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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느2: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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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6개월 전에 장로님 자제, 주황이가 군대에 갔는데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교회 아이들 군대에 보낼 때 꼭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보냅니다. 목회자가 부모와 똑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지만 부모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건강한 군대 생활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이제까지 많은 아이들이 군대에 갔지만 별로 잘 못된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주황이가 훈련 중에 다리를 다쳐다 하여 내 아이가 다친 것처럼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하나밖에 없는 아이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군에 가있는 아들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26년 동안 애지중지 길렀는데 미국 유학하는 중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생활을 막 시작하기 위해 훈련받다가 다쳤다고 하면 마음 좋을 부모 없을 것입니다. 막 새로 시작한 일입니다. 선한 일입니다.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다가 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새로 시작한 일에 종종 장애물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토요일 마다 청소하러 오시는 집사님들이 계십니다. 어제 얼마나 무더웠습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날 정도입니다. 그 무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몇 분의 집사님들께서 교육관과 예배당을 나누어 청소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8층 청소하시는 집사님께서 땀을 흘리며 청소를 해서 제가 에어컨을 켜고 청소를 하시라고 켜 드렸습니다. 먼저 7층을 청소하시는 집사님들께서 오시어 청소를 하셨는데 교육관을 청소하시는 집사님께서 저에게 잠깐 들러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남편이 새롭게 하는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좋은 직장 그만 두고 새로운 항공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 계속 기도를 드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지사가 바뀌고 잘될 것 같은 일에 장애물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선한 뜻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장애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해 왔던 일은 아무 지장없이 잘 되어 회사의 부장도 되고 이사도 되었는데 막상 대기업을 그만두고 내 사업을 하려고 하면 뜻하지 않는 장애물이 나타나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나오는 탁월한 지도자, 하나님의 사람 느헤미야도 이런 일을 당하였습니다.
지난주에 보았듯이 느헤미야는 당시 세계 최대 패권국가 페르시아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 출신 사람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페르시아 주류 사회에 들어갔고 왕국에서 왕의 신뢰를 받는 술맡은 비서관이 된 사람입니다. 이제까지 자기 민족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한 사람입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이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지금 말하면 미국에 이민 가서 아들이 부시의 가장 신뢰받는 백악관 비서관이 되었다면 얼마나 언론에 오르내리겠습니까? 미국 가서 출세한 아이들 이야기를 적은 책 몇권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는 이제까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하기 위한 새일을 시작하자 뜻하지 않은 난관이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출세와 가문의 영광만을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민족을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왕에게 허락도 받았습니다. 선한 뜻을 가지고 새 일을 시작했습니다(18).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즉흥적으로 시작한 일도 아닙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고 시작한 일입니다. 왕의 적극적인지지 가운데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비자도 받았고 성벽을 건축하고 집을 지을 건축 자재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첫 삽도 파지 않았는데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난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인지 10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페르시아의 관리가 된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부임하기 전에 이미 사마리아 총독으로 그곳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도비야는 페르시아의 시종으로 있다가 자기 족속의 족장이 된 사람입니다. 산발랏 밑에서 일한 사람같습니다. 반대하는 자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단한 실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다 대제사장의 가문과 혈연 관계를 맺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느13:28). 느헤미야의 귀환이 그들의 정치적 야심에 타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기존의 기득권을 강화하여 유다 지역까지 통치하고자 하는 계획에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안에 심어 놓은 영향력을 통하여 계속 느헤미야를 대적합니다(4:12, 6:10, 14, 18)
그들은 느헤미야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걱정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왕을 배반하는 일을 한다고 방해합니다. 세력을 너 넓혔습니다. 아라비아 사람 게셈도 느헤미야의 일을 반대하는 무리에 가담하였습니다. 앗수르의 이주 정책 때 사마리아에 정착한 사람입니다. 게셈은 지방 행정관으로 느헤미야의 강적 중의 하나입니다(6:6).
우리가 새일을 시작할 때 방해하는 사람들의 수법입니다. 사탄의 전략입니다.
업신여기고 비웃었습니다. 유다의 옛 형태와 현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대적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는 것입니다. 왕이 지난번처럼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자들의 일차적인 수법입니다. 첫 번째 방해 공작입니다. 조롱과 비웃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뛰어 내려보라고 조롱합니다. 주제 파악 좀 하라고 비웃습니다. 능력에 대한 비웃음과 조롱입니다. 새 사업을 한다고 “자금이 있느냐? 인맥이 있느냐? 경험이 있느냐?” 이런 식으로 조롱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김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면 대적들은 그렇게 비웃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는 것입니다. 대적들의 2차적인 반응은 협박입니다. 왕이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면 결국 가정도 파탄 나고 평안도 깨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면 섬기는 교인 마저 떠나 버릴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그러니 현실에 안주하고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구태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린이 집 개업 예배를 드린 집사님께서 어린이 집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알아보았는데 잘 될 것 같은 일이 자꾸 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만 포기하고 맙니까? 어려움이 다가 오면 가장 쉬운 방법이 포기하는 방법입니다. 내 능력을 바라보고 현실의 어려운 여건 앞에 도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너 나은 삶의 축복이 없습니다.
