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880 추천 수 0 2010.10.07 15:06:56
.........
성경본문 : 요20:1-1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참사랑교회 2007·04·07

 

 Jean Paul égide Martini가 작곡한 ‘사랑의 기쁨’이라는 가곡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리스 가수 Nana Muoskouri가 감미롭게 부르는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에 애절함이 느껴집니다. 이 노래의 이름은 ‘사랑의 기쁨’이지만 사실은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환희가 넘치는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 날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기쁘고 소망이 넘치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천년 전 주님께서 부활하셨던 바로 그 날 아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소망도 같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절망에 빠졌으며,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셨으나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며 소망이며 사랑이었던 주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주님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있었으며, 주님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무덤에 갔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안식일 다음 날, 그러니까 주일이 되자 새벽 일찍 몇 명의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막16:1-3) 이 여자들은 무덤에서 천사를 만났으며, 천사는 그녀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오늘 본문에는 그 여자들 중에서 특히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16:9). 어떻게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을까요?
  

이 마리아는 막달라라는 마을에 살던 여자로서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귀신들에게 시달리던 형편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그 비참한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여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로 귀신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고,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했노라고 하면서 거기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주님과 그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8:2-3) 마리아는 그 후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막15:40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막달라 마리아도 거기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예수님의 12제자들과 다른 남자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 버렸는데, 이 여인은 십자가 곁에 남아서 주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가고 주님은 고독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서 주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시는 음성을 들었으며,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들을 보았으며,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따르던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십자가 곁에까지 주님을 따라왔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되는 곳까지 따라와서 마지막 장면까지 목격했습니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막15:46-47)
  

그러나 마리아의 발걸음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1절) 마리아는 그녀가 믿고 의지하며 따르던 주님께서 돌아가시자 슬픔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끝낼 수 없었고, 주님께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빈 무덤을 가장 먼저 발견했으며, 제자들에게 달려가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다시 빈 무덤으로 돌아와 혼자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조차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녀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는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3-7)
  

마리아의 말을 듣고 이른 아침에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모십시오.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두 제자의 주님을 향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제자들은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을 향해 달려가면서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들어가서 확인한 후에야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셨고 죄인들을 끝없이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주님께 모든 소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며 모든 소망을 걸었던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주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실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사랑하며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잊을 수 없었고 단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으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경과 같았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두움과 절망과 슬픔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9절)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는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신지 사흘이 되었고, 실제로 무덤이 비어 있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믿지 않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슬픔과 불신앙에 눈이 멀었던 마리아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지 못하여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빠져 있던 제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들의 모습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고 치명적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이 사실을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무덤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덤 밖에서 울고 또 울며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두 천사가 있었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12절) 마리아는 왜 우느냐고 묻는 천사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13절) 사실 천사들의 말은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는데 기뻐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울고 있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픔에 눈이 먼 마리아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주님을 잃어버리고, 믿음이 없어서 부활도 믿지 못한 채 슬픔에 깊이 빠져 있는 마리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 그분의 시신이라고 볼 수 없어서 더욱 슬퍼하던 마리아에게 얼마나 복되고 기쁜 일입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부활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슬픔에 눈이 멀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14절)
  

이 얼마나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마리아는 지금 자기와 말씀을 나누고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사랑하며 따르던 주님을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하고 예수님의 시신에 대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15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으면서 마리아는 바로 그 예수님께 주님의 시신에 대해서 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셨지만 믿지 못했던 마리아에게는 주님의 부활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절망과 슬픔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이 얼마나 어리석고 해로운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릴 때, 우리의 소망은 끊어지고 슬픔과 실망만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리아도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신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슬퍼하며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야!
  

주님께서는 이처럼 철저한 슬픔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평소에 그녀가 듣던 부드러운 음성이었습니다. 동산지기가 자기를 이렇게 부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드디어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로 거기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16절) 마리아의 기쁨과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녀를 부르신 이 한 마디가 마리아의 모든 슬픔과 불신앙과 절망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주님을 알아 본 마리아는 아마도 다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주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17하) 이 말씀은 주님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네가 나를 단단히 붙잡는다고 해서 나를 항상 네 곁에 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주님과 헤어져야만 한단 말입니까?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제부터 주님과의 교제는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를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다니면서 교제했는데, 그것은 매우 제한적이며 완전한 것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과 근본적이고 완전한 교제를 갖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면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신데 우리 마음 가운데 계셔서 언제나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을 통한 주님과의 교제야말로 근본적이고 완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직 믿음
  

