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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2:1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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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라는 우리의 신앙 고백은 역설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리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 주어라. 컽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주어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 그리고 본문 말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는 말씀들은 모두 역설입니다.
오늘은 <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 >는 이 역설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2. 예수와 무리의 同床異夢
유월절에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과 예루살렘 성내의 모든 무리가 <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 >라고 기뻐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환호하며 예수를 크게 영접합니다. 그런데 성경 가운데 이 장면만큼 역설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왕의 개념과 모든 무리가 생각하는 왕의 개념이 철저히 상충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무리는 완전히 同床異夢 이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를 지금 자기들을 괴롭히고 있는 정복자 로마를 물리침으로 이스라엘에게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성함을 회복시켜주실 제2의 다윗 왕으로 생각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인간의 근본 문제 즉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내적 구원과 평화의 문제, 사단의 세력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백성들 그리고 그 제자들까지도 예수가 이 땅의 왕이 되어주기를 원했고, 예수는 저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저 위에 것,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였습니다. 이 상반된 두 힘은 조만간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예수께서는 분명히 꿰뚫어 보시고 자신의 죽음을 예고 하셨습니다.
3. 삶과 죽음의 역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죽기를 싫어합니다. 본능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하여 애씁니다. 예수께서도 죽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본문 27을 보면 예수께서 얼마나 죽음의 고통을 면하고싶어 하셨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깨달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밀알 한 알의 죽음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가르쳐 주시고 또 스스로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죽음이지만 그 죽음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4. 생명을 잉태한 죽음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지극히 단순한 이 말씀 속에 담긴 심오한 역설적 의미를 느껴보십시오! 밀알 한 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가 결국엔 말라죽습니다. 그러나 그 밀알 한 알이 죽으면 수백 배의 밀알이 다시 생겨납니다. 예수께서는 밀알의 비유를 주시고 덧붙이시기를 이처럼 사람도 살고자 하면 오히려 죽고, 죽고자 하면 오히려 산다고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역설!
이치가 그렇다고 생명을 가진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는가? 어림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진리를 깨달았으나 정작 그 일을 당하려니 불안하고 두렵고 고통스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십니다. 오! 아버지여, 나로 하여금 이 생명을 잉태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시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 무슨 뜻입니까? 이제까지 살아 온 예수의 삶이 옳았고, 이제 곧 닥쳐올 예수의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그렇게 생명을 잉태할 죽음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5.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예수께서는 26절에서 <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는 이 진리, < 밀알 한 알의 죽음 >을 따르는 자라야 예수의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예수께서는 그냥 밀알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라고 하십니다. 잃은 양 한 마리, 지극히 작은 자 하나, 밀알 한 알 이렇게 하나를 강조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썩어져 죽어야 산다고 하십니다.
둘째. 작은 것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봉사, 작은 친절, 작은 생각, 작은 시작, 작은 칭찬, 작은 희생들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Small is beautiful!입니다.
細流成海(세류성해) 즉 작은 물줄기가 큰 바다를 이룹니다. 천연기념물 167호 원주 반계리의 800년 된 거대한 은행나무도 한 알의 씨알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셋째. 나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나의 원망, 나의 고집, 나의 죄, 나의 욕심, 나의 교만, 나의 사치, 나의 무관심, 나의 자랑을 죽이는 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교회를 섬기고, 가정을 섬기고, 직장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일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삶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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