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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614 추천 수 0 2010.07.18 07: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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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0-12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 5:10-12)

 

<고난에 좌절하지 말라 >

 어느 날, 26세의 한 여인이 사고로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 깊은 좌절감이 밀려왔다. 신문 기자가 되려는 찬란한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일어섰다. 그리고 펜을 잡아 자신의 꿈과 사랑을 투영시켜 10년 만에 첫 소설을 완성했다. 그 원고를 들고 수많은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3년 동안 모든 출판사가 원고도 제대로 읽지 않고 출판을 거절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출판사 편집장이 기차를 타러 어느 역에 온다는 정보를 얻고 원고를 들고 가서 그에게 강제로 원고를 넘겨주며 말했다. “편집장님! 제발 이 원고를 한 번만 읽어주세요.” 편집장은 원고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첫째 역에 도착했을 때 전보가 왔다. “편집장님! 그 원고를 꼭 한 번만 읽어주세요,”

 그 다음 역과 그 다음다음 역에서도 똑같은 전보가 왔다. 편집장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그렇게 간청할까 싶어서 원고를 훑어보았다. 그때부터 목적지에 내리는 것도 잊을 정도로 소설에 푹 빠졌다. 그는 당장 그 소설을 출간했고 그 소설은 출간 당일에만 무려 5만 부가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소설이 20세기 최대의 명작으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성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성공의 배후에는 대개 많은 고난과 핍박과 좌절과 아픔과 인내의 시간들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꿈과 비전을 준비해 가라. 그렇게 자기를 준비시키면 언젠가는 반드시 수직상승의 기회가 온다. 결국 고난만큼 위대한 책은 없다. 신앙생황에서도 때때로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이뤄진다.

 어느 날, 프랑스의 젊은 천재 과학자 파스칼이 놀라는 말에서 떨어졌다. 그때 수개월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고백했다. “하나님!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건강을 세상을 위해 다 썼습니다. 그런 저를 일깨워 주시려고 이런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최대의 신앙 명상록인 ‘팡세’를 남겼다. 성도의 고난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영안을 열어주시고, 깊이 만나주시고, 인물을 만들어주신다.

< 천국은 누구의 것인가? >

 본문에는 산상팔복의 마지막 8번째 복에 관한 말씀이 있다. 산상팔복 말씀에서 두 번 반복된 말씀이 3절에 나오는 첫째 복인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씀이고, 10절에 나오는 8번째 복인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말씀이 반복된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또한 ‘천국 소유의 복’이 산상팔복의 처음과 마지막에 나온 것도 그 복이 복의 알파와 오메가와 같은 최상의 복이란 뜻이다. 누가 천국을 소유하는 최대의 축복을 얻는가?

1. 심령이 가난한 자

 주님은 가장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한다.”고 했다(3절). 심령이 가난한 자란 “주님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다.”는 고백으로 사는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가난하고 겸손한 심령에게 주어진다. 왜 마귀가 천국에서 쫓겨났는가? 교만해져서 하나님 자리를 찬탈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교만은 천국 삶을 빼앗는 제일 요소이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을 잃지 말라.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도 없고, 인간관계도 깨지고, 결국 다 잃는다. 또한 예배의 감격도 잃는다. 심령이 가난하면 월요일부터 주일예배가 그리워지고 예배 시작 전부터 자리에 앉아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며, 소화하기 힘든 말씀에도 잘 시험에 들지 않고 기쁘게 말씀을 받으면서 자신을 고쳐간다. 결국 성도에게 제일 중요한 기도제목은 이런 기도제목이다. “하나님! 가난한 심령을 주소서!”

