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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2:3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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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나 자신이 사는 둘레를 한번 문득 의식하여 보십시오.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세수하는 물소리, 식사 준비로 달그닥 거리는 소리, 텔레비젼에서 나는 현란한 소리, 뻐스 안에 운전기사 마음대로 커다랗게 켜놓은 라디오 소리, 길가 공사장 소음, 사무실에서 나는 끊임 없는 잡소리, 야채, 과일, 반찬을 파는 소형 트럭의 무차별 가두 방송들, 자동차 브레이크와 빵빵 거리는 소리들. 월드컵 축구, 프로 야구, 프로 농구 중계 방송들. 소리, 소리, 소리............
이번에는 나와 만나는 사람들의 말을 문득 의식하여 보십시오. 찾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다 기억 하시는지요? 그 이야기들이 재미 있었습니까? 유익한 대화였습니까?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도는 감동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별로 마음에 남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 였나요? 가만히 있기 민망하고 무료하여 아무 의미 없는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나요?
이번에는 나 자신은 무슨 말을 하면서 사는가를 문득 의식하여 보십시오. 나도 남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느끼십니까? 아니면 할 말만 하고 쓸데 없는 말은 안하시는 편인가요? 그렇다면 그 할 말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요? 의미 있고, 무게 있고, 사람을 감동 시키고, 지혜를 주고, 용기를 주는 그런 말인가요? 아니면 나와 관계되는 일을 경우 바르게 똑 소리나게 처리하는 그런 말인가요?
사람은 말 안하고 살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 모든 경전에 말에 대한 경고가 많습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오하게 말에 대하여 교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성 생활을 추구하였던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 같이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의 기본은 묵언 생활, 묵상 생활, 혹은 침묵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2. 黙言( 묵언 ) 생활이란 무엇인가?
묵언의 사전적 의미는 말 없이 잠잠히 있음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도를 철저한 침묵 가운데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묵언은 묵상 생활이나 침묵 생활과 그 의미의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묵언은 단순히 말 안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잠자는 상태는 묵언이 아닙니다. 화가 나서 말 안하고 있는 것. 너무 슬퍼 말을 잊고 멍하게 있는 것. 말 없이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며 어쩌나 보자 하는 것. 무게 잡으려고 의식적으로 말 안하는 것. 목이 아파 말 안하는 것. 누군가 테이프로 입을 봉해 놓아 말 못하고 있는 것. 등등 그런 것을 묵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고 어금니까지 악물고 나는 지금부터 무조건 말 한 마디 안하겠다고 결심하고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묵언은 아닙니다. 침묵도 아닙니다. 묵상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묵언이란 무엇인가? 토마스 머튼은 < 묵언 에서 성인들이 성장 하였고, 묵언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묵언 안에서 하나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 >고 하였는데 묵언이란 그에서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수도원의 규율은 < 묵언 하라! 그러나 묵언 보다 더 나은 말이 있거든 얼마든지 말 하라! >는 것입니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묵언이란 단순히 말 안하는 것이 아니라 맑고 투명한 의식을 지닌채 묵언 곧 침묵하여 자기 존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어떻게 黙言 할 것인가?
하나, 무엇보다 우선 의식적으로 말을 아끼고 침묵함으로 묵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일입니다마는 말을 안해서 후회하기 보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채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입니다.
하나, 묵언은 말 없이 잠잠히 있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참 말을 준비하는 지극한 정성입니다. 법정 스님은 < 말과 참묵 >에서 < 묵언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말은 소음일 뿐 >이라고 喝破하였습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 갈파란 사물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분명히 말하다 >라는 뜻일진대 법정의 묵언에 대한 이 해석은 정말 멋진 갈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을 할 때는 세 개의 황금 문을 통과한 말을 하라 ( 참고: 고전예화 9 )
제일 황금문 -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진실된 참말인가?
제이 황금문 -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이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말인가?
제삼 황금문 -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사랑에 기초한 친절한 말인가?
비로 이 세 개의 황금문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일컬어 黙言이라고 합니다.
하나,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갈무리 하고 정기적으로 지켜감으로 묵언 할 수 있습니다. 간디는 월요일 하루를 묵언의 날로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하루 세 번 묵언의 시간을 지켰습니다. 새벽 시간, 점심 시간, 혹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 하루 중 아무 때나 편리할 때 하면 되지 뭘! > 하는 것은 안됩니다. 꼭 특정한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특정한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짧막한 말씀 하나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며 묵언해야합니다. 긴 말씀은 안됩니다.
4. 묵언의 유익은 무엇인가?
마르다의 정성어린 분주함과 마리아의 정갈한 묵언! <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10:42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 하시지요?
우리 모두는 묵언의 유익을 압니다. 다만 묵언하지 못할 뿐!
