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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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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교는 지구상에서 두번째로 큰 종교로써 특히 중동, 그리고 동남아시아, 중앙아 시아, 인도, 아프리카 지역을 장악했으며 지금은 2000년을 목표로 세계이슬람화 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교는 급속히 늘고 있는 반면에 기독교는 줄고 있는 안타까운 실태이다. 아니,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빨리 확산되고 있는 종교가 모 슬렘교다. 이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미국이다. 바로 미국의 흑인 계통의 미국인들에게 무섭게 번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이라도 '왜 회교는 흑인이슬람화에 성공하고 있으며 왜 기독교는 세계이슬람화에 비해 좌절을 면치 못하고 있는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아주 잘못된 것이다. 하늘과 땅의 권세와 세계복음화라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할 언약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기독교는 자꾸 뒤로 쳐지는 것일까. 전도와 선교, 그 무엇이 빗나갔단 말인가. 그 현주소를 우리는 분명히 밝혀내고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를 당신의 계획대로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루속히 어두워져만 가는, 적그리스도화 되가는 이 세상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11억이 넘는 회교도들을 결속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종교를 통해 사회를 엄격히 통제하는 억압적 통치 방식이다. 이슬람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날 때 가해지는 형벌은 이슬람 율법에 조목 조목 엄격히 규정되어 있고, 어떤 곳에서는 이슬람 율법보다 더 무자비하게 그 처벌 규정들을 적용한다. 이슬람의 전통적 법률에 의하면 회교도가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사형에 처한다.
그러나 회교도들도 역시 하나님의 용서와 죄로부터의 자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도 인생의 의미와 구원의 확신을 갈구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런 것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신비주의나 그 사회에서 용납되는 형태의 애니미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이들을 어떻게 접근하는가가 중요하다. 이래서 우리는 복음의 대상인 이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또한 이들을 이해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서 이슬람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흔히 외부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난공불락의 성을 무모하
게 공격하는 격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강한 저항과 편견과 의심과 의혹은 그대로 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채움 받을 수 있는 영적인 갈급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 앞에는 모슬렘선교의 새 장이 열려질 것이다. 회교 도들은 기독교에 대한 저항감을 갖도록 교육되어 왔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는 바에 따라 기도의 응답으로 전해지는 복음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충분히 역사를 일으키리라. 하나님
께서 회교들을 향하여 가지신 그 관심을 우릭도 동일하게 가지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는 것은 설사 피를 흘려야 할지라도 그것은 복음을 가진자의 책임이다. 그리스도만이 이들을 진정으로 자유케 하시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는 150여개의 분파가 있으나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순니파(Sunnis)다. 정통 주류 모슬렘이며, 최대 다수파이다.
다음은 사아파(Shias)다. 비주류 모슬렘으로 모하메드의 합법적인 후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이견 때문에 서기 661년에 갈라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수피파(Sufis)다. 신비주의적 성향을 띤 이슬람 종파이다.
모슬렘이 믿는 것을 간략하게 말하면 이들은 유일하고 전능하며, 모슬렘에게 자비하다고 하는 알라를 믿는다. 천사와 악령의 존재를 믿는다. "계시된 책들"이라 부르는 다음의 네 가지 경전을 믿는다: 모세의 율법,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모하메드에게 주어진 마지막 경전인 코란. 알라의 사자들과 예언자들 중 모하메드는 최고의 예언자다. 이들도 부활의 날을 믿고 있다. 이들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든 것이 무조건 '알라의 뜻' 즉, 숙명이라고 믿는다.
모슬렘의 종교 행위는 주요 다섯가지로 나눈다.
첫째, "알라이외에는 신이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사자(사도)이다"라는 고백의 암송.
둘째,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
셋째, 최소한 수입의 40분의 1 이상을 구제하는데 바 치는 것.
넷째, 라마단의 달에 금식하는 것.
다섯째, 여유가 있는 사람에 한하여 메카의 카바를 순례하는 것.
모슬렘의 발단과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본 후에 이슬람교의 기본교리를 복음의 관점에서 분석할 것인데 제일 먼저 이들의 신론을 다루겠다. 쯔뵈며 박사의 말대로 우리가 모슬렘의 신 개념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모슬렘의 신앙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철학을 판단할 수도 없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이해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교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발단을 한번 살펴보자. 이슬람교의 시작은 창시자 모하메드에서 비롯된다. 모하메드가 서기 570년경 아라비아의 쿠리쉬 족속 사람 압둘라의 유복자로 태어나기 전 아랍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기록된 것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랍족들이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정치적 체제가 없는 가운데 주로 부족마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유목적인 삶을 영위했다.
모하메드가 여섯 살 때 어머니 아미나도 세상을 떠나 그는 잠시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가 삼년 후 할아버지도 사망하게 되자 삼촌 아부탈리드에게 맡겨지게 된다. 아부탈리드는 사막지역을 가로질러 다니는 장거리 대상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모하메드는 삼촌을 따라 각지를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장사를 배웠다.
