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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는 본능입니다.
세상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아무리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강철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다급한 상황이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기독교인들만 하는게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도, 무신론자들도, 옛날 사람들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한수(定限水) 한사발 떠놓고 달에게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알라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은 성모(聖母)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은 조상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은 에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어떤 절대적인 힘에게 빕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밤이 되면 자고 싶어지는 것과 같이 기도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하며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2. '기도할 때에' 와 '기도 한다면'
기도는 본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다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한다면'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다 응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면 뭐가 되는 줄 알고 100일 기도, 작정기도, 점점 더 강도를 높여서 철야기도, 금식기도를 해 보지만, 응답은커녕 몸만 축낸 경험이 있는 사람 많을걸요.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마6:5) "너는 기도할 때에"(마6:6) "또 기도할 때에"(마6:7) 예수님은 '기도 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에'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즉 기도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를 누구에게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붓는다면' 그러면 가득 찰 것이다 - 사람들은 열심히 항아리에 물을 떠나르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항아리에 물을 '부을 때에' 먼저 항아리 뚜껑을 열어라 그러면 가득 찰 것이다. 물을 떠 나르는 것보다 항아리 뚜껑이 열렸는지 닫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3. 항아리 뚜껑을 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솨마, 테필라, 카다쉬라 부르는 세 종류의 기도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율법이나 전승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기도에 대해서도 철저하였습니다.
솨마 - 들으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저녁으로 했던 암송 기도.
테필라 - 자기의 소원을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아뢰었던 간청기도.
카다쉬 - 하나님을 거룩하고 신성하게 하는 주기도문과 유사한 기도.
이러한 기도는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처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형식만 남고 능력은 사라져 버린 마치 항아리 뚜껑이 덮여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기도의 사람들이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눅11:1)" 하고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덮인 항아리 뚜껑의 실체를 정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외식적인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4.외식하는 자
외식하는자란 한마디로 위선자라는 말입니다. -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를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 (표준새번역 마태복음15:7-10)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삶에 적용시킨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것으로 올무를 거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내 맘에 좋을대로 해놓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하나님의 심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들!
아이러니칼하게도 하나님의 일을 엄청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위선자들은 자기의 기도하는 것을 나팔 불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앞에서는 깜빡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든 들어가서 이 교회가 기도를 제대로 하는 교회인지 아닌지 강대상 뒤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강대상 뒤에 숨어서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면 성도들도 기도하고, 강대상 뒤가 깨긋하면 그 교회는 항아리 뚜껑이 닫힌 교회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6:6) ⓒ최용우
5. 중언부언하는 자
중언부언이란 횡설수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말하는데, 헬라어로 중언부언에 해당하는 '밧톨로게오'는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감동시키려고 말을 꾸며서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의 상대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공중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대상에서는 '교인'들 듣고 정신차리라고 설교 비슷한 기도를 하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장로는 강대상의 목사 들으라고 훈계 비슷한 기도를 하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방가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 식구들 귀에 듣기 좋은 기도를 합니다. 차라리 그런 경우는 '기도'가 아니고 '권면'(골3:16)이라고 해야 합니다.
새신자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 더듬더듬 헤매며 헸던 말을 반복하곤 하는 기도는 그래도 애교로 봐 줄 수 있지요. 또 다른 의미에서 주기도문을 뜻도 모르고 반복하여 외우는 것도 중언부언입니다. (바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심리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항아리 뚜껑 위에 쏟아내는 기도에 불과합니다. ⓒ최용우
6. 어떤 기도가 응답 받았을까?
