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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관한 예화 모음
▣ 기쁨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어떤 사람이 한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이 사업체를 떠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하는 대화는 모두가 다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 최근에 여러분들이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참석한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무슨 잡지, 무슨 신문, 소설 등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잘못된 책만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기쁨을 불어 넣어주는 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등 온갖 성인병을 앓고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과 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부분의 병들은 기쁨을 잃고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생깁니다. 바로 이러한 모든 질병의 궁극적 치료약은 바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와 근심이 생길 때마다 주님께 나아와 기도해서 다 털어 버리고, 우리의 심령을 주님의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히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활력을 얻는 길이요, 최고의 건강비결입니다.
* 묵상: 당신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 항상 기뻐하라
성경: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기독교를 가리켜 소위 ‘기뻐하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해야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성령 안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을 때에 비로소 환경을 초월해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천국’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늘 기뻐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박정근 목사(대조동순복음교회)
▣ 희망과 기쁨
성경: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 9- 11)
독일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밤에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으로 12km정도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노인의 말대로 큰 나무를 찾아 베었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에 있던 둥지에서 새 알 두 개가 나왔습니다.
두 개의 새알 중 하나에서 새끼 새가 나와 "다른 새알을 까보면 금반지가 하나 나올 것인데 그 반지에게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날아갔습니다. 젊은 부부는 금반지를 두고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참으로 희망찬 순간이었습니다.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것이니 금반지를 잘 보관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반지를 잘 싸서 옷장 속에 넣었습니다.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열심히 일해 땅도 사고 논도 사고 소도 샀습니다. 나중에는 큰집도 장만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 형제까지 두었습니다. 이런 동안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보다 더 귀한 것이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평화롭게 숨졌습니다. 아들 삼 형제는 부모로부터 "금반지 유언"을 듣고 금반지를 꺼내 소원을 두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때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부모님은 소원을 풀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가 소원을 풀면 되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 묘소에 묻어 버리고 희망 속에 살자" 이 의견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 반지는 부모의 묘소에 묻혔습니다. 희망은 그 자체가 일종의 행복이며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큰 기쁨입니다. 즉 희망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
▣ 그리스도인의 기쁨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 몇 사람이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 번연은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져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했으며 새 사람이 되는 확실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의 위대한 신앙의 문학은 바로 그 기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기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가 될 것이다.
▣ 엄청난 기쁨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부자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아가 권면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여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꼭꼭 5센트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여집사님한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이 장로님은 2불씩을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5센트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장로님의 권면인즉 그 여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할테니 그 집사님 불러서 헌금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사님을 불러 “장로님이 당신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줄 알고 매주 헌금하는 것을 대신 내주겠다고 하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 안하셔도 괜찮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여집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십니까?”하고 목사님이 묻자 여집사님은 대답했습니다.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바칠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쁘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 이리하여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할 때에 바치는 일 자체가 엄청난 기쁨입니다. 이것을 바침으로써 복받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이나 헌금은 그 행위자체에서 기쁨과 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기쁜소식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넉넉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당신의 삶속에 진정 부활의 기쁨이 있는가?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마태 28:8)
/이영무 목사
▣ 진정한 기쁨
성경: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지금은 천부교로 알려진 전도관이라는 이단의 교주였던 박태선은 사실은 어느 교회의 장로였다고 합니다. 그는 신유의 은사를 받아 많은 병자를 고쳤는데, 그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은 철저하게 겸손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야 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통해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본질보다는 비 본질에 얽매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궁극적인 기쁨보다는 그것으로 받게 되는 세상적인 복에 더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사단이 침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한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 기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늘 간직하게 하소서.
▣ 시한부 사업가의 기쁨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재벌이 된 50대 남성. 그는 여행 중 우연히 의사와 비서의 전화를 도청하고 절망한다. 자신은 지금 심각한 암에 걸려 있으며 잘해야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것. 절망과 허무….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 무한질주를 계속해온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통곡한다. 일찍 아내를 잃고 두 딸을 위해 헌신한 삶도 광채가 없어 보였다. 그때 문득 죽은 아내가 평소 들려주던 성구가 떠오른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그는 절규한다.
“내 인생에서 이웃을 위한 시간은 없었어.”
그는 전쟁터에서 사귄 친구를 찾아가 돕는다. 관심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동생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낸다. 계모를 만나 감사를 표시한다. 이제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인생….
중년의 신사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일본 영화 ‘가세키’의 줄거리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해야 기쁨을 느끼는 존재로 창조됐다.
