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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예화 75편 모음
1.교만과 겸손
하나님은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오십니다.
사탄은 교만의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참 겸손은 '나는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겸손은 '나는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만은 '나는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제불능의 교만은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최용우
2.호랑이와 개구리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와 백두산 계곡에 사는 호랑이 중 누가 더 교만할까? 당연히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호랑이는 넓은 세상을 바람처럼 다니면서 이 세상에는 자기보다 더 크고 무서운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우물안 개구리는 천하에 자기가 제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교만의 극치를 달립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보았다는 황소와 자기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배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다가 풍선 터지듯 배가 터져 죽었지요. 저는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만 큰소리 치지 말고 교회 밖에서도 큰소리를 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장로 권사 선거를 할 때도 교회 밖에 동네사람들의 여론도 50%를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팎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야 진짜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용우
3. 교만은 '패망의 선봉'
해질 무렵, 길을 거닐던 이리가 자기의 긴 그림자를 보고 탄복하면서 "아니,내가 이처럼 덩치가 크다니. 그런데도 난 사자를 두려워했잖아. 이것 보라구. 내 몸의 길이가 3m도 넘겠어"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리는 "왕이 되어야지. 그리하여 모든 동물을 다스릴테야.물론 사자도 내 밑으로 오게 해야지." 라고 으스대며 만나는 동물들에게 횡포를 부렸다.
얼마 후 사자를 만난 이리는 거만하게 굴다 단번에 물려 죽고 말았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언16:18)
4. 교만하면 부딛친다
영국에 있는 한 교회는 출입문이 유난히 낮아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그 문을 출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딪칠 게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만하면 반드시 부딪칩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너무 교만해 !” “저 사람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 “저 작자, 언제 사람되지 ?”라고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은 바로 당신자신에게 하는 말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겸손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교만함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테니까 말입니다.
“주님, 저희는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교만해 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희가 교만해지려 할 때 저희 자신의 모습을 살피게 하시옵소서.”
5.부자 교만과 거지 교만
헬라의 거지 철인 디오게네스는 어느 날 귀족부자요 철학자인 플라톤의 궁전 같은 집을 방문했다. 그 집의 응접실에 깐 호화스런 양탄자 위를 걸어가면서 디오게네스는 마치 생물을 밟아 죽이는 제스처로 짓이기며 플라톤의 교만을 짓밟았다.
다음에는 플라톤이 디오게네스의 가난을 과시하며 사는 비가 새는 집을 방문했을 때 누더기 양탄자 위를 뱀의 머리를 밟아 죽이는 모션으로 그 방을 거닐면서 디오게네스의 성탐 과잉의식의 교만을 짓밟아 주었다.
성자는 자신이 성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성자가 아니다. 성자마다 참회록을 쓰고 천국 주님 앞에 설 때 잘한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나 같은 죄인을 구속해주신 은총을 만입이 있어도 못다 찬송하는 상하고 깨어진 마음과 감사 속에 대한다.
우리는 모두 설익은 플라톤 바리새든가 디오게네스 바리새가 되는 경향이 있다.
6. 교만과 겸손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사관학교 2학년이었을 때 일이다.
사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상급생들이 붙잡고 기합을 넣고 호통치며 군기를 잡곤 했다.
하루는 신입생 한 명이 뛰어가다가 아이젠하워를 들이받았다. 아이젠하워 역시 잘됐다 생각하고 그를 세워놓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너는 명예로운 사관생도라기보다는, 겨우 시시한 이발장이 같은 녀석이로구나! 어떻게 그렇게 부주의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러자 그 신입생은 어깨를 탁 펴더니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네, 선배님! 저는 이발사였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발사로서 가족들을 부양해 왔습니다!"
아이젠하워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설마 이발사였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자신은 지금 남의 생계를 모욕하고 무시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자기 방에서 홀로 앉아 다시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아이젠하워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의 그 행동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을 깨닫게 하는 큰 교훈이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큰 일을 담당할 때나,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직분을 수행할 때나 늘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교만에는 후회가 찾아오고 겸손에는 지도력이 따라온다.
7.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다(시 103:14). 교만한 자는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겸손한 자는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권력이 얼만큼 휘둘러지나 얼마나 강한가를 꼭 시험하고 만다. 겸손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8.영적으로 교만해 지지 않으려면
타락하여 넘어진 자들은 자기 자신이 회심하였으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들의 체험과 은혜와 특권에 대해 가진 높은 견해 때문에 점차 자기 의(義) 가운데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러한 행실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이 외식의 표증입니다.
거짓된 깨달음이나 정서는 사람의 활동과 실천의 샘에까지 미쳐 지배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이 내려가지는 못합니다. 돌짝 밭에 떨어진 씨앗은 땅의 깊은 곳 까지 이르지 못하고, 열매를 맺기에 충분할 정도로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정서는 마음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생명과 활동의 가장 내면적인 샘을 붙잡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무엇보다도 먼저 영혼 속에서 행사되고, 그 영혼 속에서 은혜로운 정서의 예민하고 살아있는 작용을 통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건의 능력의 가장 주요한 증거는 실천적인 거룩한 정서의 행사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의지와 탐욕과 부패를 정복하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며, 모든 시험과 난관과 대적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실천적인 일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0)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창조자의 자리를 넘보려했을 때 비극은 시작되었습 니다.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선악과를 따먹으로써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서려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힐문하는 패역한 시대가 아닌가? 선과 악을 빙자하여 인류의 온갖 비극과 폐해를 만들어내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하는 지금의 시대는 분명 에덴이 아닌 에덴 이후의 세상입니다
9.교만한 당나귀
어떤 마부가 당나귀 등에 돌부처를 실고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돌부처를 보고 합장 배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자기를 우러러보고 경배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쭐대며 교만한 마음으로 마부가 가라는 방향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이에 화가 난 마부는 채찍으로 내려칩니다. 갑자기 내려치는 채찍에 깜짝 놀라 뛰는 바람에 당나귀의 등에 있던 돌부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당나귀는 다리를 다쳐 그만 쓸모없는 나귀가 되었고 결국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나 자신도, 부모 처자와 물과 대지와 공기와 햇볕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머리털 하나, 세포 하나도 내가 만들지 못합니다. 태어나는 시간도, 삶의 기간도, 죽는 시간도 내가 정하지 못합니다. 절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시한부로 빌려쓰고 있는 것뿐입니다. 사실 하나님만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교만한 것은 싫어합니다. 세상에서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만은 실로 큰 죄이며, 하나님 나라의 거침돌입니다.
* 기도: 선하신 주님, 주님은 완전하신 계획으로 날 인도하십니다. 오늘 나의 삶 가운데 주님보다 높아진 부분을 회개하기 원합니다. 내게 허락하신 것들을 자랑하며 드러낸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이 드려지게 하소서.
10. 교만한 자에게 화 있을진저
잔인함, 죄악, 불의는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일이 일어날 때도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불경건한 나라들을 사용하여 자기 백성을 징계하거나 자기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실지라도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대로 헤아림을 받을 것입니다. 악인은 징벌을 받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교만함이 가득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정직함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의 팔 아래서 자신을 낮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생명이요, 교만한 자들에게는 화와 죽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고통을 외면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교회의 중요한 한 부분이요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지라도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때는 그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때는 그분이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리십시오. 두려움과 의심을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 자신만큼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 케이 아더
11.교만과 편견을 떨치고
태아는 어머니의 배속에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너무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와 요람처럼 떠있기 좋은 알맞은 습도와 그리고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어머니의 탯줄을 통하여 가장 알맞게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는 그곳에서 오래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열 달이 채워지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서 태아는 거의 혼절하다시피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시 유일한 영양공급원이던 탯줄마저 끊겨버렸습니다. 태아는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이게 웬일일까요. 죽을 줄로만 알았던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내가 구축한 그 세상이 최고인 것으로 생각하며 어둠에 갇힌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나의 교만과 편견과 아집인 내 속에서 갇혀서... 내가 진정 의를 위하여 나를 깨치고 죽을 때 영원한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잊고있는 것은 아닌지요.
12.봉변 부른 부자의 교만
주전 4세기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하루는 어떤 부자가 디오게네스를 집으로 초청했다. 그에게 자신의 집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부자의 집은 으리으리했다. 정원은 온갖 기화요초로 가득했고, 집안은 각종 보석으로 사치스럽게 꾸며졌다. 그는 자기 집을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어 디오게네스에게는 단 1분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때 별안간 디오게네스가 부자의 얼굴에 가래침을 ‘퉤!’하고 뱉어버렸다. 디오게네스는 어리둥절해 있는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집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군요. 그래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가래침을 뱉을 만한 곳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교만과 위선으로 가득한 당신의 얼굴이 내게는 쓰레기통처럼 보이는군요”
혹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디오게네스의 침을 받을 만한 모습이지는 않는가? 누구를 만나든지 겸손함을 잊지 말자. 나의 말은 가급적 삼가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아량을 갖자.
