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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논문신학성경 요한............... 조회 수 3230 추천 수 0 2010.06.19 18:17:22
.........
출처 :  

   

 

     유일하신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심



   요한복음 5장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계시로 아는 예수그리스도의 정체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예수님의 계시를 통해 우리의 지각(知覺)을 통하여 알게 하신다.

마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 (고전 1:20-21)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마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하여 베드로  는 현명하게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심으로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는 성경의 로고스의 말씀으로 아는 것보다 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함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일은 영으로 분별함을 말한다.(고전 2:11)

 

 

 

베드로의 대답은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대답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대답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히브리적 사유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예수님께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느냐? 하고 예수님을 질타하였다. 땅에서 난  인간의 차원과는 다른 영이신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과 동일한 하나님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 유대인의 시각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시는 말씀은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실상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요한 복음 14:7-11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신에 대한 정체성을 성령의 계시 없이 인간의 두뇌를 활용하여 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함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인  이성의  좁은 판단에 의지하여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어떤 철학자나  탐구자가  스스로  자신의 어떤 기관과 지식으로도 그 존재성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지혜로운 자들의 눈을 가리셨음을  역사적으로 증거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은 성령으로 계시하시고 믿게하실때 가능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상 속에 존재하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자신을 계시하는 자에게는 믿음의 대상이 되신다. 인간의 사고 안에서  논리로 변증(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로 증명하는 것)하려고 거듭 시행한 착오를 이제는 벗어나야할 때이다.신론과 기독론 논쟁이 시작한 때는  A.D 300년이후 사도 시대의 정통성은 퇴조하고 있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였다. 신앙은 퇴조하고 온갖 학설이 난무하였다.  로마의 기독교는 로마의 다신 숭배와 혼합되어 혼합종교로 타락하고 진리가 가리워 지고 교회가 이방종교의 의식 위주로 전락하였음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는데 그때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이원론, 양태론, 아리우스론 이런 인간사상의 잔여물이 근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보물이 되는 것처럼 붙들고 있는 것은 주님이 진리의 빛으로 늦은비의 역사로  더욱 밝히고 있는 이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사실 사도시대 이후 300년이후의 신학의 수준은 지금의 수준에 비해 훨씬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정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칼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본다. 칼빈은 교부 시대의 학문을 좋아했는데 취향이 맞았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신학과 성경은 카톨릭 사제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신자들의 무지는 요즘의 신자들의 수준에 비교가 않될 정도였다고 본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된 그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치와 결탁하여 정치적 영향이 많은 자들이 감독과 교부로 세워졌다. 그리고 그들의 학문은 세상적 학문으로 철학을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진리가 빛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 이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다. 신약에 와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14;7) 이 시대에 있어 주님은 자신을 믿는 택한자 들에게는 자신을 계시하시고 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는 영적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에 그가 입신하여 천국에 갔을 때 보좌에 않으신 예수님을 보았다. 보좌는 하나뿐이었다고 간증하였다. 그도 삼위 일체의 하나님으로 배워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분리하여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좌에 않으신 분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믿어졌다고 하였다. 삼위 일체 주의자도 분리로 생각하지 않고 유일신을 주장하지만   아버지가 예수님이 되신다라고 말하면 부인하거나  마음 속에 믿기 어려워한다.

 

하나님 어버지와 예수님은 한 분하나님이시다.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나님을  믿는 것은 구원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진리대로 믿어야 죄사함 받는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으로 표현된 신론이 내용적으로 모두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하나님을 논증하지는 못한다. 삼위일체는 학문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기술적인 용어로서 주후 300년이 지나서 기독론 논쟁이 뜨겁게 달아 오를때 나타난 용어이다.  니케야 논쟁에서  아리우스 주의자와 아타나시우스 주의자가 격론할때  별별  변증적 논리로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 시키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기독론을 헬라 철학적인 사유로 해석하고자 시도하는 자들도 있었다. 실제로 터툴리안은 헬라 철학과 법에 대한 상당한 학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삼위 일체를 주장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하나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용어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라 해석이 차이가 있는데 하나님이 한분이라고 했다가 세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신비라고 결론 짓는 이것이 진리인가?  

