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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에 관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

수도관상피정 사하라............... 조회 수 3115 추천 수 0 2010.05.26 1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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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욕구”에 관한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

 

I. 서론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 욕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가? 물론 어떤 욕구는 생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우리는 먹고 자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쉬어야 하고, 때로는 혼자 있어야 하면 때로는 누군가와 함게 있어야 한다. 이런 자연적인 욕구는,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일 때는, 아무런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어떤 욕구는 비정상이 될 수 도 있다. 우리는 종종 어떤 물건이나 어떤 사람을 더욱 더 원하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는, 어떤 물건이나, 일이나 또는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이 생각 될 때도 있다. 만일 영혼이 이런 상태가 되면, 우리는 인생의 초점이 빗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며, 사실 빗나가게 된다.

욕구가 영혼을 지배하고 우리의 의지를 좌지우지 하게 되면,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 우리가 욕구에 의지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욕구의 본성이다. 어떤 욕구를 만족시킨다고 해서 그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욕구는 영혼에 더욱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욕구는 영혼의 의지를 노예를 삼으며, 사람은 더 이상 삶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욕구에 대한 관점을 설명하고 그의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까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제안 하고자 하는 것은 욕구를 제어 하기 위한 기본적인 발걸음이다. 즉, 우리 행동의 원천인 욕구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가, 긍정적인 욕구를 어떻게 고양 시키는가 그리고 부정적인 욕구에 어떻게 저항하는 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II. 두가지 질문

이 욕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두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첫번째로 자연적인 욕구와 제동을 걸어야 할 지나친 욕구를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두번 째 질문은 우리 내에 있는 욕구중에 전혀 제동을 걸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양하고 증진시켜야 되는 욕구가 있는가? 두번째 질문에 대답으로는,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욕구는 어떤 방법으로든 증진시켜야 된다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이 참모습을 보고 즐기도록 창조되었고, 하느님을 보려고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영혼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강한 표시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아주중요한 욕구가 점점자라고 그 영역을 넓혀 가면서 다른 욕구의 방해가 없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채우고자 하는 데에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의 저서 “가르멜의 산길”에서 욕구에 대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가르침을 주고 있으며, 이 두 질문에 답하고 있다.

III. 십자가의성 요한이 말하는 “욕구”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르멜의 산길”에서 종종 “욕구”애 대해 이야기 한다. 그가 해설하고 있는 자신의 시에서, 그는 하느님으로 가는 영혼의 여행의시작을 이렇게 읊는다;

어두운 밤에, 참을 수 없는 사랑의 열망에 불타,
- 아! 완전한 하느님의 은총이여! –
나는 몸을 숨기고 밤을 나선다 / 내 집은 정적에 감싸여 있다.

사랑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찾으라고 촉구하며, 은총은 우리를 이끌어 준다. 사랑의 열망은 힘이있고 긍정적이다. 영혼의 여행의 전제 조건은 “고요한” 집이다. 이 정적에 하나의 요소는 욕구의 고요함이다. 오로지 하느님에 관한 욕구만이 활동할 것이다. 성 요한은 그이 해설에서 욕구는 고요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욕구는 요란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우리의 의지가 섞여 서는 안된다. 성 요한은 “가르멜의 산길” 시작 부분에서,절제않된 욕구에서 자유로움을 영혼의 이상적인 상태라고 지적한다.

