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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집 성도들(The Saints Belonging to Caesar's Household)
빌립보서 seohyun............... 조회 수 3050 추천 수 0 2010.08.22 14:08:30성경본문 : | 빌4: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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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순오목사 |
참고 : | 대구서현교회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서들 중에 하나인 빌립보서의 종결부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서마다 빠지지 않는 이 짧은 인사 속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 서로간의 깊은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을 중심으로 새로이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2장 후반부를 보면, 그들은 가진 것을 팔아 필요한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기쁨 속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친교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4~46=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참으로 놀라운 교제의 삶입니다. 이런 교제는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교회를 만들었고, 빈부나 남녀노유의 차이를 초월하였습니다.
본문을 다시 봅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여기에 예기치 못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곧 ‘가이사의 집 사람들’ 입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의 칭호입니다. 그렇다면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란 누구입니까? 다름아닌 로마 황실의 친족이나 관리(官吏)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황제의 궁중에 살면서 예수님을 믿던 성도들을 말합니다.
당시의 황실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을 몹시도 핍박하던 황제의 집안입니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복음으로 무장한 성도들이 살아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같은 종류의 식물이라도 환경에 따라서 생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동일한 종류의 꽃도 지역, 토양, 기후에 따라 꽃의 모양과 아름다움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의 생활도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믿음이 보여지고 있는 모습은 똑같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2절에 말하기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고 하십니다. 주님은 한 분이신데, 모든 환경과 상황에 모두 같은 주님이 되시고 모든 자에게 풍성하십니다.
본문은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소개합니다. 가이사의 집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로마의 화려한 궁중 안에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있었고, 그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고, 이분들이 바울 사도에게 부탁해서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간곡한 문안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이사의 집 성도들은 어떤 분들이었을까요? 그들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본문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계십니까?
1. 그들은 바울이 옥중에서 낳은 성도들임 (= 고생 끝에 얻은 성도)
22절=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가이사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낳은 성도들입니다.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전도에 힘썼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했는데, 그중에 황실의 친족과 관리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낳았다’는 표현을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빌레몬서)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몬 1:9-10). 오네시모는 바울이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평생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알고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전하기로 마음 먹었고, 이 결심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로마의 옥에 갇혀 있을 때 자기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에게 끝없이 전도했고, 그 결과 로마 감옥에 있는 모든 수비대들이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들었을 정도입니다. 당시의 감옥은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바울 사도는 많은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궁중의 고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왕후까지 예수님을 믿게 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역경 가운데에서도 복음은 쉬지 않고 전파되어 갔습니다. 본문의 ‘가이사의 집 사람들’ 은 고생 끝에 얻은 성도들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동부지역으로부터 온 자들이었는데, 그들 중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유대를 맺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복음이 얼마나 힘 있게 전파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역경 가운데 복음을 전파한 사람이 어디 바울뿐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 전도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거의 다 순교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 형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파트라에서, 빌립은 헤라클레토스에서,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장렬히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애굽에서, 그리고 도마는 멀리 남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고난의 잔을 통하여 전파되어 왔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자유인으로 가서 복음 전파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 19:21절에 보면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칠 무렵입니다.
그런데 그는 뜻하지 않게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고,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동안 매여 있었습니다. 그가 옥에 갇혀 도저히 놓여나올 수 없을 때 그는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를 했고, 결국 죄수의 몸으로 결박되어 군인들의 감시하에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 옥중에 갇히게 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는데, 왜 갇힌 몸이어야 하는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 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로마의 옥중에 가두어 놓은 것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바울이 깨달은 것을 의미합니다.
롬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서 죄수의 몸이 된 것이 오히려 로마를 복음화 시키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데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열째 아들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지만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 때문에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남의 집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다가 모함 받아 옥에 갇혔습니다. 참으로 오랜 기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예견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세워 애굽의 2인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총리대신 요셉은 그가 당한 고생 때문에 오히려 더 지혜롭고 성공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또다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가이사의 집에 있는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낳은 자녀들입니다. 바울이 고생 끝에 얻은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고귀한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황실의 사람들이었고 로마제국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었지만, 감옥에 갇힌 죄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아름다운 자녀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일생의 구속 사역은 고난의 십자가에서 끝이 났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 사역은 로마의 차가운 옥에서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생 끝에 얻은 자녀들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 또한 고생 끝에 얻은 믿음의 자녀들의 명단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선진들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2. 그들은 폭군 네로의 그늘에서도 아름답게 성장하였음 (= 역경을 이긴 신앙)
22절= “...가이사의 집 사람들...”
가이사의 집에 있는 성도들은 폭군의 그늘 아래서 성장한 성도들입니다. 당시의 황제가 누구입니까? 로마 역사에 가장 극악한 황제로 꼽히는 네로(Nero Claudis Caesar Augustus Germanicus, 37~69) 입니다. 네로는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네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피에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신하들을 무수히 죽였습니다. 자기의 스승이요 유명한 철학자인 세네카(Lucius Seneca)까지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극악한 폭군 밑에서 ‘가이사의 집 성도들’은 아름답게 성장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이사 집의 성도들은 폭군 네로의 그늘에서도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역경을 이긴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폭군 밑에서 아름답게 진보해 갔던 교인들이었습니다.
