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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언덕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싶다.

어부동일기00-03 최용우............... 조회 수 1366 추천 수 0 2002.01.20 05: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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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의 아침 052】2001.4.7 갈릴리 언덕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싶다.

어느 날 아침모임을 갖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아, 최용우씨인가요? 여기는 청량리역인데 급한 일로 좀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는 미처 제가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 버렸습니다. 도대체 누구인지 무슨 급한 일인지 저는 바짝 긴장을 하고 이 정체불명의 사람이 나타나기를 하루종일 기다렸습니다.
오후 해질녘 쯤 그 사람이 왔다는 수정자매의 연락을 받고 급히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작은 키에 얼굴은 말쑥한데 한눈에 봐도 도움을 요청하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와 그는 주섬주섬 신을 신고 돌아가려 하던 참이었습니다.
정문까지 따라가 붙잡고 도대체 무슨 사정인지 물었더니, 마치 연극 대사를 외우는 것 같은 말투로
"전후 사정은 말하고 싶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거지입니다. 집도, 가족도 없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닙니다. 이름도 사연도 아무것도 묻지 말고 무조건 한 달에 쌀 한 가마씩만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아니, 이름도 묻지 말고 무조건 도와달라고요? 갈릴리마을도 후원으로..." 그 사람은 제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최용우씨 개인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무조건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쌀 한가마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사랑으로' 쌀 한가마씩 내 놓을 수 있는가? 그가 묻고 있었고, 나는 당황하여 얼굴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내가 받는 사례라는 게 뻔한데' 어쩌고 하면서 변명의 말을 이것저것 급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렵것지요... 예수님이 내 놓으라 해도 어렵겄지요..." 그 사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마디했고 저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내 놓으라 해도? 그럼 이사람이 지금 거지로 변장을 한 예수님인가? 혹시 오늘밤 꿈속에 펑! 하고 나타나셔서 "오늘 내가 거지의 모습으로 너에게 갔는데 너는 나를 외면하였다"하고 예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러실라고? -그러나 아무리 봐도 예수님이 변장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모니카 하나 살 돈은 주실 수 있습니까? 저 언덕에서 갈릴리마을을 바라보며 하모니카를 불고 싶습니다. 하모니카 하나 사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잠시 기다리라 하고 부리나케 사무실로 뛰어와 차비 좀 줘서 보내자고 하여 돈을 조금 봉투에 넣어 가지고 와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는 받지 않으려고 하다가 슬그머니 받았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마을을 벗어나 언덕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올라갔습니다.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귀한 후원금을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는 사람에게 낭비하면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 밤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날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도와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묻던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라는 말은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으로'라는 말이 아닌가.
그 '내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이라는 게 사실은 무조건 쌀 한가마니 내 놓을 만큼도 안 되었단 말인가? 쌀 한 가마니가 지금 우리 형편에 결코 작은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달라고 해도' 이리 따져보고 저리 따져보고 원리 원칙에 의해서 내놓을까?
그러고 보니 그의 눈이 무척 슬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열 몇군데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러 다녔는데 한결같이 거절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갈릴리마을을 우연히 알고 산 깊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사시는 사람들이니 마음도 맑고 깨끗할 줄 알고 먼 길 왔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이거 돌려 드립니다." 하며 꼬깃꼬깃 접힌 '해와달' 3월호 껍데기중 맨 뒷면 '이웃과 나눔' 면을 펴서 돌려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지난달 우리가 후원금을 보내드린 여러 단체들의 이름이 깨알만한 글씨로 빼곡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완벽해 보입니다. 모두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신분이 확실하고 꼭 도움을 받아야 될 믿을만한 사람들이고 단체들입니다. 지난달 재정결산을 하면서 이웃들에게 정기적으로 나누는 후원금이 얼마간 모자랐습니다. 해와달 독자 중 어느분이 "이 돈은 갈릴리마을 가족들의 짜장면 값입니다. 절대로 다른 용도로 쓰면 안되고 꼭 짜장면 사 드셔야 합니다."하고 특별히 신신당부하며 보내주신 돈도 아낌없이 모자라는 후원금을 채우는데 내놓았습니다. 지난 한달동안 우리가 우리를 위해 쓴 돈은 4천원짜리 싸구려 뷔페식당에서 맛이 간(?) 사라다를 먹은 것뿐입니다.
정말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절제하고 아껴 한푼이라도 더 이웃들과 나누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허전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하게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혹 우리는 더 중요한 것보다는 덜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나눔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다는 '원리원칙과 어떤 규정으로'는 아닌지. 사람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깊은 마음으로 나누는 작은 물질은 그 사람을 살리지만, 아무리 많은 액수의 물질이라도 거기에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낭비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가려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우리가 사랑해야 될 사람은 이름조차도 밝힐 수 없는 사람일수도 있는데 '상습범'일지도 모른다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며 외면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청량리에서부터 이 먼 곳까지 달려온 그 사람은 어떤 말 못할 절박한 사연을 품고 있었을까. 그를 우리는 너무 쉽게 보낸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은 갈릴리마을이 잘 보이는 언덕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하모니카를 불려고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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