 결핵병원 내 베데스다교회 설립자인 이장로님이 계십니다. 그의 전재산 800여억을 출연하여 사회복지 법인 "사랑의 보금자리"를 설립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지난 40년 간 매월 평균 200명 이상 지금까지 모두 7만 명 이상의 결핵환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은 자신의 눈물겨운 과거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고 합니다. 33세 때인 69년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결핵이라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고 했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시립 서대문 병원. 많은 결핵환자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 장로는 "살려만 주시면 여생을 결핵환자를 위해 바치겠다. "며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서원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고 계셨고 그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기적같이 완쾌된 이장로님은 그때부터 '빛을 갚는 심정'으로 결핵 환자들을 돕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고 합니다.
2.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알고 우리고 예수님을 압니다(14).
1)본문
1)목자도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압니다.(14)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각각 이름을 알고 그 특징과 그 양의 형편을 잘 안다는 말입니다.(3) 삯군은 알지 못합니다(5). 몇 마리 정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양이 몇마리인가? 정도에 불과합니다. 삯군은 일일이 양의 특징을 알지 못합니다. 양의 형편을 알지 못합니다. 양이 병들었는지 양이 식성이 어떤지, 양이 무엇을 필요로하는지 알지못합니다.
(2)아버지께서 나를 알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처럼 압니다(15).
2)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아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영혼의 구세주, 참안식의 주인, 영원한 평안을 주시는 분임을 압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만세전에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4)"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믿음을 주시고 예수님을 참목자로 알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단점과 장점, 어려움과 고통, 내면의 누구에게도 말못하는 깊은 문제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성경 예레미야서에서는 "(렘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십니다. 나만의 고통과 괴로움을 아십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아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이야기도 알고 계십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행한 일도 아십니다.
어느 날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고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7-48)"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날 사마리아 마을로 지나갔습니다. 수가라는 동네에 예수님이 우물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합니까?"
예수님은 생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여자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이 때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요4:17-18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말이 참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여인의 고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여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연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창녀인 그녀의 죄를 용서해주고 참된 인생을 살수 있도록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귀신들린 사람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세리 삭게오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질병에 걸린 자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38년 된 병자의 고통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침묵」이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온 기독교,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극심한 박해로 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로 해서 쓴 책입니다. 박해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니까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다음과 같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즉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다 십자가를 세워 놓고 거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잠시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푹 잠겨서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고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남모르는 아픔이 있습니까? 어찌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낙심하고 있습니까? 벗어 던지고 싶은 십자가가 있습니까? 바울의 고백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갖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고백하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9에 병들어 죽어가는 히스기야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사 38:10)" 얼마나 기막히겠습니까?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사 38:16)"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왕하 20:5)"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사 38:5)"
그는 고백합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요즈음 자선 남비가 거리에 나와 있습니다. 그 구세군을 만든 윌리엄 부스라는 사람이 잇습니다. 그는 젊은 날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죽음을 각오하라고 했습니다. 1년도 살지 못한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병을 이기고 구세군을 창설했으며 84세를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내가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의사를 버렸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설립한 양로원에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이 모여 살았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방문해서 노인들에게 양로원을 누가 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들은 빅토리아 여왕이 지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방문객이 여왕이 한번이라도 이 양로원을 방문했느냐고 묻자 노인들은 가끔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방문객이 “그러면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은 여기 오셨습니까?”하고 묻자 노인 한 분이 “아니, 예수님이 왜 오십니까? 예수님은 오시는 분이 아니고 처음부터 여기 계셨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처음부터 같이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성 버나드는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든지 걸어오시는 것은 못 봤어도 예수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셨다”고 고백했고 웨슬리는 항상 빈 의자를 곁에 놔두고 예수님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눈물의 현장에 고통의 현장에 지금도 함께 계십니다.
선하신 목자 우리 예수님은 언젠가 이 땅에 목자장으로 오실 것입니다."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벧전 5: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것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요한복음10:11-18/김필곤 목사/2003.12.7/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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