13.영적으로 교만해 지지 않으려면
타락하여 넘어진 자들은 자기 자신이 회심하였으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들의 체험과 은혜와 특권에 대해 가진 높은 견해 때문에 점차 자기 의(義) 가운데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러한 행실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이 외식의 표증입니다. 거짓된 깨달음이나 정서는 사람의 활동과 실천의 샘에까지 미쳐 지배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깊이 내려가지는 못합니다. 돌짝 밭에 떨어진 씨앗은 땅의 깊은 곳 까지 이르지 못하고, 열매를 맺기에 충분할 정도로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정서는 마음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생명과 활동의 가장 내면적인 샘을 붙잡습니다. 경건의 능력은 무엇보다도 먼저 영혼 속에서 행사되고, 그 영혼 속에서 은혜로운 정서의 예민하고 살아있는 작용을 통해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건의 능력의 가장 주요한 증거는 실천적인 거룩한 정서의 행사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의지와 탐욕과 부패를 정복하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며, 모든 시험과 난관과 대적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실천적인 일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롬 9:20)
14. 교만한 개구리
개구리들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새들처럼 하늘을 한번 훨훨 날아보는 것이었다.가장 호기심 많은 개구리가 독수리를 찾아가 사정했다.
“나도 너처럼 멋있게 하늘을 날고 싶다.너의 다리를 붙잡고 한번만 날게 해다오”
독수리는 개구리의 요청을 받아 들였다.드디어 개구리는 독수리의 다리를 붙잡고 꿈에도 그리던 하늘로 날아올랐다.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땅에 있는 개구리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하늘의 개구리를 바라보았다.
그중 한 개구리가 하늘의 개구리에게 물었다.
“누가 이런 기막힌 생각을 해냈니?”그러자 개구리는 우쭐해져서 독수리를 붙잡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내가 했지” 그 순간 개구리는 여지없이 땅으로 추락했다.
교만은 패망을 낳는다
15. 들쥐의 교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잠언 16 : 18)
수도사 한 사람이 수풀 속을 지나가다가 까마귀가 쥐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발견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까마귀를 쫓아 버리고 쥐를 살려 주었다. 그런데 그 쥐는 자세히 보니 고양이란 놈에게 날마다 쫓기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수도사는 이번에는 개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개가 되면 쫓기는 신세를 면하게 될 줄로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범에게 꼼짝 못하고 도망만 다니는 모습이 하도 불쌍해서 이번에는 그 개를 범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제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범이란 놈이 이전의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꾸 개를 보면 괴롭히고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를, 들쥐를 보면 들쥐를 괴롭히고 심지어 수도사가 범에게 충고하면 수도사의 말까지 무시를 하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자기가 산중의 왕이라고 하며 수도사도 아니꼽게 굴면 없애버리려는 생각까지 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도사는 어느 날 다시 그 범을 원래의 모습인 들쥐로 돌아가게 하여 죽을 때까지 수풀과 들판을 헤매며 쫓기는 신세가 되게 하였다.
적 용 사람은 조금씩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어느 날에는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 높은 자리에 오르게도 된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도달했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교만과 배은망덕이다.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기까지 도와 준 주위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밝아질 것이다.
16. 교만
예수의 죽음을 요청한 사람들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죄인들이 아니었고 정치가들이 아니었다. 바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원한 사람들은 자기 의에만 빠져있는 사람들이었고, 현재 영적 상태에 만족하여 영적 유산을 자랑으로 삼고 그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서는 눈먼 사람들이었다.
교만은 당신을 제사장들처럼 말하도록 할 것이다. "저는 다른 사람은 구원하였지만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 도다." 오직 교만을 버리는 것만이 당신을 백부장처럼 말할 수 있게 한다.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 당신은 너무 교만하여 당신이 죄에 빠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너무 교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 교만이 그럴 만큼 참 가치가 있는 것인가? 교만은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에 대항하는 사탄의 진짜 오만이다.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야 만다.
17. 교만한 개구리의 비극
어느 연못에 오리 두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자 연못물이 말라 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로 하고 「이주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것은 날 수 있는 오리가 양쪽에서 막대기를 물고, 그 가운데를 개구리가 물어 「비행」하는 방법이었다. 떠나기 전 이들은 누구든지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공중을 날 때 이것을 본 농부가 『누가 저런 생각을 했을까?』라고 감탄했다.
그러자 개구리가 대꾸했다.『내가 했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언16:18).
18. 교만한 마음
일본 동경 중심부에다가 한국 유학생과 재일동포 학생들을 위해서 기숙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실업인들을 초청해서 그 계획을 설명했더니 “아.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인재는 키워야 합니다”하고 모두 동의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모인 20여 명의 실업인들에게 “20분의 일씩 자금을 헌납하지요” 했더니 모두들 “아니요.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내가 혼자 몽땅 지어드리지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기숙사는 십 년이 넘도록 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혼자 하겠다는 겁니다. 이 영웅심, 이 썩은 영웅심, 누구의 이름이 나면 무엇합니까. 교회에서까지 이런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교포들이 멸시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구제할 줄 몰라서 입니다. 각 부인회에서 전부 돕는데 한국 사람만 유독 땡전 한 푼 안 내려고 듭니다.
흑인들에게도 미움받는 것, 그들의 지역에서 실컷 돈 벌어서 전혀 그들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백인 지역에서 호화롭게 산다고 흑인들이 제일 미워하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이 구제는 어느 누구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힘들이 많이 모아져서 거대한 세력이 되어서 구조적인 불행을 우리가 구조적으로 도와야 하고 구조적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19.교만한 검은수탉
검은 수탉과 붉은 수탉이 있었는데 매우 친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사는 마을에 예쁜 암탉이 이사를 왔습니다.
검은 수탉은 예쁜 암탉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붉은 수탉도 암탉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검은 수탉과 붉은 수탉은 구경꾼닭들을 이끌고 넓은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검은 수탉이 이겼고 붉은 수탉이 졌습니다.
붉은 수탉은 원통했지만 솔직히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붉은 수탉을 이긴 검은 수탉은 얼마나 신이 났던지 지붕으로 올라가 목을 곧추세우고 한바탕 노래를 불렀습니다.
검은 수탉의 노랫소리가 잠자고 있는 숲속의 독수리를 깨웠습니다.
독수리는 닭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수탉을 채 날아가 버렸습니다.
20.절망은 교만이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 보다 낫지 못 하니이다 하고"-왕상 19:4.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 40:5.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때로는 절망에 빠져 형편없는 모습으로 허우적거릴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사실은 열왕기상 19장 4절에 나오는 엘리야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도 지독한 절망의 심연에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절망에 빠지게 되는 걸 까요 ?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출발점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감격스러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절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둘째는 도착 지점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도착 지점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잠깐 당하는 현실의 고난 때문에 절망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셋째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늘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절망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망은 교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 때때로 저희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잊고 있던 세 가지 사실을 저희로 기억토록 하시옵소서."
21. 제라쉬성
요르단에 가면 제라쉬(Jerash)성이라고 하는 옛성터가 있다.
주후 125년경에 로마제국이 전 유럽을 다스릴 때 요르단까지 로마제국이 다스렸다. 그때 제라쉬라고 하는 곳에 로마의 도시를 세웠다. 참으로 잘 지은 도시였다. 아직도 원형극장이 남아 있는데, 4,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있는 석조극장이다. 지붕이 없는 야외극장이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얼마나 과학적으로 음향관리가 잘 되게 건축되었는지 무대에서 동전 하나를 떨어뜨려보니 떨어지는 동전소리가 무대에서 제일 먼 뒷좌석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신전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 저기에 다섯개나 있었다. 돌기둥 하나의 직경이 보통 2m가 넘는 것이 죽 늘어서 있고 도로는 육중한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돌로 포장된 도로밑에는 하수가 흘러가게 설계해놓았다.
그저 생각만 해도 대단하고 엄청났다. 아마 그 당시 집짓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오늘날의 집짓는 것을 보면, 집을 짓는 것이냐 소꿉장난을 하는것이냐면서 비웃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으면 천년 만년가도 끄떡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영화를 영원히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망해 버리고 말았다. 인사들의 잘못으로 불이 나서 타버린 것이 아니다. 외세의 침략을 받고 적군에게 파괴된 것도 아니다.
지진이 나서 이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쌓아 올려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한번 흔드시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물질문명을 세우려고 해도 소용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찾으시면 물질문명은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22.교만과 겸손
한 선비가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어 닥쳤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겁에 질린 선비의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사공이 무서우냐고 묻자 선비는 그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선비는 사공을 향해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공 총각! 당신 혹시 논어를 읽었소?"
"아니오. 들어보지도 못했는데요."
"참, 한심하군! 남자로 태어나 논어를 모른다면 1/4은 죽은 생명이요. 그렇다면 맹자는 읽었소?"
"아니오 그것도 처음 듣는 소린걸요."
"허허 큰일이군! 그렇다면 당신은 반(半)은 죽은목숨이요. 어떻소? 혹시 시경은 알고 있소?" "미안합니다. 그것도 처음 들었습니다."