▣ 참 기쁨
1999년 투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랜드 암스트롱이라고 하는 청년입니다. 경기에는 언제나 그 누군가가 금메달을 얻겠지요마는 이 이야기는 그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3기 암 환자로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 엄청난 일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25세에 고환암이라고 하는 사형선고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존 가능성까지도 희박했습니다. 폐와 뇌에까지 전이되어서 너무나 쑤시고 아파서 식사도 잘 못하고 신문은 물론 텔레비젼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을 만큼 그렇게 머리가 터지게 아프고 괴로웠답니다. 그러나 그는 사이클 경기에 나갔습니다. 물론 실패했죠.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My son, you never quit" 내 아들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권면했습니다. 열심히 사이클을 훈련을 했습니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왕을 알현하는 그런 기쁨도,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 힘이 들어서 선수생활을 접어 두었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데 자기가 가는 길에 환한 빛이 나타나면서 길에 글이 쓰여졌습니다. 그 글은 역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입니다. "My son, never quit."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에 이어서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그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열심히 탔습니다. 그리고 1999년 프랑스에서 금메달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환영했고 그리고 2001년 5월호 가이드포스트에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발표해서 모두가 다 같이, 세계사람이 축하했습니다마는 본인은 1등이냐 2등이냐 금메달이냐 그것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 그는 암투병에서 승리했다고 하는 것,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는 것, 불행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그 사실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만이 가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나만이 가지는 나만이 아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참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흔히들 '참 기쁨' 하면 소유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많이 가졌고 많이 알고……. 소유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합니까? 그렇게도 소중한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건 근심만 더할 따름입니다. 또한 충족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가지는 욕구 충족,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욕구 충족할때에 그 충족되는 기쁨을 누립니다마는 그야말로 허무한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정신적으로 성취감이라는 게 있습니다. 뭐 하나를 만들어 낼 때, 뭐 하나를 이루었을 때, 스스로 성취했다고 생각합니다마는 그것 또한 무상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심을 더 기뻐햐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 20)
▣ 우리가 서로 기뻐하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항상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 주님을 믿고 따르고 시인하며 전파하게 된 기쁨, 주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기쁨,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된 기쁨,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 나에게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와 사업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기쁨….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은혜로 나타나는 웃음은 우리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밝은 웃음입니다. 믿음의 삶이 깊으면 깊을수록 영적인 기쁨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리 광풍이 몰아치고 어떤 악조건의 괴로움이 다가와도, 주 안에서 복음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 참 평안이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에게는 환난 그 자체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온전한 믿음에서 샘솟는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진정한 주 안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기쁨입니다. 필립스 부룩스는 “우리가 서로 기뻐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셨으며,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그 분의 진리의 선포자로 만드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쁨과 웃음으로 살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구원의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용혜원
▣ 기뻐하라
성경: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해방되기 전, 함경북도 나남에 한 여자 거지가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인데, 살이 보이는 남루한 옷을 입고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행각을 하였습니다. 젊은 것이 무엇을 못해 거지가 됐느냐, 멀쩡한 여자가 일하기 싫어서 그 모양이냐 하며 남들이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으나 한번도 화를 내는 일 없이 그저 싱글벙글 웃어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친 여자로 돌려놓고 제대로 상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8.25해방이 되고 나남에 소련군이 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거지가 소련군의 장교 옷을 입고 중위의 견장을 달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거지가 아니라 소련군으로부터 밀파된 여자 간첩이었습니다. 이 거지가 그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 앞에 서 태연하고 여유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그 까닭을 알수 있습니다. 소련 장교인 그는 자기의 사명에 대하여 긍지가 있었고 자기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멸시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으므로 주위가 자기만 거지로 알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조금도 괴롭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됨을 자랑하는 우리들이 핏대를 올려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만한 일이 세상에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배신을 당하고, 무지한 로마 병정들에게는 매를 맞고, 얼굴에 침을 받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빗발치는 욕설 속에 못박혀 죽으신 일, 살인강도들과 꼭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한마디의 불평도 아니하신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나치게 호강하는 셈이며 앞으로 어떠한 부당한 욕을 먹어도 기쁘게 참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 은혜의 기쁨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찰스 스펄전이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즈 강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템즈 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즈 강이 다 말라 버리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이 통치하던 시대의 작은 새앙쥐가 아닐까? 내가 풍년이 들었을 때, 그 곡식을 이 새앙쥐가 조금씩 먹는데 이거 내가 다 먹어서 이 곡간이 텅텅 비면 어떡하지?' 그때 요셉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이 작은 새앙쥐야. "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 버려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다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우리 인생이 피곤하지만 하나님이 그때마다 우리의 하늘을 열어 주신다면 일평생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 장경철
▣ 참된 교회와 기쁨
본문: 시편 94 장 19 절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 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 기도: 환난으로 인하여 생각이 복잡해질 때 영혼 가운데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 기뻐하기
기쁨이란 그저 헤죽헤죽 웃는 정도가 아니라 운동 경기에서 극적으로 상대방을 이겼을 때처럼 날뛰듯이 좋아하는 정도를 말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중학교 시절의 외국인 영어 선생님이다. 그날은 영어 선생님에게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그 좋은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기쁜 소식을 듣고 갑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시더니 펄쩍펄쩍 뛰면서 춤을 추셨다. 그 장면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에 나는 선생님들보다 훨씬 더 점잖은 학생이었다. 친구들이 장난을 치다가 책상 위로 올라가는 것도 용납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님이 좋은 일이 생겼다고 책상 위로 올라가 날뛰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는 것이다. 매력이 있어 보였다.
