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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4:19-21 |
|---|---|
|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30) 삶으로 드리는 예배 (요 4:19-21)
<예배와 관련된 교훈 >
예배는 기도 이상입니다. 기도는 주로 자신의 필요에 몰입해서 “하나님! 내 영혼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예배는 찬양 이상입니다. 찬양은 주로 받은 축복에 몰입해서 “하나님! 영혼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배는 영혼이 하나님 그분께 몰입해서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 당신의 계심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배는 기도와 찬양 이상의 것으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고상하고 복된 행위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배가 죽어있다는 점입니다. 예배가 죽으면 신앙도 죽게 됩니다. 결국 예배의 성공이 신앙의 성공입니다. 하나님께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어떻게 살아있는 예배를 드립니까?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안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중요한 예배의 원리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배 장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어디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19-20절). 그때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어디서나 예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가정의 삶의 현장에서도 예배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가정과 직장도 예배 처소로 만들고, 때로는 길거리도 예배 처소로 마느십시오. 요즘에는 자동차 안이 얼마나 훌륭한 예배 처소입니까? 창문을 닫고 길거리를 달리면 마음껏 소리 질러서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내려온 것이 핵심메시지이기에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삶은 인간과 세상의 역사 속에 파고드는 삶입니다.
2. 예배 시간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문제는 장소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간의 의미에도 적용됩니다. 즉 예배장소로서 특정 장소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시간으로서 어떤 특별한 시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일 낮 시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도 버리십시오. 주일 낮 시간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시간인 주일새벽 시간이 더 의미 있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주일새벽의 의미’와 ‘현실적인 고려’를 절충시켜 주일 9시에 예배드렸습니다.
한국교회도 초기에는 거의 주일 9시에 예배드리면서 주일 낮 11시 이후에 예배드리면 경건치 못하게 어떻게 벌건 대낮에 예배드리느냐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들이 생겨나면서 예배시간이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로 팽창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주일 오전 11시 예배가 보편적인 예배시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낮 시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를 버리고 항상 예배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3. 예배 대상
주님은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했습니다(21절). 예배대상이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예배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언제나 그는 영적으로 파산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무릎을 꿇을 때 진리도 얻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하나님의 축복도 얻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교회에는 스왈슨이 만든 유명한 예수님 동상이 있습니다. 그 동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는 동상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그 동상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유명한 동상이라고 해서 와 봤더니 별거 없구나!” 잔뜩 실망한 표정을 할 때 그 동상의 내력을 잘 아는 근처의 행인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 동상을 보려면 가까이 접근해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아야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만 경배하십시오. 인생의 시작과 끝은 오직 하나님이 주관합니다. 선원이 바다에서 태양의 고도를 측정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듯이 성도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도덕적 향방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모든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십시오. 참된 예배는 사람과 환경을 보는 자연적인 본능을 역류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체득하게 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예배는 기도 이상입니다. 기도는 주로 자신의 필요에 몰입해서 “하나님! 내 영혼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예배는 찬양 이상입니다. 찬양은 주로 받은 축복에 몰입해서 “하나님! 영혼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배는 영혼이 하나님 그분께 몰입해서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 당신의 계심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배는 기도와 찬양 이상의 것으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고상하고 복된 행위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배가 죽어있다는 점입니다. 예배가 죽으면 신앙도 죽게 됩니다. 결국 예배의 성공이 신앙의 성공입니다. 하나님께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십시오. 어떻게 살아있는 예배를 드립니까?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안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중요한 예배의 원리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예배 장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어디서 예배드리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19-20절). 그때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어디서나 예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가정의 삶의 현장에서도 예배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가정과 직장도 예배 처소로 만들고, 때로는 길거리도 예배 처소로 마느십시오. 요즘에는 자동차 안이 얼마나 훌륭한 예배 처소입니까? 창문을 닫고 길거리를 달리면 마음껏 소리 질러서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내려온 것이 핵심메시지이기에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삶은 인간과 세상의 역사 속에 파고드는 삶입니다.
2. 예배 시간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문제는 장소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간의 의미에도 적용됩니다. 즉 예배장소로서 특정 장소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시간으로서 어떤 특별한 시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주일 낮 시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도 버리십시오. 주일 낮 시간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시간인 주일새벽 시간이 더 의미 있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는 ‘주일새벽의 의미’와 ‘현실적인 고려’를 절충시켜 주일 9시에 예배드렸습니다.
한국교회도 초기에는 거의 주일 9시에 예배드리면서 주일 낮 11시 이후에 예배드리면 경건치 못하게 어떻게 벌건 대낮에 예배드리느냐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대형교회들이 생겨나면서 예배시간이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로 팽창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주일 오전 11시 예배가 보편적인 예배시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낮 시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를 버리고 항상 예배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3. 예배 대상
주님은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했습니다(21절). 예배대상이 오직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예배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언제나 그는 영적으로 파산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무릎을 꿇을 때 진리도 얻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고, 하나님의 축복도 얻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교회에는 스왈슨이 만든 유명한 예수님 동상이 있습니다. 그 동상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는 동상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그 동상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유명한 동상이라고 해서 와 봤더니 별거 없구나!” 잔뜩 실망한 표정을 할 때 그 동상의 내력을 잘 아는 근처의 행인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 동상을 보려면 가까이 접근해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아야 그리스도의 얼굴이 보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만 경배하십시오. 인생의 시작과 끝은 오직 하나님이 주관합니다. 선원이 바다에서 태양의 고도를 측정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듯이 성도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도덕적 향방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모든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십시오. 참된 예배는 사람과 환경을 보는 자연적인 본능을 역류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체득하게 합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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