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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7: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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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6.6.25/열린교회
어제 월드컵 16강 진출을 놓고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2대 0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도 심판이 잘못했다고 억울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제 저녁밥을 먹으면서 억울해 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억울하게 생각할 것 없다. 진 것을 진 것이고 승부의 세계는 냉엄한 것이다. 인간은 타락하고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사회나 불공정한 것이 있으니 그 불공정까지 뛰어 넘을 실력이 있으면 어디에서나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며 “불평하거나 억울해 하지 말고 불공정을 뛰어 넘으려면 실력을 갖추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길만한 실력, 충분히 이길만한 실력만 있었다면 비록 심판이 불공정하다해도 스위스를 이기고 16강에 진출했을 것입니다. 축구도 전쟁과 같습니다. 승자는 기쁨과 환희를 만끽하지만 패자는 울어야 합니다. 전쟁에서 2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축구 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전전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를 위하여서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늘 패배할 수밖에 없고 실패한 후 억울함을 호소해 보았자 승자는 패자의 넋두리로 생각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인생살이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전쟁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주어진 힘을 합해 집중된 힘으로 최선을 다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8-10,12)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40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부터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홍해가 다가오고 매마른 수르 광야가 다가왔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며 신 광야 르비딤에 도착하였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 않습니까? 결혼했다고 행복이 자동적으로 찾아옵니까? 회사에 합격하였다고 그 때부터 고난이 없습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그 구원의 감격과 해방의 기쁨이 계속 지속됩니까? 때로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홍해가 다가오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마른 광야가 다가옵니다. 기대했던 단물은 나오지 않고 때로는 쓴물이 나오고 마실 물마져 없는 곳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를 가지고 르비딤에 도착했는데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녀 그리고 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만드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호렙산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이제 목마름이 해소되어 불평이 없어졌을 때였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고 돈도 벌어 경제적 목마름이 해소되고, 영적 기갈이 해소되어 신앙의 기쁨도 찾고 질병에서 고침받아 육적 기갈도 해소된 때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개척하여 안정되게 성장하여 신앙생활을 재미를 누릴 만한 때였습니다.
이 때 갑자기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유목민인 아말렉 족속이 비겁하게 그들의 후미를 친 것입니다. 에서의 후예들입니다(창36:12). 같은 민족입니다. 자신들의 목초지를 지키려면 선제 공격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기간 여행에 지쳐 낙오된 이스라엘 백성의 후미를 공격하였습니다(신25:17,18).
과거 6.25 때 같은 민족 북한이 우리나라를 쳐들어 온 것과 같습니다. 오늘과 같이 주일날 새벽 4시에 갑자기 북한이 쳐들어 왔습니다. 1000만명이 넘는 실향민이 생겼습니다. 약 300만명의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약 20만 명이 T34라고 하는 소련제 탱크 150대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습니다. 당시 남한은 13개 부대 3만 8천명, 그것도 농번기여서 농촌 출신 장병들을 15일간 휴가를 보내어 약 2천 명 정도가 3.8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탱크는 하나도 없었으며 분열용 장갑차가 몇 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사흘만에 서울을 빼 앗겼습니다.
이스라엘은 혼비백산 되었을 것입니다. 비열하고 비겁한 공격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사탄이 사용하는 것은 들 그렇습니다. 신앙 대열에서 이탈자, 회의를 품은 자, 마음이 식은 자, 회색지대에 있는 자 다 공격의 대상입니다. 물질의 고통, 불치의 병, 인간적인 갈등 등을 이용합니다.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6.25때 우리가 당한 것처럼 순식간에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적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위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찾아 왔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 당하는 전쟁입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쟁입니다. 이들은 벽돌을 구우며 노예생활을 한 사람들이고 나일강의 농경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전사들이 아닙니다. 죽음의 공포로 원망하며 뿔뿔이 흩터질 만합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홍해 앞에서 원망하고 물 없다고 아우성 치고 쓴 물 나온다고 지도자를 죽이려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이 일어나니까 심각한 어려움을 당하자 똘똘 뭉쳤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하였습니다. 힘을 집중했습니다.
80세의 노장 모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9절에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라고 합니다. 적들과 싸울 군사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말렉과 싸우라고 합니다. 이 때 여호수아의 나이는 45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작전 지휘권을 갖는 전투 지휘관으로 임명합니다. 누가 전쟁터에 나가고 싶겠습니까? 다 가는 것도 아니고 뽑아서 나가는데 그런데 백성중에 원망하는 사람, 도망가는 사람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성경에 기록했을 것입니다. 총사령과 여호수아도 전혀 불평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모세를 원망할 수 있고 핑계 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지시에 아무런 이의를 달리 않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무엇을 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겠다고 합니다. “누구는 전진에 들어가 죽음을 무릎쓰고 싸우는데 후방으로 빠지겠다는 말인가?” 지도자를 비판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어떻게 합니까?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형 아론과 모세의 매형 훌을 보십시오. 무슨 일을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돌 가져다가 모세를 앉게 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는 일을 합니다.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형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누나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미리암과 모세의 관계를 보면 감정적으로 않좋을 만도 합니다. 손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그것을 작은 일로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합니다.
