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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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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절망의 기도가 필요하다
지은이 : 정원 목사
낮아짐의 은혜 중에서
- 낮은 기도가 긍휼을 얻는다
세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감히 하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은 너무나 악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언어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으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절망, 좌절, 몸부림.. 이것이 그의 기도였고 그러한 그의 낮은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 낮은 기도, 절망의 기도, 고통의 기도가 주님의 긍휼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무기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사람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온전하면 얼마나 온전할까요.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 불쌍히 여기심에 근거하여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2-14)
우리는 우리의 죄를 처리하신 주님의 십자가,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자비를 의지하여 그 앞에 나아갑니다. 그의 불쌍히 여기심은 우리의 체질이 흙에서 나온 것을 아심으로 우리에게 아무 의로운 것이 없음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울고 회개하고 엎드리며 나아가는 기도는 응답을 얻습니다. 불쌍히 여기심을 얻으며 들으심을 얻습니다. 그러한 기도에는 감동이 잇고 자유함이 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낮고 여리고 약한 자들에게 긍휼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잘난 자가 아니라 못난 자와 부족한 자, 자신의 비천함에 대해서 눈뜬 자가 자비를 얻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이 잘난 자식보다 못나고 부족한 자식에 더 긍휼을 느끼듯이 그것이 우리의 아비된 주님의 마음입니다.
- 깊은 절망의 기도가 필요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나가서 교회 문화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유창하게 기도를 하는 이들도 보았습니다. 멋진 언어를 구사하면서 유식하게 기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많은 성경 구절을 나열하면서 드리는 기도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기도에 감동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기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거룩한 풍성함이 임하는 것을 느끼거나 경험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느 기도원에 갔다가 어떤 청년이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몹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나무도 없는 작은 예배실의 강단 앞에 엎드려서 비참한 절규와 탄식을 토하면서 울면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드리면서 어떤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깊은 한숨, 탄식, 신음소리, 그리고 온 몸을 비틀면서 흐느끼기만 하는 기도였습니다. 아마 회개 기도를 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아주 비참한 기도였고 절망적인 기도였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기도를 나는 본적이 없었습니다. 어찌나 애절하게 한숨을 토하는지 마치 피를 토하는 것 같았고 자신을 다 쏟아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의 기도에 놀랐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그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갈망했고 그의 임재를 누리고 알아가기 위해서 자주 기도원을 찾고 금식을 했지만 그렇게 애절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더 흐르고 더 많은 절망과 낙심과 고통을 통과한 후에야 나는 그와 비슷한 절망의 기도를 배우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하나님의 임재를 조금씩 경험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여러 번 겪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극도의 공포감과 절망, 막다른 삶의 한계 상황을 여러 번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깊은 탄식과 슬픔과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도가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것인지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이전에 내가 낮은 기도, 깊은 고통과 절망의 기도를 배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도는 낮은 기도이며 절망의 기도인 것을 나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가 충분히 경험하고 배우기까지 내가 준비되기까지 그의 임재를 부으시지 않고 기다리셨습니다.
세리의 기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기 절망의 기도이며 자기 부인의 기도였습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오직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총뿐이라는 것.. 그것에 대한 처절한 인식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낮고 처절한 절망의 기도, 갈망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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