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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학2: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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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오늘 말씀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세 번째 말씀입니다. 이 세 번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19절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 2:19)”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옆 사람과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오늘부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 때가 9월 24일부터입니다. 성전 공사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입니다. 다리오와 2년 9월 24일 부터입니다(10,18). 자기 집 짖기에 바쁜 사람들이 이제 성전 건축에 총력을 기우를 때입니다. 당시 파종을 위해 이른 비를 기다리던 계절입니다. 농사 준비를 해야하는데 농사 준비보다 성전 건축에 전력을 기우일 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막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입니다. 막 사회에 나와 직장에 들어갈 때입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려고 할 때입니다. 그 때 하나님 우선 순위의 비전을 세운 것입니다. “선교사를 100명 파송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하겠다.” “지역 사회에 기독교 학교를 세워 가난한 자를 멋지게 교육하는 시키는 재원을 만드는 기업이 되게 하여야 하겠다.” “의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다.” “변호사가 되어 진정 소외된 자를 돌보아야 하겠다.” 이런 하나님 중심의 비전을 가지고 출발할 때입니다. 그 때 이제 적자 인생은 끝이 나고 오늘부터 흑자 인생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경기는 계속되고 부도나고, 사고 나고, 질병 들고, 실패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고 밤새워 노력해도 쌓이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부터는 경기가 살아나고, 성공하고, 합격하고, 건강하고, 부도 없이 쌓여지는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말씀입니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 주시겠다는데 누가 막겠습니까?
1. 적자 인생
과거 그들의 삶이 어떠했다는 말입니까?
19절 보십시오.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종자가 창고에 없다는 것입니다. 종자가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종자가 없다는 것만큼 큰 비극은 어디있겠습니까? 굶주리니까 종자까지 다 먹어 버린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사업자금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입사하려는 사람에게 자격증 자체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괴로움입니까? 삶을 꾸려갈 기본이 없는 것입니다. 기본이 있는 사람과 기본이 없는 사람은 출발선이 다릅니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자와 관계가 없습니다. 이미 심겨져 있습니다.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비, 적당한 거름, 병충해만 없으면 때가 되면 열리게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본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땅만 차지하는 짐에 불과합니다. 허울만 있지 실속이 없습니다.
주식에 투자한 돈이 때가 되면 불어나야 하는데 남의 주식은 다 오른 데 내 것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자식들은 잘 되는데 내 자식은 되는 일이 없습니다. 자식이 때가 되면 자라야 하는데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기업에서 승진이 되어야 하는데 남들은 다 승진하는데 나는 승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적자인생을 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제까지는 곡식 20단이 나던 곳입니다. 그런데 10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20석 곡식더미를 수확했는데 막상 탈곡을 해보면 반절뿐이 나오지 않습니다. 포도주 50 동이나 나던 곳입니다. 그런데 술틀에서 나오는 포도주는 20동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절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학개 1장 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 1:6)”
2. 적자 인생의 이유
끝없이 적자 인생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해도 해도 되지 않고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으로, 폭풍으로 곡식이나 나무를 마르게 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농작물에 곰팡이가 들어 백분병으로 누렇게 죽어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수확할 만큼 다 자랐는데 '우박'이 내려 농작물이 다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1장 9절보십시오. 하나님이 불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1장 11절을 보십시오. 한재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어디가도 피할 수 없는 한재입니다.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에 임한 것입니다. 어떤 사업, 어떤 직종을 해도 무엇을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년 동안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성전 건축을 멈춘 16년 동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가 적자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흑자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1)” 아브라함을 부를 때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기 위해 불렀습니다. 이삭, 야곱, 요셉이 복받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통해 보여 주어야 그 때서야 항복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얼마나 강퍅합니까? 바로만 그렇습니까?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얼마나 마음이 강퍅합니까? 오늘 시대의 사람들도 절박한 상황이 오지 않으면 진정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경고를 합니다.