 배움이 짧아도 부족함을 알면 지혜가 생기지만 많이 배웠어도 부족함을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대의 배움은 고난의 경험이다. 겸손을 가르쳐준 ‘고난대학’은 사실상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윤택하게 하는 3가지 ‘기역(ㄱ)', 즉 ’감동, 감사, 겸손‘을 삶에서 잃어버리지 말라. 지위가 높고 물질이 많아도 겸손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에 더욱 큰 감동을 주고 본인 자신도 마음의 천국과 실제 천국을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2.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

 산상팔복의 다른 7가지 복에 대한 말씀은 한 구절만 있다. 그러나 8번째 마지막 복인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은 본문 10-12절의 3구절이나 된다. 그처럼 예수님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축복’을 유난히 강조하셨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핍박을 당연하게 생각하라

 불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고 하면 자연히 핍박이 있다. 그러므로 핍박 받을 때 상처받지 말고, 또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핍박을 당연하게 생각하라.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면 별의별 핍박이 다 있다. 물론 지혜롭지 못해서 당하는 핍박은 없어야 하기에 뱀 같은 지혜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까닭 없이 핍박을 당할 때도 있고, 때로는 신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부딪칠 것은 부딪쳐야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내일의 축복을 위해 핍박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핍박을 받았다. 그처럼 경건하게 살려면 핍박을 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핍박은 진실한 신앙의 증거이다. 만약 핍박과 시험이 없다면 신앙생활이 얼마나 쉽겠는가? 그러나 무엇이든지 쉬운 길에는 진국 축복도 없다. 그러므로 좁은 문을 선택하기를 힘쓰라. 그때 축복의 지경도 넓혀지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2) 핍박을 넉넉하게 생각하라

 본문 12절에서 주님이 “핍박이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신 것은 핍박은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핍박과 고난이 오면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 복 받았다!”고 생각하라. 핍박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사탄은 ‘결과적인 복’은 감추고 ‘핍박과정’만 부각시켜 그 핍박으로 다 망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해서 의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 사탄의 작전에 넘어가지 말라.

 본문 말씀에서도 사단은 ‘핍박’이란 말을 주목하게 하지만 진짜 주목할 말은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라는 말이다. 결국 의로움 속에 핍박을 넣은 분은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왜 의로움 속에 핍박을 넣는가? 성도의 유익과 축복을 위해서이다. 실제로 핍박당할 때는 힘들지만 핍박 후에는 얼마나 큰 유익과 영광이 있는가? 그러나 핍박이 두려워서 의를 버리면 잠시의 편안은 얻어도 영원한 천국을 잃고 큰 수치를 당한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배반해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들은 해방 후에 얼마나 수치를 느끼는가? 반면에 애국지사들은 해방 후에 얼마나 영광을 받는가? 그처럼 천국에 가면 극적인 지위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 눈앞의 이익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필요하다면 기쁘게 핍박과 손해도 감수하라.

3) 자신의 정욕을 이겨내라

 믿음생활을 하다 보면 각종 외부적인 핍박이 많지만 그런 외부적 핍박보다 더 겁나는 것은 사실상 자기 육신이 자신을 핍박하는 내부적인 핍박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면 육신이 유혹한다. “야, 피곤하다. 오늘 새벽기도 관둬라! 이번 주에는 예배를 쉬자!” 그 육신의 유혹을 통한 핍박을 잘 이겨내라.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서 환경을 이기는 역사가 나타날 수 없다.

 어느 날,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길을 가다가 생각해보니까 지난 며칠 동안 어떤 핍박도 없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길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지난 며칠 동안 핍박이 있었는데 혹시 제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요?” 그처럼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던 그를 보고 지나가던 행인이 소리쳤다. “이놈아! 시끄럽다!” 그 욕을 듣고 그는 비로소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핍박당하는 축복에서 소외시키지 마소서!”

 사람에게 가장 큰 대적은 자신의 본능과 정욕이다. 그래서 무디는 말했다. “내게 가장 큰 골칫거리가 있다. 그는 바로 무디이다.” 진짜 적은 자신 안에 있다. 자신 안의 육체의 정욕을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라진다. 자신을 최대한 잘 극복하라. 그래서 같은 잘못을 해도 믿는 사람을 몇 배 더 욕하는 세상에서 “역시 믿는 사람은 달라!”라는 말이 나오게 하라.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은 나 때문에 누군가 교회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다.