때로 언어보다 느낌이 더 강한가 보다. 당시에 교실 안의 냄새, 책상이 흔들리는 소리, 선생님의 얼굴에서 발산되던 기쁨의 빛줄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간이 흘러 그 모습을 떠올리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괜찮은 모습이다. 선생님이 책상 위에 올라간 사실이 괜찮은 것이 아니라 기쁨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괜찮은 것이다. 기뻐한다는 것은 춤을 추는 것이고 긍정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기쁨의 춤과 노래가 인생에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행복한 누림」/ 라준석
* 기도: 하나님이 제 인생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돌아봅니다. 주님은 바다를 갈라 마른 땅을 걷는 것 같은 기적을 제 삶에 행하셨습니다. 제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주님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 구원의 즐거움
본문: 시편 51 장 12 ~ 13 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12-13)
어느 날 스펄전 목사님이 울고 계셨습니다. 부인이 의아해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어요? 힘든 일이 있어요? 아니면 슬픈 소식이라도 들었어요?’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의 사람 스펄전은 눈물을 그치고 차분하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지금 울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소? 그것은 말이오, 오늘은 내가 십자가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더란 말이오. 이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느껴졌소. 나에게 십자가의 감격이 없고 이렇게 메말라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할 수 있겠소? ‘
신앙생활의 최대 위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곧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핍박이나 환난, 어려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어려운 시대에는 교리의 순수성이 보존되고 교회가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이 논쟁이나 형식으로 치우쳐서 사람들의 열정이 식는 것이 더 커다란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우리가 얻은 구원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살펴봅시다. 신앙생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 기도: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소서.
▣ 일하는 기쁨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대표적인 선물 세가지가 있습니다. 혼인과 안식일과 노동입니다. 모두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땀흘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저는 열중해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북한에 능라도 경기장이 있습니다. 5·1경기장이라고도 부릅니다. 북한에서는 5월1일이 노동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회가 많은 오류를 갖고 있지만 노동을 신성시하는 점은 배울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일을 천시하면서 편하고 수고 덜하는 직업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모두 일확천금,배금사상에 흠뻑 물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속에도 이 한탕주의가 들어있습니다. “기적같이,형통하게,불같이,소나기같이….” 이것들이 모두 한탕주의입니다.
성경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으라 그러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수확의 기쁨
무서리가 내린 아침에야 호박을 땄다. 따던 날은 추수감사주일이었다. 지난 봄 울밑에 호박씨앗을 심었더니 제법 잘 자라주었다. 1주일이 멀다 하고 호박순이 커가 길 다듬기에 바빴다. 호박덩굴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착하게도 잘 자라주었다. 여름에는 태풍도 불고 비가 잦아서였는지 꽃은 많이 피었는데 열매가 적었다. 그러나 도심의 담장 위에 핀 호박꽃은 어느 꽃보다 친근했다. 보잘것 없는 꽃으로 여기던 호박꽃을 보고 지나는 사람들은 다정스러움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꽃에서 열매가 맺혀 여름에 몇 개를 따먹었다. 그런데 대문 위에 올라간 줄기에 열린 호박은 가을 햇볕을 받아 잘도 익었다. 올해는 추위가 빨리 찾아왔다. 추위가 왔는데도 호박을 따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추수감사절을 맞고서야 얼어서 상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며 호박을 땄다. 한 개의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하고 꽃을 피워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스러움을 느끼게 해줬다. 추수감사절에는 가족과 교회에 큰 선물이 되었다. 아침에 따다가 잘 닦아 교회당의 과일과 채소 사이에 놓아두니 제법 뿌듯했다. 심고,물 주고,사닥다리 만들어 덩굴을 오르도록 한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는데 수확을 할 수 있었으니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정종기 교수(인간관계회복연구소장)
▣ 3일의 비밀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다. 늘 그것을 궁금해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손님 :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할머니 :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 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손님 :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어요?
할머니 :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손님 : ‘3일의 비밀’ 이라니요?
할머니 : ‘3일의 비밀’ 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 영원한 기쁨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예외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결국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인생은 짧고 허무한 것입니다.
어느 장례식장에 시체 세 구가 있는데 한결같이 웃는 모습입니다. 크게 웃다가 죽은 것입니다. 웃다가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은 로또 복권이 당첨이 되어 너무 기뻐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아들이 삼수를 해서 서울대학에 합격하여 너무 기뻐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번쩍할 때 사진 찍는 줄 알고 '치즈'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씁쓸한 웃음입니다. 인간의 모든 기쁨은 잠깐이며 그 기쁨으로 인해서 때로는 화를 당하고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의 기쁨은 진정하고 영원한 기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정호 목사(번동제일교회)
▣ 기쁨을 주는 사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햇빛은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줍니다. 웃는 얼굴은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사랑을 받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 가려면, 먼저 찌푸린 얼굴을 거두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야 합니다. 명랑한 기분으로 생활하는 것이 육체와 정신을 위한 가장 좋은 건강법입니다. 값 비싼 보약보다 명랑한 기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약효를 지니고 있습니다.
