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8:52-59 |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참사랑교회 2007·05·20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3명은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성인으로 추앙하는 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성인으로 추앙하는 사람들도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거나 인류의 구주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야말로 큰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성인으로 추앙한다면 그분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결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구주로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얼마나 모순됩니까? 예수님을 성인으로 인정한다면 그분이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면서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셨다면, 그분이 어떻게 성인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거짓말쟁이가 아니면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추앙하면서 그분이 말씀하신 것, 즉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과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지 않는 것은 매우 모순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려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비난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예언된 대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던 치열하고 긴 논쟁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러한 특권을 독점적으로 누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믿음을 가진 성도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유대인들은 또 자기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의 아들을 믿지도 않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유대인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발끈하여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난했으며, 심지어는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48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한 이유
특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공격한 이유는 51절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하시자 유대인들은 다시 예수님은 귀신들린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이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52절)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큰 백성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2-3) 이 약속의 말씀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크게 번성할 것이며,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축복이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분노하며 흥분하여 도대체 이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 네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나 하느냐”(52-53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으며, 그분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가장 복된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귀신이 들려 미쳤다고 욕한 것입니다.
죽음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사람이 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도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할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죽음에 대한 오해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죽음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이 다하면 누구나 죽습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밖에도 또 다른 의미의 죽음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매장이 되거나 따돌림 당하는 것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왕따를 당한 학생들 중에서는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일도 간혹 있습니다. 왕따 자체가 또 하나의 죽음인 것입니다.
죽음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며, 가장 무서운 죽음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가 이렇게 단순히 숨을 쉬며 살아 있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소생되며, 날마다 하늘의 모든 신령한 은혜를 풍성히 공급받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기쁨과 만족, 참된 안식과 평안이 충만합니다. 믿는 자는 이렇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완전한 축복과 영광 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온전하고 영원히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단지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삶의 조건은 단연 돈과 지위입니다. 결혼 대상자에게 바라는 조건들을 들어보면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자녀들이 잘 풀리며, 좋은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전부로 여깁니다. 이런 조건들만 충족된다면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각이 없는 동물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았으나 살았다고 할 수 없으며, 인생이 끝나는 날에는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넘치는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8:22) 예수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생명을 얻게 될 것을 가리키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풍성한 삶, 영생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생명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현세의 삶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과연 누가 미친 것입니까? 과연 누가 비정상입니까?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현세의 삶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도 돈과 지위가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하늘로서 부어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아십니까? 날마다 그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여전히 만족하며 평안하고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며 평안하고 흔들림이 없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죽음
세상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죽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죽음과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완전히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본질적인 죽음,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으로써 육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벗어버리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에로 완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통과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서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죽을 때 그의 성화를 완성시키십니다. 그때 성도는 죄를 완전히 벗어버리게 됩니다. 육신의 연약함도 완전히 벗어버리게 됩니다. 완전하고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자가 죽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안 믿는 자가 죽을 때 그의 모든 소망은 완전히 끊어지게 됩니다. 더 이상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영원한 지옥형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단절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누렸던 하나님의 은총이 완전히 거두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오직 무서운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죽음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불행한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들이 죽기 전에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전한 영광과 축복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사는 동안 육신적인 삶에만 몰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본분을 따라 남은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특별히 안 믿는 사람들 전도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전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보다 크신 예수님
사람은 이렇게 누구나 죽습니다.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말을 지키는 자는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러면 네가 우리 조상 아브함보다 크냐?”라고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54절)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씀입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성경은 온 우주만물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홀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신다는 말씀은 얼마나 엄청나고 충격적입니까?
이 말씀은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격이시라는 뜻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모든 면에서 동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만물과 모든 민족과 모든 천사가 성자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부 하나님께서도 성자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십니다. 그러므로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격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네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크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54하)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58하)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영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55절)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계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이 말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뜻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나타내시는 놀라운 일들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목숨을 바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이며 친밀한 관계에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쩌다 전화 통화나 한 번씩 하거나, 간혹 만나서 안부나 물으면서 지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하루도 그를 보지 못하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한순간도 내 뜻대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그렇게 소홀히 하면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이 별로 느껴지지도 않는 삶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 당신을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습니까?
육신적인 삶에만 몰두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 들어가게 될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오직 그분만을 위해서 사십시오. 주님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절대적인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풍성하게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