작은 힘이라고 힘을 합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순종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협력할 때 폭발적인 힘이 나옵니다.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아무리 공을 잘 차는 호나우드라고 해도 혼자 골을 넣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하여 골을 넣는 것입니다. 개인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조직력이 없으면 축구는 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개별적으로는 훌륭한 부품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로 잘 결합되지 않으면 힘이 센 고급 승용차나, 좋은 비행기, 최고의 성능의 배는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약점은 무엇입니까? 사촌 논사는 것 못보는 것입니다. 뭉치지를 못합니다. 국론이 끊임없이 분열됩니다. 국론 분열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너무 심각합니다. 힘을 합하여 대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돕지를 못합니다. 동역하는 손보다는 홀로 서는 손을 좋아합니다. 비판하고 손가락질하고 구경하고 방해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힘을 합하여야 합니다. 바울이 영적 전쟁에서 그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 줄 수 있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라는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손을 잡아주는 장로님과 집사님이 있어야 합니다. 선교사의 손을 굳게 잡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목자의 손과 구역장의 손을 잡아 주은 동역자의 손이 있을 때 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부흥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남편의 손이, 일하는 남편의 손을 기도로 붙잡아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 가정은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전쟁터입니다. 군인들이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이 아닙니다. 소리없는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살고, 지는 자는 망합니다. 입시전쟁, 출근전쟁, 정보전쟁, 살과의 전쟁, 스포츠 전쟁, 사탄 문화와의 전쟁, 술과의 전쟁, 담배와의 전쟁,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살벌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힘을 합하여 집중력을 가지고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직장에서 승진도 해야 합니다. 입시에서 합격도 해야 합니다. 사업에서 목표도 달성해야 합니다. 길을 가로막는 자들, 시기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상치도 못한 건강의 장애물, 가난, 억압, 환경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여기서 지면 종노릇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옵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승리하여 가정도 행복하고 교회도 부흥되며 나라와 민족에 복된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2. 우리는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11-13)
단결되어 집중된 힘은 약한 것 같지만 바위도 뚫을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힘이 있으면 인생의 갖가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보면 진정 승리의 비결이 그것보다 다른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기록케 하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말하고 싶어하십니다. 오합지졸에 불과한 이스라엘을 승리하게 한 요인이 무엇일까요? 11절을 읽어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사력, 그들의 지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비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전진에 들어가 병사들과 함께 사력을 다하여 싸웠는데 전쟁의 승패는 여호수아의 칼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세의 손끝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밀고 당기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쟁에서 뛰고 있는 사람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이기는 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론과 훌이 그 신비한 전투의 법칙을 보았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마법같은 이상한 승리의 법칙입니다. 모세의 나이 80입니다. 장정이라도 오랫동안 손을 들고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힘겨우면 손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때 여호수아 군대가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아론과 훌은 어떻게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바위를 가져다 모세를 앉게 하고 자신들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얼마 동안입니까? 해가 지도록입니다. 전쟁이 다 끝날 때까지입니다. 이 때 전쟁터에서는 어떤 결과가 벌어졌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전쟁 승리의 법칙입니다. 신비한 전쟁 승리의 전략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무기입니다. 손을 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을 의미합니다. 생명이 달려 있는,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는 절박한 순간에 모세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밖에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실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보다 될 수 없어 마지막으로 손들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항복하고 주님에게 나오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수단 방법을 다 해 보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노력해 보지만 결론은 무엇입니까? 나를 결국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방법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났기 위해 애를 써보았지만 결론은 다 허비하고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은 주님께 항복하고 손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애굽에서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그것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미 홍해에서, 마라에서, 신광야에서 다 체험한 사람입니다. 손들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승리의 방법인 것을 안 사람입니다.
회개할 때 재를 뒤집어 쓰는 것처럼 손을 든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대하6:13,14, 시28:2, 딤전2:8) 단순히 손을 들고 있기 보다는 모세가 산 위에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전쟁은 기도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것같은 기도하는 골방의 승리가 피흘리는 삶의 현장의 승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터를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 대법원서 성을 공식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심각한 창조질에서 대한 도전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거리아이들이 갈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무너지는 학교, 직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 소돔성 보다 더 타락한 세상, 기업 못하겠다고 외국으로 떠나는 기업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 50년이 넘도록 가로막힌 철책, 마음 보다는 외모 만능주의 세상,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 퇴락해가는 교회들, 늘어가는 회색신자들, 기세 등등한 불신자들, 모든 것이 상품으로 취급된 인격성을 잃어 버리는 세상, 좌우 대립의 정치, 우리에게 주어진 전도와 세계선교의 사명들... 무엇으로 이루어 드리겠습니까? 기도입니다. 혼자의 기도로는 부족합니다. 힘을 합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삼겹줄이 있어야 합니다.
