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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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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기도로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 분이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모릅니다.
그럼 구원의 유일한 문이요 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이름
요한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
(For the law was given by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by Jesus Christ.) kjv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스'(Jesus, 지저스)라는 이름은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의 단축형 '예슈아'의 헬라어
형태입니다.
이 예수의 이름 '여호수아' 속에는 하나님의 성호 네 글자 야훼(YHWH)가 축소되어 담겨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인 YHWH의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으나 보통 '야훼' 또는 '여호와'로 발음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속에는 '여호와는 구원하신다' 또는 '여호와는 도우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주체요, 모든 도움과 은혜의 주체적 행위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예수님의 영이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는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요한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마가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을
말하며 뱀들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한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
로마서 10/13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임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이 시행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새 언어(방언)을 말하며, 해를 않고, 병든 자를 치료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나의 구원주로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2.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 4000년은 아담의 범죄에 대한 형벌 기간으로 죄와 율법에 얽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 주셔서 온전한 구원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들에서 한 가지가 자랄 것이라. 주의 영이 그의 위에
머물리니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획과 능력의 영이며,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뿌리로 하여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는데
마태복음 1장에서는 자세한 족보를 들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의 영'(성령)이 그에게 강림하심으로써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이상세계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에 잠긴 자, 기름이 부어진 자, 기름이 넘쳐 흐른 자,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누가 23/3 빌라도가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니,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렇도다.”라고 하시니라.
히브리서 4/14 우리에게는 위대한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올라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백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라.
마태 21/11 그 무리가 말하기를 "이분은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시라"고 하더라.
하나님 영이 강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자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기름이 하나님의 영을 상징함으로 그리스도
(Christ, 기름 부음 받은 자, 헬라어) 또는 메시야(Messias, 기름 부음 받은자, 히브리어, 마쉬아흐)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들 중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자,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이자, 말씀을 전하는 선자자(대언자)의 역할을 모두 하셨습니다.
미가 5/2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프라타야, 네가 비록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가
너로부터 내게로 나오리라. 그의 나오심은 예로부터요, 영원부터였느니라.
누가 2/4~7 요셉도 갈리리 나사렛 성읍에서 유대 다윗의 성읍, 즉 베들레헴이라는 곳으로 가니 (이는 그가 다윗 가문의
계열이기 때문이더라.) 그가 자기와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녀는 아이로 인하여 배가 불렀더라.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그녀가 해산하게 되었더라. 그리하여 그녀가 자기의 첫아들을 낳아 그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이니, 이는 여관에 그들이 들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
미가 선지자는 유다의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가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요셉이 조세 등록을 위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갔습니다.
그것에 있는 동안 날이 차서 마리아가 아들 예수님을 낳음으로써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2/11 이는 다윗의 고을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kjv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주위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다윗의 고을인 베들레헴에서 구주가 나셨는데
그분은 주이신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끌어 주는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구주(救主, Savior, 구세주, 구원주, 구원자) 또는
주님(the Lord)으로 불리었습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한 처녀가 남자와 동침하지 않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지만 동침하기 전에 임신을 했습니다.
마태 1/20~21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너 다윗의
아들 요셉아, 마리아를 네 아내로 삼는 일을 두려워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주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
이에 요셉이 파혼하려고 하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의 이름을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에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야훼)은 구원해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4/15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벧전 1/19 흠도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처녀 잉태로 세상에 오신 것은 원죄를 상속 받지 않고 하늘이 주신 깨끗한 몸으로 오시기 위함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셨고, 죄를 짓지도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갈 흠 없는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상처를 입었고, 그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상하였도다.
우리의 화평을 위한 징계가 그에게 내려졌고, 그가 맞은 채찍으로 우리가 치유되었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것을 암시하는 구절로 우리 죄를 대신해 고통을 받으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벌을 받으실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 48가지를 성취하셨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대표적인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로부터 오실 것이다(민 24:17-19).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될 것이다(창 12:3 ;17:19, 민24:17).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미 5:2).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다(사 7:14).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는 상세히 예언되어 있다(단 9:25).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선두주자에 의해서 선포될 것이다(사 4:3-4).
