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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촛대 교회

요한계시 김창인 목사............... 조회 수 2584 추천 수 0 2010.10.29 18: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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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2:1∼7 
설교자 : 김창인 목사 
참고 : 광성교회 - 김창인 목사 제2설교집 -천국의배달부/모퉁이돌 에서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약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 2 : 1∼5>

로마 정부가 사도 요한에게 핍박을 가하는 중 그를 죽이는 대신에 지중해 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섬 ‘밧모’라 하는 곳에 정배를 보냈습니다. 그때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면서 전 세계 교회를 지도하고 있던 때입니다. 정배 가서 어느 주일을 맞이했는데 사도 요한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위틈에 엎드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늘나라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 쓴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 여러 환상 중의 하나가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으신 예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환상의 뜻을 알 수 없어서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해석해 주시는 말씀이 일곱 별은 일곱 교회에 보낸 사자요,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일곱 교회 중 첫째 교회가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 에베소 교회를 비롯하여 일곱 교회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주님 재림하시는 날까지의 시대를 상징하는 교회라고 해석하는 학자가 많습니다. 저도 그 해석을 가장 좋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는 실제적인 에베소에 있는 교회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의미합니다. 또 금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고, 금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믿음으로 되어진 교회라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여진 단체가 아니면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세워진 교회, 믿음으로 성장하는 교회, 믿음으로 일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는 촛대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 촛대 교회는 어떤 교회를 의미하는 지를 상고해 보겠습니다.

 

I. 인정받는 교회(1∼3절)

 

1) 주님의 인정(1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시록 1장 20절에 보면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경 신학자는 해석하기를 이것은 일곱 교회를 지키는 수호천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만약 천사를 가리켰다면 일곱 교회 중에 에베소 교회 사자에게 편지한다 하였으니 그러면 예수께서 천사에게 편지한다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그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를 맡아서 일하고 있는 주의 종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들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붙잡혔다는 뜻입니다. 주의 종이 오른손에 붙잡혔다 하는 뜻은 주의 종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손에 붙잡혀서 주님 시키는 대로해야 됩니다.

둘째로 주님의 종의 인사권은 주님의 손에 있고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오라 하면 오고 쫓아버리면 쫓겨가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라 하면 가고 주님이 오라 하면 오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금 촛대 사이를 다니면서 잘 감찰하십니다. 교회와 교회 사이를 다니시면서 보살펴 주시고, 지켜주시고, 모든 것을 후히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가장 귀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 사회가 우리 교회를 인정 안 해준다 해서 겁낼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 인정받으면 교회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사람들이 다 인정한다 해도 주님께서 인정 못한다 하면 그 교회는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인정받는 교회여야 됩니다. 동네 사람들한테 이런 칭찬 저런 칭찬 다 받는다 해도 정작 인정받아야 할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가 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한테 인정받아야 할 남편이 처자식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인정을 마땅히 받아야 할 분에게서 인정받을 때에 행복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인정받아야 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인정하시던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오셔서 우리 교회를 인정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 신앙의 인정(2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주님께서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네 행위를 안다는 것입니다. 무슨 행위입니까? 믿음의 행위입니다. 네 수고를 안다고 했습니다. 무슨 수고입니까? 믿음의 수고입니다. 네 인내를 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인내입니까? 믿고 참아 나가는 인내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상징한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믿음의 행위는 과연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모였다 하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났다 하면 성경공부 했습니다. 성경공부가 끝났다 하면 흩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흩어져서 전도했습니다. 전도가 끝났다 하면 하나님과 사회를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하나하나 보고,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정받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우리들의 믿음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저와 일주일 중 낮에 한 시간 혹은 저녁에 두 시간만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강단에서 여러분들에게 천사노릇 한 두 시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내 가정식구는 못 속입니다. 내가 내 처자식들을 어떻게 속일 수 있습니까? 항상 같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처자식이 내 믿음을 인정해주면 내 믿음은 진짜입니다. 그러나 내 처자식이라고 해서 24시간 같이 있습니까? 저를 24시간 계속 지켜보고만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심지어는 처자식도 속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24시간 못 속일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내가 네 믿음의 수고, 믿음의 행위, 믿음의 인내를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인정해주는 교회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복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3) 봉사의 인정(3절)