“가르멜을 산길” 첫부분에서, 성 요한은 영혼의 감각부분이 느끼는 “밤”에 대하여 다룬다. 영혼의 감각부분은 보다 높은 묵상의 단계에 오르기 전에 깨끗하게 되어야한다. 모든 욕구가 다 해로운 것은 아니며, 절제안된 욕구만이 해롭다 할 것이다. 자연적이거나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욕구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절제 안된 욕구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해를 준다. 성 요한은 어떤 욕구를 영혼에서 몰아 내어야 하는지를 확실히 지적한다. 즉, “세상의 외적인 것, 육적인 쾌락이나 의지를 만족시키는 것에 대한 욕구를 지적한다. 인간은 그러한 욕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오로지 은총만이 그 욕구들은 통제하고 조용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욕구들이 영혼을 지배함을 멈출 때, 사람은 내적인 어두움을 만나게 된다. 성 요한은 이러한 상태를 “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밤이 상태에서는, 영혼은 더 이상 한 때 원 했던 것을 원하지 않으며, 외적인 소유나 감각의 충족에 끌리지 않는다. 영혼은 내적으로 비워짐을 경험하게 된다. 영혼이 내 안에 사시는 하느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이 “밤”의 상태를 거쳐가야 한다. 영혼은 자신을 채우고 있으면서 영적인 목표에서 이 탈하게 하는 욕구에서 자유로워 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가져다 준다. 비워짐의 고통을 당하는 영혼은, 이 새로운 출발을 도와주는 “어두움”을 피하기 위하여 전에 가지고 있던 욕구로 돌아 가려는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가르멜의 산길” 제 일 권 제 3장에서 성 요한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 나면, 우리의 영혼은 백지상태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우리의 감각은 이 백지에 많을 것을 채우게 된다. 우리의 오감을 통하여, 영혼은 외부세계의 각종 사물을 인지 하게 된다. 이러한 사물들은 우리의 영혼에 새겨지게 된다. 영혼은 경험했던 것을 열망하는 힘이 있다. 영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의지를 끌어 낸다. 성 요한은 어떤 사물이 존재 하는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명시한다. 그 사물에 대한 욕구가 영혼이 내재하는 하느님에 대하 주의를 방해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가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의지를 그런 사물에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영혼은 상처를 입는다.

“가르멜의 산길” 6장 부터 12장까지에서, 성 요한은 어떻게 욕구가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 영향은 두 가지이다. 첫째로, 욕구는 영혼으로 부터 하느님의 은총들 빼앗가 간다. 둘째로, 욕구는 영혼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양향을 미치는데, 모두 나쁜 영향들이다. 그 성격상 욕구는 끊임없이 요구하며,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 욕구를 만족시키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만족시키면 시킬수록 더욱 더 요구하는 것이다. 욕구가 커짐에 따라 영혼을 괴롭히며 제대로 작용을 못하도록 방해한다. 욕구가 특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이 지성, 기억력 그리고 의지이다.

제 8 장에서 성 요한은 이 세가지 능력 – 지성, 기억력, 의지 – 의 이상적이 활동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지성은 하느님으로 오는 지혜의 깨달음을 받아들이며, 기억은 하느님의 영상을 차분히 영혼에 새기고, 의지는 우리안에 있는 하느님을 순수한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여기서 우리는 부름받은 영혼의 상태가 어떻해야 하는 가의 확실한 표시를 볼 수 있다. 각 능력은 완전히 하느님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지성은 오로지 하느님의 지혜로만 채워져야 하며, 지식은 하느님 중심으로 이루여져야 한다. 기억은 하느님만을 완전하게 반영하여야 한며, 의지는 하느님만을 선택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영혼은 보통 이런 상태에 있지 못하다. 욕구는 영혼을 무질서하게 만들어서 하느님에게 단 하나의초점을 맞추고 하느님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나아가게 하는 은총의 활동을 방해한다. 욕구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욕구의 대상이 다양할 수록, 영혼은 초점을 더욱 흐려지면 은총안에서의 활동에 더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성 요한은 영혼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떤 집착물의 예로,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옷, 특정한 책이나 집, 음식, 시시한 대화,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음식맛을 찾는 것, 지식, 음악등을 들었다. 그는 새 한마리가 가는 실에 매여 있는 것과, 굵은 밧줄에 매여있는 아주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하며, 둘 다 새가 날지 못하게 하는 데 똑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 요한은 우릴 어디로 이끌려 하는가? 그의 가리침은 그가 마태복음 11:28-29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읽음으로써 요약할 수 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성 요한은 이 귀절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걱정과 욕구로 학대 받고 고통받으며 지친 사람들아, 그 욕구를 버리고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새롭게 만들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욕구가 뺏아간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IV.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침

