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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4:2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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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6·08·12 참사랑교회 주일 설교
지난주일 낮 예배를 마친 후 어느 성도와 인사를 나누면서 점심식사 하시고 가시라고 했더니, 그 성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밥 안 먹을 겁니다.” 하나님 만날 때까지 단식투쟁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하나님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강조했습니다. 식사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시면서 재치 있게 그런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 성도가 속히 하나님 만나는 복된 체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분명히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만나는 일보다 더 복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오면서도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만날 때 우리는 자신의 죄를 적나라하게 깨닫게 되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만족과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배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늘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특히 예배시간은 하나님 만나기에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성령의 감화하심 가운데서 예배를 드리도록 힘쓰십시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나에게 베풀어주신 구원과 풍성한 은혜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면서 예배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 만나는 축복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렇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가야 합니다. 은혜 받고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충격과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러한 충격과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려 온 여인
그녀는 사람들에게 지탄받고 소외당한 채 마음을 닫고 지내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여자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여자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절)
사마리아 여자의 이 말은 뜻밖의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인 그녀가, 그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던 그 여자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과거에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누가, 언제 이 여자에게 그런 말씀을 전해주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구약성경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고, 오직 모세 오경만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모세 오경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 곳은 신명기 18:18입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사마리아인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 곧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았으며, 그분이 오시면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자기들에게 말씀해주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도 역시 그러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여자야말로 메시아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던 이 여자를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에게 당신께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26절)
주님과의 특별한 만남
이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과 지금까지 말씀을 나누던 분이 바로 그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여자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한 불쌍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주셨고, 그녀의 모든 죄짐을 벗겨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 여자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동네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27절) 제자들은 왜 예수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을까요? 그리고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왜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을까요?
당시 유대인의 랍비들에게는 지켜야 할 법이 있었는데, 특히 여자에 관해서 이런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랍비는 길거리에서 여인과 이야기하지 말 것이며, 자기 아내와도 이야기하지 말지니라” 이런 법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예수님께 아무것도 묻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말씀을 나누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진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점점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열리고 영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의 모든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의 모든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서 낱낱이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녀는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죄짐이 벗겨지고 시원함과 기쁨과 참 평안이 그녀의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해방과 자유과 치유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진지하게 듣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더 놀라웠습니다.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한 마리의 어린양을 찾으셨습니다. 바로 그 양을 찾아서 뜨겁고 먼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말할 수 없는 긍휼과 자비로 주님께서는 이 여자를 바라보시며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이러한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여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서로 말씀을 나누고 있던 주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모습이 이처럼 진지하고 특별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주님과 이 여자 사이의 대화에 도저히 끼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여자에게 무엇을 구하시는지, 왜 그런 여자와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지 질문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충격과 변화
주님을 만나 말씀을 듣게 된 것이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이 여자에게 얼마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그녀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여자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자기와 말씀하시던 분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게 된 이 여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8-29절)
이 여자는 지금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우물가에 나왔는지를 잊어버렸습니다. 물을 길어서 사람들이 보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려고 했던 이 여자는 물동이를 아예 우물가에 버려둔 채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그렇게 마음을 닫고 외면하며 피했던 사람들에게 외쳐댔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녀는 평소에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 수군거리며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가서 이렇게 외쳐대는 것을 보면 이 여자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며,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개의치 않고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신의 죄를 완전히 해결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말씀을 들은 것이 그녀를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원망과 원한과 미움과 사람들을 향해 굳게 닫아걸었던 마음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자신의 추악하고 부끄러운 모든 죄가 여지없이 폭로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끗이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과거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충격과 감격이 그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주님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외쳐댔던 것입니다.
주님께로 나오는 사람들
더욱 놀라운 것은 수가성 사람들이 이 여자의 말을 듣고 모두들 예수님께로 달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동리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30절) 평소 같으면 누가 이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겠습니까? 이 여자는 평소 동네 사람들에게 신용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욕하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뻔뻔하게 어디 와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느냐고 나무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네 사람들은 이 여자의 말을 듣고 앞을 다투어 예수님께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 여자에게서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음성과 태도에서 특별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수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담대하고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말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모든 과거를 다 알고 계셨으며, 낱낱이 다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의 태도로 보아서 그녀는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 받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자기들도 바로 그 메시아를 만나고자 앞을 다투어 주님께로 달려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왜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그렇게 외쳤을까요? 주님을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만나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 주님을 만난 성도의 모습입니다. 오늘 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만난 주님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고 있습니까? 내가 받은 이 구원의 은총,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사람들에게 간증하며 나누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깨져야 한다.
지난주에 어떤 성도를 만났는데, 지난주일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용이 뭐였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용규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유학중에 출석하던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당시 그 교회의 선교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번은 예배 도중에 북한 난민 돕기에 관한 광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광고 중 북한 난민을 향한 마음을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나와서 한동안 흐느꼈습니다. 광고를 듣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광고가 끝난 후 어느 집사님 한 분이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광고하실 때 우시기에 저도 정신없이 울었지요. 그런데 광고 내용이 뭐였죠?”
은혜를 받긴 받았는데,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은 강력한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지요. 별로 충격을 받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정말 큰 은혜를 받았고, 말씀을 통해 큰 충격을 받았다면 어떻게 그것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요즘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충격을 받고 있습니까? 주님 앞에 자신의 죄가 드러나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통회하며 자복해본 적이 있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와서 은혜를 받고 기분이 좋아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뿐 더 이상의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루만 지나도, 아니 몇 시간만 지나도 들었던 설교의 내용을 다 잊어버립니다. 물론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생각이 나겠지요.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특별한 일이, 변화가 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당신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돌려보내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엄청난 경험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사야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절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죄가 낱낱이 폭로되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태연하게 자기의 모난 부분을 인정할 줄 모르는 강퍅함이 깨지기를 바랍니다. 육신만을 위해 살았지 하나님을 위해 진정 헌신할 줄을 몰랐던 배은망덕함이 부서지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완전히 변화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감격과 기쁨이 너무나도 크고 강해서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라고 외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나의 과거가 문제가 되지 않고, 더 이상 나의 과거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담대하고 확신 있게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생하면서 2-3년씩 제자훈련을 받은 성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60구절이나 되는 성경을 한 자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다 암송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변화되지를 못하는 것일까요? 때로 저는 설교자로서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했습니다(히4:12). 그런데 왜 아무리 외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는 언젠가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그녀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유별나게도 육신의 정욕을 따라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향하여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녀를 찾아와 만나주셨을 때, 그녀의 마음속에 떨어졌던 말씀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만났을 때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으며, 그녀의 내면에서는 천지가 진동하는 대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재림과 심판에 대해서 알만큼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진리와 사건들이 까마득히 막연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은혜 받았던 말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주님께서 당신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려보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갑자기 당신 안에서 그 모든 말씀들이 살아나며, 당신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당신의 모든 죄를 낱낱이 드러내어 통회자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죄가 완전히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복된 은총이 당신에게 체험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만난 주님을 담대하고 확신 있게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주님께로 달려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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