당시 메카에 있던(지금도 있는) '카바'라고 하는, 높이가 50피트 가량 되는 바위 신전에는 사람들이 매일 다른 신들을 교대로 모셔놓고 절을 하고 있었다. 모하메드는 각국을 여행하면서 잡다한 우상이 아닌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보며 그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으며 동족들의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늘 불만이 많았다.
모하메드에게 미쳤던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은 이스람교의 의식, 용어 그리고 코란에 포함된 모세오경, 시편, 복음서 등에 잘 나타난다. 추측컨대 모하메드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던고로 아마도 근원적인 것들(인생의 의미,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의 많은 종교와 동족들이 믿던 다신교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 속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접하였다. 그러나 모하메드의 눈에는 유대교가 너무 유대인 중심이어서 혐오감을 일으켰으며, 또한 기독교는 아주 난해한 교리들(삼위일체, 성육신, 부활...)로 인해 그의 마음문을 닫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매력적인 부분들과 아랍의 전통과 조로아스터교의 요소들을 혼합하여 지금의 왜곡된 코란과 이슬람교적 가르침과 생활을 낳은 것이다.
모하메드는 25세때 15년 연상의 부자 과부인 카디자와 결혼했다. 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확보한 그는 이제 자유롭게 그의 종교적 관심사를 추구하고, 수도생활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훗날 '능력의 밤'이라 불리게 된 특별한 밤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40세 되던 해 하라산 동굴에서 수 개월간 명상에 몰입하던 중 환상과 함께 어떤 목소리가 그에게 들려 온 것이다. "선포하라. 핏덩어리에서 사람을 지으신 창조자, 주의 이름을 선포하라. 너의 주는 가장 은혜로우시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펜으로 사람을 가르친 이가 바로 그이시다." 모하메드는 알라의 예언자로 등장한다. 이 때로부터 시작하여 천사를 통하여 모하메드가 받은 말들을 기록한 것이 코란이다.
모하메드는 처음에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카디자의 후원과 소수의 충성스런 제자들의 헌신에 힘입어 그의 세력이 메카에서 북쪽으로 250마일 떨어진 메디나에까지 미치게 됐다.
622년에는 메카에서 심한 박해를 피하여 메디나로 피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헤지라'라고 부르며 이 해가 이슬람교의 원년이 되었다. 메카에 정착한 후 모하메드는 그 세력을 더욱 확장하여 아랍지역의 유대인들을 정복하고 학살하는가 하면 메카로도 진격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과정에서 코란도 더 많이 기록되었고 이슬람교의 교리도 발전되었다. 모하메드는 특히 그리스도의 인성을 많이 강조한 네스토리우스파의 교리와 성부 하나님, 성모 마리아, 성자 그리스도의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단의 주장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이슬람교의 교리에 반영했다.
모하메드는 또한 남자의 부양능력에 따라 네명의 아내를 두는 것까지 허용하였지만, 자신은 아홉명의 아내와 많은 첩을 거느렸다. 아내들 중에는 열 살짜리 소녀인 아이샤와 원래 그의 양아들의 아내였다가 이혼한 자이나브도 있었다.
어찌됐든 그의 세력은 점차 커져서 628년에는 메카 사람들이 '카바'를 이슬람교의 순례지로 내어주었고, 630년에는 그가 일만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메카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그리하여 메카의 카바는 아랍 전통종교의 우상을 숭배하는 곳에서 이슬람교의 성지로 바뀌게 됐다.
모하메드가 사망한 632년경에는 전 아랍지역이 이슬람의 권세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그의 후계자인 칼리프들은 각 부족들에게 전리품의 분배를 약속으로 내걸고 그들을 정복전쟁에 동원했다.
634년에는 예루살렘이 침공을 당했고, 636년에는 시리아가 함락되었다. 641년경에는 이집트, 이란, 이라크까지 이슬람권에 편입되어 있었다.
모하메드가 죽은 후 100년도 되기 전에 이슬람교는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진출하여 로마제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오늘날 카바는 여전히 이슬람의 순례 중심지이다. 많은 순례자들이 메디나에 있는 모하메드의 무덤을 찾는다. 이 무덤 근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묻을 또 다른 장소가 준비되어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다시 와서 참된 이슬람교를 세운 이후에야 죽어서 그 장소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로, 사람들은 이슬람의 규준인 교리, 신학, 가르침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회교도들이 도대체 무엇을 믿는지(구원관 등등)에 대하여는 맨 나중에 다루기로 하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의 신앙은 성경을 왜곡시킨 비진리, 사탄의 거짓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을 역이용하여 기독교가 오리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리를 왜곡시킨 원본이 아닌 사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코란만이 유일하게 변질되지 않은 모하메드가 알라로부터 직접 받아쓴 원본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분명한 해답을 갖고 우리는 이들을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회교도들의 기독교에 대한 호전적인 태도를 꿰뚫어 그들이 무엇을 갈망하고 찾고 원하는지 그들의 영혼의 절규를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른 팔로 도둑질하면 오른 손을 절단해 버리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의 율법의 원칙을 수호하는 이들은 코란 경전의 규율을 사회의 법으로 체계화하여 철저하게 실시하는데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부도덕하고 문란해만 가는 서구 문명과 같은 무질서보다는 이슬람교의 가혹하리만큼 완벽한 제도에 매료되는 것 같다. 실수와 잘못과 범행에 가차없이 행해지는 심판과 징벌은 무섭기도 하지만 불안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배를 정박시켜주는 닻과 같은 심리적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덧붙여 지적할 것은 이들의 교리가 매우 현세적 쾌락주의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코란은 회교도 남자가 네명의 부인을 거느리는 것을 허락하며 이혼에 대해서도 매우 개방적이다. 또 이들이 말하는 천국은 물질적이고 향락적인 곳으로 회교도들의 성적인 요구를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는(아름다운 여자들, 비단으로 덮인 값비싼 가구들, 넘치는 잔, 호화스럽고 맛있는 음식...) 매력적인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들이 믿는 지옥도 낙관적이다. 회교도들도 지옥에 갈 수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에게는 정화기간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소망이 있다. 이와 반대로 유일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
둘째로, 사람들이 회교로 개종하는 원인은 자신들의 처해진 상황(위협, 문화적 이탈감, 소외감...)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느낄 수 없는 형제애, 소속감,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 문화적 확신감, 연대감 등을 모슬렘 공동체에서 느끼는 것이다.
