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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7: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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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참사랑교회 2007·02·10
성경은 하나님 백성을 양으로 묘사한 곳이 많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목자시며 자신은 하나님의 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또 우리가 하나님의 양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목동 출신이기 때문에 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들은 목자가 돌봐주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아무 곳이나 막 달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가시덤불에 찢기기도 합니다. 스스로 꼴과 물을 찾지도 못하며, 맹수를 대적할 힘도 없습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양은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자가 좋은 꼴이 있는 곳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들의 이러한 특징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누군가가 돌보아 주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길러본 부모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 멋대로 행동하려고 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큰 아이가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 겨우 걸어 다닐 줄 아는 아이를 데리고 복잡한 서울 거리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 걸어보라고 길에 내려놓았더니 앞만 보고 곧장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 번은 작은 아이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한없이 걸어가 버립니다. 조금 자라면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집니다. 무엇이나 제 맘대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십대가 되어서는 그 도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죽을 줄도 모르고 제 멋대로 나아가는 경향은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사람은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순순히 전도를 받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제 멋대로 고집하는 것은 여전합니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좋은 목자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감사하고 복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돌보시며,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십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
초막절이 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실 것을 예상하고 죽이려 작정하고 기다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비밀히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생들의 의견대로 명절에 일찍이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라면 유대인들에게 잡히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관심은 백성들 사이에서 더욱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백성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소문을 들었으며, 나름대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11-13절)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여러 가지로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선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 말은 곧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무리를 미혹케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미혹케 한다는 말은 진리에서 떠나게 만드는 거짓 선지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의견들은 어떤 근거나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막연한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 그들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13절) 13절에 언급된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
초막절에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는 명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14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께서 동생들의 의견대로 명절에 일찍이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라면 유대인들에게 잡히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명절의 중간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예수님에 대해서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백성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이렇게 가르치셔도 차마 예수님을 잡아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고 성전에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달랐습니다. 15절은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교훈을 듣고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교훈을 무시하고 악의적으로 트집을 잡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서 글을 안다는 말은 구약을 안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랍비들에게 배우지 않으면 구약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르칠 자격도 물론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세 있는 교훈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준수는 형식적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믿음과 사랑은 없어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자기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는 것만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거짓된 태도를 드러내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심
예수님의 교훈은 이러한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지혜와 교훈을 가르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16절)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를 학벌과 경력과 자격을 통해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바리새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셨으며,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그 점이 바리새인들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인간의 교훈과 전통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의 권위는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고상하고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권위가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셔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셨으며, 하나님의 종으로 온전히 헌신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교회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의 권위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사람의 소리가 커지고, 사람의 주장이 관철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바로 서게 되며,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큰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믿음이 자라지 못하며,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삶 속에서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실제로 지켜 행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말씀을 실제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7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한 후에는 반드시 그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말씀을 지켜 행하다보면 그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명령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확실히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것은 이렇게 놀랍고 복된 일입니다.
새해 들어서 더욱 믿음으로 살려고 결심하고 이것을 잘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들에게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새해부터 기도생활에 힘쓰고 술을 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술을 워낙 즐기는 분이었는데, 금년 들어서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술을 드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던 술이 이제는 별 관심도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실제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이렇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해에 믿음으로 살기로 결심한 것을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 행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계속해나가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풍성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기적으로 가득 찬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확실히 만나고, 하나님과의 실제적 교제 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체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성도는 이 모든 놀라운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설교만 듣고 끝내지 마십시오. 나도 좀 가슴이 뜨거워지고 믿음이 좋아지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금 당장 말씀을 지켜 행하십시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믿음이 더욱 자랄 뿐만 아니라, 전에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소요리 문답 제1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존재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교사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들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18절)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태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선포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며,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치셨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인간적인 전통과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설교시간에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혹시 설교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되십니까? 설교 시간에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세상 이야기를 하며, 자기 자랑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천박한 간증과 인간의 자랑이 난무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선포될 때 성령께서 그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간구하면서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나를 새롭게 하시며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제멋대로 죄악된 길로 행하여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구원과 진리의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양들이 되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살아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고 확신 있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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