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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12: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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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강함과 약함의 역설적 신비
본문/ 고후12:7-10
1. 들어가는 이야기
본문은 강한 것과 약한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깊은 영적 깨달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강한 것은 좋아하고, 약한 것은 싫어합니다. 바울 사도 역시 강한 것은 좋아하고 약한 것은 싫어하였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차 전도 여행 때 마가를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의 제안을 마가는 1차 전도 여행에서 중도 하차한 약한 사람임으로 데리고 갈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행16:36-41). 그리고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더욱 강한 전도 사역을 위하여 자신이 앓고 있는 육체적 질병(악한 눈병 혹은 악한 간질 발작)을 없이 하여 달라는 기도를 세 번이나 드렸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강한 전도 사역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걸림돌이 되는 자신의 악한 질병을 없이하여 달라는 기도를 세 번이나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셔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그의 기도를 물리치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여기서 강함과 약함 사이의 변증법적 역설과 신비를 깨닫고,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약할 그 때에 내가 참으로 강할 수 있도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그 때에 내 속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 수 있기 때문이라(고후12:9-10)고 하였습니다.
2. 약함이란 무엇인가?, 강함이란 무엇인가?
약함이란 무엇입니까? <보다 못한 것, 기대에 못 미치는 것, 표준에 미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약함이란 능율에 비하여 비 능율, 10에 비하여 9 이하, 더러움, 실패, 모자람, 뒷방 신세, 못난이, 어리석음, 병약함, 졸병, 밑바닥 인생, 너절함, 흉년, 꼴찌, 멍청이, 범죄, 치사함, 비열함, 어둠, 미련함, 노예, 악함, 마귀 사탄, 등등 무엇인가 부정적이고 별 볼일 없고 무시당하는 그런 것입니다.
강함이란 무엇입니까? <보다 좋은 것, 기대 이상의 것, 표준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함의 정 반대적인 이미지입니다. 밝음, 성공, 뛰어남, 건강함, 대장부다움, 넉넉함, 10에 비하여 11 이상, 지혜로움, 상류사회, 장군, 깨끗함, 아름다움, 자유인, 등등 무엇인가 긍정적이고 바람직하고 존경받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본질적으로 약함보다 강함을 좋아하는 존재입니다.
3. 약함과 강함의 변증법적 관계
약한 것을 싫어하고 강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人之常情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가족, 한 민족의 역사를 보면 이 세상에서의 약함과 강함은 상호 밀접한 역설적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함이 곧 강함이요, 강함이 곧 약함이라는 역설적 상관 관계입니다.
약함은 강함을 열망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약한 것들은 강함을 향하여 몸부림침으로 강함을 이루어갑니다. 그리고 강함은 더욱 강함을 열망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강한 것들은 더욱 강해지려는 강함 자체의 내부 모순으로 스스로 무너져내려 약함에 이릅니다. 花無十日紅 權不十年(열흘 피는 꽃이 없고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개인, 가정, 사회는 약함에서 강함이 나오며, 강함에서 약함이 나오는 역설적 상관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4. 약함과 강함의 역설을 초월하는 신비
바울 사도는 대단히 강하고 열성적인 사람입니다. 강한 사도 바울 역시 이 세상의 약함과 강함의 역설적 상관 관계에 매여 더욱 강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강해지기 위하여 자신 속에 있는 <사단의 가시>를 없이하여 주시기를 세 번이나 간구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바울 사도의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백 번 들어주셔야 할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마땅하고도 당연한 사도 바울의 이 기도를 기각하셨습니다. 왜 기각하셨을까?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약함과 강함의 역설적 상관 관계를 초월한 진정한 강함에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의 기도를 기각하신 것입니다(사55:8-9).
그 영원한 강함, 그 신비한 강함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12:9>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강함에서 약함에로 무너져 내리는 강함 아닌 영원한 강함에로의 길은 내 자신 자체가 실존적으로 진정으로 약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속속들이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을 붙드는 그 때, 그런 나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강함이 바로 영원한 강함입니다.
태풍의 중심은 고요합니다. 비어 있습니다. 지극히 약합니다. 그런데 그 태풍 중심 지름의 장단에 따라 태풍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내 중심이 강하면 나는 약합니다. 내 중심이 약하면 나는 강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어리석은 종을 불쌍히 여기시사 영원한 강함에 이르는 <텅 빈 충만>의 문을 활짝 열어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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