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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535 추천 수 0 2010.08.06 00:47:25
.........
성경본문 : 요3:1-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6·06·11 -18

 

우리는 거듭난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이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의미하는 말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도들이 이런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사용하셨으며,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변화와 개혁의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 영적으로 전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이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거듭남은 중생이라고도 부르는데, 거듭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사람이 거듭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또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준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고 예수님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기간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들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2:23)
  이렇게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1절) 이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으며,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당시 유대인 사회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는데, 70여 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공회의 의원이었고, 나이가 많았으며,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원했으며, 그분을 더욱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하필이면 밤에 찾아왔을까요? 낮에는 자기도 바쁘고 예수님도 바쁘시기 때문에 밤에 찾아왔던 것일까요?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일은 당시 유대인들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경계하며 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그런 행동과 교훈 때문에 자신들의 지도력에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 백성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고 많은 특권을 누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을 통하여 그들을 공개적으로 책망하시고 비난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경계하며 적대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었던 니고데모가 낮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찾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비난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그가 누려왔던 특권과 모든 직책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거듭나야 한다.

 

이렇게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2절) 나이 많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선생이며,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인 니고데모가 청년 예수에게 와서 극진히 예의를 갖추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말은 안중에도 없으신 것처럼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이 말씀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런 대답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거듭나는 문제를 이렇게 진지하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이 문제가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 마치 인생 최고, 최종의 목표인 줄 알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중년을 넘어서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실패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당신도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살아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연 당신의 남은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 인생의 황혼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인생이 끝나고 나면 당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삽시간에 우리에게 닥쳐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얼마나 덧없고 헛된 것입니까? 최고의 모든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다윗도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103:15-16)
  우리 인생은 이처럼 빠르고 덧없이 지나갑니다. 우리는 인생을 순식간에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인생의 최대의 문제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생은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친 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영원한 지옥 형벌에 던져진다면 얼마나 헛되고 비참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원받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며, 거듭나는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그런데 오늘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사실 사람이 거듭나는 문제는 눈으로 확인해서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8절) 사람이 거듭나는 일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거듭났는지의 여부를 우리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자신이 거듭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의 경우를 참고로 하여 이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이것이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진지한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거듭나지는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대개 니고데모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자신이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직장에서 누군가가 예수 믿느냐고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아내나 자녀들이 교회에 나간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회피해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는 다닐지라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둘째, 니고데모의 신앙고백은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신앙은 나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가 함께 모여서 신앙을 고백하며 예배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개인적인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는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정해진 시간과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립니다. 공통적으로 똑같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사용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저절로 예배가 드려지고 신앙이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여전히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참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확신 있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 못하다면 당신은 거듭났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니고데모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2하). 물론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표적을 보고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적은 믿음으로 출발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적 자체는 신앙의 내용도 아니며 신앙의 대상도 될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5:43)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표적에 사로잡히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치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좇았던 것은 살아계신 주님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이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듭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이 나으면 예수 믿겠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교회에 나오게 하고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점점 예배에 빠지더니, 아예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믿기보다는, 뭔가 이적이나 기도응답 같은 것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넷째,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가 날 수 있삽나이까”(3-4절) 그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이 바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예배시간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 말씀을 진정으로 마음에 받아 순종하고자 힘쓰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아내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다가 대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억지로 아내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들은 대개 설교 시간에 졸기가 일쑤입니다.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5년 동안이나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오면서 설교시간마다 졸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휘두른 테니스 라켓에 딸이 맞아서 한 쪽 눈을 실명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딸을 붙들고 용서해달라고 애원을 해보기도 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어느 주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놀랍게도 설교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거듭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딸의 눈도 치료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면 아직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5-7절)
  거듭난다는 말은 ‘두 번 난다’, ‘위로부터 난다’라는 뜻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몸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갈 때는 이 몸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두 번째 태어나는 것, 즉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세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죄의 몸이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은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물이 말씀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베드로전서 1:23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사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세례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나 말씀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구원이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물과 성령으로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을 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고,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과 목적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하셨습니까? 이 시간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자녀로 맞이해 주시고 영원한 구원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렸다 해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지옥형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 내세가 결정되면, 그때부터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인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5-7절)
  거듭난다는 말은 ‘두 번 난다’, ‘위로부터 난다’라는 뜻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몸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갈 때는 이 몸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구원이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물과 성령으로 됩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을 열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고,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과 목적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구약의 배경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에스겔의 예언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5-27)
  구약에서 사람이 범죄하면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죄를 자복했습니다. 제사장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제물로 바쳐질 짐승에게 안수하게 하고, 그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짐승이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 제물로 드려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물을 뿌리면서 그 사람의 죄가 사하여진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죄는 사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악하고 부패한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장차 메시아가 오시면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메시아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때 특별히 성령을 그들의 마음에 두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에스겔의 예언을 염두에 두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바로 그 예언을 성취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성령이 그 안에 오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오셔서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이 엄청난 일이 이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사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획기적인 개혁이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마음에 오시고, 그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새 사람’,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마른 뼈가 살아나는 것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 뼈 환상입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1-10)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리고 가셔서 보여주신 환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골짜기에 가득 찬 마른 뼈들이 소리를 내며 들어맞아서 연결되더니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에스겔에게 말씀을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더니 그들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엄청난 큰 군대였습니다. 이 예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에스겔이 골짜기에서 본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아무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형편은 완전히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통하여 그러한 이스라엘을 얼마든지 회복시키실 것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마른 뼈가 살아나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이었고, 하나는 생기였습니다. 이 생기는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바람, 성령과 같은 것입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마른 뼈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두 경우가 같은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게 위해서도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며,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말씀과 성령은 언제나 함께 역사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기 가장 좋은 때는 말씀이 선포될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능력있게 선포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해진다면 지금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서 말씀이 선포되고 생기가 불어온 것과 같습니다. 그 때 마른 뼈들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시므로 마른 뼈와 같이 죽은 우리의 심령이 살아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분은 지금이 거듭나기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말씀과 성령이 함께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단하라.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른 뼈는 절대로 스스로 살아날 수 없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십니다. 마치 산모가 출산할 때 뱃속에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사력을 다해 아기를 낳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십니다.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사 역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신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즉 내 마음을 두드리실 때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고 그분만 섬기며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어떤 노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믿기로 결단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진정한 믿음을 갖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지금 당신을 위해 최신형 자동차를 선물로 가져왔다고 칩시다. 자동차는 새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기름도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열쇠가 꽂혀 있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꽂혀 있는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 결단하는 것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만 열면 되는 것입니다.

 

한동대 총장 김영길 박사의 간증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는 중에 부인을 따라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성경과 신앙서적을 펴놓고 도대체 왜 예수님이 꼭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왜 꼭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서 글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려면 죄 없는 누군가가 대신해서 죽어야 하고, 죄인을 대신해서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신이신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신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의 어두운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자기 부인을 불러 놓고 자기가 깨달은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이 김영길 박사가 거듭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보니 하늘이 달라보였습니다. 어제 본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새 생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에 거듭났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분이 있습니까? 지금 결단하십시오. 이 시간 마음을 여십시오. 이제부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고백하십시오. 그 순간 당신은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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