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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의탁치 않으신 주님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227 추천 수 0 2010.08.06 00:47:25
.........
성경본문 : 요2:23-25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6·06·03

 

사람을 믿지 말라

 

제가 처음 목회의 소명을 받은 것은 군 입대를 일 년 앞둔 스무 살 때였습니다. 처음 소명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불러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여 매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지냈습니다. 만일 내가 목회를 하게 된다면 성도들을 정말 사랑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성도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함께 울고,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주신 비전으로 날마다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가장 은혜를 많이 받고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시간은 매일 드리는 예배시간이었습니다. 매일 훌륭한 목사님들이 오셔서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설교에 대한 다양한 원리와 방법론까지 실감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는 절대로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가 성도를 믿지 못한대서야 그게 말이나 되는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에게 사람 믿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목회하게 되면 정말 성도들을 믿어주는 목사가 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사람을 잘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실망을 하고 마음고생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선배 목사님들이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신 의미를 점점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늘 불신하며 경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본래가 믿을만한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며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을 믿었다가는 언제나 실망하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사람은 본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으면 반드시 실망하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늘 사람을 의심하며 불신해야 할까요?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은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보아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람을 믿었다가 실망스런 일이 생기면 상처를 받고 분노하게 되며, 그 다음부터는 사람을 불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며 사랑해야 할 대상인 줄로 알게 되면 실망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부족한 목사로서 제가 지금까지 성도들을 많이 실망시켰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사람들 때문에 수없이 실망해왔으며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믿지 말라. 그러나 사랑하라.” 저는 성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제가 비록 부족한 목사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마음을 다해 여러분을 사랑하며 섬길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은 사람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성전에는 이렇게 장사하며 환전하는 일을 통해서 폭리를 취하는 장사치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분노하고 실망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지만, 그때까지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자마자 장사치들을 다 내쫓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와 같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23절) 얼마나 반갑고 다행스런 일입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마땅히 기거할 곳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예수님을 돕겠다고 나섰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처하실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식사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밖에도 사람들은 예수님께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않으심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것을 아심이요”(24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호의를 다 거절하셨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거처할 곳도 없이, 그리고 불편하고 어렵게 지내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잘 아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친히 모든 것을 아심이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아셨습니다. “또한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라”(25절) 영어 번역본 중의 하나인 Living Bible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고 계셨다. 그러므로 아무도 주님께 인간본성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설명해드릴 필요가 없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주님께서 베푸신 표적을 보고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이 믿는 것은 주님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이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 주님을 믿는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생각과 기대에 어긋나는 것을 보게 되면 언제든지 주님을 외면할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과 기대가 만족된 것 때문에 일시적으로 믿었던 것이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참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은 자들

 

23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그 이름을 믿었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당시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표적들을 행하시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분의 이름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의 선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믿었다는 것은 요1:2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그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주님을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 이름을 믿었다는 말은 단순히 그의 가르침을 받고 그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나오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격과 삶이 전혀 변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철저히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3장에서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호의를 다 거절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만일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이신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그들을 인정하시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도움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피상적인 교인들

 

근래에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종교인구의 변동에 관한 통계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통계는 여론 조사 기관에서 표본으로 조사한 것이 아니라, 통계청에서 실시한 인구주택 총 조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통계 자료보다 신빙성이 높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불교 신자는 40만 5천 명이 늘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는 219만 5천 명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신자는 14만 4천 명이 줄었습니다. 이 통계가 발표되자 기독교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은 천주교 신자는 219만 명이 증가했는데, 개신교 신자는 오히려 14만 명이나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천주교가 이처럼 급성장한 배경으로 서울대 종교학과 김종서 교수는 천주교의 조직력, 저항성, 청렴성, 결속력을 꼽았습니다. 천주교는 교황청과 각 교구의 지휘를 받는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춰 사회적으로 집중된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과거 군사정권 시기에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천주교가 조직적으로 저항해 정의의 종교로 비친 것이 위상을 높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또 천주교는 장례를 조직적으로 돕는 등 관혼상제 의례(儀禮)와 관련한 유대관계가 강하며, 다른 종교에 대해 열린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젊은층으로부터 호감을 샀다고 평가했습니다. 제사 등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유교 문화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취한 게 좋은 예라는 것입니다(5.25일자 중앙일보).
  이 평가가 맞다면 천주교의 성장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찾는 이유는 참된 진리와 신앙 때문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쉽게 천주교를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본문에 나오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을까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진정 변화되었습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려 그분을 위해 살고자 하십니까? 

교회 안의 다양한 사람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 진정한 성도일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진정한 성도인지 아닌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통해서 교회 안에도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처음에는 육안으로 잘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곡식이 상할까 염려되니 추수 때까지 곡식과 섞여 있는 가라지를 그냥 두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 때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곡식은 곳간에 넣고, 가라지는 불에 던지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신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를 진정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당신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그리고 성경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신자일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을 여시고 감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구원받는 참된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해도, 모두가 주님께서 믿고 쓰실 만한 성도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주님을 위해 헌신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제자라고 부릅니다. 제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전적인 위탁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주님께 전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처럼 종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주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리 못하리라”(눅14:2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섬겨야 하며, 주님을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일시적인 동의나 공감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용과 복종입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과 여건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기주장이 아니라 말씀과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으며, 진정한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치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에는 6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할 자로 미디안 광야에 있던 모세를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모세만이 하나님께 헌신된 자로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버리시고, 베들레헴의 양치기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사울이 불순종한 반면에 다윗은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쳐버렸으며, 심지어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변덕이 심한 죄인들입니다. 마치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서 주님을 따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온전히 거듭나고 변화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한 제자가 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의탁하실 수 없으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릴 때라야 주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오늘 당신은 진정으로 거듭나셨습니까? 당신은 주님을 위해 살기로 헌신하셨습니까? 우리가 본래 연약하고 변덕이 심한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주님께서 믿음직스럽게 보시고 쓰시는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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