▣ 언제나 기쁨을 누리는 삶
그리스도인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절망 속에서 슬픔에 젖어 있거나 고통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지만 부활의 종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로 새롭게 십자가의 의미를 찾는 종교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환경이 오면 기뻐하고 역경이 오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와 죽음과 세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그리고 승리와 감격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찡그리지 마십시오. 어깨를 펴고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손해를 보면서도 기뻐하고 당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사탄의 공격에 말려들지 않고, 그 폭풍과 역경 속에서도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역경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핍박과 역경보다 더 위에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보다 강하고 어떤 환경보다도 위대하십니다. 그분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았다면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머지않아 곧 승리의 면류관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에게」/ 하용조
▣ 기뻐하는 삶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쓴 '피난처'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와 그의 언니 벳시(Betsy)가 라벤스부르크(Ravensbruck)라는 나치의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은 그들이 거쳐 간 수용소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였는가 하면 사방에 이들이 득실거렸습니다. 그곳에 들어간 첫날, 그들은 늘 그래 왔듯이, 몰래 숨겨 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날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언니 벳시는 그 말씀대로 새로운 환경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코리는 한 마디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이들이 득실거리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고집에 못 이겨 마침내는 그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달을 지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간수들이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하고 충실한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곳에 이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간수들이 오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데 가장 좋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열악한 환경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들로 하여금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 기쁨이 열리는 창
나는 기쁨이란 단어를 무척 사랑한다. 어린시절부터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겐 다 신기하게 여겨져 행복했고 놀라운 것들이 하도 많아 삶이 지루하지 않았다. 나의 남은 날들을 기쁨으로 물들여야지 하고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마음의 창에 기쁨의 종을 달자. 사랑하는 이들을 기쁨으로 불러모으자. 슬픈 이들 우울한 이들 괴로운 이들이 아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하도록 돕는 기쁨천사가 될 순 없을까? 어쩌면 기쁨은 우리가 노력해서 구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이기심을 조금만 버려도 기쁠 수 있다. 자만에 빠지지 말고 조금만더 겸손하면 기쁠 수 있다. 남이 눈치채지 못하는 교만이나 허영심이 싹틀 때 얼른 기도의 물에 마음을 담그면 기쁠 수 있다.
/이해인
▣ 쾌락과 희락
인생을 즐겁고 재미나게 사는 것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웃을 때 몸의 모든 근육이 활발히 움직여지고 엔도르핀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해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준다. 소나 양과 같은 동물들은 울기만 하고 웃을 줄 모르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웃음을 추구하는가 보다.
우리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주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희락이다. 쾌락은 컴퓨터 게임이나 자위행위를 하고 난 후 느끼기도 하고, 오락이나 도박을 한 뒤에, 그리고 값비싼 물건을 소유했을 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쾌감은 단순 자극으로 말초적 본능을 만족시키며 곧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희락은 육체와 영혼의 종합 자극으로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기쁨의 근원을 가지며 오랫동안 지속된다. 진리를 깨달을 때,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섬길 때 누리는 행복감은 신의 선물인 것이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말초적 쾌락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희락인 셈이다.
/박상은 박사(샘안양병원장)
▣ 기쁨에 관한 성경 말씀
0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 9- 11)
0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시33:1)
0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40:16)
0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12, 13)
0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0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0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사66:10)
0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2)
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0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
0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요17:13)
0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0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0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살전3:9)
0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0 이는 너희 기쁨을 총만케 하려 함이라(요이1:12)
▣ 기쁨에 관한 금언
0 마음이 기쁘면 얼굴빛이 아름다와진다.(테이비즈)
0 슬픔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달콤한 기쁨이 있다.(스펄전)
0 성령 받은 사람의 첫째 표적은 기쁨이 충만해 있다는 것이다.(김경선)
0 순간적인 기쁨은 여러 달의 고통을 빚어낸다.(세익스피어)
0 참다운 행복과 기쁨은 노동과 눈물로써만 얻을 수 있다.
0 기독교인은 마음 속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즐겁기 때문에 찬송과 춤과 기쁨의 표현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마르틴 루터)
▣ 기쁨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어떤 사람이 한 회사의 이사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인 여러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이 사업체를 떠나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하는 대화는 모두가 다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 최근에 여러분들이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참석한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무슨 잡지, 무슨 신문, 소설 등이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잘못된 책만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기쁨을 불어 넣어주는 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등 온갖 성인병을 앓고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과 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부분의 병들은 기쁨을 잃고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생깁니다. 바로 이러한 모든 질병의 궁극적 치료약은 바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와 근심이 생길 때마다 주님께 나아와 기도해서 다 털어 버리고, 우리의 심령을 주님의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히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삶의 활력을 얻는 길이요, 최고의 건강비결입니다.