근본적으로 왜 이들이 해도 해도 않되는 적자인생을 살아야 했습니까? 2장 1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계속적인 경고를 주어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복받을 만한 그릇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1장 10절을 보십시오. 너희로 인하여서입니다.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이 그친 것입니다. 이유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하니까 땅이 엉겅퀴를 내고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고 땀을 흘려야 만 되는 것입니다.
원인은 인간의 죄라는 것입니다. 진정 복받는 길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 우선 순위로 사는 것인데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자기 중심의 지극히 이기주의로 사는 것입니다.
3. 적자인생으로 흑자 인생으로
그러면 적자인생을 흑자 인생으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과거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면 흑자인생 길이 펼쳐 집니다(15,18)./기억해야 합니다
적자 인생에서 흑자 인생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이제 너희는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잘 생각해 보아라.(현대인의 성경)”라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를 자신의 일에 두고 산 때와 하나님의 일에 우선 수위를 두고 산 때를 기억하고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성전 재건을 시작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아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삶의 경험들을 회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삶을 살펴 보라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부디 오늘 9월 24일부터 주의 성전 기초를 놓던 날까지 지나온 날들을, 마음 속으로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고 말씀합니다.
회상해 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까?
“그때 너희는 곡식 20석을 기대하고 갔으나 10석뿐이었으며 포도주 50통을 길으려고 포도즙틀로 갔으나 20통뿐이었다.”다는 것입니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확으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종자까지 먹어야 했고 저절로 열매는 맺는 과실들까지도 형편없는 수확을 가져다 주어 궁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자신들이 수고한 것에 대한 열매를 얻지 못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 상고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추구했던 바로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가 잘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전을 재건하지 않고 부정한 상태에 있었던 과거와 현재이후의 생활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은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는 항상 신통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평안과 즐거움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으나 그에 걸맞는 열매를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과거를 무시하고 버려서도 안됩니다.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과거는 우리의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적으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흑자 인생을 가는 첫걸음이 과거를 교훈 삼고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지난주에 한독화장품 사장인 나애숙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 선교사당 백만원씩 100명의 선교사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300명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의 우선순위를 바꾼 것입니다. 돈버는 회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회사로 바꾸는 것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약사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자신은 예수를 안 믿어도 잘 살았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까웠다고 합니다. 우선 순위가 인간 중심, 세상 중심이었답니다. 그런데 돈을 투자했던 제약회사가 부도가 났고 운영하던 화공약품 공장에 불이 났다고 합니다. 있던 재산 하루아침에 다 날려 버렸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주지 않고 돈을 빌린 사람들은 다 와서 빚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속고 할 수 없이 봉천동 달동네로 친구에게 30만원을 빌려 가장 저렴한 가계를 얻어 그곳에서 약국을 하고 조제실에서 살림을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졌고 물을 버릴 곳이 없어 밖으로 나가 하수도에 물을 버려야만 했답니다. 여름철 저녁이면 너무 뜨거워 잠을 잘 수 없어 스레트에 물을 끼얹고 잠을 청하곤 했답니다. 다시 성공할 때까지는 한강 다리를 넘지 말자고 결심하였답니다. 이 때 아들 딸들이 교회에 가자고 졸랐답니다. 큰 아들의 책상 서랍을 열어 보니 성경 책이 있더랍니다. 아들이 늘 우울해 해서 결국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교회에 나갔답니다. 교회에 나가니 마음이 편안해 지고 기쁨이 왔다고 합니다. 인생관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선 순위가 먼저 하나님, 먼저 교회로 바뀐 것입니다. 그 후로 주일 한 번 빠지지 않았답니다. 교회 나간지 2 주째부터 십일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은 후 인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봉천동 달동네 가난하고 힘든 자들, 연탄 가스 중독되기 쉬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답니다. 예수 믿고 온 가족 교회 나가다 보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살려고 돈벌려고 매몰차게 산 것이 아닌데 가족이 화목하고 마음이 편했답니다. 신비하게도 약국이 점점 잘 되었답니다. 지금은 한독화장품 회장이고 장로님이 된 남편이 화상피부 치료제를 개발하였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피부병 환자들이 몰려왔답니다. 부가 쌓이기 시작했답니다. 주변에 26개의 약국이 있었는데 시기할 정도로 잘 되었답니다. 그러자 세들어 있던 약국을 통체로 다른 사람이 사버렸답니다. 그곳에 단골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사할 수도 없고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꿈으로 환상으로 보여주는데 판자촌 집 7채 보여주며 사라고 하더랍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안된다고 했답니다. 재개발에 묵힌 땅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보여 주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계약을 했는데 계약하고 중도금 치루자 마자 나라에서 재개발을 해약해 그곳에 지하 2층 지상 7층짜리 빌딩을 세웠답니다. 돈이 없으니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한층 지으면 한층이 세가 나가고 한 층 지으며 한 층이 세가 나갔답니다. 7층이 가장 좋았는데 7층을 세로 달라는 사람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7층은 교회로 드리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7층을 교회로 드렸답니다. 그런데 약국은 잘 되고 30만원에서 시작하여 결국 화장품 회사를 만들어 이제는 매년 오지에서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 100명을 지원하면서 앞으로 300명을 지원하는 회사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고 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적자 인생에서 흑자 인생으로 전환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일 중심으로 우선 순위를 바꾸시길 바랍니다.
