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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사랑은 아픈 것이다.”(10.12.2007)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 깊은 사랑은 기쁨과 동시에 고통도 같이 느끼는 것이다. 로마서8장 후반부에서 사도바울은 구원의 기쁨을 찬송한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외친다. 그런데 기뻐하던 사람이 갑자기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근심을 말하고, 고통을 말하고 있다. 왜? 사랑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감격한다. 자기 동족의 죽음을 보니, 암담하고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신음한다.
강한 빛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다. 큰 사랑에는 큰 그림자가 있다. 너무 사랑하면, 보고 있는 사이에도 슬픔이 깃든다. 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면 어떻게하나하는 슬픔이다. 대화 나누는 사이에도 슬픔이 있다. 이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못 나누면 어떻하나하는 아픔때문이다. 그게 사랑이다. 진짜 사랑에는 기쁨 속에 슬픔이 있다. 사랑하는 아이를 바라본다. 아프면 어떻하나? 내가 죽으면 불쌍해서 어떻하나? 보는 순간에 그런 느낌이 든다.
어떤 여자가 한 남자를 진하게 사랑한다. 존재가 크다. 부재의 빈공간도 클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기쁨과 동시에 사랑의 아픔을 느낀다. 결국 사랑은 아픈 것이다. 아픈 것이 싫어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처이다. 상처때문에 사랑을 거부하는 병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픔이 큰 것은 사랑이 큰 것이다.
교회가 커졌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이 많다. 예배도 재미있고, 소그룹 모임도 재미있고, 율동도 재미있고, 행사도 재미있다. 즐거움과 기쁨만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교회는 사랑의 모임이 아닌가? 진정한 사랑 속에 어찌 기쁨만 있을 수 있는가? 진정한 사랑에는 슬픔도 알아야 한다. 예배의 기쁨은 알면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아픔이 전혀 없다. 지금도 이렇게 많은데, 또 전도해라는 태도를 갖는다. 이것은 일종의 영적 쾌락주의이다. 진짜 사랑이 없는 교회이다. “교회에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는 슬픔이 있다.” 슬픔을 모르는 대교회는 무너져야 한다. 그런 대교회는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 깨져야 한다. 가슴에 사랑이 터져나오지 않으면, 무너져야 한다. 기쁨만 있고, 아픔이 없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사랑에는 유일성이 있다. 오직 너만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여자가 A라는 남자와 아주 기쁘게 즐겼다. 좋은 관계였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떠나가니까, B란 남자하고도 너무 잘 지낸다. 부재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쾌락이다. 사랑은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랑은 세련되지 않고, 촌스러워진다. 심지어 거칠어진다. 하숙집 아줌마와 어머니의 차이를 아는가? 어떤 청년이 밤 4시까지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 이것을 본 어머니는 호통을 친다. ‘야 이 놈아 잠 안자고 뭐해. 중독에 빠졌구나. 몸 상하면 어떻게 해.’하면서 소리친다. 정말 촌스럽게 나간다. 교양과 세련됨이 없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숙집 아줌마는 간섭하지 않는다. “학생 빨리 자지. 전기값 많이 나와” 이것이 하숙집 아줌마의 반응이다.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하숙집 아줌마의 마음으로 리더하면 안된다.” 목자는 “엄마의 마음으로” 양육해야 한다. 지각은 작은 것 같지만, 큰 차이를 낳는다. 별것 아닌 것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거칠게 몰아가는 것이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칠어도 좋다. 사랑으로 일하라. 아파도 좋다 사랑하면서 살자.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출처/ 삼일교회 청년부 주보 yes31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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