* 묵상: 당신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 항상 기뻐하라
성경: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기독교를 가리켜 소위 ‘기뻐하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해야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성령 안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을 때에 비로소 환경을 초월해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천국’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늘 기뻐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박정근 목사(대조동순복음교회)
▣ 희망과 기쁨
성경: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 9- 11)
독일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농촌에서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착하게 살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밤에 꿈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으로 12km정도 가면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노인의 말대로 큰 나무를 찾아 베었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쓰러지면서 가지에 있던 둥지에서 새 알 두 개가 나왔습니다.
두 개의 새알 중 하나에서 새끼 새가 나와 "다른 새알을 까보면 금반지가 하나 나올 것인데 그 반지에게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날아갔습니다. 젊은 부부는 금반지를 두고 무슨 소원을 빌까를 의논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참으로 희망찬 순간이었습니다. 집을 달라고 할까, 소를 달라고 할까, 땅을 달라고 할까, 돈을 달라고 할까를 의논하다가 그런 것은 열심히 일하면 얻을 것이니 금반지를 잘 보관하고 열심히 일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반지를 잘 싸서 옷장 속에 넣었습니다. 무슨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보다 반지가 있다는 사실에 든든해하며 희망과 기쁨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힘든지도 모르고 전보다 열심히 일해 땅도 사고 논도 사고 소도 샀습니다. 나중에는 큰집도 장만해 부자가 되었고 아들 삼 형제까지 두었습니다. 이런 동안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보다 더 귀한 것이 희망과 사랑, 성실과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들들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평화롭게 숨졌습니다. 아들 삼 형제는 부모로부터 "금반지 유언"을 듣고 금반지를 꺼내 소원을 두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때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부모님은 소원을 풀지 않고 희망 속에서 행복하게 사셨는데 우리가 소원을 풀면 되겠느냐? 금반지 때문에 서로 갈라질 것이 아니라 금반지를 그냥 부모님 묘소에 묻어 버리고 희망 속에 살자" 이 의견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 반지는 부모의 묘소에 묻혔습니다. 희망은 그 자체가 일종의 행복이며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큰 기쁨입니다. 즉 희망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
▣ 그리스도인의 기쁨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 몇 사람이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며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존 번연은 그 순간 가슴이 뜨거워져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했으며 새 사람이 되는 확실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의 위대한 신앙의 문학은 바로 그 기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기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도구가 될 것이다.
▣ 엄청난 기쁨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부자 장로님이 목사님을 찾아가 권면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여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꼭꼭 5센트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여집사님한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이 장로님은 2불씩을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5센트의 2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장로님의 권면인즉 그 여집사님의 몫까지 자기가 대신할테니 그 집사님 불러서 헌금하지 말라고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사님을 불러 “장로님이 당신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줄 알고 매주 헌금하는 것을 대신 내주겠다고 하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 안하셔도 괜찮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여집사님은 앉은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십니까?”하고 목사님이 묻자 여집사님은 대답했습니다.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5센트씩 바칠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기쁘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고 하십니까?” 이리하여 장로님도, 목사님도 회개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할 때에 바치는 일 자체가 엄청난 기쁨입니다. 이것을 바침으로써 복받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이나 헌금은 그 행위자체에서 기쁨과 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기쁜소식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넉넉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당신의 삶속에 진정 부활의 기쁨이 있는가?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마태 28:8)
/이영무 목사
▣ 진정한 기쁨
성경: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지금은 천부교로 알려진 전도관이라는 이단의 교주였던 박태선은 사실은 어느 교회의 장로였다고 합니다. 그는 신유의 은사를 받아 많은 병자를 고쳤는데, 그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셔서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은 철저하게 겸손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야 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통해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본질보다는 비 본질에 얽매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궁극적인 기쁨보다는 그것으로 받게 되는 세상적인 복에 더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사단이 침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한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 기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을 늘 간직하게 하소서.
▣ 시한부 사업가의 기쁨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재벌이 된 50대 남성. 그는 여행 중 우연히 의사와 비서의 전화를 도청하고 절망한다. 자신은 지금 심각한 암에 걸려 있으며 잘해야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것. 절망과 허무….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 무한질주를 계속해온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통곡한다. 일찍 아내를 잃고 두 딸을 위해 헌신한 삶도 광채가 없어 보였다. 그때 문득 죽은 아내가 평소 들려주던 성구가 떠오른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그는 절규한다.
“내 인생에서 이웃을 위한 시간은 없었어.”
그는 전쟁터에서 사귄 친구를 찾아가 돕는다. 관심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동생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낸다. 계모를 만나 감사를 표시한다. 이제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인생….
중년의 신사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일본 영화 ‘가세키’의 줄거리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해야 기쁨을 느끼는 존재로 창조됐다.
