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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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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성령의 사역
육체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되다
빌립보서 1장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죤 번연의 천로역정이라는 소설이 있다. 신앙 소설이기 전에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문학 작품으로서 인정되는 책으로 오늘날에도 신앙인 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책으로 권하고 싶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에게 가장 어두운 절망의 시기에 기도에 매달리는 중에 주님은 나에게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질것인가 심중에 물으셨다.(마음의 음성을 통해 들었지만 또렸이 알게 된다) 나는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이것을 물어 보시는지 의아한 것이었다. 이 질문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후로 주님은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영적인 일들이 나타 내셨는데 표면상으로는 전혀 변화와 어떤 징후도 나타나지 않는 삶 속에서 나는 내적으로는 상상 할 수 없는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적인 환란 속에서 죄와 죄의 영적인 세력들과 싸우는 가운데 또 죽음에 묻히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주님은 나를 영적인 환란 속으로 몰아넣으셨다.육체에 상관된 일이 아닌 영적인 세계에서 겪는 것들이기 때문에 누구와 이 문제를 상의 할 수도 없고 또 상의할 내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중 우연히 인지는 몰라도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죤 번연이 감옥에서 근 10년 동안 걸쳐 성경과 꿈의 이상 가운데서 영감을 받아 쓴 책으로 자신이 체험한 영적인 내용들이 나에게 나타난 내용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죤 번연은 개혁주의자들의 편에 섰다가 감옥에 갇혀 10년동안 갇혀있는 동안 천로역정을 썻다 그의 매임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천로 역정은 결코 우화적인 소설로 취급을 해서는 않되는 책이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일 을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에 상관 된 일이나 세상의 것들에 대해 의지 하지 않고 이 행함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무엇을 하기보다 믿음으로 세상의 일과 행동에 대해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롬 8:36--)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것은 믿음으로 만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29 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지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믿는 것이 하나님 의 일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해야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하기 때문에 신자는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적으로 주님께 믿고 맡기는 훈련이 부족한 것이다. 믿고 맡기는 신앙의 훈련이 않된 교회는 외식적인 신앙으로 흐르게 되고 영적인 진보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에 사람의 주관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많음을 알게되는데 . 로마서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볼때는 좋은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A.D 61―62년경 바울은 마지막 전도 여행지인 로마로 잡혀가 매인 몸이 되어 있는 중에 빌립보서를 써서 교회에 보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바울은 기뻐하고 있다는 것과(1:4) 복음에 참여하는 일을 착한 일로 (a good work )말하고 있는데 복음의 일을 시작한 빌립보의 교회들이 종말적인 구원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룰 줄을 확신한다는 말로 칭찬하고 있다. (6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복음 안에서 영적인 지식과 의의 열매가 풍성히 열리도록 기도하고 있다.(11절) 그리고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으로 빌립보 교회가 복음에 진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자신이 매임에 대하여 교회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과 같음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로 잡혀가 매여 있는(감옥에 있다) 상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성도들은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고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확신한다고 믿고 있다.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들으면 당연한 말로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의도를 잘 파악해야한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 뒤로 자신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빌립보 교회는 성령에 의해 복음에 참여하고 있으며 구원의 과정에서 진행 중임을 말하고 있다.(5절) 복음의 진행은 사역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영적으로 자라게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3장에서 바울 자신은 복음을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다고 바울은 증거하고 있다. 고전3장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12절부터 21절 말씀은 전도에 관하여도 바울은 자신이 매여 있는 가운데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인 말이다. 바울이 갇혀있는 상태에서 복음의 진보(進步)가 나타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로마의 시위대나 그 밖의 사람들이 전도되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형제들이 바울이 매임에 상태에서 참으로 하나 다툼으로 하나 복음이 더욱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사역 기간 중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감옥에서 매여 있었는데 바울이 매임을 당 할때 마다 서신서의 양이 늘어났다. 신약 성서의 13편을 기록함으로 육체의 매임이 위대한 말씀을 낳게했다. 바울이 감옥에 같혀 있는 상태 였기 때문에 서신서가 교회들에게 보내져야하는 필요로 인해 쓰여진 서신서가 오늘날 성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는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육체의 행함으로 일한 것 보다 매임으로 이룬 것이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이것은 세상의 논리와는 다른 하나님의 역설적인 섭리이다. 신약 성경에는 역설적인 내용이 많이 나온다.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주라 그러면 얻으리라“ 고린도 후서 6장 과 같은 성경에서는 많은 성령의 파라독스 (paradox.) 역사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역설적( paradoxical ) 인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우리의 강함과 노력이나 행함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강조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내용으로 바울은 말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은 가르침과 구원의 역사이다. - 성령의 제자훈련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0,27).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에서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오랫동안 실행하여온 목사님이 최근에 자신이 실시해온 제자훈련에 대한 성과 없는 결과에 대하여 실패를 자인하는 보도를 내었다. 나로써는 예견된 것이었는데 한국 교회가 실시하고 있는 제자훈련은 기초적인 성경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복음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령에 의지하지 않고 바울이 전한 진리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복음을 알고 성령의 체험을 하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적 제자 훈련은 사역자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야 됨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만 적용하는 것은 부족한 일이다. 성경적 제자훈련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자가 되려면 제자의 도를 따라서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가야 만 하는 것이다. 로마서의 말씀대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삶을 행할 때 변화 받은 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각자가 이루어야 할 신앙의 목표이기 때문에 각자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일이다. 복음서에서 병이 들은 자나 구원을 얻고자하는 자들이 다 각자가 주님께 나아왔다.
