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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딤후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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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http://je333.com |
윌리암 보덴 씨는 1904년,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큰 낙농장의 법적 상속인으로 이미 백만 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일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아시아, 중동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큰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다 “나는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했을 때 그의 성경 뒷표지에 “지체할 수 없음(No Reserve)"이라고 썼습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좋은 보수가 보장된 일자리를 거절하고 성경 뒷장에 이번에는“후퇴 없음(No Reter at)"이라고 썼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있는 회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항해하던 중 선교준비를 하려고 우선 이집트에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그만 뇌막염이 발병하여 한 달도 못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했었군!” 그러나 그의 성경 뒷장에는 위에 썼던 두 가지의 결심 밑에 “후회 없다(No Regret)"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생애의 어떤 때든지 적용이 됩니다.
지금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무엇입니까. 남은 여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잊혀진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인가?
2005년에는 우리 자신을“지체함이 없이”,“후회함이 없이”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결심합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공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언제라도 하나님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후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자기의 파란 많던 생애를 회고하면서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후회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준 사명을 마치려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던 바울 외에는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존 렌돌프는 초창기 미국의 정치가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마지막 임종시에 부르짖기를 후회, 후회, 후회하노라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해 달라 성경 안에 있는 그 말씀을 보여 달라 아 후회 너희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르리라 나를 주 예수의 자비하심에 맡기노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풍자가 였던 찰스처칠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그의 모든 작품도 다 타락한 내용이었습니다. 1964년 그는 임종을 앞두고 최후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잃어버린 삶과 재능의 타락을 후회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참으로 바보였다”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뼈아픈 후회입니다. 하루를 살고 후회하면 내일은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1년을 살고 후회하면 내년은 새롭게 살수 있으나 일생을 다 살고 후회하면 지난 삶을 되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일에 후회하는 것보다 미리 후회 없이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어떤 건축기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건축업자가 오랫동안 자기회사에서 일한 건축기사에게 자네도 이제는 기술이 많이 향상되었으니 자력으로 집을 한 채 잘 지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기사는 정성을 들여 짓지 아니하고 눈가림으로 적당히 집을 한 채 건축했습니다. 사장에게 다지었다고 보고했더니 와서 보고 그동안 수고 많이 했네 자네가 지은 이 집은 자네 집이니 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히 살게 이 말을 듣고 이 건축기사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내가 살집 인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날림 공사를 하지 아니하고 좋은 재료로 튼튼하게 지었을 텐데...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살면 후회를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를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일생동안 최선을 다해서 살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읽은 7절에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삶을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선한 군사로 일생을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선한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입니다. 바울은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자기 육체를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육신이 살아 일어서려고 하고 조금만 늦춰주면 육신의 정욕이 머리를 들고일어납니다. 조금만 소홀히 하면 자기의 교만이 살아나고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자기의 자존심과 오기가 살아납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아니하고 나의 체면이 짓밟히고 나의 명예가 손상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자존심을 굴복시키고 나의 혈기를 굴복시키고 나를 철저히 매장시키면 그때에는 너무나 아프고 쓰린 고통이 있지만 두고 두고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신음했습니다
롬 7:22-24절에서 고백하기를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노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고전 9:27절에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신이 버림받지 않도록 자신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청춘과부로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딴 생각이 들면 바늘로 자신의 온 몸을 찌르고 또 찌르면서 자기를 쳐서 굴복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바울도 자기의 몸을 쳐서 굴복시키면서 살았습니다. 정욕이 머리를 들려고 하면 쳐서 굴복시키고 허영과 교만이 머리를 들면 쳐서 굴복시켰습니다. 날마다 지기와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갈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고 갈 6:14절에는 내가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도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때를 상상해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냥 반사작용으로 물리친 것이 아니고 요셉이 자기 자신과 지독하리 만큼 싸웠습니다. 요셉은 사춘기를 갓 지난 젊은이였고 이국만리에 팔려온 종으로 고독하게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보디발의 아내는 미인이었고 창 39:10절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맡은 일을 보기 위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더니 보디발의 집사람은 하나도 집에 없었습니다. 그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왔습니다. 요셉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단호히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하지 아니하려면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히 12:4절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한다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웠기에 죽는 날 까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음에 달려갈 길을 잘 달리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본문 7절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하였습니다. 달려갈 길이란 말은 영어 번역에 my course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가리켜 나의 코스라고 했습니다. 달려갈 길은 마라톤 경주에서 정해진 경주 코스를 일컫는 말입니다. 바울이 나의 코스를 다 달렸다고 말한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달려야 할 코스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직업별로 말하면 군인은 군인이 달려야할 코스가 정해져 있고 경찰관이나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의사, 목사가 달려야 할 코스가 다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정상적인 코스를 이탈하면 그것이 바로 탈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코스를 방향을 바로 정하고 달렸습니다.