“가르멜의 산길”에서 성 요한은 감각의 어두운 밤의 첫 부분에 어떻게 들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해 가르침을 준다. 그 밤에,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감각에서 점점 자유로워 질 것이다. 그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그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엄청난 도전을 준다. 그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가? 성 요한은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가 제시하는 영적성장의 길은 그가 살던 시대에 적절했던 것 같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절하리라고 확신 할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을 현실로 옮길려면, 우리는 단순하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선택할 것 같은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같이 행동하려는 욕구를 어떻게 키워갈 것이며, 다른 행동을 하려는 욕구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성 요한은 부정적인 욕구를 분별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는 그 욕구들의 뿌리를 보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우리의 영혼에 내재하는 욕구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다음의 실제적인 단계가 도움이 될 수가 있다.

1. 먼저, 우리의 영적성장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여섯 일곱가지 정도의 욕구의 목록을 만든다. 우리의 영혼에 내재하고 있는 이런 욕구들은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욕구들이 우리의 영혼에서 사라지거나 또는 능숙하게 통제하게 되기를 희망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그러면,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외적 행동을 유발하는 내재하는 욕구에 초점을 맞출수 있는 기도 방법을 태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 욕구중의 하나가 돈이나 음식에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특정한 상황하에서 나타나거나, 고백성사의 한 죄목으로 떠올리는 것으로는 죄의식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왜 이런 대상에 대한 과도하고 무절제한 욕구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나 현재에서 이런 욕구의 원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 행동의 근원을 조사함으로써, 우리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보다 더 잘 이해 할 수가 있다.

3. 이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발견한 욕구를 그 근원과 표현양식과 함께 기도의 주제로 가져온다. 예수님의 현존앞에서 “이 욕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요청한다. 우리는 더 이상 욕구가 우리의 의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건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오히려 의지가 때때로 욕구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구이다. 우리가 “이것은 제가 원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 할 때, 우리는 은총이 일을 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욕구자체가 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설사 욕구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냉정하게 바라 볼 수 있다. 어느정도는 욕구가 나타나는 양식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그것은 욕구의 근원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안다면,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점진적으로 욕구가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지가 욕구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 우리는 이 방법을 욕구와는 직접 연관이 안되는 다른 행동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화를 잘 낸다거나, 참을 성이 없다거나, 관용이 없다거나 하는 것이 자신에게 발견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이런 화를 내고 싶거나, 참지 않거나, 너그럽고 싶지 않는 욕구가 있을까? 돌연히, 우리는 이런 행동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깊은 곳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욕구가 사라진다면,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데 된다. 우리의 기도는 “이 욕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가 된다. 욕구를 분별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된다. 우리는 욕구와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욕구가 종종 나타난다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V. 결론

욕구는 우리의 모든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이 욕구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성 요한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욕구에 연관된 동기와 그 행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욕구에 관한 단순한 기도 – “이 욕구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 를 제시하였다. 이런 기도가 우리의 영혼에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이 기도로 우리의 외적 행동의 원천에 더욱 깊이 접근할 수있을 것이다. 또한 영적성장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행위를 하는 어떤 충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 영혼의 내적 움직임을 더욱 얻 활실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며, 이 움직임을 증진시키거나 또는 이 움직임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의 의지가 움직임의 선택에 보다 더 자유로워 졌음을 느끼게 된다.

욕구 하나하나를 통제 함으로써, 우리가 내적인 통제력을 갖게 됨을 느끼에 된다. 그리하여 영적 성장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다음에 설명한 것 같이 욕구의 지배를 덜 받음으로써, 그리고 은총의 활동에 더욱 더 마음을 열음으로써 영적을 성장을 기할 수 있다;

옛 생활을 청산하고 욕구(정욕)에 말려 들어 썩어져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에페소 4:22-24)

(역자 주: 공동번역에서는 “정욕” (Desire) 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 뜻이 너무 성적인 욕구에 한정이 되어 욕구라고 바꿨습니니다. 물론 원문에서는 정욕이 맞을 지도 모르고, 바오로 사도가 특별히 성적인 욕구를 말했는지도 모르지만, 이 글의 내용상 그냥 욕구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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