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7:40-53 |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참사랑교회 2007·03·10
우리는 모두 믿음이 좋아지기를 원합니다. 좀 더 강하고 성숙된 믿음 갖기를 원합니다. 당신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믿음이 잘 자라고 있는데, 믿은 지 여러 해가 지나도 영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서를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시고 권세 있게 말씀을 선포하셨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믿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면 오늘 우리의 믿음이 잘 자라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에 바리새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음모를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광야에서 생활하던 것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으며, 수많은 이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광야에서 무려 38년 동안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물이 없어 죽게 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신 것을 기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초막절 행사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8절) 이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과거에 광야의 반석에서 솟아났던 생수는 예수님께서 주실 성령을 예표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물, 즉 성령을 주시겠다고 외치셨습니다. 오늘 인생의 목마름으로 늘 고통하며 신음하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성도는 다시는 세상 것들에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예수님의 설교는 참으로 능력 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고달픈 인생길에서 늘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귀하고 복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모인 많은 유대인들은 주님의 이 위대한 설교를 듣고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예수님의 설교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들
놀랍게도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주님과 그 말씀을 믿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친히 오셔서 엄청난 복음을 전하셨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이상한 일입니까? 무리 중의 일부는 주님의 설교를 듣고서 이 사람이야말로 모세가 말했던 바로 그 선지자가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40절) 일찍이 모세는 후대에 자기와 같은 선지자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18:15) 이 선지자는 곧 그리스도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 보다는 엘리야나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41상)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보고서 예수님이야말로 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리스도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원할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영웅을 의미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이적들 행하신 것을 보고, 이런 권능을 가진 분이라면 이스라엘을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은 절대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고 예언되었는데,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41하-42)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큰 능력을 행하셔도, 예수님께서 아무리 권세 있는 교훈을 말씀하셔도,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오셔서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큰 권능으로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셨고, 권세 있고 감동적인 말씀을 전하셨으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위대한 설교자가 말씀을 선포해도, 아무리 놀라운 이적이 나타나도 믿지 않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거나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을까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음이 그렇게 자랄 줄을 모를까요?
예수님을 잡으러갔던 사람들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고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더 이상 뇌둘 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잡아오도록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32절)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는 말씀을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도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았으며, 예수님에게서 신적인 권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지 못한 채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44절)
이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왜 그냥 돌아왔느냐고 추궁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46절)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신적인 권위와 백성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꼈습니다. 자기들의 상관들인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게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고,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왔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편견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고 그냥 돌아온 하속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47-49)
바리새인들은 하속들이 예수님의 잘못된 말에 미혹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아니면서 어떻게 함부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이냐?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권위는 오직 우리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너희들은 율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혹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하속들을 의도적으로 멸시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추종하는 무리를 비난하며 저주했습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49)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라는 그 사람을 추종하는 것은 율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율법도 모르고 또 지질이도 가난한 자들인데, 그것은 곧 그들은 저주받은 자들임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나 예수라는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인데, 너희도 그런 저속한 갈릴리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니고데모의 항의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대단히 편파적이고 억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자세히 조사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정죄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만 했습니다. 일찍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50-51)
니고데모는 예리하게 바리새인들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율법은 재판에 대해서 분명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고와 피고의 말을 충분히 들은 후에 자세히 조사하고 따져본 후 공의롭게 판결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지금 율법에 완전히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다 의롭고 선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가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무조건 정죄하고 비난하며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과 선포하신 말씀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의 지적에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의 정당한 지적을 억눌렀습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52절) 바리새인들은 갈릴리를 무시했습니다. 그곳은 천한 곳이며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거기서 어떻게 선지자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비꼬았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갈릴리의 천하고 무식한 자들인데, 너도 그런 사람들처럼 예수라는 사람을 추종하기라도 하는 것이냐는 뜻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이적을 행하시고, 아무리 권세 있게 천국복음을 전하셔도,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활발하게 역사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 믿음은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왔는데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믿음이 그렇게 자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교만과 편견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대하는 바리새인들에게서 이러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 하나님을 올바르게 잘 섬기고 있다고 자부했고, 또 자기들만이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권세 있는 천국복음을 선포하셨을 때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만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나는 소망 없는 죄인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는 사실을 늘 겸손하게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가난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겸손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믿음이 잘 자랍니다.
바리새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에 대해 극단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갈릴리 사람들도 똑같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단지 가난한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지키는 일에 전념할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만일 바리새인들이 진정한 지도자들이었다면, 이러한 갈릴리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더 잘 돌보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가난한 것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한 갈릴리에서는 그 어떤 선한 것도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갈릴리에서는 선지자도 나올 수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은 믿음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와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어리석고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전통이나 신념도 얼마나 단순하고 편중되기 쉬운 것입니까? 편견을 깨드려야 합니다. 편견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여야 합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전통과 신념을 성경으로 점검하고 고쳐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보며 그 말씀 위에 나의 모든 것을 세워나갈 때 우리의 믿음은 잘 자라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말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고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신앙과 인격이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리기 위해서는 자아와 고집을 버리고 변화되기를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이 옳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믿음이 자라지도 못하고 은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숙되고 강한 믿음 갖기를 원하십니까? 풍성한 은혜를 받아 가슴이 뜨거워지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즉시 자아를 꺾어버리고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지금 자신을 돌아보면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즉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그 순간 당신의 가슴에 신령한 은혜가 충만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믿음이 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당신도 믿음이 잘 자라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만과 편견을 완전히 깨뜨리고 내버리십시오. 그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순종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 말씀이 나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말씀으로 나의 생각과 주장과 가치관과 인생철학을 점검하고 바로 세우도록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백배의 열매를 맺는 옥토에 비유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지켜 행함으로 믿음이 날로 자라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