고전 9:26절에 말하시기를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 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조건 달려간 것이 아니라 방향설정을 정확히 하고 달렸다는 것입니다. 빌 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본문 7절에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는 말씀은 바울이 경주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이 아니고 이 길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따르고 곁에 있던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므로 복은 전선에서 이탈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고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 신앙에서 이탈하여 율법주의로 돌아가 버림에 대하여 통탄하였습니다. 우리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처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도중하차 해 버리면 후회하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들을 감당할 때 충성을 다하지 못하거나 도중하차를 하면 장차 심판대 앞에서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바울은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신학자 길 리가 말하기를 바울의 경주는 장거리 장애물 경주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를 바든 후 순교할 때까지 많은 위험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행 20:23-24절에서 바울이 고백하기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달려가는 코스에는 죽음의 장애물도 고난이나 핍박의 장애물도 사람의 장애물이나 짐승의 장애물도 가로막을 수가 없었고 바다의 장애물이나 육지의 장애물 동족의 장애물이나 이방인의 장애물 가난의 장애물이 결코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본문 7절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도 중요하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가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더불어 싸운 것도 중요하고 자기가 맡은 사명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마 7:21-2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각종 신비를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은 것도 중요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 낫는 권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인정하시고 기억하시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사와 이적을 베푸신 목적은 제자들과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각종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가 믿음을 지키도록 기도하십니다.
눅 22:31-32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기도하였고 예수님의 기도에 힘입은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의 기도를 드림으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모든 곳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이 니고니온에 갔을 때 유대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울을 능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으나 그러한 위기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루스드라에 갔을 때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끌어 내쳤으나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습니다. 또 빌립보에서 무리 앞에서 옷을 벗기우고 매로 얻어 맞고 거반 죽게된 몸으로 깊은 옥에 갇혀 있게 되었을 때 밤중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할 대 큰 지진이 일어나 석방되는 기적을 체험하였고 가이사랴 총독앞에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나 믿음을 비켰고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죽는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합시다. 질병에 의한 모진 고통이 와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환난과 핍박이 목을 조여오고 고문을 당하는 때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당하고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히 11:36-38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회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한해 동안 할 수 있는 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삽시다.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후회가 전혀 없이 살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우리가 결심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후회를 최소화 할 수 는 있습니다. 바울은 평생토록 선한 싸움을 잘 싸웠기에 후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기 위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이 선한 싸움마다 다 승리했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웠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금년에 모든 상황에서 진실로 최선을 다하여 하루 하루를 삽시다. 바울은 자기가 달려야 할 길을 끝까지 잘 달렸기 때문에 후회하지 아니했습니다.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후회하지 아니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정절을 끝까지 지켜서 후회함이 없는 한해를 삽시다.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천국은 아멘 할렐루야 소리로 충만하고 지옥은 껄 껄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려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롭게 살걸, 이웃을 사랑할 걸, 긍휼을 베풀걸, 예수님 잘 믿을 걸, 지옥은 후회하는 사람의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순종하는 생활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후회하는 삶을 살았지만 다윗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좋아하시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삭은 아주 사랑스럽고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려질 당시, 그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순종하여 자신을 묶게 하고 제단에 놓여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이러한 순종을 통해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순종할 때에는 생명을 걸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순종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순종으로 인하여 받게되는 축복이 크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면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요 은혜이었기 때문에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에녹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을 봅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고 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으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자라 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 할 때 오직 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분은 노아요, 한 분은 에녹이었습니다. 창 6:9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하였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할 동안 얼마나 큰 핍박과 욕을 당했던가 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실을 보일 때에 받는 비방과 당하는 욕은 마치 구약의 노아가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에 당했던 핍박이나 비방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그 일 자체가 벌써 하나님 앞에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한 행실과 같은 것이라고 신약의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의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어도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의인이라고 한 노아와 더불어 에녹은 3 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육신이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도 오직 두 사람뿐, 한 분은 엘리야와 다른 한 분은 에녹이었습니다. 그러나 3 백 년이라는 긴 일생을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는 증거를 받은 자는 오직 에녹 뿐이었습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음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함에 대하여 후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혼자 있으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 혼자 있다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아가 그 패역한 시대에서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후회할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3. 담대하고 용기 있는 신앙 생활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입니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더욱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 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주님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를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라고 했습니다.
