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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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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3·25
짝사랑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짝사랑이라면 단연 하나님께서 권위자이십니다. 하나님처럼 짝 사랑을 많이 하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도 없는 죄인들을 무조건적으로,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자신의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황송한 일입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사랑을 거절해왔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이 사랑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이 사랑을 거절하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깨닫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크고 놀라운 축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격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도 감사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충성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오신 빛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9절)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분,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계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완전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7)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당신의 택하신 백성과 늘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시는 것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성막과 성전이었습니다. “내가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처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에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37:26-28)
그런데 성막이나 성전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시는 것을 나타내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직접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이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사 죄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분은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약한 자를 붙들어 주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그리고 구약에 예언된 대로 하나님이신 그 분이 드디어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 분을 거부한 인간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10-11절)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은 그 분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땅에’ 오셨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땅에 오셨을 때 그들은 그 분을 알지도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이상한 일입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을 지으신 분, 자기들의 왕이신 그 분,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 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분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일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 분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 분은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맡아주십니다. 그 분은 변함없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돌보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깨닫고 있습니까?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을 날마다 인격적으로 새롭게 만나고 있습니까? 그 분을 거역하며 그 사랑을 배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분께서 말씀으로 찾아오셨는데도 죄를 버리지 않고 고집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내 맘대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배은망덕한 존재입니까? 주님의 그 사랑을 거역하지 맙시다.
그 분을 영접하자.
말씀이시며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 분을 알지도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축복과 특권을 주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2절)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죄 가운데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아버지 집을 떠나 재산을 탕진해버리고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된 탕자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들이 집을 떠난 후 하루도 맘을 놓지 못하고 동구 밖을 내다보면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렸습니다. 날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버지는 먼발치에 아들의 모습이 나타나자 즉시 알아보고 맨발로 뛰어나가 아들을 맞아 안고 입 맞추며 영접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즉시 우리를 영접해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이렇게 지금까지 죄 가운데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자리에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 시간 즉시 주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오직 그 분께 온전히 복종하며, 나의 모든 것을 그 분께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분께 온전히 복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문제를 그 분께 맡기며, 나의 모든 결정권을 그 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직 그 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은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우리의 주인은 당연히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여전히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항상 전쟁과 갈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이 끝나려면 내가 주님께 겸손히 복종해야 합니다. 내 삶의 주권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려야만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승산 없는 곤고한 전쟁을 끝내십시오. 겸손히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분께 전적으로 순종하여 살아가십시오. 그 순간부터 당신에게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확신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그 분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을 당신의 주인으로, 왕으로 온전히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삶이 완전히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이렇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즘 애완견을 기르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개를 자식처럼 기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아지를 귀여워하고 사랑한다 해도 그것을 자식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따르고 귀여운 짓을 해도 개는 개일 뿐이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을까요?
벧후1:4을 보십시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당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형식적으로나 명목적으로만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시며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친 아버지란 어떤 존재입니까? 자식을 직접 낳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며 보호하고 돌보는 사람입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고 눈물이 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서라면 수백만 원씩이나 되는 대학 등록금도 서슴지 않고 지출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자신의 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11살 된 아들이 갑자기 기억력도 없어지고 온 몸이 마비되는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아이는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부모들은 생업도 포기한 채 아들을 돌보며 고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 6개월을 넘기고도 아이는 조금씩이나마 호전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1년 치료비만 1억 몇 천만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도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부모는 아이가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왜 소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자기의 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 영원히 멸망당할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인들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토록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때 자식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사랑은 무색하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특권이며 축복이기 때문에 권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인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이 무한히 복되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지으셨으며,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가지 우리를 끝가지 돌보시며 함께 해주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처럼 엄청나고 놀라운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며 끝가지 돌보시고 지켜주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3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다는 말은 말씀으로 변화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며 우리의 숨겨진 죄를 드러내십니다. 그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나는 것을 성경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랑과 특권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것인지를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부모는 자식을 낳아 희생적인 사랑으로 기릅니다. 이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부모의 그 사랑을 잊지 말고 효도함으로 보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일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배신한다면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알고 마음을 다하여 부모에게 순종하며 효도하기를 힘쓸 때 부모는 자녀에게 더욱 좋은 것을 주고 싶어집니다. 만일 큰 회사를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그런 자녀에게 그 회사를 물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그 놀랍고 위대하신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함으로 충성하기를 힘쓰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나를 당신의 친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망각한다면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말씀을 순종하며 충성하기를 힘쓰는 자녀들에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 당신이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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