동독과 서독이 정상회담을 가진 후 12년 만에 통일이 되었는데 그 배후에는 독일 교인들의 합심하여 드린 기도가 있었습니다. 6.25 때 우리가 낙동강 까지 밀려갔을 때 강만 건너면 부산을 점령할 때였습니다. 그때 부산에 피난을 가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낙동강 상공은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날이 되어서 UN군의 폭격기가 방어선을 넘어오려는 공산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습니다.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동안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을 해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힘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질병으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하여 건강에 승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온 형제들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이 불탄 채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금식하여 기도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벽 재건을 완성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위협 앞에서도 매일 하루 세번씩 기도하여 사자굴 입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여 승리하였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온 유대인과 함께 금식기도하여 민족을 구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방탕한 어거스틴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기도할 때 교회가 부흥합니다. 밤낮 기도의 향이 올라갈 때 하나님의 권능이 교회에 충만히 임했습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기도가 식으면 믿음이 식고, 기도가 식으면 열심히 살아지고, 기도가 식으면 가정이 흔들리고, 기도가 식으면 마음에 이끼가 끼고, 기도가 식으면 사탄의 유혹이 기승을 부리며, 기도가 그치면 교회가 침체되고, 기도가 그치면 나라가 어려워집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을 주었습니다. 사무엘이 은퇴식 고별 설교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삼상12:23절)”하겠다고 했습니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는 전심으로 기도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기도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서 북군이 승리했던 것은 아브라함 링컨이 새벽 4-5시에 하나님과 면회하는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호소했나요?”
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14-16)
이제 전쟁은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의 승리의 진정한 이유를 모세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전쟁에서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밖에 없는 비결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평생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 승리의 비결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 전쟁에 대한 기사를 기록하여 기념하라고 합니다. 잊어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교훈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힘이 아니라 내 힘으로 이겼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터에서 싸웠기 때문에 전쟁 승리의 비결 전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기도할 때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마음 깊이 새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리의 비결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하나님이 아말렉을 쳤고 앞으로도 쳐서 계속적인 승리를 보장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단을 쌓씁니다. 감사 제사를 드립니다.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깃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단합된 힘도, 모세의 기도도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돌보심,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로 승리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맹세하여 말씀합니다.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나님이 싸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그 약속을 성취해 주었습니다. (다윗, 삼하8:12. 시므온 지파, 대상4:41-43)
진정 우리가 인생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비법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삶의 현장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합지졸 아무것도 아닌 것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사용하시면 아무리 훈련되고 전쟁에 능한 아말렉이라고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습니다. 지팡이는 목동으로 양을 기르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모세가 그 지팡이 들고 기도하니까 전쟁터에서 능력의 지팡이로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론과 훌 하는 일은 모세의 손을 같이 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조연자 같고 역사의 희미한 빛을 비추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면 그들의 기도가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처음 출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미숙하고 백성을 이끄는데 지도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니까 첫 번 전투에서도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 강한 담력, 여호와의 도우심을 믿는 신앙이 있다할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결된 힘보다 더 중요합니다.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이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7)” 우리도 삶의 전쟁터에서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적 앞에 가진 것을 물매와 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하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붙여 주시면 그것은 기회이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었습니다. 우리는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우리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적 애굽이 있습니다. 앞에는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는 아말렉이 있습니다. 아말렉은 잔인하고 비겁하게 공격합니다. 우리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우리가 피곤할 때 공격합니다. 몸이 병들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영적으로 침체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 공격합니다. 자신이 가장 큰 적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계획을 이루는데 가장 무서운 적은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적과 꿈을 산산 조각나게 만들어 버리는 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불신앙의 적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무기력의 적입니다. 회의의 적입니다. 원망의 적입니다. 미움과 게으름과 탐욕, 세상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적입니다. 속사람을 강건하지 못하게 만드는 적들입니다. 아말렉은 감사를 잃고 원망과 불평할 때 찾아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과 은혜를 파괴하기 위해 달려듭니다. 아말렉은 쉬는 곳 르비딤에서처럼 안일할 때 찾아옵니다. 영혼의 잠을 잘 때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여호와 닛시의 기념비를 세우길 원합니다. 어떤 전쟁일지라도 우리는 주어진 힘을 합해 집중된 힘으로 최선을 다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8-10,12) 우리는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11-13)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14-16)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의 승리를 위해 내어 주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써워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2006.6.25/김필곤 목사/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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