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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4: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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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하나님은 영이시라
본문/ 요4:20-26
1. 들어가는 이야기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 요한일서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유명한 문장이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 둘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 셋째는 하나님은 영이시라(요4:24)는 말씀입니다. 지난 두 주일 동안 빛이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드렸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는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본문 연구
본문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나눈 대화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모든 것이 밝혀진다고 합니다마는, 제가 당장 궁금한 것은 우리 조상들은 사마리아 산에서 드리는 예배가 옳다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가 옳다고 하는데 도대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정통성을 따진다면 유대인의 말이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사마리아 산에서 드리는 예배,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 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곧 네가 말한 메시아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사마리아에서 드리는 예배인가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인가 하는 장소, 형식, 정통성, 등이 문제가 아니라 예배 드리는 자의 마음이 신령과 진정의 마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s(NIV)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라” 는 말씀에 대한 해석 문제입니다. “신령(프뉴마)과 진정(알레세이아)” 이라는 말을 예배 드리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고 읽으면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신약성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요한복음서 기자의 원문 뜻은 신령에 해당하는 희랍어 “프뉴마”, 진정에 해당하는 “알레세이아” 라는 말은 사람의 진정과 사람의 신령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프뉴마=영=정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알레세이아=진리=계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라” 는 말은 예배 드리는 사람의 지극 정성을 모은 마음 태도가 아니라 예배 드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을 받아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계시=말씀=진리)을 깨달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라는 말입니다(참고: 류형기, 성서주해 3권 830쪽, 킷텔단권 원어사잔, 요단출판사, 43쪽).
3.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무슨 뜻인가?
첫째. 진정한 예배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아바=아빠 아버지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율법의 아버지, 엄격한 아버지, 심판의 아버지,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라 돌아 온 탕자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악한 자에게도 선한 자에게도 늦은 비, 이른 비를 내려주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아버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주는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는 그런 아버지로 믿고 모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의무적으로, 마지 못 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정말 기뻐서, 정말 고마워서, 정말 존경해서, 정말 이런 아버지를 모셨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둘째. 진정한 예배는 예수님처럼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마음 자세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육체를 가진 사람인지라 죽음이 두려우셨습니다. 예수님도 죽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뜻=육체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셨습니다. 왜? 결국에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것은 나의 뜻=육체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나의 뜻을 이루어 주옵소서 라고 새벽마다, 밤을 꼴딱 새우며 나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는 것입니다.
셋째. 진정한 예배는 예수님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수전절, 수장절, 안식일, 등 규정된 종교 일정에 따fms 예배뿐 아니라 평소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렸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앞서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렸습니다. 새벽 미명에 들판에서, 날 저문 바닷가에서, 높은 산에 올라 밤 새워 날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려져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기 위하여 높이 오르려고 하는 숭고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은 평범하고 진실합니다. 장밋빛으로 요란을 떨며 치장하지 않습니다. 멋진 외모, 용맹한 기사도 정신, 드라마틱한 모험적 사건도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열열한 환호와 칭찬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매일매일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정성을 쏟으며 살아갑니다. 현재에 순간에 평범한 사소한 일에 지극 정성을 다 합니다. 그 가운데 저 태초의 원초적 창조의 빛이 충만히 임재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랄프 왈도우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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