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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승리를 위한 삶의 자세

역대하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34 추천 수 0 2010.05.24 22: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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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대하25:17-24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오늘 본문에는 유다의 제 9대왕 아마샤가 나옵니다. 이 분의 삶을 한 마디로 말씀해 주는 내용이 본문 2절에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대하 25:2)” 역대하 기록자가 한 마디로 아마샤의 54년의 생을 요약하여 기록한 말씀입니다. 하였으나가 붙은 인생입니다. 승리하였으나 지속적인 승리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보면 다 좋은데 이것만 고치면 정말로 좋을텐데 그것을 고치지 못하여 지속적으로 승리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만 아버지가 고치면 가정이 행복할텐데, 우리 아들이 이것 하나만 더하면 훌륭한 인생을 살텐데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2006년 한 달이 지나고 2월 첫주일입니다. 우리는 “하였으나”를 우리 삶에서 제거하고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였으나”라는 아마샤의 생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지속적으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저는 일과의 전쟁에서 지속적인 승리, 자신과의 전쟁에서의 지속적인 승리, 사람과의 전쟁 즉, 대인관계에서의 지속적인 승리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속적인 승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를 묵상하며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1. 지속적인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일과의 전쟁에서 지속적인 승리 방법
아마샤는 두 차례의 전쟁을 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는 패했습니다. 첫 번째 전쟁 에돔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습니다.
에돔 나라가 이스라엘에 조공을 하였으나 유다의 5대왕 여호람 때 배신하고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습니다(대하21:8-10). 아마샤는 나라가 안정되자 에돔 정복위한 전쟁을 합니다. 아마 대외적인 이름을 떨치고 아카바만의 무역 중심지인 엘랏 항구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먼저 군부대 조직합니다. 천명, 백명 단위로 군부대를 조직하고 지휘관을 세웠습니다. 20세 이상 총 병력은 30만이었습니다. 훈련된 군인이었습니다. 이 군인은 아사왕 때 오십만(대하14:8) 여호사밧 왕때 백 십 육만(대하17:14-19)에 비교하면 아주 적은 군대였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보다 뛰어난 무기, 훌륭한 전술, 그리고 무엇보다 고대의 전쟁에서는 군인 숫자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숫자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은 일만 달란트, 즉 은 3400kg을 주고 용병을 고용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군대 중 아주 뛰어난 용사 10만을 샀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접촉, 선택, 집중, 반복의 원리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딴지를 겁니다. 7절에 보십시오. 이 때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에브라임 사람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같이 가서 힘써 싸운다하여도 결국 왕은 대적에게 패전하고 말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말을 합니다.

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고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습니까? 우리 인생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전략이 문제가 아닙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도구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들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일에 있어서 성공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하지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이루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냐의 문제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어떤 영적 전쟁에서도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초라한 다윗입니다. 골리앗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굴하게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하면서 원망하고 낙담하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9)”라고 말하며 나아갔습니다.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자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전략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라고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믿음으로 하면 모든 것은 결국 승리가 되고 마지막까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보며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의 인생이 얼마나 깊은 구렁텅이에 빠졌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노예로 가서 가정 총무가 되고 감옥에서도 빛을 발하는 자가 되고 나라를 맡아 총리가 되지 않습니까? 지속적인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감옥에 가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1)”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 39:23)”

그런데 아마샤는 이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9절에 보십시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미 일백 달란트 용병을 사면서 주었는데 이스라엘 군대를 그대로 돌려 보내면 손해라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우리 한 번 큰 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믿습니까? 손해 된 것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것 다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것같아 실패한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하시지 않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때 아마샤가 결단합니다. 위대한 결단입니다. 이 결단의 순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것을 보시길 원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분노하거나 그들이 불평하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본 곳으로 돌려 보내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용기가 생겨 염곡에 이르러 만명 포로로 만명을 잡아 도합 2만명을 처형했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물론 상처를 받지 않은 승리를 한 것은 아닙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군대가 철군하면서 유다성읍을 습격하여 삼천명을 죽이고 물건을 노략질해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상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하였는데 두 번째 전쟁에서는 아마샤는 비참하게 패배하였습니다.
