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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하1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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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요즈음 축구 열기가 65억 지구촌을 달구고 있습니다. 내일 우리 나라와 프랑스가 경기를 합니다. 어느 나라가 이길 것 같습니까? 직장에서 밥 사내기들 많이 하지요. 모두가 자기 나라가 승리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특히 역전승을 하면은 환호를 합니다. 호주가 일본에게 지고 있다가 막판에 3:1로 역전승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도 토고와의 1차 전에서 0:1로 지다가 경기를 역전시켜 2:1로 승리할 때 모든 사람들이 짜릿한 기쁨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역전승의 주인공인 이천수와 안정환 선수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고백했습니다. 멋진 역전 골의 주인공이 된 안정환 선수는“출국 전부터 계속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이번 골은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감격해 했습니다. 그는 부진으로 월드컵 선수에 선발될 것인가도 논란이 될 정도였습니다. 승부의 세계는 냉엄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정한 선수가 역전 골 한방으로 모든 시름을 날려 버렸습니다. 이 역전골에 가장 감격했던 사람은 아내된 이혜원씨 같았습니다. 그분의 글을 보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안정환의 시련과 역전 결승골에 대해 “이 모든 고통을 잊게 해준 골은 하나님이 주신 영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때 넣어준 골. 모든 게 웃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많은 고통과 시련이 이 골을 주신거구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린 365일 하루도 빠짐 없이 둘이 함께 꼭 기도를 드린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땐 전화로도. 하나님이 우리의 작지만 이런 정성을 받아주시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살아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대표선수 중 12명의 믿음의 용사가 뛰고 있는 이번 경기에서 완벽한 수비와 공격력을 보여준 이영표, 송종국, 이천수, 이호 선수는 게임이 종료된 후 구장에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줘 역전의 드라마를 보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 뜨겁게 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러 오신 우리 성도님 중에 1:0으로 지고 패배감에 빠져 있으신 분 있습니까? 삶의 현장에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늘 한 숨만 쉬고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직업 전선에서, 경쟁 사회에서 2:0, 3:0, 4:0으로 지고 침체에 빠져 패배감에 젖어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데 언제까지 수렁에 머물러있겠습니까? 언제까지 바닥에서 처절한 한 숨만 쉬겠습니까? 언제까지 실패의 쓰레기장에 머물겠습니까? 일어서야 합니다. 역전승을 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목동으로 살다가 적장 골리앗을 이기고 단숨에 모든 백성의 시선을 끄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승승장구하여 왕이 되었고 명예와 권력 부를 한 손에 쥐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순간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생의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5:0으로 패한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살기 위해서 모든 것 내버려두고 왕궁에서 맨발로 도망 나왔습니다. 인생 말년에 명예도 돈도 권력도 다 잃어버리고 생명까지 위태로운 인생 최악의 상태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추락한 인생에서 다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밀리고 밀리는 인생을 반전시킵니다. 다 끝나 버린 것 같은 패배의 현장에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승리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는 곤두박질 치는 인생을 역전시켜 일어섰습니까?