“또 내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첫째는 참고, 둘째는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셋째는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안다, 즉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봉사, 즉 섬긴다는 얘기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역사가 오래된 교회가 아닙니다. 복음이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거의 첫 믿음입니다. 부부가 함께 나오는 교인이 별로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나오는 교인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교회 나간다고 남편에게 온갖 학대를 다 받고, 며느리가 교회 나오다 보니 시어머니에게 온갖 학대를 다 받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학대받을지라도 참고, 네가 내 이름을 위해서 핍박을 받을 지라도 견디어 내고, 그리하고도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봉사하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온갖 시중 다 들어주면서 며느리에게 나가서 봉사하라 할 때 그것마저 못한다면 믿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온갖 뒷바라지 다 해주며 나가 봉사하라 할 때 안 한다면 믿음은 끝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온갖 핍박과 괴로움 속에서도 참고 견디어 내면서 부지런히 봉사하였고, 그것을 주님이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핍박 중에 하는 봉사야말로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봉사요, 우리가 인정받아야 할 봉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주님의 인정, 신앙의 인정, 봉사의 인정을 말합니다.

 

II. 갱신하는 교회(4∼5절)

 

천주교로부터 우리 신교가 개혁 한 지 500년이 되었습니다. 개신교라 할 때 ‘개신’이라는 말은 고칠 “改”자에 새“新”자입니다. 즉 계속 새롭게 고쳐나가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천주교로부터 한 번 교회를 개혁한 다음 그것으로 끝나버리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송장이 되어 버립니다. 교회는 자꾸 새롭게 개선해 나가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라고 합니다.

전에 우리교회 헌신예배에 말씀을 전하러 오셨던 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군인 시절에는 간첩 잡는 전문가였습니다. 셰퍼드를 훈련시키고 부리는데 아무리 사나운 개도 손가락질 몇 번하고 툭툭 치 면 꼬리를 흔들며 쫓아올 정도로 개 훈련을 잘 시키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간첩 냄새만 맡았다 하면 기가 막히게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냇물이 흐르는 데서는 못 찾아간다고 합니다. 도무지 냄새를 못 맡습니다. 그래서 간첩들은 냇물 있는 데 가서는 한참 내려가다 건너가거나, 거슬러 올라가다 건너갑니다. 바로 건너가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이 직감으로 위치를 대량 잡아주면 개가 다시 냄새를 찾아간다고 합니다. 개가 어떻게 냄새를 알아내는가 하면 사람에게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늘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떨어진답니다. 그것은 우리 세포가 죽어서 떨어지는 것인데 개가 세포냄새를 맡고 쫓아갈 재간이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비늘이 그토록 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죽어 떨어지면 한편으론 계속 새로운 세포가 형성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육신은 계속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칠 년만 되면 완전히 뒤바뀌어 전혀 다른 살이 되어 집니다. 그래서 완전히 새 것이 됩니다. 계속해서 한편으론 죽어 나가고 한편으론 새롭게 되는 것이 멈추어 지는 날 그 사람은 죽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특징은 내 모습은 그대로 지니면서 바뀌어 집니다. 칠 년 됐다고 그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습은 갱신해 나가야 하는 데 이 갱신은 먼저 책망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문은 가르칩니다.

