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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핑계를 대는 인간

창세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152 추천 수 0 2010.10.25 13: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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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7-2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원죄의 결과 인간에게 네 가지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아담이 처음 하와를 보았을 때 고백했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상대가 생겼음에도 어떤 경쟁도 없었습니다. 참 행복이 있었습니다.
상대가 생기면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십시오.
상대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여당은 "저 야당 없어졌으면..." 하고, 야당은 "저 여당 없어졌으면..." 합니다.
그러나 없어져 보십시오. 잠시 편하지만 삶의 발전도 없고, 삶의 보람도 없습니다.

상대의 존재 속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런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선악과 따먹은 것을 추궁하자 아담은 "저 여자 때문에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과의 단절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인류 최초의 연인이었습니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했던 연인이었습니다. 이 지구상에 오직 그들뿐이라서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그 연인관계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인간관계가 허약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사람에 대한 환상,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환상을 깨십시오. 우리의 관계는 아담과 하와의 관계보다 훨씬 더 잘 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부부관계가 온전해질 수 있는 방법은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일심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죄악의 치명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환경과의 단절까지 경험해야 했습니다. 환경과의 단절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 인간은 환경을 핑계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와가 뭐라고 핑계댑니까?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3절) 하와는 자신의 죄가 뱀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은 항상 핑계를 댑니다. 지금도 하와처럼 '때문에...'라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었지? 선악과를 만들지 말지."라고 말합니다. 선악과 때문에 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 때문에 죄를 저질렀다는 말이니 얼마나 무서운 핑계입니까?

 

오늘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나중에 핑계를 댑니다. "내가 편모슬하에 자라서 그랬어요. 가난이 한이 되어서 그랬어요. 과거에 받은 상처가 많아서 그랬으니까 이해하세요." 더 나아가 "세상이 더러워서, 사회가 부조리가 많아서.."라고 핑계대기도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 특히 심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이 뭐라고 합니까? "환경이 나빠서 그렇다" 혹은 "사회환경이 나빠서 그렇다"고 합니다. 물론 환경을 잘 만들어 주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 원인일까요?

 

사회학이나 심리학의 대부분이 무신론에서 시작됩니다. 그 학문의 연구 방법부터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들이 스스로 모여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사회학입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가 범죄를 해도 다 환경이 그래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스릴 수 없게 됩니다. 다 환경과 관계되는 것이니 누구를 처벌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었거든 환경을 탓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탓하고 싶은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어야지 환경이 인간을 좌우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존재가 되면 안됩니다. 환경 핑계를 대는 사람은 환경을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환경을 뚫기보다는 환경에 동화되기를 편하게 생각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더 공부하여 분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공부방이 없다" 또는 "과외를 못했다"고 하면 발전이 있겠습니까? 사실상 공부방이 없어도 일등 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은 어떤 연유입니까? 환경이 나쁘면 환경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기도하고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사람이지 환경과 동화된다면 물질이 아니겠습니까? 물질은 환경에 오염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려라 정복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자꾸 담배를 피우라고 유혹해서 피웠다는 소리를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것은 핑계입니다. 그런 유혹이 없는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 땅 위에 유혹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환경을 핑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죄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환경을 핑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가정을 변화시켜 나가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나의 가정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나는 이 가정의 태양이 되리라!"고 다짐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만들어 나가면 반드시 가정을 밝힐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어. 저 여자가 저렇게 드세니..."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상대가 거세게 나올 때 나도 거세게 나오면 폭발하여 싸움만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거세게 나올 때 친절하게 대답하면 분노를 쉬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핑계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극복하는 길을 찾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환경이 인간을 거역하게 되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즉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여섯 번째 날에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복을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그래서 자연만물은 원래 인간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 에덴동산에서는 정말 그랬습니다.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는 부드럽고 조화로운 질서의 관계였습니다. 자연은 도저히 인간에게 항명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자연이 태풍을 일으켜서 인간을 수백 명을 죽인다는 사건들은 에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사실도 에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장미가 가시로 사람을 찌르는 것도 에덴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연환경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서 자연환경으로부터 역풍이 몰아치게 되었고 인간은 그 바람에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자연과의 관계까지 단절되었으니 죄의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입니까? .

오늘날 사람의 가는 길이 막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막힌 것을 뚫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표시는 죄를 범했을 때 더러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죄에 처해도 더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치 돼지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 더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와 죄인의 차이는 죄를 지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죄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다르다는 점이 그들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연약함으로 죄에 미끄러져 들어가긴 하지만 죄를 혐오합니다. 그러나 죄인은 죄 가운데 뛰어들어 그 죄를 즐깁니다. 성도가 죄를 짓고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이 더 이상 따뜻한 음성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심령의 전에 불빛이 꺼지기 시작하고 온기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범죄했다고 해서 구원을 상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를 하면 구원이 주는 기쁨을 상실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일로 회개하면서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소서."(시 51:12)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가 알고 싶습니까? 간단한 방법으로 여러분들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가 여부를 보면 됩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를 다시 복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그것 외에는 어느 누구도 당신의 기쁨을 손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쁨의 원천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빼앗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성도가 기쁨을 상실한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지만 구원받았어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단된 사람 역시 불쌍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 그 죄를 즐길 수는 없게 만드셨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항상 죄를 멀리하여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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