"이거 정말 큰일이군! 그렇다면 당신은 3/4이나 죽은 생명이요."
폭풍은 계속 불었고 배는 더욱 흔들렸다. 잠시 후 이번에는 사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비님, 혹시 헤엄칠 줄 아십니까?"
"아니오, 난 공부하느라 헤엄 같은 것은 배우지도 않았소?"
"그렇다면 당신 목숨은 완전히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사공은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배에는 물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다 할지라도 생명의 진리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하겠다. 이 사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와 사회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으뜸이라고 생각하거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교만이 생활 속에 나타나면 아주 유치한 인간이 된다. 교만이 지식적인 면에 드러나면 퇴보하기 시작한다. 교만이 물질로 나타나면 고립되기 시작한다. 교만은 친구와 헤어지게하고 가족을 멀리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떼어놓는다. 교만은 하나님께 대한 피조물의 반역이다.
옛날 지구에는 메가케로스란 학명이 붙은 거대한 사슴이 살았는데, 이 사슴이 멸종된 이유는 뿔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뿔의 무게에 눌려 번식하지 못하고 자연 도태된 것이다. 감투에 눌려 자멸한 메카케로스의 비극이었다. 교만은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만든다. 교만은 '내가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므로 하나님을 외곽으로 밀어내게 된다. 교만은 '내가 첫째다' 하는 생각이므로 하나님을 자기 뒤에 두게 된다. 교만한 사람은 한 마디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가슴에 달고 있는 손수건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저는 얼마전에 들은 아주 소중한 얘기 한 구절을 지금도 비망록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은 반지름이다.'하는 말이다. 지식이 원의 반지름이라면 그 반지름 만한 원둘레가 우리의 지식이 닿지 않는 무지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1cm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 지식의 분량만큼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지식이 1m 정도라면 그는 자신의 지식이 1cm 때보다 더욱더 큰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무지하다는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교육은 자랑의 도구가 아니다. 지식이나 교육은 도리어 자신의 앎보다도 무지를 더욱 깨닫는 겸손의 도구가 되어야만 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것, 곧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 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는 빵을 먹을 때마다 더 고급스러운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자는 빵을 대할 때마다 배고픈 자의 눈동자를 떠올리고 그러므로 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주어진 권력이 얼마만큼 휘둘러지나 얼마나 강한가를 꼭 시험하고 만다. 겸손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숨겨져 있으므로 삶에 대해 만용하게도 하고 여유있게도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인생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삶의 여정을 뒤돌아 볼 때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세상을 꼭 한 번 지나간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베풀어야 할 친절이 있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겠다. 그것을 게을리하거나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을 두 번 다시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길목에 잠시 머물러서 음미해 볼 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한 번 지나가는 인생길이라면 삶 앞에 좀더 겸허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3:10)
23.영적 교만
영적 교만은 자기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인식이 없이 다른 것들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기쁨을 체험하면 자신의 죄에 대해 큰 슬픔을 느낀다. 테레사는 이러한 현상을 빛에 비추어진 물이 든 잔에 비교한다. 해가 비치게 되면 해가 비치지 않을 때 보이지 않던 불순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잔에 담겨 있는 물이 해가 비치지 않을 때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해가 비치게 되면 먼지가 가득함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 영혼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하여 조심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정의의 태양이 그것을 비추어 무수히 많은 불순물들을 보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 꽤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잠 3:7, 사 5:21, 롬 12:3).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칼 바르트가 그가 이제까지 깨달은 가장 위대한 신학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질문받았을 때 그는 간단히 대답하였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바르트는 그가 깨달았던 많은 위대한 지식에 대한 자랑을 거부하며 어린아이 같은 지식에 만족했던 것이다.
* 기도: 나를 살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자랑이나 낙심으로 끝내지 않게 하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진리와 겸손함으로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소서.
24.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다(시 103:14). 교만한 자는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겸손한 자는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권력이 얼만큼 휘둘러지나 얼마나 강한가를 꼭 시험하고 만다. 겸손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25.교만의 문제
소련의 반체제 인사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교만은 돼지의 비계와 같이 인간의 마음에서 자란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은 고집이 센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만은 거만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D.L. 무디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에 가득 찬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매일 매일 나 자신을 죽이고 내 생활에 아무런 방해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나의 방법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교만’을 죽여야 한다고 마음으로 되뇌이곤 합니다.” 겸손의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필립 브룩스는 “겸손한 자가 되는 방법은 자기 자신보다 더 작아질 때까지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어떤 다른 더 큰 본성에 대항하여 서 있다면 큰 본성을 통해 진실로 작은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 자신이 겸손해질 때, 그리고 나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할 때 놀랍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모든 과정이 힘들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부부가 함께하는 순간 / 데니스 & 바바라 레이니
26. 교만과 자존심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는 "재난의 원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지내던 두 집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쪽 집의 닭 한 마리가 담을 넘어 저쪽 집에 가서 알을 낳았습니다. 집 아이가 그것을 보고 옆집의 친구에게 '우리집 닭이 너희 집에 가 계란을 낳았으니 좀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집 아이가 들어가서 보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쪽집 아이가 거짓말 하지말고 순순히 내 놓으라고 합니다. 정말 없었다고 말하니 그 말을 못 믿겠다고 하면서 분명히 알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알이 있다 없다 하면서 서로 터지도록 서로 붙어 싸웠습니다. 이것을 보고 엄마들이 싸웠습니다. 머리를 잡아 당기면서 서로 엉켜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되자 아버지들이 가세하여 싸우니 아버지들끼리 또 싸웠습니다. 너무 화가난 나머지 한쪽 편의 아버지가 저쪽 집에 그만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그런데, 삽시간에 불이 번지더니 한번 바람이 획 돌아 불어서 이 쪽 집도 다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잿더미 위에 앉아서 별을 쳐다보면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이제 반성을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계란 하나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계란 하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속 깊히 들어있던 자존심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같은 끔찍한 참사의 원인이 계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 원인은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자존심과 교만이라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7.볼테르의 교만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강한 교회 비판과 무신론주의자로 유명했던 볼테르가 어떤 서점에서 얼마간 돈을 꾸어 쓴 일이 있었습니다. 그후 주인으로부터 심한 독촉을 받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볼테르는 만일 그런 식으로 또다시 재촉을 하게 되면, 단단히 혼내 주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또다시 빚 독촉을 하러 찾아왔습니다. 단단히 벼르고 있던 볼테르는 서점 주인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의 뺨에 불꽃이 튀도록 따귀를 때리고는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뭐야, 당신은 황송하게도 세계 최대 위인에게 뺨을 맞았다는 역사에 남을 명예가 생겼는데, 또 무슨 돈을 달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볼테르는 비서를 시켜서 서점 주인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28.교만은 패망의 선봉
기러기 한쌍이 남쪽으로 이동하려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개구리가 찾아와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기러기는 데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러겠노라고 했다.
개구리는 갈대를 길게 엮어 가지고 왔다. 기러기가 양쪽끝을 부리로 물고 그 중앙을 개구리가 입으로 물고 날았다.
이 광경을 본 농부들이 여행기구가 참으로 훌륭하다면서 누가 만들었는지 그 지혜가 뛰어나다고 감탄했다. 개구리는 우쭐대며 입을 열어 말했다.
"이 기구는 내가 만들었지요."