아마샤는 한 번의 승리는 했는데 지속적으로 승리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에돔을 정벌하고 한 일이 무엇입니까? 승리한 결과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가져다가 자기 신으로 세우고 그 앞에 경배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우리가 지속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라는 진노의 조건이 붙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저 백성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우리도 이런 일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전혀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붙들고 그것이 마치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고 섬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꾀에 불과합니다.
왕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을 많이 가질수록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 될 때는 더욱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권력과 명예와 부와 지식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잘 못을 지적하는 말은 더욱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는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업도 잘되고 자식도 잘되고 명예도 얻고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칠 때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립니다.

16절 보십시오. 왕이 말합니다. 정색을 냅니다. 언제 너를 모사로 삼았냐는 것입니다. 으름장을 놓습니다. 계속하면 감금하고 죽이겠다는 협박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보십시오. 16절 하반절을 크게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승리와 실패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2. 지속적인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승리한 후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자신과의 전쟁에서 지속적인 승리 방법
승리한 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승리한 후, 취업한 후, 대단한 업적을 이룬 후, 합격한 후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생길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다 되었다고 방심할 때 사탄이 그 마음을 빼앗가 가 버립니다. 아마샤는 승리한 후 그 승리의 영광을 우상에게 돌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해 버렸습니다. 자신이 잘 나서 그렇게 된 줄 착각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다 할 줄 생각했습니다. 계획하는대로 하나님 없이도 잘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 정벌을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통일 전쟁 계획입니다. 명분은 좋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백성 3천명을 죽였습니다.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는가를 보십시오.
17절을 보십시오.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였다고 합니다. 참모들과 상의하는 것입니다. 신하들과 대책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무엇인가 우선 순위를 잃어 버렸습니다. 초심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잃어 버렸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상의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참모들이야 왕의 의지가 이미 굳어졌는데 왕의 뜻을 관철하는 면으로 조언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참모들이 무엇을 말하면 그것이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의중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방향을 결정해 놓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 방향 결정을 하나님과 상의하여야 합니다. 이미 결정해 놓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이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아마샤의 선전포고에 대하여 비유하여 답한 것입니다. 가시나무는 유다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사돈을 맺자고 하는 것이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것인 것처럼 유다가 이스라엘게 선전포고를 한 것은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 가시에 짓밟힌 것처럼 유다는 요아스 군대에게 참배를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20)
9절 같이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편히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교만하면 어떤 일을 하든지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잠16 : 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권세를 꺽어 버립니다. 교만한 집을 헐어 버리십니다. 우리는 요즈음 교만으로 인하여 처참하게 무너지는 한 과학자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20) 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게 완전이 패배하였습니다. 각기 장막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왕은 사로잡혔습니다. 치욕을 당합니다.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겼습니다. 사람들의 볼모로 잡혀갔습니다.
교만은 자신의 상태를 사실 이상으로 확대 평가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불합리한 자기 이해, 과도한 자기 만족,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경멸과 중상, 허영, 허례, 시기, 불만, 탐욕, 편협 등의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교만은 이 세상에 들어온 첫번째 죄이지만 그것은 또한 정복되어야 할 마지막 죄이기도 합니다. 이 교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어떤 인간도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어떤 공동체도 지속적으로 존속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 그는 자신을 우상숭배하는 자와 같습니다. 교만은 죄의 한 특성이라기 보다는 죄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이 교만 때문에 하나님께 대적했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났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하다가 결국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때때로 교만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들의 품성이 교만하였거나 혹은 지나친 과보호로 인해 자녀를 응석받이로 키웠을 경우 교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과도한 칭찬이나 기대는 교만한 인격을 소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녀가 지닌 재능이나 능력을 필요이상으로 과대평가할 경우 자녀는 안하 무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그릇된 자아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들은 다른 사람과 진정한 어울림을 갖지 못합니다. 자신과 공동체에 해를 키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도 "그(그리스도 예수)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빌 2:3, 8)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였습니다.