예수 믿지 않는 세상 학자들고 그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위대한 기업, 좋은 기업, 오래 살아 남은 기업은 공통점이 핵심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아무리 상황이 바뀌고 힘들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우선 순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Jim Collins는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21세기 비전기업의 특징은 이윤 추구를 넘어서는 핵심 이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서는 단순히 이익의 극대화나 주주들의 부의 극대화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소니(Sony)사의 핵심 이념은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는 기술 혁신과 진보를 통해 진정한 기쁨을 찾는데 있다고 합니다.
휴렛 패커드 회사는 자기가 속한 사회와 사업 분야에 공헌을 끼친다는 것이 기업 이념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머크(Merck)라는 제약회사는 의료 과학의 발전과 인류 봉사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2차 대전 후 일본이 결핵으로 신음할 때 스트렙토마이신을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였고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2) 적자 인생의 잘못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흑자 인생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깨닫고 통회하고 새로운 길로 가는 것)
17절을 보십시오. 과거 적자 인생이 된 원인이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지만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적자 인생길이 다가오면 그 원인 깨닫고 돌이켜 흑자 인생길이 될 수 밖에 없는 길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계속 실수하는 길이고 잘 못된 길로 가면서 흑자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계속 깨어진 그릇에 물을 퍼 붓는 것입니다. 계속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은 금그릇 은그릇이 아닙니다. 나무 그릇일지라도 깨끗한 그릇입니다. 혈기 있는 모세를 축복의 그릇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통하여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민 12:3)”라는 사람 만들어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였습니다. 남의 아내를 범한 다윗을 그냥 그대로 방치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를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야곱에게 바로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삼촌 집에 가서 피나는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게 하고 그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바로 주면 그것이 독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독이 될 수도 있고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받을 만한 사람이 받으면 복이 되지만 받을 만한 그릇이 못되는 사람이 받으면 그것은 독이 되는 것입니다. 시기심 문제를 처리할 그릇을 갖추지 못한 사울이 왕권을 받아 망했습니다. 자신도 망하고 가족도 망했습니다. 차라리 일평생 목동으로 산 것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자식들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그릇으로 제사장 직을 맡았다가 오히려 그 제사장 직이 독이 되었습니다. 차라리 그는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다면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전에 깨끗한 그릇, 거룩한 그릇,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진 그릇에는 결코 물이 차지 않습니다. 돌밭에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회개해야 은혜의 물꼬,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꾸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경기입니다. 내 집 짖기에도 시간이 없습니다. 자녀 결혼을 위해서는 집을 두 채 더 지어야 하겠습니다.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하나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내 사업 잘 해 놓고, 내 집 더 든든히 해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나의 연약함, 나의 잘못을 자꾸 변명으로 풀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 못된 길, 잘 못된 생각, 잘 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여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하고 순종하면 어떤 경우도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흑자 인생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변명하다 인생 망친 사람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아간도 즉각 회개했으면 그와 그의 가족이 다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잘 못된 것을 알았을 때 즉각 회개했으면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헤롯도 자기 교만을 회개했으면 충먹고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잘 못된 생각을 할 수 있고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만 가지고 문제삼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것을 문제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 우리가 반응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고백하던지 감추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죄를 감추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남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남이 저지른 잘못의 희생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변명으로 오지 않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선택은 오직 자신이 내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저질렀지만 즉각 회개함으로 축복의 그릇이 된 것입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1:12), 자기 소위를 살피고(1:5,7) 하나님께 돌아 와야 합니다. 