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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미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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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서광선 목사 |
참고 : | 새길교회 2010.1.17 주일설교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미가 4 : 3 ~ 5, 마태 5: 21 ~ 24]
서광선 목사
인사의 말씀:
새해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폭설과 혹한 속에서도 평안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작년 2009년 새해에는 1월 18일이 셋째 주일이었습니다. 꼭 1년 만에 다시 여러분 앞에 새해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분들에게 세배하라고 이렇게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한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내년 다시 이 강단에서 여러분에게 반가운 인사드릴 수 있는 과분한 욕심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도 불러 달라는 로비용 발언입니다.)
오늘 우리 화두는 "평화"입니다.
망국의 한:
2010년, 올해는 한반도가 일본제국주의 야욕으로 식민지로 병탄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0년을 기점으로 해서 한반도와 중국과 동남아시아와 미국을 포함한 태평양 국가들에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일본은 제가 태어나는 해, 1931년에 만주를 먹었고, 제가 소학교에 들어가는 해, 1937년에 중국 청도에 상륙작전을 펴서 침공했습니다. 그리고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945년, 이로 말미암아, 아시아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던 원자탄 공격을 받고 일본은 전쟁에 패망했습니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로 부터 해방되었다고 정신없이 만세를 부르고 있는 사이에, 한반도의 허리는 잘리고, 남과 북이 북위 38도선을 가운데 두고 둘로 갈라졌습니다. 북에는 소련군대가, 남에는 미국군대가 주둔했습니다.
2010년 올해는 625한국전쟁이 터진지 꼭 60년, 환갑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해방 된지 5년 동안, 이념적 갈등으로 형제자매가 갈라지고 찢기고 전쟁 아닌 전쟁을 하다가, 무력에 의한 남북통일을 시도한 것이 한국전쟁이었습니다.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953년 7월에 전쟁 당사국의 일부인 북조선과 미국과 중국은 휴전에 합의하고 협정에 서명했지만, 우리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끝내 휴전에 반대하고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엄격한 의미에서 전쟁상태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외국군대와 정부의 점령 상태에 있었고, 전쟁 준비와 전쟁 상태에서 살아 왔습니다.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찬란한 근대화와 개화와 선진화의 역사로 미화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고달프고, 서럽고, 아프고 괴로운, 고난의 한스러운 역사였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땅을 빼앗기고,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연해주로 살아남기 위해서 떠돌이 신세로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 젊은 학생들은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끌려가 이름도 모르는 남태평양 섬에서 전사했습니다. 우리 젊은 처녀들은 취직시켜 준다는 감언이설과 일본조폭들에게 강제로 납치되어 동남아 타향의 일본 군부대 막사에서 죽어 갔습니다. 미국의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일본의 수도 동경이 아니라, 한국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집결해 있는 서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공장지대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의 희생자는 일본사람들만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책임자인 독일에는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원자폭탄을 실전에 실험 대상이 된 것은 역시 동양인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자인 독일은 종전과 함께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의 책임자인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대신 전쟁의 책임자도 아니고 오히려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인 한반도가 분단되었습니다.
2010년, 망국의 한이 해방과 함께 분단의 한으로 이어 지고 그 아픔과 상처는 깊어지게 된 것입니다.
분단의 한:
올해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해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한 목사로 만주에 망명해서 한국 이민자들에게 선교하고, 분단 후에는 북한에서 반공 목사로 목회하다가 625 전쟁 때 공산군에게 총살당하여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한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평양 대동강가 10월 차디 찬 강물 속에 함께 밧줄로 묶여 총살당한 목사님들과 함께 떠 있는 아버지를 건져 내어 얼굴과 몸에 박힌 핏 자국을 씻어 드리면서,
"다시는, 다시는 전쟁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통곡한 지, 60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는 45세의 젊은 목사였습니다. 저는 너무 오래 살았습니다. 올해 8순이라고 하니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피난민으로, 대한민국 해군으로, 외국 유학생으로, 지연도, 학연도, 혈연도 없이 외롭게 살아남았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한은 저 개인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세대, 50대와 60대 70대, 한국전쟁의 한 가운데서 태어난 50대들, 한국전쟁의 한가운데서 피난민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을 피난촌에서 지내야 했던 60대들, 군대에 지원병으로 징병으로 총대를 메고 서툴게 총칼을 휘둘렀던 70대들, 그런 가운데서 고아가 되고,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고, 아이들과 친척의 생사도 모르고 살아야 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게 제사를 지내며, 추모예배를 드려야 한 것이 우리의 한 많은 전쟁의 역사, 우리의 자서전들입니다.