메시야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사 9:6).
그는 어린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내실 것이다(호 11:1).
그는 고난을 받고 속죄를 이루실 것이다(사 53장).
그는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것이다(슼 9:9).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쓸개즙과 식초가 주어질 것이다(시 69:21).
그의 뼈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시 43:20).
사람들은 그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하여 제비를 뽑을 것이다(시 22:18).
그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된 어떤 말들을 할 것이다(시 22:1).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질 것이다(시 16:10).
그리스도는 친구에 의해 배반당한 것이다(시 41:9).
그는 은 삼십에 팔릴 것이다(슼 11:12).
그는 거짓 증인에 의해 모함받을 것이다(시 35:11).
그는 침 뱉음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맞을 것이다(사 50:6).
그는 이유없이 미움을 받을 것이다(시 35:19).
그는 멸시와 조롱을 당할 것이다(시 22:7,8).
3.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각 시대마다 새로운 계명을 주시며, 그 계명을 지키면 구원 받고, 지키지 못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아담 때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노아 때는 방주를 짓고 타라는 계명을 주셨으며,
모세 이후에는 율법과 제사법을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법, 즉 생명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누가 5/37~38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붓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망가지리라. 그러나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부어야만 하나니,
그리하면 둘 다 보존되느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왜 금식하지 않는냐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지,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가죽 부대가 터져 못 쓰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낡은 가죽 부대는 구약시대, 새 가죽 부대는 신약 시대, 새 포도주는 생명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이전 시대의 법인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 6/68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은 영생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Eterner Life)으로 죽었던 우리 영이 살아나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구약 시대에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육신의 계명에 관한 율법과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법밖에
받을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영의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 그럼 구약 시대의 율법과 제사법이 신약 시대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a) 형식에 얽매었던 육적인 제사가 하나님을 영적으로 섬기는 경배(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God is a Spirit :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kjv
사마리아 여인이 꼭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
제사(offering)는 신께 헌물을 드리는 의미가 있지만 경배(worship, 예배)는 신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신약시대에는 영이 살아 났기 때문에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화하듯이 기도로써 우리의 소원을 말하면 아버지가 자녀의 소원을 들어 주듯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이 죽었던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구하기는커녕,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b) 육신에 관한 율법이 영에 관한 생명의 말씀으로 바뀌었습니다.
율법은 육체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주신 법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인데 우상 섬기지 말고, 살인, 간음, 도적질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육신에 관한 법으로 영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영에 관한 진리 말씀이 바로 생명의 법이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Ⅰ)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복을 받고, 그 중 하나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죄 없이 깨끗하기도 어렵지만 모든 율법을 지켰다 하더라도 영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요한 14/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한 아들이자, 나의 유일한 구원주임을 믿어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요한 1/14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 6/48~51 나는 그 생명의 빵이라. 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으나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니
그것을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또 내가 줄 이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줄 나의 살이라."고 하시니라.
마태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과 같아서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들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니 나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실체가 말씀이니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믿어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신앙의 집을 반석 위에 지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Ⅱ)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22/37~3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이 주신 계명 가운데 가장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나라 네 마음과 혼(자아)과 생각(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늘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사랑해야 죄와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합니다.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가까운 사람 뿐만 아나라 불우한 이웃들까지 사랑해 도우란 것입니다.
출애굽기 21/23~25 만일 어떤 피해가 따르면 그때는 생명은 생명으로 갚아야 하며,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인 것은 데임으로, 상처는 상처로, 매질한 것은 매질한 것으로 갚을지니라.
마태 5/44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천대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시대에는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었지만, 신약시대에는 나의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를 잘해 주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내게 해를 끼치는 원수를 미워하지 않기도 힘든데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원한은 나를 악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할 때 오히려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더 이상
죄 짓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영의 사랑은 육신의 감정적 사랑과는 다릅니다.