바로처럼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헤롯은 교만하다 충먹어 죽었습니다. 웃시야는 교만하여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분향을 하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대하26:16) 히스기야 전쟁에서 승리하고 교만하여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결국 진노를 받았습니다.(대하32:25) 느브갓네살은 교만하여 결국 왕위에 쫓겨나 미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단4:30)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날 티코를 탄 아줌마가 달리다가 빨간불이 들어오자 차를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옆으로 그랜저가 멈춰서더니, 한 아줌마가 잘난 체하려는 듯 티코를 탄 아줌마한테 껌을 짝짝 씹으며 물었답니다. "언니~ 그 티코 얼마 주고 샀어?"
그러자 티코를 탄 아줌마는 별꼴을 다 보겠네 하며 계속 달렸답니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다 다시 빨간불이 들어와 또 멈춰서 있을 때, 그랜저를 탄 아줌마가 다시 옆에 멈춰서서 물었답니다. "언니! 그 티코 얼마 주고 샀냐니깐!!" 티코를 탄 아줌마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쌩 달렸답니다. 또 빨간불. 티코를 탄 아줌마가 멈추자 그랜저를 타고 온 아줌마가 옆에 멈춰서서 다시 물었답니다. "언니! 그 티코 얼마 주고 샀냐고 물어봤잖아." 그러자 티코를 탄 아줌마 왈. "야이, 가시네야. 벤츠사니까 덤으로 껴주더라, 와." 그랬답니다.
조금 가졌다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0 과 1의 수학공식 알고 있지요. 1은 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수를 나타낸답니다. 그에 반해 0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라는 뜻에서 인간을 의미한답니다. 이 0과 1의 수학공식....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0.1 0.01 0.001 점점 작아지나 '하나님'을 내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10 100 1000 10000 그 수는 백배 만배 백만배 ...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수학공식입니다.

3. 지속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일 당했을 때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사람과의 전쟁, 즉 대인 관계에서 지속적인 승리 방법
아마샤는 왕이 되자 첫 번째 한 일이 나라를 굳게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든든히 서게 되자 한 일이 무엇입니까? 3절에 보십시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처형하는 것입니다. 24장 25절을 보십시오.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 요아스 왕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24). 부상당한 그를 사밧과 여호사밧이 침상에서 처형하였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피로 인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샤가 왕이 되자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것입니다. 그는 당시의 율법을 지켜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율법적이고 공의로운 것같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은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힘을 가진 자가 되었으니 그 힘을 정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의 사용은 일시적인 승리는 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승리는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인관계는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대인관계에 있어서 승리하는 비법을 예수님은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3-44)” 이것이 지속적이고 항구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도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9:1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승리는 사람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죽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시적으로 승리한 것같습니다. 정적을 다 제거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27절을 보십시오. 54세까지 살았지만 모반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아마샤가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계속 모반하는 것입니다. 라기스에 도망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칼을 든 자는 결국 칼로 망하는 것입니다.