1) 책망 받고 갱신(4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아니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렇게 칭찬을 많이 하고 좋은 점이 많았는데 책망할 것이 있을 때는 가차없이 책망하셨습니다. 미워서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나를 책망해 준다면 그만큼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책망할 일이 있는데도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면 그것은 관심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누가 나를 책망하면 그건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키워준다는 뜻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을 8년이나 지낸 마경일 목사님께 졸업반 학생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은 목사님에게 약혼식 주례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잘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자기가 이화여고 졸업생이라고 소개하면서, 학생시절에 어떻게 선생님들을 골탕먹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수업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해서 수업분위기를 망쳐놓기도 하고, 말썽은 혼자 다 부렸다는 것입니다. 마경일 목사님도 전 이화여고 교목실장을 3년 했기 때문에 그 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 여학생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흐려지고 맙니다. 한 달 두 달 지켜보다가 마목사님이 하루는 그 여학생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지적해서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얼굴을 못 들 정도로 책망했습니다. 결국 그 여학생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 후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후 목사님은 이화여대 교목실장으로 가게 되고 그 일을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여학생이 약혼식 주례를 부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목사님, 그 때 책망하실 때에는 너무너무 괴로웠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목사님처럼 고마운 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흉만 보았지 그렇게 따끔하게 책망해 주신 분이 없었는데, 정말 목사님 덕분에 공부해서 이화여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저를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이화여대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예요”했답니다. 성도 여러분, 책망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갱신은 시작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회개하고 갱신(5상반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생각 없이 회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이 통성 기도하면서 울며 회개하니까 그냥 같이 실컷 울다가 내가 무슨 회개를 했는지도 모르는 그런 회개는 백 번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내 감정에 북받쳐 운 것뿐이지 냉정하게 생각해보고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압니다. 한 곳에 부자가 있었는데 아들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순종을 잘 하는데 작은아들은 문제아입니다. 돌아 가시지도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자꾸만 졸라서 결국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유산을 가지고 멀리 아버지를 떠나 타국으로 갔으니 얼마나 자유롭고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품을 떠나 누리는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누리는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닙니다. 엄청난 돈으로 창기와 더불어 먹고 놀아날 때 친구들이 모여들었는데 전부 돈보고 모여드는 친구들입니다. 돈 때문에 사귀어지는 친구는 참 친구가 아닙니다. 돈이 바닥이 날 때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흉년이 듭니다. 결국 양돈업자에게 취직을 했지만 월급은 고사하고 끼니조차 못 먹을 정도입니다. 그 때 탕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울고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남이 우니까 운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북받쳐 운 것 이 아닙니다.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 지나온 날에 자기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즉 과거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둘째, 현재 내가 왜 이렇게 비참해졌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셋째,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살 길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가 옛날의 지위를 되찾게 된 것입니다. “생각하고 회개하며!”란 말씀은 회개할 때에 하나하나 정확히 생각하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지향해 나가면서 회개해야 그것이 참 회개요, 참으로 이루어지는 갱신이라는 말입니다.

3) 제 모습을 찾는 갱신(5하반절)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처음 행위를 가지라, 네가 앓은 첫사랑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처음 에베소 교회가 개척되고 모일 때는 굉장히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지나다 보니 그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의 실제적인 문제였고 영적으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에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많은 헌금을 바쳐서 구제하면서 얼마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구제 보따리가 문제가 되어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간에 싸움이 생겨 결국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구제 보따리가 사랑 보따리가 아니라 싸움 보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에서 구제하는 것은 좋긴 하지만 때로는 구제가 큰 문제가 될 때가 있습니다. 구제 받고 크는 교인은 항상 받을 줄만 압니다. 자기가 잘되고도 받을 줄만 알뿐 하나님 앞에 바칠 줄은 모릅니다. 구제를 받으려고 하지말고 하려고 하십시오. 구제하면서 큰 교인이 되어야지 구제 받고 크는 교인은 문제점이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제해주고 돈 몇 푼 주는 것이 참 사랑이 아니라 참 사랑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저의 경험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외삼촌의 전도를 받아 예수 믿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 외삼촌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되기까지 이것저것 좋은 것 많이 사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아무 것도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 믿고 목사가 되기까지 이끌어 주신 외삼촌의 공로만큼은 잊지를 못합니다. 나에게 사탕을 준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때는 그것이 더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지내놓고 보니 멸망당할 나에게 예수 믿도록 전도해서 목사 되게 해준 그 사랑에 비해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성전 미문에 앉아 한 푼, 두 푼 오고가는 사람에게 얻어야만 먹고사는 그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은 한 푼 주었다면 얼마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는 다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었더니 예수 이름으로 근본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쌀 한 가마 주고, 오 한 벌주는 것도 좋지만 그를 불쌍히 여겨 전도하여 그 영혼을 구원해 주는 것이야 말로 사랑 중의 사랑입니다. 교회가 가져야 할 첫 열심, 첫사랑은 바로 전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도록 갱신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III. 예수 닮는 교회(6∼7절)