육신의 사랑은 외모나 일시적 기분에 의해서 좋아지나 시간이 지나면 싫증나고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의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거룩하고 숭고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급히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 내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은 인내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시기 질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고,
예의 바르고, 화내지 않고, 선하고, 진리를 기뻐하며, 모든 것을 바라고 믿고 참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점점 미움과 시기와 타툼이 심해지고, 이혼율이 높아가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악하지 않고, 선한 진리와 겸손과 인내와 믿음으로 다져진 하나님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Ⅲ) 내게 죄 지은 자를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18/21~22 그때 베드로가 주께 나와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에게 일곱 번까지라고
말하지 않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고 하노라.
누가 17/4 그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죄를 짓고, 또 하루에 일곱 번이나 너에게 돌아와서 '내가 회개한다.'고
말하면 그를 용서하라."고 하시더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 보니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490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자신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회개이나 회개한다면 그를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형제의 잘못에 대해 복수하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것입니다.
마태 18/33 내가 너를 가엾게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 종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 이유를 마태 18/23~35 에서 빚 탕감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의 큰 죄를 은혜로 탕감해 주셨는데 우리가 형제의 작은 죄를 용서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 받은 자는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계속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마태 6/12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주옵시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도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빚진 것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맞았는데도 그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했습니다.
사울왕을 죽일 기회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도 악행을 반복하던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로마서 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고 하였느니라.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벧전 2/21~23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한 본을 남겨 놓으시어, 너희로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짓지도 아니 하셨고, 그 입에는 간사함도
없으셨으며,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셨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아니하셨으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는 분께 자신을 의탁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에 대해 악으로 대항하면 악에게 지는 것이고, 악에 대해 선으로 대응하면 악에게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다시 모욕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고통을 당하셨으나 다시 위협하지 않음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죄를 용서하며, 선으로 악을 이긴 본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Ⅳ)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마태 7/1~3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며, 너희가 재는 그 자로 너희도 다시 측정을 받으리라.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지 못하느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형제의 허물을 비웃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해 상처주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은 죄인인데도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합니다.
학교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급우를 집단 따돌림 시키고 괴롭힙니다.
집단 따돌림 당한 학생은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오히려 덮어주고 감싸줘야 겠습니다.
Ⅴ) 마음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한 보화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이 말하기 때문이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미운 마음을 가지면, 결국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의 발생지인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범죄한 것이 것이 죄이지만, 신약시대에는 마음으로 범죄한 것도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 1/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이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짓게 되고 점점 더 큰 죄를 지어 영육간의 파멸(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자전거 타면 소형차라도 타고 싶고, 소형차 타면 중형차 타고 싶고, 중형차 타면 외제차 타고 싶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저급한 육신의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차원 높은'(영적인) 진리를 추구(사모)하며 살아야겠습니다.
4. 유대인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나?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원할 왕이자 구원주인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세인 서기관 같은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며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죄인, 세리, 창녀, 어부 등 순수한 하층민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따랐을 뿐입니다.
* 그럼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배척했는지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 위선과 탐욕에 빠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예수님이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신랄(辛辣)하게 지적하십니다.
대표적인 잘못은 형식주의와 위선에 빠져서 겉으로는 경건한 채 하고 높임을 받지만 속으로는 각종 죄악과 탐욕이
가득 찬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희생하기 싫어하면서 남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과 행실이 다른 것 등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 23/14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
마태 23/25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나 속은 약탈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
마태 23/27 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회칠한 무덤들처럼 실로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도다.
누구든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 싫은 법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지적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분개했습니다.
민중의 마음이 예수님에게로 쏠리자 이에 밥줄이 끊길 것을 염려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세우게 됩니다.
b)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 10/33 유대인들이 주께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한 일로 인하여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모독하기
때문이라. 이는 네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하기 때문이라."고 하니라.