▣ 참 기쁨
1999년 투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랜드 암스트롱이라고 하는 청년입니다. 경기에는 언제나 그 누군가가 금메달을 얻겠지요마는 이 이야기는 그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3기 암 환자로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 엄청난 일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25세에 고환암이라고 하는 사형선고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존 가능성까지도 희박했습니다. 폐와 뇌에까지 전이되어서 너무나 쑤시고 아파서 식사도 잘 못하고 신문은 물론 텔레비젼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을 만큼 그렇게 머리가 터지게 아프고 괴로웠답니다. 그러나 그는 사이클 경기에 나갔습니다. 물론 실패했죠.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My son, you never quit" 내 아들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권면했습니다. 열심히 사이클을 훈련을 했습니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왕을 알현하는 그런 기쁨도,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 힘이 들어서 선수생활을 접어 두었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데 자기가 가는 길에 환한 빛이 나타나면서 길에 글이 쓰여졌습니다. 그 글은 역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입니다. "My son, never quit."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에 이어서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그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열심히 탔습니다. 그리고 1999년 프랑스에서 금메달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환영했고 그리고 2001년 5월호 가이드포스트에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발표해서 모두가 다 같이, 세계사람이 축하했습니다마는 본인은 1등이냐 2등이냐 금메달이냐 그것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 그는 암투병에서 승리했다고 하는 것,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는 것, 불행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그 사실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만이 가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나만이 가지는 나만이 아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참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흔히들 '참 기쁨' 하면 소유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많이 가졌고 많이 알고……. 소유가 나를 정말 기쁘게 합니까? 그렇게도 소중한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건 근심만 더할 따름입니다. 또한 충족에서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가지는 욕구 충족,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욕구 충족할때에 그 충족되는 기쁨을 누립니다마는 그야말로 허무한 것이올시다. 또 하나는 정신적으로 성취감이라는 게 있습니다. 뭐 하나를 만들어 낼 때, 뭐 하나를 이루었을 때, 스스로 성취했다고 생각합니다마는 그것 또한 무상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성공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심을 더 기뻐햐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 20)
▣ 우리가 서로 기뻐하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항상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 주님을 믿고 따르고 시인하며 전파하게 된 기쁨, 주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기쁨,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게 된 기쁨, 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 나에게 허락하신 가정과 교회와 사업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기쁨….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은혜로 나타나는 웃음은 우리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밝은 웃음입니다. 믿음의 삶이 깊으면 깊을수록 영적인 기쁨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리 광풍이 몰아치고 어떤 악조건의 괴로움이 다가와도, 주 안에서 복음의 기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 참 평안이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에게는 환난 그 자체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온전한 믿음에서 샘솟는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 진정한 주 안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기쁨입니다. 필립스 부룩스는 “우리가 서로 기뻐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셨으며,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그 분의 진리의 선포자로 만드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쁨과 웃음으로 살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구원의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용혜원
▣ 기뻐하라
성경: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해방되기 전, 함경북도 나남에 한 여자 거지가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인데, 살이 보이는 남루한 옷을 입고 이집 저집 다니며 구걸행각을 하였습니다. 젊은 것이 무엇을 못해 거지가 됐느냐, 멀쩡한 여자가 일하기 싫어서 그 모양이냐 하며 남들이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으나 한번도 화를 내는 일 없이 그저 싱글벙글 웃어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미친 여자로 돌려놓고 제대로 상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8.25해방이 되고 나남에 소련군이 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거지가 소련군의 장교 옷을 입고 중위의 견장을 달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거지가 아니라 소련군으로부터 밀파된 여자 간첩이었습니다. 이 거지가 그를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 앞에 서 태연하고 여유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그 까닭을 알수 있습니다. 소련 장교인 그는 자기의 사명에 대하여 긍지가 있었고 자기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멸시할 자격이 없다고 믿었으므로 주위가 자기만 거지로 알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조금도 괴롭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됨을 자랑하는 우리들이 핏대를 올려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만한 일이 세상에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배신을 당하고, 무지한 로마 병정들에게는 매를 맞고, 얼굴에 침을 받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빗발치는 욕설 속에 못박혀 죽으신 일, 살인강도들과 꼭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한마디의 불평도 아니하신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나치게 호강하는 셈이며 앞으로 어떠한 부당한 욕을 먹어도 기쁘게 참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 은혜의 기쁨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찰스 스펄전이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즈 강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템즈 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즈 강이 다 말라 버리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이 통치하던 시대의 작은 새앙쥐가 아닐까? 내가 풍년이 들었을 때, 그 곡식을 이 새앙쥐가 조금씩 먹는데 이거 내가 다 먹어서 이 곡간이 텅텅 비면 어떡하지?' 그때 요셉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이 작은 새앙쥐야. "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 버려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다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우리 인생이 피곤하지만 하나님이 그때마다 우리의 하늘을 열어 주신다면 일평생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 장경철
▣ 참된 교회와 기쁨
본문: 시편 94 장 19 절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 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 기도: 환난으로 인하여 생각이 복잡해질 때 영혼 가운데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 기뻐하기
기쁨이란 그저 헤죽헤죽 웃는 정도가 아니라 운동 경기에서 극적으로 상대방을 이겼을 때처럼 날뛰듯이 좋아하는 정도를 말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중학교 시절의 외국인 영어 선생님이다. 그날은 영어 선생님에게 좋은 일이 있었나 보다. 그 좋은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기쁜 소식을 듣고 갑자기 책상 위로 올라가시더니 펄쩍펄쩍 뛰면서 춤을 추셨다. 그 장면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에 나는 선생님들보다 훨씬 더 점잖은 학생이었다. 친구들이 장난을 치다가 책상 위로 올라가는 것도 용납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님이 좋은 일이 생겼다고 책상 위로 올라가 날뛰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는 것이다. 매력이 있어 보였다.