1. 우리가 인생을 역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패배를 심기 일전의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다윗은 승승장구하다가 아들의 반역으로 졸지에 쓰러졌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쫓기는 몸입니다. 실패하고 파산되고 밑바닥에 떨어질 때에는 항상 최악의 경우입니다. 대부분 모든 역량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다윗은 왕권을 잃었습니다. 말 한마디면 산천초목이 떨었던 왕권을 하루아침에 잃어 버렸습니다. 권위를 잃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조롱합니다.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지금 청년의 때가 아닙니다. 중년을 넘어 노년의 때입니다. 아들에게 쫓겨난 왕을 얼마나 백성들이 우습게 보았겠습니까? 돈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먹어야 할 형편입니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다 잃었습니다. 그래서 맨발로 도망 나온 그는 가는 곳마다 살기 위해 급했고 쫓겨다니며 먹고 살기에 급했습니다. 바로 앞의 구절인 17장 27절 이하를 보십시오. 바실래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먹여 줍니다. 이 때 이들의 상태는 시장하고 곤하고 목말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8장 1절 이하를 보면 다윗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백성을 모아 전쟁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도망 다니면서 먹고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왕인 자신이 쫓기며 거지처럼 살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파산된 인생을 다시 세우기 위해 역전의 드라마를 구상합니다. 잃었던 것을 다시 찾기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 첫 번째 한 것이 무엇입니까? 1절을 읽어 보십시오. 백성을 계수합니다. 군사 조직을 만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싸울터이니 나가서 싸우자는 것입니다. 이 정신이 중요합니다. 패배의 늪에서 일어 날려면 어떤 동기에 의하여 지금까지 품었던 생각과 마음의 자세를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실패를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패배를 독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보약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사실 다윗이 잘 나가다 이렇게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패배는 저절로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면 우연으로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면 관대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실패의 원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실패가 있었는지 성경을 찾아보십시오. 다윗이 승승장구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를 겁탈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그 신하를 전쟁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성경 삼하 12:10을 찾아 보십시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삼하 12:10-12)”
이일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그 일을 하였습니다.
삼하 16장 22절을 보십시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 (삼하 16:22)”
성경에 보면 다윗 왕에게는 8인의 처와 열 사람이 넘는 첩이 있었습니다(삼하 3:2-5) 그 아들 수는 성경에 기록된 것만도 17인에 달합니다. 압살롬이 자신의 동생을 겁탈했다는 명분으로 장자 암놈을 살해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닙니다. 장자인 그를 제거하여 왕위를 노렸고 결국 반역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이 어떻게 회개하고 어떻게 심기일전하였는지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다시 일어나 승리를 향해 가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이 반역할 때 지은 시가 시편에 몇 편 실려 있습니다(3. 28. 55 66). 우리는 그 때 어떻게 다윗이 심기 일전하였는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편 62편을 보십시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소망은 오직 주님께만 있다고 고백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심기 일전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믿음을 정비하고 체력을 정비하고 정신 상태를 정비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물리학에 앤트로피 법칙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가만히 놓아두면 무질서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가만히 놓아두면 파괴됩니다. 마음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내부에는 우리를 파괴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힘, 외부적인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실패한 제자들이 인생을 역전 시키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다락방에서 기도합니다. 심령을 강화하기 위해 심기 일전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니까 하루에 3천명을 회개하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저주하고 도망갔던 자들의 인생이 바뀝니다.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재정비하여야 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역전승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위기와 기회에 둔감합니다. 과거 실패의 교훈을 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알지 못해 위기에 정확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는 사람들은 의지가 약하고 부정적이고, 약점에 도취되며, 자기 개발에 소홀히 합니다. 무엇보다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아름다운 인생 역전 드라마를 쓰는 사람들은 수많은 고난의 강과 역경의 늪을 건널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기 일전하여 일어서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적은 힘으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지렛대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강점을 개발하고 승리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쟁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전을 위해서 실패의 현장에서 자신만의 차별적 시각과 전략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인생을 역전시키려면 남은 것을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드는 것입니다. 잃은 것이 아니라 남은 것을 보고 그것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브루오션, 틈새시장, 강점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백성을 계수합니다. 왜 계수했겠습니까? 군사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 이제 다 끝나 버린 환경에서도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윗의 눈에는 먹여살려야 할 짐으로 보였는데(17장) 이제는 그들이 역전의 인생을 위한 승리의 씨앗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와 함께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윗과 함께 한 백성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15장 18절을 보십시오. 6백명입니다. 이들은 비참하게 쫓기면서도 다윗과 함께하였습니다. 15장 30절을 보십시오. 얼굴을 들지 못하고 맨발로 울면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보십시오.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다윗이 전쟁터에 나간다고 했습니다. 이 때 이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자기 목숨보다 왕의 목숨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다윗은 듣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1당 천 1당 만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목숨 내 놓고 하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실패할 때 모두 나를 떠나 버리고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말하며 자포자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 역전의 인생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붙여 주십니다. 다윗에게는 누가 있었습니까?