요한 19/7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기를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우리의 율법에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나이다.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
레위기 24/16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지니, 모든 회중이 분명히 그를 돌로 칠지니라. 타국인도
그가 주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 땅에서 난 자와 마찬가지로 죽을지니라.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람이면서 하나님으로 자처한 것은 신성모독이라며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율법에 따르면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 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한 14/10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이라.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언행은 아버지께서 그안에 계셔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병자를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엄청난 능력을 행하셨고, 우리를 구원할
온전한 진리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마태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는 그리스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더라.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깊이 생각하시오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
마태 27/54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크게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하더라.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합니다.
인간은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부모(사람)로부터 태어난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인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과 형상을 그대로 닮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지진과 기적이 일어나자 백부장과 지키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합니다.
c) 율법을 지키지 않는 예수님을 율법 파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분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고, 떡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를 믿기 보다는 율법으로 그를 트집 잡았습니다.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
예수님은 새 시대의 법을 선포하러 오셨기 때문에 법이 바뀌었으니 이전의 법은 효력을 잃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밤 12시 이후에 다니는 것이 통행금지 죄에 해당했지만 지금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법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구약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 모두를 폐하신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6/6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율법 중 제사의식이나 형식적인 규례는 지킬 필요가 없지만 도덕적인 계명은 여전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지킬 수 없는 율법을 폐하시고, 더 높은 차원의 영의 법인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근원이 되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은 형제에게 거짓말 하거나 도적질 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율법이 저절로 지켜지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으로 발전시켜 완성시킨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 노릇 하였으나
율법은 초등학문이고, 초등학문을 거쳐 고등학문인 생명의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초등학교를 나와야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에 관한 율법은 영의 법을 맞기 위한 과정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율법도 아닌 장로들이 만든 전통인 유전이었습니다.
마태 15/2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나이까? 그들은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하니,
d)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교만에 빠져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요한 7/52 그들이 대답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갈릴리에서는 어떤 선지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찾아보라."고 하더라.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교만과 위선에 빠져 유대의 변방 지역이었던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경건하고 위엄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시골 출신이자 누추한 차림의 예수님께 머리를 굽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가 2/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지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암환자가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고 있는데도 나는 건강하다고 버티면 의사가 치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이런 상황에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야 합니다.
야고보서 4/6 그러나 그가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거절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땐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으며,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은 교만하고 마음이 부유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절하시고,
겸손하고 마음이 가난하며 애통해 하는 자를 찾아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5. 유대인의 배역은 은혜에 대한 거부인가?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를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혼인잔치 비유가 나오는데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를 위해 종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초청하나
다 자기 일에 바뻐 무관심 할 뿐만이 아니라 보낸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마태 21/33~41에서는 포도원 비유가 나오는데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나가서 열매가 익을 때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니 심히 때리고 죽이니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보내나 상속자 아들을 죽여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아들도 죽이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와 이 악한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농장을 줍니다.
이 역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한 유대인들의 심판을 나타냅니다.
살전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계시록 2/9 내가 너의 행위와 궁핍을 아노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도들을 핍박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초대교회 성도들을 훼방하고 박해한 유대인들의 모독을 아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고 합니다.
에스라 7/13 내가 칙령을 내리노니 내 영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다 너와 함께 갈지어다.
(I make a decree, that all they of the people of Israel, and of his priests and Levites, in my realm, which
are minded of their own freewill to go up to Jerusalem, go with thee.)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freewill) 때문입니다.
freewill은 '자유의지'로 내가 누구의 간섭 없이 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원격조종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이브도 자신이 가진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는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계명들을
이행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슬퍼하여 밤새도록 주께 부르짖더라.
사무엘상 16/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이는 주가 보는 것이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후회를 하십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 잘 못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듯이 하나님도 인간이 자유의지에 관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후에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outward appearance) 보다 마음(heart)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삼으십니다.
