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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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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3·19
지난 주 월요일 아침에 아내가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얼마나 행복하던지 울었다고 합니다. 당신도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지 않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꿈속에서나마 예수님 만나보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꿈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방법이 바로 말씀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그 분을 말씀으로 소개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그 분은 하늘로부터 오셔서 말씀하셨으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씀이 들려질 때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날마다 말씀 묵상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당신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당신을 사로잡으시고 말씀해주시고 어루만져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빛
요한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또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4절)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은 곧 빛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빛으로 주어지는 생명이며, 빛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말씀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달음으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비추어지고, 말씀이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그 때 우리는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우리의 죄를 비추어 드러낼 때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망이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 말씀의 빛이 제대로 비추어진 것이며, 거기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데 매우 둔하고 인색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일이 드뭅니다. 심지어는 다윗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남의 아내를 범하고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자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실패하자 그의 충성된 부하였던 그녀의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선지자가 그의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찾아왔을 때도 다윗은 자신의 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왕의 죄를 지적하러 왔던 선지자는 조심스럽게 비유를 들어 말했습니다. 어떤 부자에게 손님이 왔는데, 그 부자는 일백 마리나 되는 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난한 이웃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양 한 마리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격노하여 그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선지자가 그 죽어 마땅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지적하자 다윗은 그 때야 비로소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우리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를 비추어 드러냅니다. 그 때 우리는 이 죄를 겸손히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며, 성령께서 우리의 병든 심령을 치료해 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확신과 담대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빛이신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 어디이겠습니까? 말씀이 우리의 숨겨진 죄를 비추어 드러낼 때 즉시 겸손하게 자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이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함
요한은 이 빛이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5절) 깨닫지 못했다는 말은 이기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이 땅에 오시자 갑자기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죄를 버리고 회개한 것이 아니라 이 빛을 없애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대적하여 핍박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셨고,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은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이 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설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선포되고 우리의 죄가 드러날 때 회개하기 보다는 그것을 숨기고 외면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기분 나빠하고 분노하기까지 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정욕과 고집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 말씀이 당신의 죄를 비추어 드러낼 때 거부하지 말고 겸손하게 인정하고 회개하십시오.
죄를 이기는 길은 말씀이 우리의 숨겨진 죄를 비추어 드러낼 때 겸손히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는 일단 빛 가운데 드러날 때 그 힘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면 얼마든지 그 죄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아가게 됩니다. 말씀을 듣는 이 시간 주님께서 당신에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결단하고 회개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
요한은 그의 복음서 서두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분을 말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에게 말씀이라고 하면 즉시 생각나는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놀라운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광야에서 설교를 시작했는데, 그 설교가 얼마나 능력이 있었던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큰 죄인인 줄을 몰랐습니다.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의 진정한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3:10)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은 자기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광야로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쏘아댔습니다. 그 때까지 아무도 감히 그들을 이렇게 책망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놀라운 말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은 말씀이라는 말을 들을 때 단연 세례 요한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그토록 놀라운 말씀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6-8절)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혈통적으로 예수님의 친척이었는데,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말씀을 외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또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사람들 틈에 서 계시던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당시는 아무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인간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처럼 위대한 선지자였다 해도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귀한 것은 세례 요한이 이 사실을 한순간도 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그를 추종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세례 요한의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은 위대한 선지자요, 설교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훨씬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이 아니었으며, ‘그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죄를 지적할 수는 있었으나 죄를 사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빛을 증거하러 왔으나 사람들에게 빛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죄인들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위대한 선지자로, 심지어는 그리스도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종도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요1:26-27)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요1:19-20)
세례 요한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그 분을 소개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실 분은 세례 요한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아무리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요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았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나 교회를 자랑합니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그리스도를 가리게 된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목사가 훌륭하고 교회가 훌륭해도 그것만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이것을 부인하거나, 여기에 다른 것을 보태는 것은 모두 이단입니다.
그가 온 목적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말씀의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온 목적이었습니다.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7절)
그런데 왜 세례 요한이 빛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완악한 인간들이 이 빛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먼저 보내심을 받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준비시켜야 했습니다. 그는 권세 있고 능력 있는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설교가 어찌나 능력이 있었던지 사람들은 그가 메시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 때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으며, 사람들에게 그 분을 소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 요한이 온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6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말씀을 전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한 후에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명
세례 요한은 오늘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교회와 성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그들로 하여금 빛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이 빛이 아니었듯이 우리 역시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상)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과 같은 빛이란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빛이신 주님을 전하는 도구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5:14-16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빛이신 주님을 증거하려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본분이며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부끄러운 삶을 살게 되면 사람들에게 빛이신 주님을 증거하지 못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것은 곧 교회와 성도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것이 되고 맙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사람들은 대개 먼저 훌륭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느끼게 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빛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 사람씩 전도하기로 작정하고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중대한 사명은 없습니다. 그들에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주님 앞으로 인도해내시기 바랍니다. 빛의 증인이요 사자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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