심지어 삼위라는 용어로 하나님을 세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애매모호한 용어로 인해 부작용은 심각하였다. 니케야 종교 재판은 아타나시우스의 승리로 일차 종결되었지만 사실 니케야 신조는 유일신 사상으로  아타나시우스 주의자들은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뒤로 계속된 논쟁으로 삼위일체라는 신조어가 탄생된것으로 본다. 삼위일체 주의자들은  주로 학문적인 연구로 이 사상을 정립 시켜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데 누구도 아직 완벽한 삼위일체라는 용어로 정립 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확립 시키지 못하고 논쟁으로 남아 있다. (주장하는 사람 자신도 헷갈려함)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나 자신도 고민을 많이한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몇 십년 동안 연구 해왔다. 여러가지 서적도 보고 성경을  읽으며 주님께 기도로 알게 해달라고 했지만  성경이나 여러 서적 만으로 알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십자가의 복음 을 체험하면서  기도 하는 중에 주님은 나에게 이상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입는 통옷의 휜 옷을 입으시고 서 계시는데 얼굴은 옆으로 돌리고 계셔서 보이지 않았다. 그 분 앞에 아름다운 신부가  휜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 마치 결혼하려는 모습의 신랑과 신부처럼 보였다. 그 신부는 주님을 따르는 택함 받은 자로 느껴졌다. 그리고 음성이 나의 뇌 속으로 들려 왔다. “ 그이가  그이다” 이 한마디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지각을 통해  믿음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곧 “아버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라는 말로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한분 이상으로 믿고 섬기는 것은 우상이라고 느끼게 하셨다.

 

  여러분은 믿겠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일 까요?

하나님을 학문적으로 알려고 하는 자신의 지혜만 의지하는 자들의  사변은 매우 위험합니다. 본적도 없으면서 삼위일체로 어떻게 설명합니까? 트라이 앵글 삼위일체의 구도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나눌수 없다. 아들도 아버지와 나눌수 없다. 성령도 그러하다. 그러나 어버지는 아들이 될 수 없고 아들도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성령도 그러하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연구도 많이 해 보았고 그 때부터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계시와 말씀을 통해 알게하셨습니다.  학문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무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학문으로 아는 하나님이면 성령의 계시는 왜 필요할까요?  사도 요한도 체험적 계시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삼위일체 주의자들도 자신도 삼위일체 하나님 사상을  잘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의 지각을 통해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0.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의 이름은 곧 아들의 이름

요17:11-12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한국의 신자들의 신앙이 너무도 신학으로 흐르고 있습니다.(목회자들이 체험은 없고 신학 중심으로 설교하기 때문) 신학이 논리적인 면으로 객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신학에 치우쳐 정작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 변증적 논리체계로 떨어진 다는 것은 신앙과 분명히 배치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믿음의 은혜안으로 들어갈 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것도 얻을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좁은 문인 십자가를 통과 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모르는 자는 믿음과 신앙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고전 1장 18-22)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은 그 분과 십자가에서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여 아는 것을 비유하여 (히브리적 의미)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


이 시대는 세상은 더 어두워 가지만 진리의 빛은 더욱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자들은 세상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진리가 지금의 교회에서  피상적으로 아는 것에 대해 전혀 다른 숨은 진리가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새로운 사람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야하는 때가 왔습니다. 몽학선생인 학문적인 선생은 벗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령의 학교에서 배워야 할 때 입니다.(저의 경험입니다) 구하십시요 그리고 예수님께 기도로 물어 보십시요. 성경으로 돌아가 사람에게서 배운 것은 접어 두시고 주님의 기름부음을 경험하십시요. 신학책 몇 백권 읽어 본들 그것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학문적 지식만으로는  알수가 없는 경륜의 비밀이신 예수님을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알기를 바람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자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부어질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참 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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