출애굽기 19/5~6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49/6 그가 또 말씀하셨도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 내가 또한 너를 이방인들에게 빛으로 주리니 네가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면 모든 백성보다 독특한 보물이 되고, 제사장 왕국이자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아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온갖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졌고, 결정적으로 구원주이자 왕인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아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이방인에게 그 모든 복락이 돌아갔습니다.
로마서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화해하게
된 우리는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구원받게 되리라.
2,000년전 유대인의 불신과 무지로 예수님이 돌아가셨지만 유대인은 죄 많은 우리 인간을 예표합니다.
즉 죄인된 인간이 의인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는 우리 죄를 대신해 흘리신 그의 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 유대인의 배역은 다음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마태 23/35~36 그리하여 의로운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마태 27/25 모든 백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더라.
누가 19/43 그 날들이 너에게 닥칠 것이니, 너의 원수들이 흙언덕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면으로부터 너를 공격하여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의로운 피가 유대인에게 돌아갈 것을 예언하셨고, 유대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죽인 무죄한 피를 자신과 자손들에게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유대민족을 진압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는데 주위에 흙언덕을
쌓고 입성합니다.
마가 1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거대한 건물들을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고 하시니라.
로마군은 성전의 금을 약탈하기 위해 성전을 모두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대량학살 했으며, 나라를 자체를 없애고,
남은 자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또한 유대인은 20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유랑하며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6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학살을 당했으니 메시야를 죽인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방인(비 유대인)에 대한 선교입니다.
로마서 2/28~29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혼인잔치 비유와 포도원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지중해 인근 여러 나라를 순회하였고,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유대인은 구세주인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는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요한 4/19~20 이것이 정죄라. 즉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빛보다는 오히려 더 어두움을 사랑하니 이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라.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혹 자기의 행위가
책망받을까 함이라.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본능과 쾌락과 욕심에 빠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육신을 예표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였고, 참혹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어두움(죄, 거짓, 사탄)을 좋아하는 육신은 본능적으로 빛(의, 진리, 하나님)을 멀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반항적인 자기 육신을 억제해 복종시켜야 합니다.
6.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드리면 구원이고, 거부하면 심판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온 인류를 심판하고 사탄에게 내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믿는 조건까지 대신 세워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씻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요한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같이 인자도 그렇게 들려올려져야만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 앞에 분명하게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설명한 구절로 출애굽 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불신하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아
하나님으로부터 심팜을 받았지만 놋 뱀을 쳐다 보아야 불 뱀에 물리지 않았던 것처럼,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불신했던
인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 보아야지만 구원(멸망치 않고 영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눈 앞에 보이므로 거짓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을 주시는데 이는 인간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담 때에는 선악과 따 먹지 말라는 계명이 있었고, 노아 때에는 방주에 타라는 계명이 있었으며, 모세 이후에는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주이자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씻어져 죄사함 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계명입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모진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고전 1/22~24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노니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계시록 7/14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것이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들리지만 누구든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말세 때 대환난을 피하는 사람은 어린 양(예수님)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말세 때 구원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아 거룩하고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a) 대속 (代贖, substitution)
대속은 죄를 대신 받는다는 말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 자신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기 위해서는 성막에서 자신의 죄를 무죄한 염소나 양에게 안수해
전한 다음 제사장이 암염소나 어린 암컷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단 밑에 쏟은 다음 나머지를 번제단에
불살라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마태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골로새서 1/14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흠 없는'(죄 없는) 어린 양이 되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져 용서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b) 구속 (球贖, redemption)
구속이란 죄인을 속전을 내고 건져낸다는 말로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마귀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피로써 죄값을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죄로 감금된 사람을 보석금을 내고 석방시켜 주는 것이나, 노예로 예속된 사람을 '몸 값'(ransom)을 주고
해방시켜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몸값으로
주려고 온 것이라."고 하시더라.
고전 6/20 너희는 값을 치루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 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과 은혜로 사탄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았으니 우리 모두 예수님에게 빚진 자입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은 엄청난 희생과 고초를 감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피로써 값을 치루고 산 존재이니 구원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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