그순간 개구리를 물고 있던 갈대를 놓쳐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 교만하며 자기 자랑을 일삼이 이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29. 교만에 대한 성경구절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21:4)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시119:69)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1:2)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 보다 나으니라.(잠16:19)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 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명기8:13-14)
30.교만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격화시킬 때 혹은 국가를 신격화시키거나 민족을 신격화시키거나 우상화시킬 때 엄하게 벌을 내린 것을 구약 성경의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벨사살이라고 하는 바벨론 왕은 자기가 천하의 왕이 된 것이 자기의 힘으로 된 것인 양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많은 성전 기명들이 있었는데 그 금은 보화를 가지고 자기의 신하들과 처첩을 모아 놓고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망언을 했습니다. '내가 신이지 어디 신이 따로 있나 내가 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이 나한테 이기지 못하고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기 잡아와 나를 섬기게 하지 않았느냐'하며 하나님에'게 제사를 파냈던 제사 기명들을 술잔으로 쓰며 잔치를 벌였을 때 벽에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습니다. '너는 저울에 달아보니 모자란다. 너의 날이 다 되었다. 너는 한도가 찼다. 그러므로 너의 나라를 메대와 바사에게 나눠주겠다'는 파멸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의 채찍이 임했습니다. 페르시아의 대군이 몰아 닥쳐서 대바벨론 제국은 하루아침에 망하고 그는 전쟁에서 불에 타서 전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히4:5,6)
31. 교만하지 말라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대하26:16)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교만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가장 경계해야 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교만한 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한번 교만의 병에 걸리면 패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교만은 치유책이 없는 무서운 병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다루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본문에서 웃시야 왕의 마음이 교만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유다 왕 중 가장 교만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26장 5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스가랴의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을 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가랴가 있을 때는 하나님을 찾았지만 스가랴가 없을 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예배 드리는 사람도, 장소도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혼자서도 예배 드리는 신앙, 그러한 능동적 신앙이 참 신앙 임을 잊지 마십시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홀로 서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스가랴 때문이었지만 하나님을 찾는 웃시야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형통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이한 도움으로 그를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강성케 해주시자 오히려 그는 마음이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강성해지자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인 된 본성입니다. 웃시야는 마음 관리를 잘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우리에게도 다분합니다. 온 세계 방방곡곡에 이름이 퍼져 나가고 상황이 잘 되면 나도 모르게 교만해질 연약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명성이 온 세계에 드높아진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사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한번 교만해지면 걷잡을 수 없게 교만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분노하고 화를 잘 냅니다. 웃시야 왕이 그랬습니다. 선지자의 권고에 화를 내고 분을 품었던 것입니다. 교만해진 웃시야 왕은 향단에 분향하려 했습니다. 분향하는 것은 기도와 같은 것으로 구약시대에서는 제사장의 책임이요, 특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제사장에게만 분향의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 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성경을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교만해진 웃시야를 하나님은 치십니다. 그래서 웃시야는 이마에 문둥병이 들어 성전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쓸쓸하게 별궁에서 인생을 마쳐야 했던 웃시야는 교만한 자의 마지막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들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 보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라고 스스로 외쳐 보십시오.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생각할 때, 하늘의 안식을 접어두고 오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십자가가 깊이 새겨질 때 교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만이 교만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무조건 겸손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깊이 낮추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가장 겸손한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 외에는 교만을 다스려 나갈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허영과 분노, 투기, 시기, 미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그날까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열매를 맺읍시다. 겸손한 자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32.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택하지 않는다
만약 한 회사가 유능한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상으로 인물분석을 했다고 가정하자. 회사가 이들 의 학력 경력 적성을 종합해 컴퓨터에 분석을 의뢰했다면 아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다.
도마는 매사에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안드레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매사에 추진력이 떨어진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 위험한 존재다.
세리 출신 마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제자들 중 적격자는 가룟 유다뿐이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감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은 실격자로 판정난 제자들이었다. 세상적 판단으로 가장 유능한 가룟 유다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택하지 않는다. 우리의 겸손과 부족함을 들어 사용하신다.
33. 교만 격언모음
자만심은 운명을 박차고 죽음을 비웃고 야망에 사로잡혀 지혜도 은혜도 두려움도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죄다.(섹스피어)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의 소유물이다.(헤로드토스)
교만은 모든 죄악의 왕이다. 교만이 올라오면 모든 덕은 물러간다.
너는 지난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현재 생활은 통곡할 만하고 죽은 뒤를 생각하면 두려운 것뿐이니 사람이 3가지를 늘 생각하면 능히 교만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성 베르나르드)
교만은 덕 속에 나와서 덕의 모습을 가장하고 덕을 해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 벌레가 나무에서 나서 나무를 해하는 것과 같다. 다른 악은 외부를 치는 것이나 교만은 영을 치는 것이다. 악은 한쪽만치나 교만은 여러 면을 친다.(성 어거스틴)
대개의 큰 과오 밑에는 교만함이 있는 것이다.(존 러스킨)
교만 중에 영적 교만이 제일 크다.(라인홀드니버)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람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교만은 어리석은 자에게 반드시 따르는 악덕이다.
자기애는 교만의 시초이다. 교만은 자기애이다. 억제되지 못 하였을 때 그 형체를 나타낸다
인간의 교만에는 권력의 교만, 지적교만, 도덕적 교만이 있다.(라인홀드 니버)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성안토니)
파리 한 마리도 인간보다 먼저 지어졌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그다지 교만해지지 않는다.(탈무드)
34.교만
중국 요주 땅은 신동이 많이 나는데 인물은 나지 않기로 소문난 땅이다.
신동이 많으면 인물도 많아야 하는 법인데 거꾸로 된 것이 이상한 것이다.
송대에는 대여섯살 난 신동에게 시험을 치러 벼슬을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요주 땅에서는 이 벼슬을 탐하여 어린것을 닭처럼 가두어 놓고 매로써 오경을 가르쳤던 것이다.
일단 벼슬을 얻으면 비단옷을 입혀 여행을 시키고 주변에서는 이를 우러러봄으로 오만심을 키워 주었기 때문에 인물로서는 자랄 수가 없었던 것이다.
35. 열한가지 교만
1.가문과 지위의 교만-마13:55
2.재물의 교만-눅9:58
3.존경의 교만-요1:46
4.풍체의 교만-사53:2
5.평판의 교만-눅7:34
6.학식의 교만-요7:15
7.거만의 교만-눅22:27
8.성공의 교만-사53:3
9.능력의 교만-요5:30
10.자의의 교만-요5:30
11.지식의 교만-요8:28
36. 교만의 해독제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7:25)
깊은 죄의 삶에서 극적으로 구원받은 어떤 목사님은 끊임없이 유혹하는 죄와 씨름하고 있었던 교인들에 대해 거의 동정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경험담을 거의 자랑하는 태도로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목사님의 부인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자기의 영적인 교만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부인의 실수를 지적하는 그 목사님께 부인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십니까?"
그녀는 또한 그가 근래에 이기적이고 불친절했던 언행들을 재치있게 지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단순히 약점일 뿐 죄가 아니라고 목사님은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의 삶이 주님의 완전한 삶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그 목사님이 인정했습니다.
롬7:14-25은 저를 겸손하게 합니다. 이 성경 말씀은 제가 주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마22:37)는 큰 계명을 지키기를 원한다 해도 제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도와줍니다.
그 구절은 저의 모든 이기심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섞여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구절이 확실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이 묘사하는 싸움, 즉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바를 알면서도 그리고 원하기까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 싸움은 분명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교만의 확실한 해독제가 됩니다. "나는 죄를 안 짓는다"라고 말하는 교만이 가득찬 마음속의 생각들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비추이면 우리는 모두 너무 부족하다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겸손할 것이고, 자신을 아는 자는 교만할 수가 없다.
37. 교만한 지식
어느 마을에 매우 똑똑 한 척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만큼 지식이 많은 학자는 없다고 자랑해 왔다. 마을 사람들도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 오만해졌다.
그는 대낮부터 횃불을 켜들고 거리를 다니며 외쳤다. "이 어리석은 중생들아. 자네들은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횃불을 켜들고 자네들이 세상을 좀더 잘 보라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너무도 그가 잘난체 하니까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감히 그의 면전에서 항의할 용기는 갖지 못했다.
그의 소문은 석가의 귀에 들어갔다. 석가는 그가 천성은 착하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오만에 눈이 어두워진 그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로 했다.
석가는 변장을 하고 길모퉁이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윽고 횃불을 든 그가 나타났다. 석가는 그에게 왜 그러느냐고 공손히 물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기를 "여기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어서 낮과 밤을 구별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가는 되묻기를 "횃불을 켠다고 얼마나 밝아지겠는가. 당신은 사명의 법이라는 것을 아느냐?" 모른다고 대답하자 석가는 이르기를 "첫째로 자연의 조화를 밝히고 둘째로 올바른 몸가짐을 밝히고 셋째로 나라를 바로잡아 만인을 편안히 하고, 넷째로 병사를 밝혀서 국가를 안전히 하는 것이다."
석가는 타이르기를 "아는 게 적고 듣는 것도 적으면 오만해지기 쉽다. 앞못보는 사람의 횃불처럼 밖은 좀 밝아져도 속은 어둡기 마련이다."
38. 많은 것에서 오는 교만
농촌에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을 본 그 동네 유지 한 사람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수감사절이 되어 쌀 두 가마를 헌금했다.
그런데 이 추수감사절에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행했는데 이 사람이 그 후부터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연고인지 어느 집사님에게서 알아본 결과 성찬식 때 세례 받은 사람에게만 주는 떡과 포도주를 자기는 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내가 그래도 쌀 2가마를 바쳤는데 그 눈꼽만 한 빵 한 조각도 안주고 자기들끼리만 먹더라."라고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험에 들게된 이유는 자기가 많이 바쳤다고 하는 교만 때문이어서 오는 것이다.
39. 수도사와 흙
나이 많은 한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수도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조금은 교만한 젊은 수도사가 그에게 다가옵니다. 경험 많은 수도사는 후배 수도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단단한 흙 위에다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자 물은 옆으로 다 흘러가고 맙니다. 그러자 이 나이 많은 수도사는 옆에 있는 망치를 들어 흙덩어리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서진 흙을 모아놓고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한번 물을 부어보라고 말합니다. 물은 잘 스며들었고 부서진 흙을 뭉쳐 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든 수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야 흙 속에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진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야. 우리 역시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고, 그럴 때 씨가 떨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거지. 우리 수도사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이라고 얘기한다네."