얼욱한 일이 있습니까? 그 억울함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풀라고 하면 결국 그 일로 지속적인 승리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위해 십자가에지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맡기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그 억울함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 '조창인'의 '등대지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재우는 부모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메산골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특용작물 재배의 실패로 그가 태어나기 석달 열흘만에 제초제 한 병을 삼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식모살이하면서 삼남매를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머니는 부업으로 구슬꿰기를 하였는데 재우는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구슬꿰는 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집안에서는 한 사람만 성공하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며 재우의 형에게 집중했고 주인공은 형의 성공을 위한 조력자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주인공은 어머니 때문에 괴로웠고, 자신조차도 참을 수 없이 미워졌습니다. 그는 집을 떠나 8년 동안 외딴섬 구명도에서 등댓불을 밝히는 등대지기로 살았습니다. 8년 만에 형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구명도에 있는 동생에게 맡기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행여나 어머니를 다시 데려 올까봐 미국으로 발령이 났다는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응어리진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강풍이 불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재우는 등대에 올라가 수리를 하다가 등대에 뚫렸던 구멍으로 벼락을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추석이라 아무도 그를 구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등탑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셨습니다. 협심증으로 세 걸음만 걸어도 헐떡이는 어머니가 199개의 계단을 올라오신 것입니다. 재우는 번개에 맞아 어머니가 올라오시는 것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 의식을 찾았을 때는 어머니 무릎에서였습니다. 어머니의 무릎에 재우의 얼굴을 올려놓고 손에 빗물을 받아 입가에 대어주었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낮 어머니는 속옷을 벗어 빗물을 받아 주인공의 입에 대 주었고 주인공을 그걸 마시고서 겨우겨우 입을 떼어 어머니에게 `난 이제 됐어요. 엄마 차례예요.라고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속옷을 당신의 입술로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팔을 움직일 만한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 주인공 쪽으로 마냥 손을 내민 채였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눈꺼풀이 힘없이 닫혔습니다. 엄마‥‥사랑해요. 재우가 엄마를 사랑하는 거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이렇게 말하는 주인공을 뒤로 어머니의 얼굴에 고요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승리하길 원합니다. 지속적인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승리할 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승리한 후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억욱한 일 당했을 때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승리를 위한 삶의 자세/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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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2 요엘 이제라도 욜2:12-14  우제돈 목사  2010-06-03 2729
3561 시편 회개하는 자의 축복 시32:1-11  우제돈 목사  2010-06-03 2736
3560 마태복음 요단강에 이르러 마3:13-17  우제돈 목사  2010-06-03 2167
3559 고린도후 영원토록 있는 것 고후9:6-11  우제돈 목사  2010-06-03 2072
3558 고린도후 수건 좀 벗으세요 고후3:12-18  우제돈 목사  2010-06-03 2193
3557 사도행전 용기를 주는 사람들 행18:1- 8  우제돈 목사  2010-06-03 2914
3556 마태복음 신앙으로 인한 환난 마10:34-36  강종수 목사  2010-05-30 2037
3555 열왕기상 혼이 돌아오게 하옵소서 왕상17:17-24  박노열 목사  2010-05-28 2531
3554 히브리서 그의 음성을 듣거든... 히3:7-19  박노열 목사  2010-05-28 2308
3553 민수기 쳐다본즉 살리라 민21:4-9  박노열 목사  2010-05-28 2865
3552 사무엘상 한나의 기도와 서원 삼상1:9-18  박노열 목사  2010-05-28 3939
3551 요한계시 구속받은자의 찬미 계7:9-17  박노열 목사  2010-05-28 1753
3550 요한계시 하늘의 할렐루야 계19:1-10  이동원 목사  2010-05-26 2745
3549 다니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단6장  이동원 목사  2010-05-26 3587
3548 요한계시 최후 심판의 드라마 [1] 계20:7-15  이동원 목사  2010-05-25 2718
3547 요한계시 종말론적 삶의 태도 계14:6-13  이동원 목사  2010-05-25 3590
3546 다니엘 이스라엘의 구원 단9:24-27  이동원 목사  2010-05-25 2663
3545 요한계시 이 세상의 최후 계18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331
3544 다니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 단7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741
3543 다니엘 멸망의 큰 잔치 단5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663
3542 요한계시 마지막 추수 계14:14-20  이동원 목사  2010-05-25 2720
3541 요한계시 다시 오실 그리스도 계19:11-21  이동원 목사  2010-05-25 2670
3540 역대하 보가 터지면 물고기는 같이 물 따라 내려갑니다. 대하28:16-21  김필곤 목사  2010-05-24 2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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