유능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요압과 요압의 동생 아비새 그리고 블레셋 사람 잇대를 장군으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요압은 군사 전략에 뛰어난 장군입니다.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충성스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비새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압의 동생으로 성격이 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였습니다. 아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도 세바가 반란을 일으킬 때도 다윗을 떠나지 않습니다(삼하20:1-6,10). 다윗이 노년에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블레셋의 거인 장군인 이스비브놉이 삼백 세겔이나 되는 놋 창과 새 칼을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 하자, 아비새가 용감히 나서 그 거인 장수를 물리쳐 다윗의 생명을 살렸습니다(삼하21:15-16)
잇대는 누구입니까? 가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드는 블레셋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블레셋 출신이라는 말입니다. 출신 성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성경 삼하 15장 19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자신의 고향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삼하 15:19)” 그 때 그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 사생하고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삼하 15:21)” 이들을 한결같이 충성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충성심이 있는 자들이 결국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어도 충성심 한 가지로도 인생은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가지고 전투 조직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강인한 군대 조직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남아 있는 것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만들면 역전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다고 사람이 없다고 전략이 없다고 낙심하며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이 열리면 실패의 늪에서 일어서도록 주어진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말을 못한다며 주저 앉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이 있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제 홀로 남았다고 포기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7천명을 남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
바울은 노년이 되어 감옥에 갇히니까 다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 다 끝난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남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피해 도망다닐 때 기록한 시편을 보십시오. 시편 3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 우리의 영광, 우리의 머리가 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천만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실패하여 나락에 빠지면 정면승부는 쉽지 않습니다. 자원이나 수로 승부할 수 없습니다. 이때는 적은 힘으로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렛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주신 남아 있는 것입니다. 브루오션, 틈새 전략입니다. 강점으로 일하는 강점 전략입니다. 건강 음료 시장을 오랫동안 박카스가 차지하였습니다. 소비자의 인지도와 마케팅 비용의 차이로 군소 음료는 박카스와 경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광동제약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지렛대를 발견하였습니다. 시대의 트렌드 웰빙입니다. 비타민 지렛대를 들고 뛰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남아 있는 지렛대만 잘 사용하면 거대한 물건도 옮길 수 있습니다. 오병 이어의 기적으로 5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 마른 막대기로 홍해을 가를 수 있고 물매와 돌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될 때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역전시킬 수 있는 지렛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직화시키면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주어진 과업을 벽으로 생각하지 말고 문으로 생각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다윗은 심기일전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조직을 준비한 후 어떻게 합니까? 역전의 드라마가 어떻게 쓰여졌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대를 지어 출전을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부탁을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이에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술적으로 생각하면 무모한 전쟁입니다. 적어도 10배가 넘는 군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입니다. 작은 인원일 때는 방어가 최상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공격합니다. 그들은 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싸워주고 자기들은 그 댓가만 누리겠다고 뒤로 뺀 사람들이 아닙니다. 왕은 후방에 있고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요새화 된 곳을 선제 공격합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이들이 적을 2만명이나 죽이는 전과를 올립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리한 조건이 오히려 그들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늪이나 기시덤불, 벼랑이 방어할 때는 중요한 전략적 도구가 되었지만 쫓겨갈 때는 올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것들 때문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압살롬 역시 그의 상수리 나무에 걸려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은 크게 승리하였고 다윗의 인생은 역전되었습니다.
