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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8:3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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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2007·04·28
오늘도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며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은혜 받고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참 제자가 되며,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며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죄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인격과 삶이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무엇이나 기도하는 것을 다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확인되고 체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실감나게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주제를 놓고 벌어진 치열한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1-3)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복되고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근거로 혈통을 내세웠습니다. 자신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볼 때 그들은 전혀 아브라함의 자손일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나 전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과 그에 합당한 행위로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정통성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그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일단은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셨습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37상)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족보가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많은 족보가 나오고 있으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가 다 자신들의 족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족보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일지 모르나, 그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는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에 대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37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8)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7:1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8:59)
유대인들은 정통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통성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과 율법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든 정통성은 전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통성은 믿음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을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볼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정통성보다 더 중요한 것
오늘 우리도 유대인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독교의 정통적인 신앙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신교 중에서도 가장 정통적인 장로교에 속해 있으며, 장로교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교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그리스도인들 보다 건전하고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저절로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자부하고 있는 이러한 정통성은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정통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들이었으며,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율법과 전통을 이어받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은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에서 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축복의 상속자들이라고 자부했으나 그들에게서는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 즉 축복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지만 실제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함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 안에는 주님의 말씀이 있을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상속받을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정통적인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도,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고 있습니까? 이런 성도라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 안에는 주님의 말씀이 있을 곳이 없다고 하셨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37절)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릴 때 나타내는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믿게 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해져서 말씀 전하는 자를 핍박하며 죽이려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믿게 된 사람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37-41)
반면에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이 찔리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7:54,57,58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도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찔리고 괴롭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하고 순종하기 전에는 마음이 편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며 참된 평안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신앙과 인격과 삶이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당신은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릴 때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고 순종하십니까, 아니면 마음이 강퍅해집니까?
주님을 영접했던 아브라함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아브라함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39-40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며 떠받들고 있던 아브라함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찾아가 그를 만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18장에 그 기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창18:1-5)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바로 성자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앞으로 1년 후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씀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실 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주님을 알아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피곤하고 모두가 쉬는 시간인 한낮에 찾아오신 그분을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소돔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여섯 번이나 반복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조카 롯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셔도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을 만나셨을 때 아브라함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오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사실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백성이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에 대한 상속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일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갖지 못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 백성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신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모든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 말씀을 굳게 붙잡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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