때로 언어보다 느낌이 더 강한가 보다. 당시에 교실 안의 냄새, 책상이 흔들리는 소리, 선생님의 얼굴에서 발산되던 기쁨의 빛줄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간이 흘러 그 모습을 떠올리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괜찮은 모습이다. 선생님이 책상 위에 올라간 사실이 괜찮은 것이 아니라 기쁨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괜찮은 것이다. 기뻐한다는 것은 춤을 추는 것이고 긍정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기쁨의 춤과 노래가 인생에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행복한 누림」/ 라준석
* 기도: 하나님이 제 인생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돌아봅니다. 주님은 바다를 갈라 마른 땅을 걷는 것 같은 기적을 제 삶에 행하셨습니다. 제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주님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 구원의 즐거움
본문: 시편 51 장 12 ~ 13 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12-13)
어느 날 스펄전 목사님이 울고 계셨습니다. 부인이 의아해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어요? 힘든 일이 있어요? 아니면 슬픈 소식이라도 들었어요?’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의 사람 스펄전은 눈물을 그치고 차분하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지금 울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소? 그것은 말이오, 오늘은 내가 십자가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더란 말이오. 이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느껴졌소. 나에게 십자가의 감격이 없고 이렇게 메말라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할 수 있겠소? ‘
신앙생활의 최대 위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곧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핍박이나 환난, 어려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어려운 시대에는 교리의 순수성이 보존되고 교회가 많은 성장을 했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이 논쟁이나 형식으로 치우쳐서 사람들의 열정이 식는 것이 더 커다란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우리가 얻은 구원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살펴봅시다. 신앙생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 기도: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소서.
▣ 일하는 기쁨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주신 대표적인 선물 세가지가 있습니다. 혼인과 안식일과 노동입니다. 모두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땀흘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복중의 복입니다. 저는 열중해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북한에 능라도 경기장이 있습니다. 5·1경기장이라고도 부릅니다. 북한에서는 5월1일이 노동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회가 많은 오류를 갖고 있지만 노동을 신성시하는 점은 배울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일을 천시하면서 편하고 수고 덜하는 직업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모두 일확천금,배금사상에 흠뻑 물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속에도 이 한탕주의가 들어있습니다. “기적같이,형통하게,불같이,소나기같이….” 이것들이 모두 한탕주의입니다.
성경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으라 그러면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수확의 기쁨
무서리가 내린 아침에야 호박을 땄다. 따던 날은 추수감사주일이었다. 지난 봄 울밑에 호박씨앗을 심었더니 제법 잘 자라주었다. 1주일이 멀다 하고 호박순이 커가 길 다듬기에 바빴다. 호박덩굴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착하게도 잘 자라주었다. 여름에는 태풍도 불고 비가 잦아서였는지 꽃은 많이 피었는데 열매가 적었다. 그러나 도심의 담장 위에 핀 호박꽃은 어느 꽃보다 친근했다. 보잘것 없는 꽃으로 여기던 호박꽃을 보고 지나는 사람들은 다정스러움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꽃에서 열매가 맺혀 여름에 몇 개를 따먹었다. 그런데 대문 위에 올라간 줄기에 열린 호박은 가을 햇볕을 받아 잘도 익었다. 올해는 추위가 빨리 찾아왔다. 추위가 왔는데도 호박을 따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추수감사절을 맞고서야 얼어서 상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며 호박을 땄다. 한 개의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하고 꽃을 피워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스러움을 느끼게 해줬다. 추수감사절에는 가족과 교회에 큰 선물이 되었다. 아침에 따다가 잘 닦아 교회당의 과일과 채소 사이에 놓아두니 제법 뿌듯했다. 심고,물 주고,사닥다리 만들어 덩굴을 오르도록 한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는데 수확을 할 수 있었으니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정종기 교수(인간관계회복연구소장)
▣ 3일의 비밀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다. 늘 그것을 궁금해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손님 :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할머니 :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 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손님 :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어요?
할머니 :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손님 : ‘3일의 비밀’ 이라니요?
할머니 : ‘3일의 비밀’ 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 영원한 기쁨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예외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결국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인생은 짧고 허무한 것입니다.