회개하고 우리 예수님 앞에 나오는 어떤 사람도 다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 중에 도모다까 시모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형수였습니다. 일본 정부가 사형수를 일본 북해도 탄광에 보내어 일하게 하였습니다. 적자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탄광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절망적으로 보낸 때였습니다. 탄광에서 일하는 데 어머니가 면회를 왔습니다. 어머니를 보고 짜증을 내었습니다. 아들이 구박을 하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래 내가 돌아갈께, 그러나 이 보따리 하나는 받아라"하고 보따리를 놓고 갔습니다. 그 보따리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서 열어 보니 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그 동안에 예수쟁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재수 없다는 듯이 방구석에 성경을 내 던져 버렸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몇 일을 지나다 보니 거기서 함께 있으면서 한 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한 장 한 장 뜯어서 담배를 말아 피웁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시모지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3,000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전해 주고 간 성경책인데 이 놈들이 담배를 말아 피워' 야단을 치고는 재수 없다고 짚어 던졌던 성경책을 빼앗았습니다. 어머니는 뭐가 좋기에 성경에 빠져 버렸는가 싶어서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경만 읽었습니다. 그 날도 성경을 가지고 탄광 갱도 속에 들어가 일을 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을 빨리 먹고 다른 친구들은 모여서 떠들고 있을 때 시모지는 귀찮아서 다른 갱도로 옮겨갔습니다. 그 곳에서 성경을 읽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순간 벼락치는 소리가 납니다. 바로 자기가 일하고 있던 갱도가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함께 일하던 37명이 몰살해서 죽었습니다. 시모지는 거기에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시모지는 '하나님이 날 살려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니 적자 인생이 흑자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감형이 되고 또 감형이 되어서 결국은 살아서 출옥했습니다. 살아 나와 보니 어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그 동안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속태웠던 것을 후회하면서 양로원을 세웁니다. 양로원만 세운 것이 아니라 또 돈을 벌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6개를 세웁니다. 일본 정부가 주는 교육자 대상을 받았습니다. 사회 사업가에게 주는 대상도 받았습니다. 77살에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형수로 사는 것이 적자 인생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만나 회개하니 흑자 인생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바뀌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회개하는데 늦은 때는 없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서면 적자인생이 흑자 인생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질병으로 죽어갈 때, 실패로 좌절할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냉소적인 태도로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별수 없다.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다" 라고 단정짓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냉소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살았다는 이름만 있을 뿐 모든 힘과 소망을 다 잊어버리고 체념에 빠져 죽을 사람처럼 사로 있을 때 우리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자기를 파괴하고 학대해서 스스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져 자포자기할 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 때가 늦은 때가 아닙니다. 그 때가 주님 만나 회개하고 흑자 인생으로 전환될 때입니다. 영적으로 침체에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불안에서 밀려오는 공포에 쌓여 있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마음은 가라앉고 기도할 의욕은 나지 않고 자기처럼 불쌍하고 불행하고 무가치한 자가 없다는 자학증세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습니까? 신앙의 기쁨도 없고 교회와도,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까? 삶의 환희가 없고 신앙의 즐거움도 잃었습니까? 무엇이 암석으로 마음을 막고 있습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적자인생에서 흑자 인생으로 돌이키는데는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길을 바꾸어야 합니다.