교만한 가슴에는 하나님이 역사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깨지고 부서질 때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나를 다루어주세요.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겠어요"라고 고백하며 그 고통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 그가 결국에는 믿음의 사람, 인내의 사람, 지혜의 사람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40. 하나님의 사인
무디가 미국의 어느 중소도시에서 전도대회를 인도하게 되어, 대회 며칠 전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무디가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보는데 머리기사로 ‘교만한 전도자 무디’라는 기사가 실렸더랍니다.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사정상 거절했더니 화가 난 기자들이 그런 기사를 쓴 것입니다.
그 기사를 보고 이번에는 무디의 스태프들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무디 목사님, 이거 말도 안 되는 기사입니다. 인격 살인이 아닙니까? 어떻게 할까요?” 하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무디 목사는 가만히 그 기사를 읽더니 껄걸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는구먼. 나는 이 기사보다 훨씬 더 교만한데, 이만하면 잘 써줬는데? 여러분, 이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씀하시는 사인입니다. 좀 더 겸손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 「회개행전」/ 이동원
41.‘잘난 척’이 부른 씻을 수 없는 망신
대령으로 갓 진급한 한 장교가 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자기 어깨에 붙은 대령 계급장을 쳐다보면서 자랑스레 싱긋이 웃으며 으쓱해하고 있었다.그때 마침 이등병 하나가 그의 사무실로 들어와 경례를 한 후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대령은 그 사병의 말을 막으며 먼저 말을 했다. “잠깐만, 사병. 내가 지금 중요한 전화를 해야 하는데 거기서 기다려!” 그리고는 전화번호를 돌리고 전화통에 대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박장군님, 장군님께서 다른 세 분의 장군님과 함께 저를 만나기 원하신다고요? 네, 오늘 오후 2시에요? 네, 좋습니다. 장군님! 네, 물론이지요.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그는 곧 수화기를 내려놓고 잘난 체하는 표정으로 이등병에게 근엄하게 말했다. “자, 사병,무슨 일로 왔는가?” 이등병은 대답했다. “대령님 사무실에 전화선을 연결해드리라고 해서 왔습니다!” 잘난 체하던 신임 대령은 이등병 앞에서 큰 창피를 당하고 말았다. 스스로 잘난 체하면 언제 부끄러움을 당할지 모른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줄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돼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린도전서 3:18)
42. 무신론자의 교만
지나간 세기의 유명한 무신론자 중에 로버트 잉거솔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무신론 강의 도중 탁상에 시계를 꺼내 놓고 "내가 하나님께 5분간만 시간을 주겠다. 내가 5분 동안 하나님을 저주할 터인데 그 동안에 나를 죽이기를 바란다.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거나. 있어도 실패자에 불과하다." 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5분이 지난 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인간이 승리자요. 신은 실패자라고 외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신앙인 데오도르 파커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런 흥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실패한 것일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5분간으로 단축시켜 보려고 한 잉거솔의 시도가 패배한 것이 아닐까."
옳습니다. 주께서는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그의 백성들이 또한 이 오래 참음의 옷을 입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라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은 영원까지 참고"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래 참고"입니다. 언젠가는 오래 참음의 마지막 순간이 옵니다.
43. 자만심을 고치지 못하면…
유명한 작가 버나드 쇼가 한번은 맛있는 커피 만드는 비결을 알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러자 어느 시골 목사가 그 소문을 듣고 편지를 보내 비결을 물었다.
쇼는 즉시 그 비결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 그 뒤에 몇 자를 덧붙였다. “당신의 요청이 진지한 것이고 혹시 제 사인을 하나 얻으려는 잔꾀가 아니길 바랍니다” 이에 그 목사는 쇼가 부연한 말이 함축하는 의미를 그냥 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답장을 보냈다.
“커피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편지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진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당신이 그렇게도 귀하게 여기시지만 저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당신의 사인을 그대로 반환해 드립니다”며 쇼가 사인한 편지를 돌려보냈다.
자만심이란 병은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걸린 사람은 모른다. 겸손은 인간의 미덕이다.
“사람의 교만은 그를 낮추거니와 명예는 심령이 겸손한 자를 높이느니라”(잠언 29:23)
/김상복 목사
44. 교만의 문제
소련의 반체제 인사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교만은 돼지의 비계와 같이 인간의 마음에서 자란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은 고집이 센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만은 거만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D.L. 무디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에 가득 찬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매일 매일 나 자신을 죽이고 내 생활에 아무런 방해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나의 방법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분노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교만’을 죽여야 한다고 마음으로 되뇌이곤 합니다.” 겸손의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필립 브룩스는 “겸손한 자가 되는 방법은 자기 자신보다 더 작아질 때까지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어떤 다른 더 큰 본성에 대항하여 서 있다면 큰 본성을 통해 진실로 작은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 자신이 겸손해질 때, 그리고 나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할 때 놀랍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모든 과정이 힘들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 데니스 & 바바라 레이니
45.교만한 자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시138:6)
사냥꾼들이 곰을 잡는 방법 중 하나는, 곰이 잘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놓습니다. 그러면 그곳을 지나던 곰이 돌덩이에 머리를 부딪히게 됩니다. 머리를 부딪힌 곰은 자기가 가는 길을 막는 데 화가 나서 돌덩이에게 덤벼듭니다.
줄에 매달려 있는 돌덩이와 자기 머리를 부딪쳐서 누가 센지 자웅을 가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돌덩이를 피해 돌아가면 될 것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곰은 머리가 터져 녹초가 되고 사냥꾼들은 와서 곰을 끌고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잠언 기자는 누누이 말합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도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지위와 특권을 이미 규정해두고 계십니다. 그것은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지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고귀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곰과 같은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곤란합니다.
* 기도: 신자의 미덕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아가페)
46. 두 가지 적
옥스퍼드대학의 존 오웬 박사는 무식한 땜장이였던 존 번연이 런던을 방문할 때면 언제나 그를 찾아가 그의 설교를 듣곤 했다. 어느 날 찰스 왕이 오웬 박사에게 물었다. “당신의 학식에 뭐가 모자라서 하필이면 그 천박한 번연의 설교를 들으러 가십니까?” 오웬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그 땜장이가 가진 은사들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는 기꺼이 저의 학식을 다 포기할 것입니다.” 오웬 박사의 존경을 받던 무식한 땜장이 번연은 결국 감옥에서 후세에 길이 남는 고전 ‘천로역정’을 완성했다.
사람이 평생 싸워야 할 두 가지 적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교만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자기멸시다. 교만도 멸시도 아닌 겸손이야말로 인생의 험한 길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능력이 된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니라.”(잠 29:23)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47. 칭찬과 교만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11-12)
새를 파는 가게에 잘생긴 카나리아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카나리아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날 이곳을 지나가던 마을의 부자가 그 카나리아를 샀습니다. 카나리아는 고운 소리로 노래를 불러 집안 사람과 손님들,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새 주인이 된 부자도 그 카나리아를 자랑하고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자 카나리아는 우쭐해졌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어도 노래를 그칠 줄 몰랐습니다. 카나리아의 노랫소리를 칭찬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시끄럽다고 항의를 할 정도였습니다. 아무도 카나리아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부자는 카나리아를 헐값으로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 카나리아를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칭찬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잘 한다고 칭찬을 하면 괜히 한번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겸손해지십시오. 진정 훌륭한 일이라면 스스로 떠벌이지 않아도 다들 알게 됩니다. 우리를 높이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라고 해도 그것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그런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하는 것은 꼴불견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부터 겸손할 수 있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
48. 산 사람 죽이기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 총무로 있을 때 신흥우와 함께 강연 차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전주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신흥우가 먼저 등단하여 월남 선생을 소개하였다.
“우리들은 이미 돌아가신 명사들만 존경하고, 숭상하고, 찬양할 것이 아니라 현재 생존해있는 위인을 더 존경하고 아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기 앉아 계신 월남 선생 같은 분이 바로 그러한 인물입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이상재 선생은 화가 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궁금해진 신흥우가 “선생님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라고 묻자 월남 선생은 “예끼, 이 사람. 사람을 앉혀놓고 죽인단 말인가”라며 호통을 쳤다. 위대한 인물은 죽은 후에 만들어지고 받들어지는 법인데 뒤에다 앉혀놓은 채 위인이라 떠들어댔으니 자신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예, 알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신흥우는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종교도 정치도 학문도 산 사람을 숭배하거나 떠받드는 것은 사람과 역사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바로 보고, 바로 평가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
49. 공허로 끝나는 자화자찬
하는 일이 다 잘되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칭찬을 많이 하면 우리 마음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자기도 모르게 그만 자랑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어느 청년이 일을 아주 잘해서 상을 받게 되었다. 특히 상을 주는 이가 그에 대해 좀 과하게 칭찬을 했는데 청년은 그 칭찬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집에 가서 상주는 이가 말한 칭찬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자기의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어머니에게 물었다.“어머니, 지금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이 묻는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고 지혜롭게 대답했다. “얘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숫자보다는 한 명이 적을 거야” 이러한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청년은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고 곧 뉘우쳤다고 한다. 자화자찬은 언제나 씁쓸하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고 있다. “너는 다른 사람이 너를 칭찬하게 할 망정 네 입으로는 너를 칭찬하지 말라”(잠언 27:2)
햇볕같은이야기 http://cyw.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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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모은 글은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무수히 많은 글들 중 신앙적으로 유익하고 건전한 내용의 글들만 엄선하여 모은 것입니다. 일일이 저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수집자 임의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글을 퍼 가실 때는 이 부분까지 퍼 가시기 바랍니다.)