어느 장례식장에 시체 세 구가 있는데 한결같이 웃는 모습입니다. 크게 웃다가 죽은 것입니다. 웃다가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은 로또 복권이 당첨이 되어 너무 기뻐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아들이 삼수를 해서 서울대학에 합격하여 너무 기뻐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번쩍할 때 사진 찍는 줄 알고 '치즈'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씁쓸한 웃음입니다. 인간의 모든 기쁨은 잠깐이며 그 기쁨으로 인해서 때로는 화를 당하고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의 기쁨은 진정하고 영원한 기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정호 목사(번동제일교회)
▣ 기쁨을 주는 사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햇빛은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줍니다. 웃는 얼굴은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사랑을 받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 가려면, 먼저 찌푸린 얼굴을 거두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야 합니다. 명랑한 기분으로 생활하는 것이 육체와 정신을 위한 가장 좋은 건강법입니다. 값 비싼 보약보다 명랑한 기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약효를 지니고 있습니다.
▣ 언제나 기쁨을 누리는 삶
그리스도인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절망 속에서 슬픔에 젖어 있거나 고통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지만 부활의 종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부활로 새롭게 십자가의 의미를 찾는 종교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환경이 오면 기뻐하고 역경이 오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와 죽음과 세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그리고 승리와 감격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찡그리지 마십시오. 어깨를 펴고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손해를 보면서도 기뻐하고 당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사탄의 공격에 말려들지 않고, 그 폭풍과 역경 속에서도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듯 역경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핍박과 역경보다 더 위에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보다 강하고 어떤 환경보다도 위대하십니다. 그분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았다면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적극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머지않아 곧 승리의 면류관이 당신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에게」/ 하용조
▣ 기뻐하는 삶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쓴 '피난처'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와 그의 언니 벳시(Betsy)가 라벤스부르크(Ravensbruck)라는 나치의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은 그들이 거쳐 간 수용소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였는가 하면 사방에 이들이 득실거렸습니다. 그곳에 들어간 첫날, 그들은 늘 그래 왔듯이, 몰래 숨겨 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날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언니 벳시는 그 말씀대로 새로운 환경의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코리는 한 마디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렇게 이들이 득실거리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감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고집에 못 이겨 마침내는 그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달을 지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간수들이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하고 충실한 성경공부와 기도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곳에 이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간수들이 오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데 가장 좋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열악한 환경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들로 하여금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 기쁨이 열리는 창
나는 기쁨이란 단어를 무척 사랑한다. 어린시절부터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겐 다 신기하게 여겨져 행복했고 놀라운 것들이 하도 많아 삶이 지루하지 않았다. 나의 남은 날들을 기쁨으로 물들여야지 하고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마음의 창에 기쁨의 종을 달자. 사랑하는 이들을 기쁨으로 불러모으자. 슬픈 이들 우울한 이들 괴로운 이들이 아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하도록 돕는 기쁨천사가 될 순 없을까? 어쩌면 기쁨은 우리가 노력해서 구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이기심을 조금만 버려도 기쁠 수 있다. 자만에 빠지지 말고 조금만더 겸손하면 기쁠 수 있다. 남이 눈치채지 못하는 교만이나 허영심이 싹틀 때 얼른 기도의 물에 마음을 담그면 기쁠 수 있다.
/이해인
▣ 쾌락과 희락
인생을 즐겁고 재미나게 사는 것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웃을 때 몸의 모든 근육이 활발히 움직여지고 엔도르핀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해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준다. 소나 양과 같은 동물들은 울기만 하고 웃을 줄 모르는 것과는 달리 인간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웃음을 추구하는가 보다.
우리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주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희락이다. 쾌락은 컴퓨터 게임이나 자위행위를 하고 난 후 느끼기도 하고, 오락이나 도박을 한 뒤에, 그리고 값비싼 물건을 소유했을 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쾌감은 단순 자극으로 말초적 본능을 만족시키며 곧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희락은 육체와 영혼의 종합 자극으로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기쁨의 근원을 가지며 오랫동안 지속된다. 진리를 깨달을 때,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섬길 때 누리는 행복감은 신의 선물인 것이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말초적 쾌락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희락인 셈이다.
/박상은 박사(샘안양병원장)
▣ 기쁨에 관한 성경 말씀
0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 9- 11)
0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바로다(시33:1)
0 무릇 주를 찾는 자는 다 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40:16)
0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12, 13)
0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0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0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사66:10)
0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2)
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0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
0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요17:13)
0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0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0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살전3:9)
0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0 이는 너희 기쁨을 총만케 하려 함이라(요이1:12)
▣ 기쁨에 관한 금언
0 마음이 기쁘면 얼굴빛이 아름다와진다.(테이비즈)
0 슬픔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달콤한 기쁨이 있다.(스펄전)
0 성령 받은 사람의 첫째 표적은 기쁨이 충만해 있다는 것이다.(김경선)
0 순간적인 기쁨은 여러 달의 고통을 빚어낸다.(세익스피어)
0 참다운 행복과 기쁨은 노동과 눈물로써만 얻을 수 있다.
0 기독교인은 마음 속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즐겁기 때문에 찬송과 춤과 기쁨의 표현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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