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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당하신 주님 .....

마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274 추천 수 0 2010.10.07 15: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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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7:27-44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참사랑교회 2007·03·31

 

우리는 지난 주간까지 아가서를 묵상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인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의 관계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가서는 청춘 남녀의 순결하고 열렬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내용과 사용된 표현들은 다른 성경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 이런 책이 성경 속에 들어와 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가서를 자세히 묵상하다보면 그 아름답고 친밀하고 순결한 사랑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 주님과의 완전한 연합과 친밀한 교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 같은 자를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시는지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지속해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무한하신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주님
  

아가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아2:9) 신랑은 신부를 얼마나 사랑하며 그리워하던지 산과 작은 산을 단숨에 달려서 신부에게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단숨에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비슷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큰 차이도 있습니다. 아가서의 신랑은 사랑하는 신부를 만나서 달콤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신부이며, 그 신부와 함께 누릴 행복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늘 영광과 보좌를 떠나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온갖 멸시와 미움과 적대와 시기와 배신과 모욕과 조롱과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때 수많은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왕으로 환영하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러나 통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월요일에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어 있던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목요일 밤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끝난 후에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체포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다음 날인 금요일 아침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수도 없이 쓰러지시면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을 향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토요일이 지나고 주일 새벽에 주님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형이 결정됨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형을 언도받으신 후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하여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고 예수님을 심문한 후 사형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사람을 죽일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예수님을 이끌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를 접수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아무 죄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석방하겠다고 했으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이 거세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군중을 달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참혹한 채찍질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석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더욱 거세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마치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빌라도는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인들에게 인계되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조롱
  

오늘 본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조롱 받으시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의 조롱,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롱,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의 조롱입니다.
  

총독의 군병들, 즉 형의 집행을 맡은 로마 군인들은 총독 관저의 마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처형 장소인 갈보리까지 끌고 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한바탕 즐기고자 했습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27-31절)
  

그들은 주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혔습니다. 희롱을 마친 후에는 홍포를 벗기고 다시 옷을 입혔다. 이렇게 옷을 벗길 때마다 채찍에 맞아 찢어지고 터진 상처에 들러붙었던 옷이 떨어지면서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희롱을 당하시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 벗김을 당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수치입니까? 고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벌거벗김을 당할 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군병들이 주님께 홍포를 입힌 것은 주님이 왕이시라고 하신 것에 대한 조롱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주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이 가시는 인류가 타락한 이후에 즉시 뒤따라 들어 온 저주였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창3:17-18) 그런데 지금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로 인하여 인류에게 임했던 저주를 주님께서 대신 담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가시관을 주님의 머리에 씌웠을 때 못보다 더 날카로운 가시들이 주님의 머리를 찌르면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군인들은 또 갈대를 주님의 오른손에 들려 드렸는데, 이것은 왕 홀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에게 이렇게 분장을 시키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주님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자기의 홀을 빼앗겨 그것으로 맞으며 침 뱉음을 당한 왕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잔인하고 비열하게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고, 지극히 선하시고 아무 죄도 없으시며 거룩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을 묵묵히 당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나는 주님을 위하여 조롱과 모욕과 핍박과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조롱
  

로마 군병들은 희롱을 마친 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예수님을 끌고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치고 탈진된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까지 가셨습니다. 당시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까지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극도로 지치고 탈진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자꾸만 쓰러지셨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병들은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잡아다가 억지로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갈보리 언덕에 도착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조롱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39-40절)
  

예수님께서 실제로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던 장사치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당신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2:18)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유대인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요2:20) 요한은 이 말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21)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며, 따라서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비로소 성전이 예표했던 것, 즉 ‘임마누엘’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 성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되신 당신께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신성모독죄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이 말을 가지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여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를 범한 자라고, 허풍쟁이라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진정성은 철저히 무시된 채 사람들에게 왜곡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거기에 조롱까지 당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 모든 조롱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의 조롱
  

사람들이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할 때 대제사장들도 그들과 함께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41-42절)
  

예수님은 평소에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으며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 살려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유대인들은 없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까지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셨고, 수많은 무리가 그분을 추종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두려워했으며, 어떻게든 죽여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셨던 것을 상기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남들은 그렇게 잘도 고쳐주고 도와주더니 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꼼짝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니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던 모든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스스로 구원하고 내려온다면 믿겠다고 조롱했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실 수 없었던 이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의 조롱을 들으시면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보란 듯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하셨더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정하신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한 순간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 칼을 빼들고 휘둘렀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26:52-54)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고난과 수치와 조롱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만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조롱을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대제사장들의 이 조롱은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말이 되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 한 마디 말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난과 수치와 모욕과 조롱과 슬픔과 고통과 죽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실 수 없었던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나를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에 자기를 구원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원수들의 조롱이었으나 십자가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 말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하실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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