나 자신이 사는 둘레를 한번 문득 의식하여 보십시오.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세수하는 물소리, 식사 준비로 달그닥 거리는 소리, 텔레비젼에서 나는 현란한 소리, 뻐스 안에 운전기사 마음대로 커다랗게 켜놓은 라디오 소리, 길가 공사장 소음, 사무실에서 나는 끊임 없는 잡소리, 야채, 과일, 반찬을 파는 소형 트럭의 무차별 가두 방송들, 자동차 브레이크와 빵빵 거리는 소리들. 월드컵 축구, 프로 야구, 프로 농구 중계 방송들. 소리, 소리, 소리............
이번에는 나와 만나는 사람들의 말을 문득 의식하여 보십시오. 찾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다 기억 하시는지요? 그 이야기들이 재미 있었습니까? 유익한 대화였습니까?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도는 감동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별로 마음에 남는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 였나요? 가만히 있기 민망하고 무료하여 아무 의미 없는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나요?
이번에는 나 자신은 무슨 말을 하면서 사는가를 문득 의식하여 보십시오. 나도 남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느끼십니까? 아니면 할 말만 하고 쓸데 없는 말은 안하시는 편인가요? 그렇다면 그 할 말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요? 의미 있고, 무게 있고, 사람을 감동 시키고, 지혜를 주고, 용기를 주는 그런 말인가요? 아니면 나와 관계되는 일을 경우 바르게 똑 소리나게 처리하는 그런 말인가요?
사람은 말 안하고 살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 모든 경전에 말에 대한 경고가 많습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오하게 말에 대하여 교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성 생활을 추구하였던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 같이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의 기본은 묵언 생활, 묵상 생활, 혹은 침묵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2. 黙言( 묵언 ) 생활이란 무엇인가?
묵언의 사전적 의미는 말 없이 잠잠히 있음 혹은 자신이 추구하는 도를 철저한 침묵 가운데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묵언은 묵상 생활이나 침묵 생활과 그 의미의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묵언은 단순히 말 안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잠자는 상태는 묵언이 아닙니다. 화가 나서 말 안하고 있는 것. 너무 슬퍼 말을 잊고 멍하게 있는 것. 말 없이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며 어쩌나 보자 하는 것. 무게 잡으려고 의식적으로 말 안하는 것. 목이 아파 말 안하는 것. 누군가 테이프로 입을 봉해 놓아 말 못하고 있는 것. 등등 그런 것을 묵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고 어금니까지 악물고 나는 지금부터 무조건 말 한 마디 안하겠다고 결심하고 입 다물고 있는 것도 묵언은 아닙니다. 침묵도 아닙니다. 묵상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묵언이란 무엇인가? 토마스 머튼은 < 묵언 에서 성인들이 성장 하였고, 묵언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묵언 안에서 하나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 >고 하였는데 묵언이란 그에서 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수도원의 규율은 < 묵언 하라! 그러나 묵언 보다 더 나은 말이 있거든 얼마든지 말 하라! >는 것입니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묵언이란 단순히 말 안하는 것이 아니라 맑고 투명한 의식을 지닌채 묵언 곧 침묵하여 자기 존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어떻게 黙言 할 것인가?
하나, 무엇보다 우선 의식적으로 말을 아끼고 침묵함으로 묵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일입니다마는 말을 안해서 후회하기 보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채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입니다.
하나, 묵언은 말 없이 잠잠히 있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참 말을 준비하는 지극한 정성입니다. 법정 스님은 < 말과 참묵 >에서 < 묵언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말은 소음일 뿐 >이라고 喝破하였습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 갈파란 사물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분명히 말하다 >라는 뜻일진대 법정의 묵언에 대한 이 해석은 정말 멋진 갈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을 할 때는 세 개의 황금 문을 통과한 말을 하라 ( 참고: 고전예화 9 )
제일 황금문 -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진실된 참말인가?
제이 황금문 -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이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말인가?
제삼 황금문 -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사랑에 기초한 친절한 말인가?
비로 이 세 개의 황금문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일컬어 黙言이라고 합니다.
하나,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 특정한 말씀을 마음 속에 깊이 갈무리 하고 정기적으로 지켜감으로 묵언 할 수 있습니다. 간디는 월요일 하루를 묵언의 날로 지켰습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하루 세 번 묵언의 시간을 지켰습니다. 새벽 시간, 점심 시간, 혹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 하루 중 아무 때나 편리할 때 하면 되지 뭘! > 하는 것은 안됩니다. 꼭 특정한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특정한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짧막한 말씀 하나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며 묵언해야합니다. 긴 말씀은 안됩니다.
4. 묵언의 유익은 무엇인가?
마르다의 정성어린 분주함과 마리아의 정갈한 묵언! <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10:42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 하시지요?
우리 모두는 묵언의 유익을 압니다. 다만 묵언하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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