로마 황실에 복음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신앙이 아름답게 성장해 갔는지 불가사의(不可思議) 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이 마치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 양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눅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 18:24,25=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더구나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을 보면 지혜 있는 자나 가문이 좋은 자들이 거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열려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롬 1: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복음을 거부한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부유하다 할지라도 그가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부자냐 가난한 자냐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롬 2:11),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차별 없는 하나님의 의’ 이기 때문입니다(롬 3:22).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복음에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감사합시다. 만일 복음이 사람을 차별한다면 내가 구원받았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에 감격한다면, 주위의 누구도 구원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나를 핍박하고 내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손을 잡고 사랑의 포옹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롬 10:12, 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문제는 역경을 이긴 신앙입니다. 가이사의 집 성도들은 무서운 폭군 밑에서도 믿음을 키워낸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로마 황제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님’이라 부를 수 없던 시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른다는 이유 때문에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던 시대, 그 혹독한 황제 숭배의 광풍이 불던 시대에 태풍의 한 복판에서 의연하게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입니다. 비록 특권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 앞에는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참성도들이 있습니다. 중국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그들이고, 회교권에서 외로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분들과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그러합니다. 그들 가운데서 장차 세계 교회를 깨우치는 새로운 큰 물결이 되어 종말의 두 증인의 역할을 할 순결한 능력의 종들이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 위에 있는 바위 틈에서 자라 올라온 소나무를 본적이 있습니까? 바위 꼭대기에 있는 작은 틈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發芽)하여 작은 나무가 되고, 나무의 뿌리가 점점 바위를 갈라 마침내 큰 바위를 두쪽으로 갈라놓은 장면을 심심찮게 발견합니다.
반석은 크지만 생명은 없습니다. 나무는 작고 힘이 없어보이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생명이 없는 큰 바위를 나누어 놓는 것입니다.
폭군 네로와 그의 추종자들은 무서운 세력이지만 바위와 같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 집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미약하지만 마치 바위를 뚫는 소나무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폭군을 닮지 아니하고 건전하게 자라서 건전한 신앙을 유지하며 성장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칼라는 어떠합니까? 생명력을 발휘하여 주위를 바꾸는 분이십니까, 아니면 주위의 세력에 묻혀 자신을 주위에 동화시켜버리는 자입니까?
두 처녀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처녀 모두 불신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한 처녀는 불신 남편에게 끌려가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한 분은 오히려 남편을 감화시켜 믿게 만들고 교회의 중직자까지 되도록 했습니다. 똑같이 불신자에게 시집갔는데 한 사람은 신앙을 저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생명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생명 있는 신앙과 생명 없는 신앙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믿지 않는 배우자를 감화시킬 수 있습니까? 첫째는 우리 자신이 확고한 믿음을 견지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에 부합하게 선행에 힘써야 합니다. 착한 아내,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불신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중보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이사의 집 성도들은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키워낸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그들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3. 그들은 세계 선교의 요람이 되었음 (= 세계복음화의 산실)
가이사의 집에 있던 성도들은 세계 복음화의 요람이 된 귀한 분들입니다. 그들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심장인 로마, 그것도 로마의 권력의 핵인 황실에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 예수 신앙을 갖게 되었고 거기에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교회로 말미암아 후일 복음이 온 세계로 뻗어나가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역사를 살펴 보십시오. 한동안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다가 AD 313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에서 칙령으로 기독교 박해를 중지시켰고, 325년에는 니케아 공회가 열려 중요한 교리인 기독론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전체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계속 서진(西進)하여 온 유럽과 영국, 그리고 미국을 거쳐 동양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어 왔습니다. 여기에는 가이사의 집에 있던 소수의 성도들이 요람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로마의 성도들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충실했던 주님의 증인들이었습니다.
로마의 속언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전도자가 되는 것이요 전도자가 되는 것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합니다. 그들은 일단 예수님을 믿으면 그날부터 전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전도하다 잡혀 죽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전도 열심을 막지 못했습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순교자가 될 것을 각오하고 힘써 복음 전도에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증인(마르투스)’이란 말에는 ‘순교자’란 뜻이 더해지게 된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보 교인들에게 문안 인사를 전하던 가이사의 집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고생 끝에 얻은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역경 가운데서도 당시의 유행이나 세상의 권력, 명예 등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킨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당시 가이사의 궁중에는 여러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었지 않습니까? 정치가, 사업가, 군인, 철학자, 사상가 등 선하고 악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일단의 작은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이 ‘가이사의 집 성도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유혹많은 세대 가운데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주님을 따라간 신앙의 선진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세계선교의 창이 열렸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역과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가이사의 집 성도들이 바로 우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복잡다단한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분간할 줄 아는 성도들입니다.
가이사의 집 성도들은 고난의 종들이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얻어졌고, 그들 스스로 고난을 헤쳐가며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세계복음화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가이사의 집 성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 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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