4) 천국 소망을 가지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존재이유가 예수님이었고, 생존목적도 예수님이었고, 생활내용이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열병을 앓듯 예수님을 향해 사랑과 열정을 불태우다 기쁘게 순교의 잔을 마셨다. 그처럼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고난 받으면 천국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신앙생활의 최종목적은 천국이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 주님은 핍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는가?(12절) 핍박받을수록 최고의 천국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을 위해 핍박 받는 것은 최고로 복된 길이다. 핍박은 축복으로 가는 과정이지 최종 결과가 아니다. 결국 나중에 엄청난 축복과 보상이 기다린다. 그처럼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추구하라.

 한 목회자가 시골 교회에서 전도사로 목회할 때였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땔 나무도 없고 쌀도 다 떨어져서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함께 그날 저녁을 금식하기로 작정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기는 참을 수 있는데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때 한 집사가 밤늦게 나무 한 단과 쌀 한 말을 놓고 갔다. 그것으로 밤늦게 상을 차린 뒤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렇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예수님 때문에 혹은 사명 때문에 굶어 본 사람이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다. 그 목회자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시골 교회 시절의 고난 받은 얘기를 하면서 얼마나 신나겠는가? 주님을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 천국도 그의 것이고 천국의 상급도 그의 것이 된다. 왜 하나님은 의인에게 어려움을 겪게 하는가? 그의 의를 더 값지게 하고, 마지막 때에 최고의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에스더서를 보면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암살음모를 듣고 에스더를 통해 그 사실을 알려 왕의 생명을 구해주었다(에 2:21-23). 그러나 왕은 그에게 상주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목숨을 걸고 왕을 구했는데 왕이 몰라주니 얼마나 섭섭했겠는가?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얼마나 신기하게 역사하는가?

 나중에 그가 정계의 실력자 하만에게 밉보여서 날이 밝으면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날 밤에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아서 궁중 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왕의 목숨을 구했는데도 상을 주지 않은 기록을 보고 상을 주려고 마음먹었다. 날이 밝아 무슨 상을 줄까 고민하는 왕에게 하만이 그를 죽이는 일로 방문했다.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에 6:6).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자기인줄 착각하고 말했다. “그러면 귀인이 수레를 잡고 상 내리려는 사람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그 수레에 태워 하루 종일 ‘우리 임금님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하신다.’고 하면서 온 성을 돌게 하십시오.” 왕은 그 아이디어에 탄복하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네가 왔으니 잘됐다. 네가 모르드개를 수레에 태워서 성을 돌라.”

 얼마나 극적인 반전인가? 왜 의로운 일을 해도 즉시 상이 없는가? 나중에 더 좋은 상을 주시고, 또한 자녀에게 축복의 유산이 물려지도록 축복을 잠시 미뤄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악인이 형통한 것 같지만 결국 의인이 축복받고 승리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할 때 현재와 미래의 참 행복을 얻을 것이다.

<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

 살다 보면 고난을 당할 때도 있지만 사실 그 고난도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계신다. 성도의 고난에는 반드시 선한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길이 막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누가 내 길을 막아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길이 막히고 방해받고 간섭받는 것을 창조적인 축복의 기회로 활용하라. 믿음 안에서 실망은 창조의 기회이고, 지체는 진보의 기회이다.

 어느 날, 한 처녀의 차바퀴가 고속도로에서 펑크 났다. 급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당해 지체하게 되자 너무 속상했다. 그런데 타이어를 교체할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섰다. 한 청년이 그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교체해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둘은 사귀게 되었고 마침내 결혼했다. 그 후 그녀는 사려 깊은 남편을 볼 때마다 자동차 펑크가 난 그때의 순간을 항상 감사했다. 그처럼 지체는 더 좋은 일을 위한 지원이 될 때가 많다.

 이제 지체되는 일이 생겨도 너무 낙심하지 말라. 그때 감사하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로운 멋진 일을 기대하면서 마음과 생각에서도 승리하고 말에서도 승리하라. 주님의 지체는 주님의 지원으로 귀결될 때가 많다. 왜 하나님이 어떤 길을 막는가? 그 길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축복보다 너무 작은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어떤 길을 막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실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 남매는 그 소식을 급히 예수님께 알렸다. 예수님은 그들 3남매를 지극히 사랑했다. 그래서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으면 예수님이 급히 달려오실 줄 알았다. 그런데 주님은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오시지 않다가 결국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주님이 오셨다. 마리아 남매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다. “이제 늦었다! 이제 끝났다!”