실패한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두꺼운 벽이 있다하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두드려야 합니다. 머리로만 일하는 사람 사탄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말로만 일하는 사람 사탄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순종으로 일하는 사람, 행동으로 일하는 사람 사탄이 두려워합니다. 영적 전투에서 이기려면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군함이 되어야 합니다. 유람선은 선장과 선원 몇 명만 깨어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구경하며 놀면 됩니다. 목회자만 깨어 있고 모두 팔짱끼고 구경만 하는 교회는 유람선과 같습니다. 그러나 군함은 각자 다 깨어서 할 일을 하여야 합니다.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듣고 믿음 가지면 그 믿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바라보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됩니다. 행함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믿음의 능력은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홍해는 마른 막대기 같지만 믿음을 가지고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 때 갈라졌습니다. 요단강은 넘치고 있었지만 제사장들이 법궤를 매고 들어 갈 때 갈라졌고 여리고 성은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7일 동안 계속해서 돌 때 무너졌습니다. 내가 뛰어야 합니다. 내가 힘겹고 어렵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아야 합니다. 역전은 움직이는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축구도 보십시오. 결국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역전극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역전의 인생으로 일어선 사람들을 보십시오.
문둥병 환자에게 바로 났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문둥병 환자가 제사장에게 가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들을 갔습니다. 그 때 깨끗이 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 환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일어납니까? 일어나지 못해서 일으켜 달라고 예수님께 왔는데 예수님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없는 사람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심하지 않고 말씀붙들고 일어나는 것을 시도했고 믿음대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는 인생 역전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를 하였습니다. 모든 경쟁에서 지고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마음의 경쟁, 물질의 경쟁, 건강의 경쟁에서 실패자였습니다.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이 때 그를 보시고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고 물어 보십니다. 그 때 그 병자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였습니까?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7)”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 해보았는데 38년 동안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그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였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생각과 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믿고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인생 역전의 드라마는 펼쳐집니다.
아무리 적은 힘으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지렛대를 찾았다해도 누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저앉기 전에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절망 속에도 캘 수 있는 희망이 보이면 희망을 찾아 한 걸음 발길을 옮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 안된다하여도 실패한 과거의 늪에서 빠져나오면 인생의 밑그름은 다시 그리고 일어나야 합니다.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시도하면 미래는 역경을 디딤대로 희망의 날개를 폅니다.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아사 G 캔들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캔들러는 의지력이 나약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금주 선언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어느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캔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답니다. 아내는 바로 그 시간에 남편의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캔들러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술을 먹는 대신 수입의 10%를 철저히 헌금하며 사업에 열중하는 열정의 사람이 되어 코카콜라를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답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늪으로부터 돌아서 역전하는 인생으로 새 출발하였습니다.
미키 마우스의 월트 디즈니는 1920년 실패와 좌절 가운데 방황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낙심하고 있느냐?” “출판사에 만화 원고를 들고 찾아가서 취직을 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가망이 없나 봅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교회 창고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격려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버려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허름한 창고에서 그 말씀 붙들고 꿈을 키웠습니다. 창고에는 쥐가 많았습니다. 그는 쥐를 아름다운 쥐로 새롭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림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미키 마우스가 된 것입니다. 역사상에 이름을 남긴 아브라함, 요셉, 모세, 링컨, 헬렌켈러. 칼빈, 루터, 처칠, 워싱턴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고, 초라한 목동으로, 살인자로, 우상 장사의 아들로, 불구자로, 초등학교도 못 갈 정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조롱받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하는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머리로만 믿는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있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전의 인생을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긴 터널에 있습니까? 터널 끝에 오면 하늘이 보이는 것입니다. 고통을 행복으로 뒤집어 버리고 싶지 않습니까? 실패에서 승리하는 역전의 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죄의 종으로 살던 사람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졸지에 왕이된 역전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처럼 도망자 인생에서 다시 왕으로 회복된 것처럼 왕답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이미 작은 힘으로 큰 것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믿음과 기도 달란트의 지렛대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승리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패배를, 실패를, 고난을, 아픔을, 눈물을 인생역전을 위한 심기 일전의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독약이 아니라 보약입니다. 하나님은 문제 속에 도약을 위한 해답을 숨겨 놓고 있습니다. 잃어 버린 것보며 낙심하고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을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두렵고 어려운 일이 앞에 있다하여도 주어진 과업을 벽으로 생각하지 말고 문으로 생각하고 한 걸을 한 걸음 믿음을 가지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일단 하기로 했으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문은 열리고 벽은 무너지는 역전의 인생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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