기독교회는 공동체 보다 더 강한 '그리스도 몸의 지체'라는 개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도들간의 아름다운 코이노니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상처받은 영혼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모슬렘교도들에게 전도하려는 일부 선의의 크리스천들이 부주의하게도 금발과 푸른 눈의 예수님 사진을 가지고 가서 그들로 하여금 도망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진은 우상숭배에 관한 이슬람의 가르침을 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흑인들에게 깔려있는 생각을 확인시켜주는 분으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기독교는 백인들을 위한 것인 반면 이슬람은 흑인들을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마지막으로, 자기자신의 동기와 목표(경건함에 대한 요구...) 때문에 이슬람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저 유명한 다섯 기둥(신앙고백, 기도, 구제, 금식, 순례)중 특히 기도(자신이 어디에 있든지간에 메카를 향하여 하루에 다섯번 엎드려 기도한다)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매력이 있다. 확신과 힘이 없는 많은 신자들의 모습과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슬람 공동체에 대하여 이 규율적이고 엄격한 삶에의 접근방식으로 증거할 때, 그것이 '의'에 주린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교리 문제를 성경과 비교하면서 다루어 보자.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문제는 회교도의 경전인 코란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기독교의 성경과는 달리 유일신인 알라가 계시하는 대로 모하메드가 직접 받아 열거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의 생각과 관념들은 계시에 기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코란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불필요하고 잘못된 것이며 코란이 아랍어로 계시되었기 때문에 아랍어로 읽고 암송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란의 번역은 허락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설사 허락되더라도 번역이 원본의 완전한 의미를 전해주지 못한다 한다.
이와는 달리 성서의 기자들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벧후 1:21).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동시에 사람의 말이다. 기자들은 타자기같은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하고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문체로 썼다. 그리고 원본의 의미는 어떤 언어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회교도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와 예정을 얘기하지만 크리스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까이 계시는 것을 더 강조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임마누엘의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것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전도가 아닌가. 복음은 임마누엘로 시작해서 임마누엘로 끝나는 것이다. 크리스챤은 또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와 책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예정을 모슬렘이 강조하는 것 보다는 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회교도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창 1:27)대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강조하기 보다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종임을 더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알라의 노예가 되는 것은 모슬렘의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다. 알라에게 매이는 것은 다른 모든 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써 아는 아들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인간이 자연(땅, 동물, 식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라는 창1:28의 회복도 이슬람교처럼 한 손에 칼과 다른 손에는 코란을 쥐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디까지나 선한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며, 불신자(세상)에 관하여는 창세기 3장 문제(흔히들 말하는 "타락"이라는 표현은 부족)를 해결하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땅끝까지 순교를 한다 할지라도 전파하는 것이다.
더욱이 기가 막히는 것은 회교도들의 인간론이다. 이들은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전 인류의 타락에까지 미친 것이 아니라 한다. 모든 인간은 죄없이 태어나는데 마치 하나님 앞에 깨끗한 백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의 근본문제(불신앙, 하나님 떠남, 죄, 저주, 고통, 흑암의 세력)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또한 이들에겐 올바른 해결책,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회교도들은 오직 샤리아(율법) 중 가장 중요한 다섯 기둥(the Five Pillars)을 지키는 것 뿐이다. 구원은 어디까지나 이들의 선행과 하나님(알라)의 자비에 달렸다. 구원의 확신이란 용어는 이들에게 적용이 되지 않는다.
알라 신은 사람의 죄를 기꺼이 용서하지만 단순히 용서를 선언하심으로써 용서하신다. 어떤 희생이나 속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용서는 단순히 알라의 자비와 용서 선언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개중에 어떤 회교도들은 그들을 돕는 선지자의 중보를 의지할 수 있다고 하며 또 이들은 보편주의자여서 하나님의 자비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유일성 문제와 결론은 다음 호에서 다루고자 한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흑암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길 되심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다. 거짓의 원조 사탄의 교활함과 악랄함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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