프러시아의 후레데릭 대왕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웃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본진랜드 장군은 성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하루는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왕의 천한 야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장내는 그런 분위기로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엄숙한 표정을 한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왕폐하. 대왕께서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터에서 대왕을 위하여 38번을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저는 이제 나이 많은 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머지 않아 지금 대왕이 비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 많아 영원을 바라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분인 것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이 엄청난 태도와 말에 온 장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추상같은 대왕의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왕의 떨리는 음성이 다음과 같이 들려왔습니다.
"본진랜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우리는 조만간에 꼭 주님을 만나 뵙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담대하고 용기 있게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아버지 감사합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게 하시며, 세상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그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후회 없는 인생을 삽시다
우리는 저마다 주어진 일생을 살아갑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는 날수가 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삼십을 조금 넘게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값진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런가하면 모세는 120살까지 오래 살면서 보람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애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일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참 보람되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처럼 행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느냐, 또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거부가 되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을지라도 후회스러운 인생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성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솔로몬을 능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였고, 부강한 이스라엘의 군왕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고 다 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년에 저술한 전도서를 보면 후회로 가득합니다. 그는 탄식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4)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2)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했고 권력자도 아니었지만 솔로몬보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한 때 교회를 핍박함으로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로는 온전히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 7, 8)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나의 인생을 주님께 모두 맡기고 살아가는가?
0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0 나는 삶 자체가 찬양이 되고 있는가?
0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0 나는 생활 속에 신앙의 열매들을 맺고 있는가?
0 나는 허무하고 썩을 것과 위해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좋은 보수가 보장된 일자리를 거절하고 성경 뒷장에 이번에는“후퇴 없음(No Reter at)"이라고 썼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있는 회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항해하던 중 선교준비를 하려고 우선 이집트에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그만 뇌막염이 발병하여 한 달도 못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했었군!” 그러나 그의 성경 뒷장에는 위에 썼던 두 가지의 결심 밑에 “후회 없다(No Regret)"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생애의 어떤 때든지 적용이 됩니다.
지금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무엇입니까. 남은 여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잊혀진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인가?
2005년에는 우리 자신을“지체함이 없이”,“후회함이 없이”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결심합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공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언제라도 하나님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후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자기의 파란 많던 생애를 회고하면서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후회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고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준 사명을 마치려함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던 바울 외에는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존 렌돌프는 초창기 미국의 정치가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마지막 임종시에 부르짖기를 후회, 후회, 후회하노라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해 달라 성경 안에 있는 그 말씀을 보여 달라 아 후회 너희는 이 말의 의미를 모르리라 나를 주 예수의 자비하심에 맡기노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풍자가 였던 찰스처칠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고 그의 모든 작품도 다 타락한 내용이었습니다. 1964년 그는 임종을 앞두고 최후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잃어버린 삶과 재능의 타락을 후회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참으로 바보였다”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뼈아픈 후회입니다. 하루를 살고 후회하면 내일은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1년을 살고 후회하면 내년은 새롭게 살수 있으나 일생을 다 살고 후회하면 지난 삶을 되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일에 후회하는 것보다 미리 후회 없이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어떤 건축기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건축업자가 오랫동안 자기회사에서 일한 건축기사에게 자네도 이제는 기술이 많이 향상되었으니 자력으로 집을 한 채 잘 지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기사는 정성을 들여 짓지 아니하고 눈가림으로 적당히 집을 한 채 건축했습니다. 