 

1) 미워하시는 예수(6절)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예수님이 미워하는 것은 우리도 미워해야 됩니다. 이것이 예수 닮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우리도 가차없이, 용서 없이 미워하자 그 말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미워하시면 우리도 죄를 미워하고, 예수님이 마귀를 미워하시면 우리도 마귀를 미워하고, 반면에 예수님이 좋아하시면 내가 싫어도 좋아하는 이것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이 미워하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교회였는데 이것을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니골라당의 행위가 무엇입니까?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택할 때 맨 마지막에 택함 받은 집사가 니골라라고 하는 집사인데 안디옥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은혜를 받고 열심히 집사로 봉사했었는데 나중에는 유대교로 입교해 버렸습니다. 유대교회에서 패당을 만들어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훼방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세상에 이런 집사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그런 악한 행위를 그냥 보시겠습니까? 주님은 그런 행위를 미워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도 주님이 미워하는 그 당파의 행위를 미워했습니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죄, 주님이 미워하시는 악, 주님이 미워하시는 마귀, 우리도 함께 미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닮는 것입니다.

2) 말씀하시는 예수(7상반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제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성경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줘도 성령이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감동시켜 역사하지 않으면 귓전에도 성령이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감동시켜 역사하지 않으면 귓전에도 울리지 않습니다. 성령이 여러분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고, 뒤엎어 놓고 녹여 주실 때 그 말씀이 믿음의 양식이 되고, 영의 양식이 되어 예수님을 하나하나 닮아가게 됩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교회가 무엇입니까? 건물입니까? 아닙니다. 바고 교인들이 교회입니다. 성령이 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 목사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성령의 역사로 우리 마음에 받아들일 때에 예수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를 우리는 닮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3) 승리하시는 예수(7하반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세상을 이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 이후 인간으로서 세상을 이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을 이긴 사람은 예수님뿐입니다. 마귀를 이긴 사람, 죄를 이긴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 죄의 종이 되었고, 마귀의 종이 되어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내가 예수 편에 서면 예수님의 승리가 내 승리가 되고 예수님의 영광이 내 영광이 되고, 예수님의 온갖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정받는 교회, 갱신하는 교회, 예수 닮는 교회, 이것이 금년 우리의 세 가지 기도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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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7 룻기 보아스의 곡식제공 룻3:14∼15  박상훈 목사  2010-10-27 2187
4366 룻기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룻3:12∼13  박상훈 목사  2010-10-27 1597
4365 룻기 청혼수락 룻3:10∼11  박상훈 목사  2010-10-27 1832
4364 룻기 청혼 룻3:6∼9  박상훈 목사  2010-10-27 1774
4363 룻기 룻의 결혼을 위한 나오미의 작전 룻3:1∼5  박상훈 목사  2010-10-27 2588
4362 룻기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 룻2:20∼23  박상훈 목사  2010-10-27 1818
4361 룻기 일하고 돌아온 룻 룻2:17∼19  박상훈 목사  2010-10-27 1861
4360 룻기 식사 시간에 룻2:14∼16  박상훈 목사  2010-10-27 786
4359 룻기 보아스와 룻의 두번째 대화 룻2:11∼13  박상훈 목사  2010-10-27 4486
4358 룻기 보아스와 룻의 첫번째 대화 룻2:8∼10  박상훈 목사  2010-10-27 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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