50. 오만한 나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사모스 섬의 어느 농가에 나귀와 수탉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먹을 것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사자가 마을 근방까지 내려와서 어슬렁거리다가 이 집 담을 넘겨다보게 되었습니다. 나귀는 사자를 보는 순간 기가 질려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못하고 이승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탉은 어찌나 놀랐던지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가 크게 날개를 치며 죽을힘을 다해 울어댔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사자대로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귀를 찢는 듯한 소리에 기겁을 하여 숲 속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이를 본 나귀는 사자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자를 겁 많은 동물로 오해한 나귀는 사자를 쫓아 숲 속으로 따라 들어가면서 수탉 울음소리를 흉내냈습니다. 사자는 생전 처음 들은 무서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까지 도망치다가 그래도 뒤따라오며 히히힝 거리는 나귀를 손쉽게 잡아먹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오만 무도함을 경계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51. 교만한 당나귀
어떤 마부가 당나귀 등에 돌부처를 실고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돌부처를 보고 합장 배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당나귀는 자기를 우러러보고 경배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쭐대며 교만한 마음으로 마부가 가라는 방향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이에 화가 난 마부는 채찍으로 내려칩니다. 갑자기 내려치는 채찍에 깜짝 놀라 뛰는 바람에 당나귀의 등에 있던 돌부처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당나귀는 다리를 다쳐 그만 쓸모없는 나귀가 되었고 결국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나 자신도, 부모 처자와 물과 대지와 공기와 햇볕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머리털 하나, 세포 하나도 내가 만들지 못합니다. 태어나는 시간도, 삶의 기간도, 죽는 시간도 내가 정하지 못합니다. 절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시한부로 빌려쓰고 있는 것뿐입니다. 사실 하나님만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교만한 것은 싫어합니다. 세상에서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만은 실로 큰 죄이며, 하나님 나라의 거침돌입니다. /한태완 목사 <새벽이슬처럼>
52.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다(시 103:14). 교만한 자는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겸손한 자는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권력이 얼만큼 휘둘러지나 얼마나 강한가를 꼭 시험하고 만다. 겸손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 강희주 <쥐엄열매의 묵상>
53.현대인의 교만
성경: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 5-6)
현대인의 교만은 대체로 네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는 지적 교만이다. 과학주의(scienticism)라고 하는 우상이 현대인의 마음 속에 있어 무서운 죄를 짓게 한다. 둘째는 권력적 교만이다. 권력이면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줄로 믿는다. 그래서 하면 된다고 큰 소리를 친다. 되긴 무엇인 되는가? 바로 이러한 교만이 권력적 교만이다. 세째는 도덕적 교만이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정의요, 진리요, 가장 옳은 것으로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 것이 도덕적 교만이다. 네째로 종교적 교만이 있다. 하나님을 부인한다. 그 결과로 인간은 병들고 인간성이 상실되어 모든 관계가 파괴되며 망해가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분명히 보았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순간 인간 존재도 함께 부인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교만을 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야 하며 여호와를 사랑해야 하며 어린 아이같이 순전해야 함다. 교만함이 없이 여호와의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54. 스파르타 vs 아테네
“스파르타는 가난해서 이웃 나라와 단기전 외에 장기전이나 해외 원정은 해 보지도 못한 촌놈들이다. 그들은 군자금을 확보하느라 시간이 걸려 아무것도 못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 전쟁은 해군력의 싸움인데,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후 우리 아테네 해군은 꾸준히 바다를 연구해 와 가히 세계 최강인데 반해서, 농업국인 스파르타의 해군이나 요새는 우스운 수준이다. 이 전쟁의 승리는 우리가 맡아 놓은 것이다.”
기원전 431년, 그리스의 많은 도시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자국의 운명을 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막 돌입하려 할 무렵,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했던 자신만만한 개전 연설이다. 이에 비해 숫자는 작으나 당시 고대 세계 최강의 정예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스파르타의 자세는 훨씬 신중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무참하게 패배시켰고,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괴뢰 정권까지 들어서는 치욕을 겪게 된다. 특히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뜻밖에도 아테네가 그토록 자신했던 해전이었다. 교만은 이렇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조금만 일이 잘 되어도 쉽게 오만하는 우리 모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강한 자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며 부자는 자기의 부요함을 자랑하지 말아라. 자랑하는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아는 것과 그리고 내가 자비를 베풀며 옳고 공정한 일을 행하는 여호와임을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 나는 이런 것을 기뻐한다.” - 「칼과 칼집」/ 한홍
55. 나폴레옹의 자만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이 실패했을 때, 역사는 새롭게 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 큰 패배의 원인이 바로 나폴레옹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지적합니다.
1812년 그가 원정을 떠날 때 전문가들은 당년의 날씨가 예년에 비해 훨씬 더 추울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들은 철새가 다른 해보다 빨리 이동하고 있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증거를 들면서 러시아 원정을 늦출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자만에 가득 차 있던 나폴레옹은 전문가들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당시 프랑스군의 네이 사령관은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군대의 행렬은 무시무시한 눈발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소. 낙오병들은 코사크군의 깃대 위로 쓰러지고 있소."
악조건을 무시하고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자만은 화를 불러옵니다. 진정한 용기는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고, 전진할 때와 머무를 때, 그리고 물러설 때를 아는 것입니다. 당신이 한 가정의 가장이든 한 그룹의 리더이든 혹은 어떤 직책에 있든 귀를 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진우
56. 자만이라는 덫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죄수여, 말해주렴, 누가 그대를 가두었는지?"
"그것은 내 주인이 옵니다." 죄수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돈이나 권력으론 누구보다도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보물창고에는 왕에게나 어울릴 돈을 모아 놓았지요. 그런데 깨어보니 나는 보물창고에 갇힌 죄수가 되었더군요."
"죄수여, 말하렴. 누가 이 끊어지지 않는 쇠사슬을 만들었는지?"
"그것은 나였어요." 죄수는 말했다.
"내가 이 사슬을 정성껏 달구었습니다. 나는 내 불굴의 힘으로 온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세계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이윽고 사슬이 다 만들어져 끊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하게 되자 이 몸은 사슬에 꽉 잡혀 매여 있더군요."
모든 게 잘 나간다고 너무 자만하지 마십시오. 지위, 재물, 학력 등 당신을 빛내주는 것들이 때로는 당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57. 거만한 자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잠15:12)
훌륭한 안장과 말굴레를 쓰고 출정준비를 마친 군마가 우레 같은 말굽소리를 내면서 큰길로 뛰어오고 있었고, 불쌍한 나귀가 무거운 짐을 등에 싣고 같은 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비켜! 그렇지 않으면 진흙에다 짓밟아 버릴 테다."
군마는 교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마는 한쪽 눈을 총에 맞아 다쳤습니다. 그래서 군마는 군대에 적당치 않아서 어느 농부에게 팔려갔습니다. 농부는 그 말에 무거운 짐을 싣고 나섰습니다. 언젠가 나귀에게 큰 소리 치던 기개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나귀는 짐을 싣고 오는 군마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당신이구려. 어느 날인가에 전락이 있을 줄 알았소."
거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으면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거만한 사람에게는 교훈을 할 수 없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개의 귀를 잡으면 개에게 물리는 것과 한가지로, 거만한 사람을 교훈 하였다가는 오히려 그의 공격을 받게 되므로 사람들이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만한 사람은 변화도 발전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58. 3대 교만
① 지적 교만∼조금 아는 것을 교만
② 물적 교만∼조금 가진 것을 교만
③ 미적 교만∼조금 아름답다 교만
59. 교만
교만과 우상숭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둘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방법들을 찾아 삶에 대처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교만을 미워하신다: "나는 교만과 거만과...미워하느니라"(잠8:13).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
60. 교만을 드러내 보이는 것들
1.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셨고 또 행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잊어버리는 것(신8:11-18)
2.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시10:4)
3.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시12:3-4)
4.하나님 대신 돈과 우리의 능력을 믿는 것(렘9:23-24,48:7)
5.우리 자신을 높이는 것(잠12:9,25:14,27:2;롬12:3)
6.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잠14:21)
61. 불행한 여주인공
할리우드 영화의 간판 스타로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를린 먼로는 스크린에 비친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배우이다.
1926년 미혼모의 딸로 태어날 당시 그녀의 이름은 노마 진 베이커였다. 노마는 어머니의 정신질환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입양후에는 양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열여섯 살때 결혼하여 매일 10시간씩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첫번째 결혼을 4년으로 끝냈다.