3. 사명을 회복하고 흑자 인생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왜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었습니까? 포로에서 해방될 때 그들에게 맡겨준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성전을 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 사명을 망각한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성전재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6년을 기다렸습니다. 처음 주신 사명 이루길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까?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주일 성수하고 헌금 생활하고 구제생활하고 예배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 사명을 회복하고 성전재건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십시오. 경건의 모습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외식적이고 형식적이었습니다. 이것을 알려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율법을 맡은 제사장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12절 보십시오. 첫 번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유다 백성들의 잘못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명 회복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사람이 만일 거룩한 제물의 고기를 옷자락에 싸가지고 가다가 그 옷자락이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음식물에 닿으면 그래도 그것이 거룩하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그 때 제사장들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아닙니다"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종교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백성들까지 거룩해졌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13절을 보십시오. "만일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자가 이 음식물 중 하나를 만지면 그것도 역시 부정하겠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부정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더러워진 손으로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질문을 드린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을 더 이상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일에 바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시체를 만진 자와 같아서 그 하는 모든 일 역시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잃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무엇을 해도 축복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재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에서도 의식적(儀式的)으로는 완벽했을지 모르나 사명을 잃어 버린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곁을 떠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근본적인 사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효도하는 마음없이 억지로 용돈 주는 아들과 같습니다. 흑자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사명붙들고 나가면 적자 인생이 흑자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모세가 사명붙들고 나갈 때 적자 인생이 흑자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명붙들고 나갈 때 적자 인생이 흑자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명 붙들고 나가면 되는 일이 없을 것같지만 사명 붙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사람도 붙여 주시고 돈도 붙여주시고 일도 붙여 주십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모든 것 배설물로 여기고 사명 붙들고 나갈 때 그의 인생 앞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고 그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이 요소요소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흑자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30세 때 사명을 붙들어 흑자 인생이 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은 23세 때 사명 붙들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선교사로 떠나 흑자 인생으로 남았습니다. 요한 칼빈은 썩어져 가는 시대 속에서 사명 붙들고 일어나 26세때 기독교 강요를 집필해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를 건축하여야 합니다. 교회 건축을 이 시대 나에게 준 사명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 사명을 이룰 기회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지난 월요일 한 가정에서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서도 땅의 계약금으로 3억을 작정 헌금하였습니다. 교회 건축하는 것을 열린교회에 다니게 된 사명으로 생각하는 가정입니다. 화요일 한 부부께서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아파트 집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노후 생활을 위해 준비해 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족끼리 상의하고 교회를 짖는데 헌금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초라하게 건축하지 말고 잘 지어 달라고 했습니다. 사명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님 모두가 이번 교회 건축을 나에게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젠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놓고 갈 것입니다. 그 때 하늘에 쌓아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 땅에 다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과 며칠이면 시들어 버릴 나뭇잎 월계관을 얻기 위해 인생 경주를 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않고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경기하는 사람이 흑자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썩지 않은 면류관(고전9:25), 의의 면류관(딤후4:8), 생명의 면류관(약1:12,계2:10), 영광의 면류관(벧전5:4), 기쁨의 면류관(살전2:19)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끝이 날 날이 있습니다. 모든 생성된 것은 다 소멸될 날이 있습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승리의 찬가를 부를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명을 가지고 살 때 세상은 살맛이 납니다. 그래서 순교도 사명을 이루는 것이라면 흑자인생입니다. 실패도 사명을 이루는 과정이라면 실패도 흑자인생입니다. 병들어도 사명을 이루는 것이라며 그것 역시 흑자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목표를 두는 삶이 고상한 인생이고 풍요로운 인생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평생 사명 있습니까? 일평생 이루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좀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생 사명을 가지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분명 흑자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 평생 사명이 있는가? 일시적인 것에 삶을 투자하고 있지 않는가? 삶의 중심은 무엇인가? 내 삶을 통하여 무엇을 기여할까? 지금 내 삶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평생 사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날 가족과 믿음의 식구,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
예수님은 요한 복음 17장 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평생 사역은 주어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은사, 장점, 자신의 마음을 끄는 것, 소유한 능력, 개성, 경험, 삶의 시간, 직업, 지식, 건강, 재물 등 그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2007.6.3 열린교회 김필곤 목사
출처/ 열린교회 http://yeol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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