두 번째 쉬운 방법은 원망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그 일을 시킨 사람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도 안되고 이제까지 가졌던 관계도 다 나빠져 버립니다. 부부 관계도 나빠지고 대인관계도 나빠집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계획적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할 때도 장애물은 있는 법입니다. 좋은 금은 오랫동안 정제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는데 하루 아침에 낳는 것이 아닙니다. 10달 동안 거쳐야 할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힘들다고 다섯달 만에 나버리면 아이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없이 모든 일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 동안 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이 3년 광야 생활을 하지 않고 곧바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선한 일이고 민족을 위하여 나선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데 첫 번부터 살인자로 쫓겨 광야에 나갔고 무려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뭄이었습니다. 가뭄만 있습니까?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 주어야 하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재물이 많아지자 조카 롯과 싸움이 있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목동으로 살다가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왕궁에 들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울의 시기였습니다. 17여년 동안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요셉이 목동이 직업을 그만두고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와 가정 총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순탄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중년 여성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에게 갈릴리 바다를 건너 거라사인 지방으로 가자고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니까 폭풍이 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간 길입니다. 기도하고 간 길입니다. 약속받고 간 길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 한 일입니다. 나 혼자 출세하고자 한 일이 아닙니다.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한 일입니다. 그런데 방해를 받습니다. 그럴 때 실패하는 사람들은 원망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극복합니다. 장애물을 뛰어 넘습니다. 장애물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됩니다. 장애물을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성장을 위한 밥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할 때도 장애물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장애물을 주십니까? 각기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을 보십시오.
광야를 걷게 하신 첫 번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를 낮추시겠다는 말입니다. 겸손의 훈련을 시키겠다는 말입니다. 바로 모든 것이 잘 되면 교만해져서 미래 더 긴 축복의 삶을 누리지 못하니까 겸손의 훈련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모든 미덕의 바구니이며 겸손하면 세상이 다 내 편이 됩니다.
둘째는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고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16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런 장애물을 통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황이 어제 첫 휴가 나와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명암을 주었습니다. 명암있는 일등병 난생 처음 만났습니다. 명암이라는 것이 자기 존재를 알리는 것입니다. 저도 제 존재를 알릴 만큰 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명암이 없습니다. 그런데 단위로 취급되는 사병이 명암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서 일등병 명암 받아 보았습니까? 저는 받아 보았습니다. 장병 기본권 상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명암이었습니다. 만약 다리 안다쳤다면 아마 지금 트럭 모는 운전병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군 생활하면서 상담 훈련이 필요하셨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과정을 거쳐 훈련을 시키고 마침내 복을 주기 위해 인도했을 줄 믿습니다. 어린이 집 개원하신 집사님 개원 예배를 드릴 때 보니까 너무 좋은 환경으로 인도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장애물이 있습니까? 신앙인의 앞 길에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겸손하게 훈련시켜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서 장애물을 앞에 놓아 논 줄 믿습니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 이 배의 사공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462장 1절)”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갖은 어려움을 당한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주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베드로의 고백을 보십시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 1:7)”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 고통을 당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새 일을 시작하는데 다가온 장애물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합니까?
느헤미야는 그들의 조롱에 대하여 담대하고 엄숙하게 대처합니다. 인간적으로 대항하지 않습니다. 잔꾀 부리지 않습니다.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2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리니”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능력을 신뢰한 것도 아닙니다. 자본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술의 능력을 신뢰한 것도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으니 우리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신앙과 자만심이 아닙니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하다가 큰 난관에 부딪치면 하나님이 어떻게 다 하냐고 그런 미신적 생각을 버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 인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확신이 그런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현실 인식이 없는 확신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독약을 마시면서 하나님이 살려준다는 미신적 신앙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철저하게 준비한 신앙인이었습니다(11- 16). 복권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요행을 바라는 신앙이 아닙니다.