얼마 후 노마는 자신의 누드사진을 본 한 감독에 의해 20세기 폭스사의 여배우가 되었다. 이때 그녀에게 마를린 먼노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는데 마를린은 당시 유명한 여배우의 이름이었고 또 그녀 자신이 미국 대통령 먼로의 후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마를린 먼로는 단역만을 맡으며 간혹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추다 ‘아스팔트 정글’에 캐스팅되면서 조연으로 올라섰고, ‘이브의 모든 것’에는 주연급으로 발탁되었다.그러나 가난했던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 누드사진이 공개되면서 먼로의 인기는 끝날 것 같았으나 어쩐 일인지 이 사진으로 그녀는 더욱 유명해졌고, 1954년에는 신화적 인물이었던 야구선수 죠 디마지오와 당당히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때 먼로는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통풍구의 바람으로 치마가 치켜 올라가는 유명한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이 영활로 그녀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남편 디마지오는 이런 선정적인 모습을 매우 싫어하여 결국 이혼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스스로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예술성 있는 영화를 제작하려 했다. 당시 먼로는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심한 지성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어 늘 촬영장에 유명한 서적들을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고, 이러한 컴플렉스로 말미암아 아서 밀러라는 극작가와 결혼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 결혼도 행복하지 못했으며, 파경 후에는 과다한 약물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황폐해져 갔다.
그 후로도 먼로는 끊임없이 소문을 몰고 다녔는데, 케네디 가문과의 정치적 스캔들로 결국 커다란 불행을 맞게 되었다. 당시 먼로는 존 케네디의 취임식에도 참석하는 등 케네디가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 존 케네디가 자신의 인기를 이용했음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더욱 심한 약물남용에 빠져들다 1962년에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둔채 발견되었다. 화려한 은막의 스타 마를린 먼로는 자신이 고백했던 것처럼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던 삶을 살다간 불행한 여주인공이었던 것이다.
62. 착각은 자유
세계 헤비급 권투 선수였던 미국의 모하메드 알리가 비행기에 오르자 많은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승객들은 모두 자리에 앉자 시트벨트부터 매는데 알리는 어깨에 힘을 주고 씩씩거리며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승무원이 점검을 하며 지나가다가 "시트 벨트를 매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리는 퉁명스런 어조르 "슈퍼맨에게는 시트 벨트 따위는 필요없소"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여승무원은 "슈퍼맨은 시트 벨트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가 필요 없는 겁니다. 시트 벨트를 매십시오." 라고 했다.
당신이 헤비급 참피언은 될지 모르나 슈퍼맨도 아닌 주제에 착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옳은 말이다. 6공화국 시절, 청화대 모비서관들이 대통령이 업무를 돕는 일보다 이권개입에 더 관심을 두고 일하다 결국 비리에 연류돼 망신을 당한 이들이 있었다. 완전히 번지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가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잘못 찾아온 사람에게 `You are in the wrong office.' 또는 `You have come to the wrong office'라고 말하는데 이는 번지수가 틀린 곳에 왔다는 말로 매우 재미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착각은 자유지만 한 사람의 착각으로 많은 사람이 피곤해진다.
63. 나폴레옹의 자만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한 후 그 기세를 몰아 러시아까지 진격해 들어가려고 할 때의 일이다. 출정 전날 그는 한 귀족 부인에게 승전의 확신을 갖고 자신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듣고 있던 부인은 "인간이 계획하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황제는 껄껄 웃으며 "부인, 모든 것은 제가 계획하고 제가 이룰 것입니다."라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몇 달 후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대패하고 1814년 퇴위, 엘바 섬에 유배되고 말았다.
64. 묵은 땅
묵은 땅은 본래는 좋고 부드러운 땅인데 쟁기로 갈지도 않고 김도 매지 않은 채 오래 내버려두어 땅이 굳어지고 잡초가 성한 밭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과 때때로 적셔주는 좋은 비를 받지만 묵은 땅은 거기에 대한 보답이 없는 쓸데없는 땅입니다. 오히려 장해가 되는 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는 잡초의 씨들은 그 옆에 옥토가 있으면 날아와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잡초를 나게 만듭니다.
이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본래는 착한 마음이었으나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는 가운데 그 마음이 굳어져 좋지 못한 습관이 생기고 그 뿌리가 깊어집니다. 즉, 세상 생각과 사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 이생의 자랑과 교만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마음속이나 그 생활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만 없는 것이 아니라 초신자나 열심 있는 성도의 옥토와 같은 마음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묵은 땅은 예리한 보습으로 굳은 땅을 깨뜨리고 부드럽게 갈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속에 있는 뿌리까지 뽑아서 불살라 버리고 새로운 옥토로 만든 후에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길이 박혀 있는 죄악의 뿌리를 뽑을 때 심한 고통이 따르듯 철저히 회개하여 근본적으로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요나 선지자나 마가, 요한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마음이 옥토같았으나 어쩌다 마음이 굳어지고 강퍅해져 자기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잘못을 회개하여 다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묵은 땅이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권세 없고, 돈 없을 때는 옥토였는데 지금 묵은 땅이 된 심령은 없습니까? 지체말고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65. 교만한 마음
일본에서 일했던 어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일본 동경 중심부에다가 한국 유학생과 재일동포 학생들을 위해서 기숙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실업인들을 초청해서 그 계획을 설명했더니 “아.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내 조국을 위해 일할 인재는 키워야 합니다”하고 모두 동의했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모인 20여 명의 실업인들에게 “20분의 일씩 자금을 헌납하지요” 했더니 모두들 “아니요. 내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내가 혼자 몽땅 지어드리지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기숙사는 십 년이 넘도록 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혼자 하겠다는 겁니다. 이 영웅심, 이 썩은 영웅심, 누구의 이름이 나면 무엇합니까. 교회에서까지 이런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교포들이 멸시 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구제할 줄 몰라서 입니다. 각 부인회에서 전부 돕는데 한국 사람만 유독 땡전 한 푼 안 내려고 듭니다. 흑인들에게도 미움받는 것, 그들의 지역에서 실컷 돈 벌어서 전혀 그들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백인 지역에서 호화롭게 산다고 흑인들이 제일 미워하는 민족이 한국 사람들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심는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이 구제는 어느 누구 혼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은 힘들이 많이 모아져서 거대한 세력이 되어서 구조적인 불행을 우리가 구조적으로 도와야 하고 구조적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66. 주제파악
신의 모습을 조각한 상을 실은 나귀가 동네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거룩하신 신의 모습을 보고 공손하게 절을 하였다. 모든 사람이 나귀 앞에서 절을 하자 나귀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절하는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갖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나를 이렇게 존경하여 절을 하고 있는데 나는 여지껏 내가 이렇게 위대한 존재인 줄 몰랐구나.' 이 때 무척 지위가 높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지나가다가 나귀를 보고 절을 했다. 주인보다 훨씬 훌륭해 보이는 어른이 절을 하는 것을 보자 나귀에게는 더욱 더 교만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나를 존경하는데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때 주인이 회초리로 나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꾸물거리고 있는 나귀에게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매였다. 그러자 더욱 약이 오른 나귀는 앞발을 들고 벌떡 곤두서면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뻗대었다.
“이 놈의 나귀가..” 화가 난 주인은 한 번 더 나귀의 등을 내리쳤다. 그러나 나귀는, '흥' 나는 짐을 싣고 다닐 천한 나귀가 아니란 말이야. 이젠 주인에게 고분고분 하지도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매를 들어 나귀를 때리려던 주인은 왜 나귀가 꼼짝도 하지 않고 주인의 약을 올리는 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주인은 더 굵은 몽둥이로 나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바보같은 나귀 새끼야. 사람들이 너를 보고 절을 하는 듯 싶으냐. 만약 네가 지금 싣고 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면 이처럼 잘난 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들어둬라. 너는 지금 신의 상을 등에 싣고 있단 말이다.”주인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나귀는 그제야 비로서 사람들이 절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왕국이 번창하자 교만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제국을 다스려보겠다는 마음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치 나의 것인 양 자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67. 고집
중세기의 전쟁 이야기 가운데, 유명한 로랑 장군의 이야기가 있다. 로랑은 프랑스의 황제 "샤르 마뉴" 대제의 12용사 중의 한 사람이다. 무어인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로랑이 이끄는 군대가 포위 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옛날 전쟁에서, 이런 경우에 구원군을 부르기 위하여, 뿔나팔을 대장이 휴대하였었다. 그러나, 로랑은 자기의 체면 때문에 뿔나팔을 불지 않았다. 결국은 부하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고 아주 위급해졌지만은, 로랑의 고집은 자기 자신이 죽을 순간까지 뿔나팔을 불지 않고 만 것이다.