사장에게 다지었다고 보고했더니 와서 보고 그동안 수고 많이 했네 자네가 지은 이 집은 자네 집이니 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평안히 살게 이 말을 듣고 이 건축기사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내가 살집 인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날림 공사를 하지 아니하고 좋은 재료로 튼튼하게 지었을 텐데...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살면 후회를 미리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를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일생동안 최선을 다해서 살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읽은 7절에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삶을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선한 군사로 일생을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살았습니다. 선한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입니다. 바울은 영적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 자기 육체를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육신이 살아 일어서려고 하고 조금만 늦춰주면 육신의 정욕이 머리를 들고일어납니다. 조금만 소홀히 하면 자기의 교만이 살아나고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자기의 자존심과 오기가 살아납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남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아니하고 나의 체면이 짓밟히고 나의 명예가 손상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자존심을 굴복시키고 나의 혈기를 굴복시키고 나를 철저히 매장시키면 그때에는 너무나 아프고 쓰린 고통이 있지만 두고 두고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신음했습니다
롬 7:22-24절에서 고백하기를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노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고전 9:27절에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도리어 자신이 버림받지 않도록 자신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청춘과부로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딴 생각이 들면 바늘로 자신의 온 몸을 찌르고 또 찌르면서 자기를 쳐서 굴복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바울도 자기의 몸을 쳐서 굴복시키면서 살았습니다. 정욕이 머리를 들려고 하면 쳐서 굴복시키고 허영과 교만이 머리를 들면 쳐서 굴복시켰습니다. 날마다 지기와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갈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고 갈 6:14절에는 내가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도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때를 상상해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냥 반사작용으로 물리친 것이 아니고 요셉이 자기 자신과 지독하리 만큼 싸웠습니다. 요셉은 사춘기를 갓 지난 젊은이였고 이국만리에 팔려온 종으로 고독하게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보디발의 아내는 미인이었고 창 39:10절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맡은 일을 보기 위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더니 보디발의 집사람은 하나도 집에 없었습니다. 그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왔습니다. 요셉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단호히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하지 아니하려면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히 12:4절에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한다고 책망했습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웠기에 죽는 날 까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음에 달려갈 길을 잘 달리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본문 7절에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고 하였습니다. 달려갈 길이란 말은 영어 번역에 my course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을 가리켜 나의 코스라고 했습니다. 달려갈 길은 마라톤 경주에서 정해진 경주 코스를 일컫는 말입니다. 바울이 나의 코스를 다 달렸다고 말한 것처럼 여러분과 제가 달려야 할 코스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직업별로 말하면 군인은 군인이 달려야할 코스가 정해져 있고 경찰관이나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의사, 목사가 달려야 할 코스가 다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정상적인 코스를 이탈하면 그것이 바로 탈선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코스를 방향을 바로 정하고 달렸습니다.
고전 9:26절에 말하시기를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 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조건 달려간 것이 아니라 방향설정을 정확히 하고 달렸다는 것입니다. 빌 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본문 7절에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는 말씀은 바울이 경주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이 아니고 이 길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따르고 곁에 있던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므로 복은 전선에서 이탈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버린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고 갈라디아 교회가 복음 신앙에서 이탈하여 율법주의로 돌아가 버림에 대하여 통탄하였습니다. 우리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처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도중하차 해 버리면 후회하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들을 감당할 때 충성을 다하지 못하거나 도중하차를 하면 장차 심판대 앞에서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바울은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신학자 길 리가 말하기를 바울의 경주는 장거리 장애물 경주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를 바든 후 순교할 때까지 많은 위험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행 20:23-24절에서 바울이 고백하기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달려가는 코스에는 죽음의 장애물도 고난이나 핍박의 장애물도 사람의 장애물이나 짐승의 장애물도 가로막을 수가 없었고 바다의 장애물이나 육지의 장애물 동족의 장애물이나 이방인의 장애물 가난의 장애물이 결코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본문 7절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도 중요하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가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더불어 싸운 것도 중요하고 자기가 맡은 사명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마 7:21-2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각종 신비를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은 것도 중요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 낫는 권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께서 인정하시고 기억하시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사와 이적을 베푸신 목적은 제자들과 우리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도록 각종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가 믿음을 지키도록 기도하십니다.