얼마나 느헤미야가 철저히 준비를 하였습니까? 그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비서실에서 근무한 사람입니다. 세계 경영을 안 사람일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일을 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안 사람입니다. 결국 성벽 재건은 52일 만에 끝낸 사람이 아닙니까?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1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가서 3일 동안 쉬면서 현지 조사를 합니다. 공식 업무를 시작하기 전 3일 동안 침묵 속에 구상을 합니다.(11절)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4달 동안 기도한 사람입니다. 금식기도를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였습니다. 휴식을 취한 후 서두르지 않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12절에 보십시오. 입이 무거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계획을 아무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왕실의 측근으로 근무한 사람이 입이 가벼웠으면 그 직책을 맡을 수 없겠지요. 왕의 사생활을 대신들을 만나 날마다 쑥덕거렸다면 그곳에 붙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감동하사 행하게 하신 일을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는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가 갖고 있는 비전과 확신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모든 백성이 즐거이 참여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먼저 성벽을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드러나지 않도록 밤을 택합니다. 말도 하나만 사용합니다.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가보고 말을 탈 수 없는 곳은 직접 걸어서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샅샅이 조사합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합니까?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었지만 새 일을 시작할 때 지도자 느헤미야는 철저한 상황 파악과 열정, 그리고 솔선수범 정신을 가지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했지만 반대세력에 대하여 통찰력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 볼 때 방백이나 귀인, 제사장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설득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일에 참여시키지 않았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는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행복과 안일을 위하여 그곳 권력자 산발랏과 같은 총독들에게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잡히는 것을 제시하지 않으면 절대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되 분명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황파악을 정확히 한 후 모든 확신이 서자 그는 정면으로 도전을 합니다.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합니다(2:17-18)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방백들, 귀인들, 제사장들을 모아 놓고 성벽 재건에 대한 계획을 발표합니다. 분명하게 성벽 재건에 대한 목표를 말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정확한 현실 이해를 기초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먼저 비전을 제시합니다(17). 현실 상황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자고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간증을 합니다(18). 하나님께서 왕을 통하여 자신을 도와 주었다는 간증을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신뢰와 확신을 심어 줍니다. 성벽의 재건은 하나님의 뜻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때 백성들의 마음에 소명감이 불타기 시작하고 '모든 선한 일을 하자'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준비하니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땅의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하고 땅에 있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다할지라도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데 누가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는데 누가 그 앞길을 막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다는데 어느 인간이 방해하겠습니까?
우리도 새 일을 시작하는데 뜻하지 않는 장애물이 다가오면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여야 합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능력을 신뢰한 것도 아닙니다. 자본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신뢰만 하고 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대세력에 대하여 통찰력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하여야 합니다. 큰 죽은 작은 구멍으로 망가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몸도 하나의 세포가 잘못되어 쓰러지는 것입니다. 최소치의 원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되 분명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형통케 하리하는 확신을 가지고 느헤미야는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니 아무도 이 일을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 쌓는 일을 시작하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말합니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목표는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다가 오면 포기할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저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일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건축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너희들은 참여하지 않는 너희들은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권리도 명록도 없다는 말입니다.
새 일을 시작하여 시작하자마자 장애물이 다가오면 쉽게 사명감을 포기합니다. 이 일이 아닌가보다고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감을 갖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믿는 사람도 보면 어떤 일을 할 때 단순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유익과 편리와 기쁨을 좇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명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어제 그렇게 무더운데 집사님들이 나와 청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 사명 아니면 못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사명 때문에 조선에 와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사명 때문에 척박한 조선 땅에 와서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는1793년에 영국에서 인도로 배를 타고 건너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다섯 살짜리 아들을 잃었고, 그의 아내는 정신적인 질병을 앓았습니다. 그는 사역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후에 첫 회심자를 만들어 냈으며, 수년 동안 애써 번역한 것을 화재로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의 휴가도 없이 40년 동안 꾸준히 사역했습니다.
미국의 제1호 해외 선교사인 아도니람 저드슨은 1814년에 미얀마로 갔습니다. 그는 여섯 살 된 아들을 잃었고, 1년 반 동안 죽음의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의 아내는 열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정신적인 쇠약으로 고생했고, 첫 회심자를 만나기까지 5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생명보다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로버트 모리슨은 중국으로 파송된 첫 개신교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아내를 잃었고 첫 회심자를 위해 7년 동안 수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중단 없이 사역에 임했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사명이면 마시기 싫은 고난의 십자가도 마셔야 합니다. 사명이면 전도하기 어려워도 전도해야 합니다. 사명으로 자녀를 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명자로 세우기 위해 베드로를 부르신 예수님, 바울을 부르신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를 불러 제자를 삼으로 라고 사명을 주고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사명을 주고 있습니다. 사명의 사람에게는 일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명의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성공의 기회로 보이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육가 버틀러(1862~1947)는 일에 관해 세 부류의 사람을 말했습니다. 첫번째는 일을 창조하는 소수의 사람들. 이들은 개인의 일 차원을 떠나 공동체를 바꿉니다. 두번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생각조차 안하는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사명의 사람은 창조하는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장애물이 있습니까? 사명자에게 그것이 기회입니다.
미국에서 '토크 쇼 여왕'으로 불리워지는 오프라 윈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였고 마약을 하기도 했으며 비만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중 1위로 선정되기도 했고 6억 달러(한화 8,775억)의 갑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그녀의 힘의 원동력은 가난과 아픔을 자신에게 준 하나님의 사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성경을 읽으며 모세를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쓴 "이것이 사명이다"라는 자서전에서 네 가지 사명을 말합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도피 생활 40년은 지도자로 우뚝 설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40년이 장애물이 아니라 성숙을 위한 광야학교였습니다. 다윗에게 17년은 장애물이 아니라 사명을 성취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사명으로 받아 들이면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성취하기 위하여 바울을 택하고 모세를 택하고 다윗을 택하고 예레미야, 세례요한, 아브라함을 택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택하였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일에 장애물이 다가 오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자로 철저히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일어나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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