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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오바마 등장의 뿌리들”(1.23.2009)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인종차별의 벽을 깬 사람들이 있다. 우선 1955년의 몽고메리 시의 로자 팍스를 생각할 수 있다. 당시에는 버스에 앞좌석 10자리가 백인 전용 좌석이었다. 유색인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41세의 로자 팍스는 그날 너무 피곤해서 빈자리에 그냥 앉았다. 민권 투쟁을 위한 깊은 생각 끝에 내린 행동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너무 피곤해서 그냥 앉았다고 한다. 이 행동으로 인해 경찰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후 불의에 저항하는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다. 자유를 위해 버스 안타기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1960년대는 흑인 민권 운동의 시대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등장으로 저항 운동은 조직화되었고, 결국 차별 철폐의 큰 획을 긋게 되었다.
그러나 더 큰 인종차별의 벽을 깬 강력한 종교적, 도적적 힘은 아더 애쉬라는 흑인 테니스 선수에게서부터 나왔다. 버지니아에서는 흑인에게 테니스를 금지시키는 법이 있었다. 지금도 테니스는 흑인에게 진입장벽이 있다. 유명 선수 중에 비너스, 윌리엄스 자매 외에는 흑인 선수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더 애쉬는 68년 US오픈 우승, 70년 호주오픈 우승, 75년 윔블던에서 우승했다. 그래서 윔블던의 영웅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88년 심장수술을 하다 수혈을 잘못 받아 에이즈에 감염되게 되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위로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된 것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 세계에 5억명의 어린이가 테니스를 배우고, 5000만 명이 테니스 경기를 하며, 50만 명이 프로 테니스 선수이고, 5000명이 그랜드 슬램 대회에 출전해 보고, 50명이 윔블던에 출전하고, 4명이 준 결승전에 오르고, 단 2명이 결승전에 오른다. 그리고 나는 윔블던에서 우승했다. 윔블던 우승 트로피를 들었을 때,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 왜 하필 나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고난은 힘든 것이다. 고난이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원망하기 쉽다는 것이다. 보통 때 말로 인해 넘어지지 않던 사람도 고난 중에는 원망하다가 넘어진다. 고난으로 인해 약해진 인생이 원망으로 곧장 붕괴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작가 신봉승 씨는 “남을 욕 하는 손가락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지 않을 때는, 보행자였으므로 자동차를 매도하고, 자동차를 몰고 다닐 때는 운전사였으므로 보행자를 매도하고, 자동차가 늘어나서 홍수 일 때는 길이 뚫리지 않으므로 신호등을 매도하고,모든 날, 모든 때, 모든 것을 매도하면서 내게는 성한 곳이 없었다.” 원망은 나를 파괴시켜 성한 곳이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한 이유가 원망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원망은 언제나 핑계논리로 간다. 핑계는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그래서 항상 누구 때문에 안되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태도는 자기 스스로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예근성으로 이끈다. 아더 애쉬의 본보기는 흑인들의 방향전환의 이정표가 되었다. 어둔 마음의 상태를 밝은 마음으로, 원망과 저주의 태도에서 감사와 긍정의 태도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의 변화는 굳어진 상황을 깨고 새싹이 돋게 만든다. 아더 애쉬가 흑인들의 가슴에 심겨준 감사와 긍정의 빛이 없었다면, 지금의 오바마도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을 보면서, 아더 애쉬의 짙은 그림자를 보는 것은 비단 나만 생각은 아닐 것이다.
출처/ 삼일교회 청년부 주보 yes31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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