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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에 넘치는 위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4602 추천 수 0 2010.10.17 08:37:22
.........

성령님에 대한 헬라어 원어는 '파라클레테'입니다. 그 뜻은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위로의 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위로의 영이라고 할 때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을까요?

1. 성령께서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하나는 하나님과의 평화(peace with God)입니다.
2) 또 하나는 하나님의 평화(peace of God)입니다.
이 이중적 의미의 평화를 의미하는 성경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쉼'은 하나님과의 평화, 즉 1)번의 평화를 말합니다. 이 평화는 죄의 문제를 처리하지 못한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와서 죄의 문제를 처리했을 때 받아 누리게 되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평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을 보십시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여기에서 말하는 '쉼'은 하나님의 평화, 즉 2)번의 평화를 말합니다. 이 평화는 나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성령의 가르치심에 전적으로 따를 때 받아 누리게 되는 평화를 말합니다.

여러분! 1)번의 평화에서 2)번의 평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함을 잊지 마십시오.
1) 하나는 '주님의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멍에를 매지 않고 얻는 축복은 기복주의요,
주님께 매이지 않은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그런 가짜 축복은 아니 받는 것이 좋았을 뻔한 사람도 많이 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그 변장된 축복에 넘어지고 타락하고 있습니까?
또한 '주님에게서 배움'이 없이 얻는 축복도 기복주의요,
그 축복은 신기루와 같은 축복입니다.
그 축복의 생명이 너무 너무 짧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잘 매고, 주님에게서 그 인격을 잘 배워서
2)번의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십시오.

2. 성령님을 '위로의 영'이라고 할 때 내포된 뜻은 성령님이 기쁨을 가져다주시는 '기쁨과 희락의 영'이라는 말입니다. 기쁨! 흔한 단어이지만 깊은 차원의 단어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그런데 이 기쁨은 세상적인 어떤 기쁨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기쁨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이 기쁨은 주위 환경과 전혀 상관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선천적 본성과 전혀 상관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후천적 성격이나 기질과 전혀 상관없는 기쁨으로 본성 아래에 자리하는 샘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기쁨입니다.

3. 성령님을 '위로의 영'이라 할 때 내포하는 있는 뜻은 말 그대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언제 성령님의 위로하시는 사역이 가장 잘 드러납니까? 이 성령의 사역이 가장 잘 나타나는 때는 고통과 시험의 시간에서입니다. 영혼을 위로하시는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인격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바로 이 고통과 시험의 때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시험과 위로는 정비례합니다. 그래서 성령님 안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시험과 기쁨이 은혜로운 평형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모든 어려움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전조입니다. 모든 시험의 때는 가장 놀라운 기쁨이 넘치는 때로 변화됩니다. 그 슬픔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 슬픔은 곧 어떤 빛보다도 찬란한 빛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어둠은 우리에게 그 빛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낮에는 결코 그 빛의 세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절망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도, 우리의 감정이 도저히 기쁨을 의식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위로의 성령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기뻐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계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계산한다'는 용어는 시적인 용어나 감정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냉철하고 정확한 셈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계산서 위쪽에는 슬픔, 유혹, 난관, 반대 좌절, 버림받음, 위험, 낙심 등이 채워지겠지만 계산서 아래쪽에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보상이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냉철히 다 계산해 보십시오. 절대 적자가 아닙니다. 항상 흑자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항상 흑자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빚이 없는 교회를 꿈꾸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유도 아닌 그 빛 때문에 교회건물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적자가 절대 없는 교회 및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우리의 계산서에는 항상 플러스가 표기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이 구절을 냉철하게 계산해 보십시오.

'환난의 경한 것' +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은 흑자일까요? 적자일까요? 계산 결과는 '큰 기쁨'이라는 흑자가 될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와 같은 방법이 성령님 안에서 기쁨을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주어진 환경은 기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령님이 함께 함을 염두에 두고 계산해 볼 때, 즉 믿음의 계산을 할 때 우리의 삶은 결코 적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적인 마음자세를 가지고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그처럼 환경과 감정을 넘어선 기쁨을 가질 때 성령님은 우리의 상처 입은 감정을 회복시켜 줄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회복의 은총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의 성령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항상 성령님과 동행하며 삶의 기쁨 가운데 승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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