믿음이 없는 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이제는 어떤 믿음으로 행함이 (이 행함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행함이다) 없이 자신이 변화 되어야 겠다는 의지도 없는 자에게 은혜의 역사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이 말을 듣고도 구원이 말로만 순간적으로 나타난 다고 믿는 어리석은 자들은 단호히 말 하건데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살후2:13).
구원은 율법에 의지하는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알고 믿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난다. 가르치는 사역자와 교사들이 복음을 체험하지 못하고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배워도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복음의 말씀을 성령의 계시로 알아야한다 바울도 사람에게 배운것이 아니라 계시로 알았다고 하였다. (갈1장)
진리의 성령은 물과 같아서 진리는 진리의 성령을 가진자 에게만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 진리는 복음을 체험한 자가 가르치는 것을 믿을 때부터 성령의 역사로 자라는 것이다. 골로세서 1장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복음은 말씀이 자신에게 임한 후에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은 다음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다. (5절) 주님은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기 전에 반드시 알려 주신다음에 역사하신다 ( 사 50:4) 사람에 의한 가르침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로 말미 암는다( 갈1:12) 복음을 체험한 사역자가 가르치는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믿음을 향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 후로는 주님께 인계되어 성령의 역사로 구원에 이르도록 스스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느 교파에 속해 있어 정통적인 신앙과 지식을 자랑 할지 몰라도 사람에게 지식으로 배운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유대종파는 정통적인 것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만 제자로 삼으셨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 오직 진리가 있는 곳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만 있기 때문이다. 또 복음의 길로 나아가는 자들에게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은 배우는 자의 자세가 중요하다. 성경의 예로 누가복음 10장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예수님이 계셨을 때 마르다는 분주히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사람의 예대로는 손님을 위해 일하는 마르다가 칭찬을 받겠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제자훈련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가장 좋은 프로그램으로 가르친 교회도 손을 들었다. 그래도 그 교회는 해보고 않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정직한 것이다. 중국의 지하교회가 공산 주의자들에 의해 근 40년 이상의 압제를 받고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자생한 교회로 그동안 성령의 역사를 세계가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신학을 배운 목회자가 없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믿을 수 없는 어려운 조건에 있는 상태에서도 그들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은혜를 받고 자라난 교회들이다. 과연 한국의 교회들이 그들 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그들 보다 핍박과 압제와 고통 속에서 믿음을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의 자유를 누리는 한국의 교회는 무장해제 당하고 있는 것같다 오히려 믿음에서는 그들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고전 2장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복음은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의 역사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사람에 의해 복음의 진보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지식에 불과 하므로 성령에 의한 영적 인 진보는 결코 사람이 줄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는 성령의 역사만이 온전한 구원을 이룬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육체의 매임은 영적 진보를 이룬다.
바울은 사역자인 자신과 아볼로는 심는 것과 물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겸손한 말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과 영적인 성장을 자라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함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복음은 전하는 자는 사역자들이지만 복음을 온전히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자신은 멀리 떠나 있지만 빌립보 교회가 믿음에 게을리 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 안에서 복음에 진보를 보고 있는 것에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는 것이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라디아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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