눅 22:31-32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기도하였고 예수님의 기도에 힘입은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의 기도를 드림으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모든 곳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이 니고니온에 갔을 때 유대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울을 능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으나 그러한 위기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루스드라에 갔을 때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끌어 내쳤으나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습니다. 또 빌립보에서 무리 앞에서 옷을 벗기우고 매로 얻어 맞고 거반 죽게된 몸으로 깊은 옥에 갇혀 있게 되었을 때 밤중에 일어나 찬송하고 기도할 대 큰 지진이 일어나 석방되는 기적을 체험하였고 가이사랴 총독앞에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나 믿음을 비켰고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죽는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합시다. 질병에 의한 모진 고통이 와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환난과 핍박이 목을 조여오고 고문을 당하는 때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당하고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히 11:36-38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회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한해 동안 할 수 있는 대로 후회하지 않도록 삽시다.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후회가 전혀 없이 살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우리가 결심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후회를 최소화 할 수 는 있습니다. 바울은 평생토록 선한 싸움을 잘 싸웠기에 후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싸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기 위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이 선한 싸움마다 다 승리했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서 싸웠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금년에 모든 상황에서 진실로 최선을 다하여 하루 하루를 삽시다. 바울은 자기가 달려야 할 길을 끝까지 잘 달렸기 때문에 후회하지 아니했습니다.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후회하지 아니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정절을 끝까지 지켜서 후회함이 없는 한해를 삽시다.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천국은 아멘 할렐루야 소리로 충만하고 지옥은 껄 껄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려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롭게 살걸, 이웃을 사랑할 걸, 긍휼을 베풀걸, 예수님 잘 믿을 걸, 지옥은 후회하는 사람의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순종하는 생활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후회하는 삶을 살았지만 다윗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좋아하시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삭은 아주 사랑스럽고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려질 당시, 그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순종하여 자신을 묶게 하고 제단에 놓여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이러한 순종을 통해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순종할 때에는 생명을 걸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순종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순종으로 인하여 받게되는 축복이 크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면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요 은혜이었기 때문에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에녹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을 봅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고 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으며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자라 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 할 때 오직 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분은 노아요, 한 분은 에녹이었습니다. 창 6:9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하였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할 동안 얼마나 큰 핍박과 욕을 당했던가 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실을 보일 때에 받는 비방과 당하는 욕은 마치 구약의 노아가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에 당했던 핍박이나 비방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그 일 자체가 벌써 하나님 앞에 귀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한 행실과 같은 것이라고 신약의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의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어도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의인이라고 한 노아와 더불어 에녹은 3 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육신이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도 오직 두 사람뿐, 한 분은 엘리야와 다른 한 분은 에녹이었습니다. 그러나 3 백 년이라는 긴 일생을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는 증거를 받은 자는 오직 에녹 뿐이었습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음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함에 대하여 후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혼자 있으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 혼자 있다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아가 그 패역한 시대에서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 후회할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3. 담대하고 용기 있는 신앙 생활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입니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더욱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 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주님께 감사 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를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라고 했습니다.
프러시아의 후레데릭 대왕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웃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본진랜드 장군은 성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하루는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왕의 천한 야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장내는 그런 분위기로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엄숙한 표정을 한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왕폐하. 대왕께서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터에서 대왕을 위하여 38번을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 저는 이제 나이 많은 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머지 않아 지금 대왕이 비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 많아 영원을 바라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분인 것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이 엄청난 태도와 말에 온 장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추상같은 대왕의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왕의 떨리는 음성이 다음과 같이 들려왔습니다.
"본진랜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우리는 조만간에 꼭 주님을 만나 뵙는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담대하고 용기 있게 믿음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과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아버지 감사합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게 하시며, 세상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그리고 담대하고 용기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후회 없는 인생을 삽시다
우리는 저마다 주어진 일생을 살아갑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는 날수가 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삼십을 조금 넘게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값진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런가하면 모세는 120살까지 오래 살면서 보람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애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일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참 보람되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처럼 행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느냐, 또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거부가 되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을지라도 후회스러운 인생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성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솔로몬을 능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탁월한 지혜의 소유자였고, 부강한 이스라엘의 군왕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고 다 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년에 저술한 전도서를 보면 후회로 가득합니다. 그는 탄식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4)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2)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를 누리지도 못했고 권력자도 아니었지만 솔로몬보다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한 때 교회를 핍박함으로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로는 온전히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 7, 8)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나의 인생을 주님께 모두 맡기고 살아가는가?
0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0 나는 삶 자체가 찬양이 되고 있는가?
0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0 나는 생활 속에 신앙의 열매들을 맺고 있는가?
0 나는 허무하고 썩을 것과 위해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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