평화의 갈망:
오늘 아침 봉독한 구약성서의 선지자 미가의 말씀은 전쟁의 한을 안고 사는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미가 4:3-5)"
이것은 남의 이야기,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소원, 우리의 끔입니다.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주님, 언제 우리 휴전협정이 종전협정으로, 그리고 평화협정으로 전환될 수 있겠습니까? 언제 북조선의 100만 군대가 필요 없어지고 핵개발 포기선언을 하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남한 군대도 징병제가 아닌 지원병제로 전환되고, 병역기피의 비리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남북의 엄청난 군비예산을 사회복지와 교육비로 그리고 인도적 경제지원과 통일비용으로 쓸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올해 안에 남북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 안에 개성 관광이 재개되고, 금강산 구경도 갈 수 있게 하시고, 저희들 죽기 전에 서울서 비행기 타고 백두산 관광길에 오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해가 가기 전에 일본정부는 한국 강제징용노동자 보상 문제와 살아남은 정신대 할머니들 보상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독도 문제를 깨끗하게 청산하게 하시고, 100년 동안의 죄를 회개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3000여 년 전, 남북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고, 주변 강대국에게 시달리고 노예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 살상무기가 필요 없어지고 군대가 필요 없어지는 평화의 날, 평화로운 세상을 우리도 희망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2010년 분단과 전쟁의 한을 품은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꿈 꾸고,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다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625한국전쟁을 뼈아프게 경험한 세대가 살아생전, 우리 세대가 죽어 없어지기 전에,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적 사명이라고 행각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 : 평화로운 사람
우리는 흔히 "평화를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많이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전쟁에 패하고 나서 평화 헌법을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위해서 군대를 양성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위대라는 군대를 만들고 강화하고 있고, 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전쟁지역에 파병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위하여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싸우는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은 "정당한 전쟁" Just War 혹은 "거룩한 전쟁" Holy War 라고도 하고, 중세시대에 유럽의 전사들을 동원하여 몇백년동안 팔레스타인 성지를 회복한다고 일으킨 "십자군 전쟁" 역시 거룩한 성전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회교도와 기독교도의 종교 전쟁인데 모두 정당방위를 위한 거룩한 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어젠가 그제, 북한이 "성전"이란 말을 써 가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언제 부터 "거룩하다"는 말을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하고 강해 져야 한다. 우리의 오랜 갈등이고 고민입니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를 양립할 수는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하고 핵폭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핵폭탄을 없애야 합니다. 평화의 수단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나운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사람들은, 평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평화를 만들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이른바 평화운동가들은 사납게 평화를 부르짖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사납게 평화를 울부짖습니다. 평화를 외치면서 사람을 상하게도 하고, 평화운동가라고 하면서 사나운 말, 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읽은 신약성서의 말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 평화로운 사람이 되는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여덟 가지 복(8복)을 말씀하시면서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후에, 평화로운 삶과 행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 부터 기록된 말씀입니다.
"누구나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지 말라. 화내지 말라.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의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라. 그런 다음에, 돌아 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태 5: 23,24)."
우리가 오랫동안 망각하고 무시하고 있었던 말씀입니다. 성내지 않는 사람, 화풀이 하지 않는 사람, 남을 무시하고 바보라고 모욕하지 않는 사람, 폭언하지 않고, 폭력과 주먹을 쓰지 않는 사람, 이웃과 원한을 만들지 않고, 원한이 있는 사람과 화해할 줄 아는 사람, 머리를 숙이고 진정으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런 사람이 평화로운 사람이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평화로운 사람이 평화를 말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롭게 사는 한 개인이 나라의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국민들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사는 나라들이 세계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평화로운 사람, 평화로운 나라, 평화로운 세상은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자로 평화라는 말을 쓸 때 "화"자는 "쌀"과 "입"이 같이 나란히 있는데, "평"자와 함께, 입에 밥이 고루 들어간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국민 모두가 하루 밥 세끼 고루 먹을 수 있을 때, 그런 사회정의가 구현 되면 평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모택동이 5000년의 배고픈 중국의 역사를 배부른 역사로 만드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는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북조선의 김일성의 꿈은 인민들이 고깃국에 이팝 먹게하는게 꿈이었는데, 그의 자립경제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꿈을 이루도록, 그래서 굶어 죽어 가는 북한의 아이들을 살리는 일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평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정의와 사랑의 사람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말하기를: 평화로운 사람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에 띠를 삼는다."고 하면서 평화로운 사람이 평화를 이룩할 때에는 인간들 사이에만 화해와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이사야 11:5,6)."는 것입니다.
인간들 사이의 평화, 나라와 나라 사이의 평화는 인간과 동물, 동물들과 동물, 인간과 자연, 창조세계와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해방이며 구원입니다. 평화는 인간해방과 구원의 목적이며 동시에 수단입니다.
올해 우리의 화두, 우리 대화의 제목, 그리고 우리 믿음과 소망과 기도의 제목은 "평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은 새해 희망을 줄이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사람입니다. 전 강옥이라는 이름의 한 조각가가 새해 칼럼을 쓰면서 "희망을 줄이는 새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줄이는 새해에는 "한가롭게 거닐기, 남의 말을 잘 듣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을 찾기, 글쓰기, 명상하기 등의 조그만 일들을 실천해 보는 것, 이 사소한 '비움'의 행위들이 성장과 도약, 속도와 같은 '채움'보다 더 소중한 의미를 갖는 새해야 말로 나와 이웃이 행복해지는 희망 찬 새해다 (한국일보, 2010. 1. 12)."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평화로운 사람들이 참으로 하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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