로랑의 체면 유지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부하를 전멸시키고 말았다. "나폴레온"이 러시아를 침공하고 큰 패배를 맛본 것도, 체면과 고집에 기인되었음을 역사는 말한다. 그 해 겨울이 예년보다 몹시 추우리라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나폴레온은 사전에 들었던 것이다. 철새가 다른 때보다 빨리 날아갔고, 여러 가지의 경험과 과학적인 예를 들어 전문가들은 러시아 원정을 연기할 것을 나폴레온에게 충고하였으나, 나폴레온은 웃어 넘기고 말았으며, 심지어는 "힘없는 인간의 충고가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인가? 나는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엉뚱한 교만과 고집을 내세워, 결국은 수많은 인명을 얼음 속에 쓰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68. 어느 왕비의 무덤
인도의 어느 왕국에 아주 젊고 아름다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과 결혼한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궁리 끝에 왕은 아주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왕은 무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자의 조각을 새겨 무덤 동편에 세워 두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집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동쪽엔 미남조각,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우리도 이런 과오를 범할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도 하나님을 중심에 모셨는데 점차 자기가 드러나고, 가문이 드러나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며 그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고, 끝내 하나님이 귀찮은 존재가 되어 "집어치워 버리자."라는 생각을 갖기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69. 교만
John Wooden은 미국 농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코치라는 평을 받았다. (1975년 은퇴)
UCLA 농구팀을 10년간 참피온의 자리에 머물게 하는 신화를 낸 명코치였다.
그가 침을 훈련할 때 언제나 강조한 한 개의 표어가 있는데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것" (selflessness) 이었다. 자기가 아무리 우수한 개인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시하려고 하면 팀도 망치고 자기도 망친다.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 것이 좋은 선수가 되는 비결이다.
70. 지나친 과신
富와 학문으로 유명했던 아시아에 있는 리디아왕국(Lydia王國)의 수도 사데(Sardis)는, 대부호 독재자인 크로이서스(Croesus)의 요새였고,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의 근거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와 학문도 근본적인 보증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큰 재앙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씩이나
경계를 소흘히 하여 파멸되었던 교만한 성읍 사데의 비극이었습니다.
사데는 앞에는 팍톨로스(Pactolus)강이 흐르고, 뒤에는 트몰루스(Tmolus)산 절벽이 있어서, 난공불락의 요새지였기 때문에, 바사의 고레스왕의 침공에도 잘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고레스왕은 문제의 심각함을 깨닫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자에게는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파르디아 출신의 한 병사인 히에로에데스가 한번은 리디아 병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투구를 솜씨 있게 내려와서 찾아가는 것을 보고, 그 날 밤 그 병사가 올라가던 방법대로 조심스레 절벽을 기어올라가 보니 놀랍게도 그 성읍은 너무나 자신한 나머지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데는 순식간에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그 후에도 그 성읍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너무 과신하다가 두 번째도 꼭 같은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데 교회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지금도 거룩하신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늘 깨어 있도록 요구되고 있습니다.
71. 자만
1.자만심은 운명을 박차고 죽음을 비웃고 야망에 사로잡혀 지혜도 은혜도 두려움도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죄다(섹스피어)
2.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의 소유물이다(헤로드토스)
3. 교만은 모든 죄악의 왕이다. 교만이 올라오면 모든 덕은 물러간다.
4. 너는 지난 일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현재 생ㅎ롸ㄹ은 통곡할 만하고 죽은 뒤를 생각하면 두려운 것 뿐이니 사람이 3가지를 늘 생각하면 능히 교만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성 베르나르드)
5 교만은 덕 속에 나와서 덕의 모습을 가장하고 덕을 해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 벌레가 나무에서 나서 나무를 해하는 것과 같다. 다른 악은 외부를 치는 것이나 교만은 영을 치는 것이다. 악은 한쪽만 치나 교만은 여러 면을 친다.(성 어거스틴)
6. 대개의 큰 과오 밑에는 교만함이 있는 것이다.(존 러스킨)
7. 교만 중에 영적 교만이 제일 크다. (라인홀드니버)
8.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람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9. 교만은 어리석은 자에게 반드시 따르는 악덕이다.
10. 자기애는 교만의 시초이다. 교만은 자기애이다. 억제되지 못 하였을 때 그 형체를 나타낸다
11. 인간의 교만에는 3가지 유형이 있다. 권력의 교만, 지적교만, 도덕적 교만이다.(라인홀드 니버)
12.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 (성안토니)
13. 파리 한 마리도 인간보다 먼저 지어졌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그다지 교만해지지 않는다(탈무드)
72 잘나고 똑똑한 것들 때문에
네 사람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엄청나게 배운 사람이고 범인들이 상상조차 못할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가운데 끼인 보통 사람은 그들로부터 대단한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동행하고 이었다.
이들이 어느 숲속에 도달했을 때이다. 그들 앞에 죽은 사자가 길에 누운채 나타났다. 지금껏 자기네들 지식과 기능을 자랑하던 사나이들은 각자의 지식과 기술을 총 동원한다면 이 사자를 살려 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통 사람이 말한다.
"당신들의 지식과 기능은 대단하지만 사자만은 살리지 마시오. 왜냐하면 그것이 살아나면 먼저 우리부터 잡아먹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런데도 그들은 사자를 살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 곧 사자가 살아날 순간이었다. 그러자 보통 사람은 황급히 달려가 다시한 번 그들을 만류했다.
"여러분들의 지식과 기술은 실로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자만은 살리지 말아주시오"라고 통사정을 했다.
원래 스스로 잘란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법이 없다. 셋은 무식한 녀석이 겁은 도 왜 그렇게 유난히 많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그들은 사자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보통 사람은 하는 수없이 나무위로 올라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들의 작업을 내려바보고 있는데 그런 그를 보면서 잘난 사람들 셋은 멸시의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들은 사자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사자는 한 번 우렁찬 포효를 하더니 완전히 빈 자기의 뱃속을 채우는 일이 가장 급했던지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먹고 말았다.
인도의 동물 우화 "폰차탄트라"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73.인간의 자기과시
"이것이 내가 창작한 걸작이지요 이름은 '차드'라고 합니다. 귀엽죠?"
프랜시스 웰링턴 박사는 미소를 띄면서 안고 있던 한 아기를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내밀었다.
"이게 도데체 사람입니까? 침팬지입니까?"
당혹한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자 박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차드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반 원숭이 반 인간입니다. 인류의 과학은 여기까지 도달해 있지요."
영국의 한 연구소에서는 극비리에 유전자 조작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차드"라는 괴물은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더구나 기막힌 사실은 이 괴물은 이미 두 번째 생명체며 첫 번째는 이미 벌써 12살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 의해 유전자가 조작되어 태어난 괴물이 엄청나게 머리가 좋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괴물이 장차 인간에게 어떤 해를 입힐 것인가는 불을 보듯 훤하다.
오늘도 잘난 인간들은 위험한 불장난을 계속하여 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불장난 때문에 엄청난 재앙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간을 심판할지도 모른다.
74. 패망을 가져온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A.D.14-37) 시대에 유리 제조법이 처음으로 발견되어 유리그릇이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떤 사나이가 망치로 두들겨도 보통의 유리처럼 깨어지지 않고 단지 오목하게 들어간 자국만 남는 새롭고 안전한 유리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그 사나이는 그 별난 유리를 가지고 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컵을 만들어 황제에게 갖다 바쳤다. 황제는 금으로 된 어느 컵보다 훌륭하게 보여 칭찬을 아끼지 않자 이 장인은 컵을 땅에다 힘껏 내어 던졌다.
산산조각이 날줄 알았던 컵이 제자리에 있자 깜짝 놀란 황제가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 장인은 컵을 집어들어 주머니에서 작은 망치를 꺼내어서 청동그릇처럼 오므라든 부분을 펴서 본래의 모양대로 만들어 놓았다.
"그대말고 또 이런 유리를 만들 수 있는가?" 이 장인은 교만한 태도로 "저 밖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자 그를 목베어 죽이도록 했다. 그냥 놔두면 유리컵이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75.창피를 당한다
어느 날씨가 화창한 날 땅강아지 한 마리가 개미들이 지나가는 길에 나타나 한 번 뽑내고 싶어졌다. "비켜. 땅강아지 나가신다." 하면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미처 피할 사이가 없던 한 마리의 개미가 나뒹굴었다. "그러니까 비키라고 했잖아." 땅강아지는 기고만장하여 소리 소리 질렀다.
땅강아지는 더욱 뽐내고 싶어져서 두루미가 서 있는 곳에 와서는 "나하고 물고기 잡기 내기를 합시다."고 말했다. 두루미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자"고 선선히 응낙했다. 땅강아지가 큰 물고기를 잡으려고 기다릴 때 커다란 붕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땅강아지를 덥썩 물어 삼켜 버렸다. 두루미는 이 물고기를 잡아 가지고 모래밭에 와서는 배를 째었다. 그러자 땅강아지가 그 뱃속에서 나와서는 "이 물고기는 내가 잡은 것인데 아저씨가 잡은 고기는 어디에 있나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뭐 이것을 네가 잡았다고? 잡으려다 잡아먹히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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