'기도대장'이란 별명이 붙은 잘 나가는 장로님이 기도를 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을 지켜 운행하시는 아버지, 저와 우리교회에 큰 복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업이 잘되게 하셔서 헌금도 풍성하게 바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일날 다른 곳에 안가고 교회에서 온종일 봉사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주의 의로운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시니 주님께 영광 올립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복받은 나를 보고 주님을 믿겠다 하니 이 또한 주님께 모든 공로 올려 드립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아무도 없는 빈 예배당에 살짝 들어가 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먹이다가 누가 볼 새라 또 살짝 빠져나갑니다. 무엇을 기도했는지는 모릅니다. 잘 나가는 장로님의 기도는,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킨 '야베스의 기도'이고(눅18:10-12), 어떤 여집사님의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세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을까요? 여전히 사람들은 '야베스의 기도'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용우
7. 듣지 않는 기도
올바른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님께 전달하는데 있는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받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기적인 기도자들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7:7)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이런 성경구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구절은 애써 외면해버립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약4;2-43)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이사야1;11-15)
세상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아무리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강철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다급한 상황이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기독교인들만 하는게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도, 무신론자들도, 옛날 사람들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계속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한수(定限水) 한사발 떠놓고 달에게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알라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들은 성모(聖母)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은 조상의 이름으로, 어떤 사람은 에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어떤 절대적인 힘에게 빕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밤이 되면 자고 싶어지는 것과 같이 기도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하며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2. '기도할 때에' 와 '기도 한다면'
기도는 본능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다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한다면'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다 응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면 뭐가 되는 줄 알고 100일 기도, 작정기도, 점점 더 강도를 높여서 철야기도, 금식기도를 해 보지만, 응답은커녕 몸만 축낸 경험이 있는 사람 많을걸요.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마6:5) "너는 기도할 때에"(마6:6) "또 기도할 때에"(마6:7) 예수님은 '기도 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에'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즉 기도를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를 누구에게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붓는다면' 그러면 가득 찰 것이다 - 사람들은 열심히 항아리에 물을 떠나르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항아리에 물을 '부을 때에' 먼저 항아리 뚜껑을 열어라 그러면 가득 찰 것이다. 물을 떠 나르는 것보다 항아리 뚜껑이 열렸는지 닫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3. 항아리 뚜껑을 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솨마, 테필라, 카다쉬라 부르는 세 종류의 기도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율법이나 전승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기도에 대해서도 철저하였습니다.
솨마 - 들으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저녁으로 했던 암송 기도.
테필라 - 자기의 소원을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아뢰었던 간청기도.
카다쉬 - 하나님을 거룩하고 신성하게 하는 주기도문과 유사한 기도.
이러한 기도는 오랫동안 반복되면서 처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형식만 남고 능력은 사라져 버린 마치 항아리 뚜껑이 덮여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기도의 사람들이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눅11:1)" 하고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덮인 항아리 뚜껑의 실체를 정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외식적인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4.외식하는 자
외식하는자란 한마디로 위선자라는 말입니다. -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를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 (표준새번역 마태복음15:7-10)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삶에 적용시킨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것으로 올무를 거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내 맘에 좋을대로 해놓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하나님의 심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들!
아이러니칼하게도 하나님의 일을 엄청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위선자들은 자기의 기도하는 것을 나팔 불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앞에서는 깜빡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든 들어가서 이 교회가 기도를 제대로 하는 교회인지 아닌지 강대상 뒤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강대상 뒤에 숨어서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면 성도들도 기도하고, 강대상 뒤가 깨긋하면 그 교회는 항아리 뚜껑이 닫힌 교회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6:6) ⓒ최용우
5. 중언부언하는 자
중언부언이란 횡설수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말하는데, 헬라어로 중언부언에 해당하는 '밧톨로게오'는 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감동시키려고 말을 꾸며서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의 상대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공중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대상에서는 '교인'들 듣고 정신차리라고 설교 비슷한 기도를 하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장로는 강대상의 목사 들으라고 훈계 비슷한 기도를 하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방가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그 식구들 귀에 듣기 좋은 기도를 합니다. 차라리 그런 경우는 '기도'가 아니고 '권면'(골3:16)이라고 해야 합니다.
새신자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 더듬더듬 헤매며 헸던 말을 반복하곤 하는 기도는 그래도 애교로 봐 줄 수 있지요. 또 다른 의미에서 주기도문을 뜻도 모르고 반복하여 외우는 것도 중언부언입니다. (바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심리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항아리 뚜껑 위에 쏟아내는 기도에 불과합니다. ⓒ최용우
6. 어떤 기도가 응답 받았을까?
'기도대장'이란 별명이 붙은 잘 나가는 장로님이 기도를 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세상 만물을 지켜 운행하시는 아버지, 저와 우리교회에 큰 복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업이 잘되게 하셔서 헌금도 풍성하게 바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일날 다른 곳에 안가고 교회에서 온종일 봉사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주의 의로운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시니 주님께 영광 올립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복받은 나를 보고 주님을 믿겠다 하니 이 또한 주님께 모든 공로 올려 드립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아무도 없는 빈 예배당에 살짝 들어가 무슨 속상한 일이 있는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먹이다가 누가 볼 새라 또 살짝 빠져나갑니다. 무엇을 기도했는지는 모릅니다. 잘 나가는 장로님의 기도는,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킨 '야베스의 기도'이고(눅18:10-12), 어떤 여집사님의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세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을까요? 여전히 사람들은 '야베스의 기도'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용우
7. 듣지 않는 기도
올바른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하나님께 전달하는데 있는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받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기적인 기도자들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7:7)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이런 성경구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구절은 애써 외면해버립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약4;2-43)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이사야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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