 정말 끝났는가? 아니다. 주님은 늦게 오셨지만 결국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다. 왜 그때 주님이 늦게 왔는가? 주님은 ‘나사로의 치유’란 작은 축복보다 ‘나사로의 부활’이란 더욱 크고 위대한 축복을 계획하셨다. 그처럼 어떤 일에 어려움이 생기고 꿈과 비전의 성취가 지체될 때도 여전히 하나님은 그 상황을 통제하시며 더욱 크고 위대한 다른 축복을 준비하고 계심을 잊지 말라.

 기다림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너무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지연은 하나님의 지원이다. 하나님은 나사로의 경우처럼 ‘치유의 은혜’보다 더욱 큰 ‘부활의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잠시 눈앞의 축복을 유보해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한 기도제목이 응답되지 않고 꿈과 비전의 성취가 늦어져도 낙심하지 말라. 그 지체되는 시간에 더욱 멋지고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준비되고 있음을 믿으라.

 요한복음 11장 6절 말씀을 보면 나사로의 병든 소식이 들렸을 때 예수님은 그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다. 어떤 성경 번역본에서는 그 구절에서 “유하셨다.”는 말을 “주저앉으셨다.”라고 표현했다. 마리아 자매의 간절한 염원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신 것이다. 그 장면을 통해 주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 명쾌하게 알 수 있다.

 성도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즉시 듣는다. 그러나 응답은 즉시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그냥 두고 보실 때가 많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욱 큰 축복을 주시려고 잠시 인내의 시간을 두신 것이다. 사람들은 ‘치유의 은혜 정도의 축복’을 원하지만 주님은 ‘부활의 은혜란 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은 ‘생존(surviving)의 은혜 정도의 축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번성(thriving)의 은혜란 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길이 막히는 것은 새 길을 열어주려는 하나님의 뜻이고, 절망은 새로운 소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어떤 일이 후퇴하는 것 같지만 그때도 믿음 안에서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하나님은 가장 멋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과거의 절망적인 상황을 당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그 순간이 필요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멋진 지휘 솜씨에 감탄하며 감사할 것이다.

 고통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후퇴는 새로운 전진의 계기가 된다. 하나님 안에서 지체는 하나님의 지원이다. ‘낙심(disappointment)’은 ‘그분의 약속(His appointment)’이 성취되는 과정이다. 겉으로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큰 실수를 했어도 그것조차 하나님의 지휘의 손길 아래서 이뤄진 것입니다. 성도의 ‘걸음(step)’과 ‘멈춤(stop)’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낙심과 두려움을 버리고 그저 믿기만 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가장 멋진 날이 곧 펼쳐질 것이다.

 이제까지 산상팔복 말씀을 통해 참된 복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람들의 첫째 관심사는 ‘복 받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설교의 처음을 ‘복’으로부터 시작하며 참된 성경적 축복을 가르쳐주셨다. 이제 성경적인 축복의 개념을 확실히 깨닫고 진정으로 복된 삶을 추구하라. 그러면 핍박과 고난도 있겠지만 그의 앞날에는 찬란한 천국 상급이 기다릴 것이다. 인생의 최종 목적은 천국상급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이 땅의 어떤 축복도 의미가 없다.

 어느 날, 하루살이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한 하루살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나 허무한가? 하루만 지나면 떨어질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영원의 시간에서 사람은 하루살이와 같다. 그러므로 ‘세상지위’보다 ‘천국상급’을 꿈꾸라. 인생은 천국상급을 준비하라고 하나님이 단 한번 주신 일생이다. 그 일생을 낭비하지 말고 잘 활용해서 ‘영혼 구원’과 ‘천국 확장’을 위해 사용하라. 필요하다면 핍박도 감수하라. 그래서 마침내 천국의 최대 주인공이 되어서 영원히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라.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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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0 이사야 훗날의 약속 사54;2∼8  최종인 목사  2010-07-13 2084
3749 누가복음 휘장을 찢어주신 주님 눅23:44-46  김삼환 목사  2010-07-13 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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