그런데 오늘 우리도 마리아를 비롯한 여자들, 그리고 제자들과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고 철저한 절망과 슬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들을 위로하거나 회복시킬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믿지 못했습니다. 불신앙이 얼마나 무섭고 치명적인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과연 믿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하) 당신은 주님께서 지금 당신과 함께 계심을 믿고 있습니까?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고 진정한 평안과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당신을 위해 죽으신 주님, 지금도 곁에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감격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능하고 강한 손을 의지하고 주님을 위해 당신의 남은 생애를 헌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아침에 여전히 절망과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서 헤매고 있던 제자들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오셔서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처럼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말씀 없이는 생기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굳게 붙드십시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당신에게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4207 요한복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요8:31-36  이정원 목사  2010-10-07 3494
4206 요한복음 최후의 통첩 ..... 요8:21-30  이정원 목사  2010-10-07 2121
4205 누가복음 새 언약 ..... 눅22:14-20  이정원 목사  2010-10-07 2130
» 요한복음 부활하신 주님 ..... 요20:1-18  이정원 목사  2010-10-07 1880
4203 마태복음 조롱당하신 주님 ..... 마27:27-44  이정원 목사  2010-10-07 2277
4202 요한복음 세상의 빛 ..... 요8:12-20  이정원 목사  2010-10-07 2128
4201 요한복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 요8:1-11  이정원 목사  2010-10-07 3217
4200 요한복음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 ..... 요7:40-53  이정원 목사  2010-10-07 2318
4199 요한복음 생수의 강 ..... 요7:37-39  이정원 목사  2010-10-07 2552
4198 요한복음 하나님의 때와 사명 ..... 요7:25-36  이정원 목사  2010-10-07 2147
4197 요한복음 올바른 신앙 ..... 요7:19-24  이정원 목사  2010-10-07 2075
4196 요한복음 하나님의 뜻과 영광 ..... 요7:10-18  이정원 목사  2010-10-07 2283
4195 요한복음 세상에 사는 하나님 백성 ..... 요7:1-9  이정원 목사  2010-10-07 2052
4194 디모데전 하나님은 누구인가? 딤전6:11-19  정용섭 목사  2010-10-04 2720
4193 누가복음 우리의 주인은 한 분이다! 눅16:1-13  정용섭 목사  2010-10-04 1135
4192 디모데전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 딤전1:12-17  정용섭 목사  2010-10-04 2910
4191 잠언 시대와 소통하는 지혜로운 신앙인 잠2:1-12  김희헌 박사  2010-10-04 2395
4190 로마서 끊을 수 없는 사랑 롬8:34-39  강종수 목사  2010-10-03 2484
4189 디모데전 믿음의 선한 고백 딤전6:11-14  박순오 목사  2010-10-03 2409
4188 오바댜 유다의 지위회복 옵1:15-21  경한수 목사  2010-10-02 1982
4187 오바댜 에돔에 대한 경고 옵1:1-14  경한수 목사  2010-10-02 2666
4186 데살로전 우리가 매일 드리는 마음의 제사 살전5:16-18  조용기 목사  2010-10-02 1085
4185 잠언 네 마음을 지켜라 잠4:23  조용기 목사  2010-10-02 2677
4184 고린도후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가졌으니 고후4:7-12  조용기 목사  2010-10-02 2517
4183 누가복음 과부와 재판장 비유 눅18:1-8  조용기 목사  2010-10-02 3447
4182 요나 회개를 선포한 요나 욘3:1∼10  한태완 목사  2010-09-30 2544
4181 마태복음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마3:7∼12  곽선희 목사  2010-09-29 3967
4180 고린도전 성도의 영성 고전2:11-16  강종수 목사  2010-09-26 4370
4179 마태복음 하나님 나라의 세 단계(Dimensions of the Kingdom of God) 마11:2-5  박순오 목사  2010-09-26 2604
4178 마태복음 천국의 열쇠(7) 마16:13-20  김동호 목사  2010-09-25 2229
4177 마태복음 천국의 열쇠(6) 마16:13-20  김동호 목사  2010-09-25 2611
4176 고린도전 죽은 제사 고전10:20-22  강종수 목사  2010-09-19 2371
4175 마태복음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in Matthew) 마5:3-10  박순오 목사  2010-09-19 3494
4174 예레미야 기울어져 이제 막 쏟아지려는 끓는 가마 렘1:13-19  이정수 목사  2010-09-18 2616
4173 마가복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  이정수 목사  2010-09-18 347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