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13:21-30 |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12·15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일까요? 아마도 정말 아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일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신자는 누구일까요? 로마 역사상 불후의 천재요 영웅이었던 카이사르는 그가 친 자식처럼 돌보아주었던 부르투스와 그 일당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쓰러지면서 했다는 카이사르의 말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부르투스, 너도냐!”
이보다 더 유명한 배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었고, 예수님에게도 큰 슬픔과 고통을 안겨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21절)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생각하셨을 때,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실 때 주님의 심정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비통했습니다. 요한은 그러한 주님의 심정을 “민망하셨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이유
그런데 가룟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신했을까요? 그는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따라서 변화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가룟 유다가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들었지만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이유는 돈에 대한 애착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본래 똑똑하고 셈이 빨라 제자공동체의 재정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29절)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 가룟 유다는 그 자리에서 즉시 향유의 값을 구체적으로 언급할 만큼 돈에 밝은 사람이었으며, 돈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비난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돈에서 얼마를 가로챌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깝고 분했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돈에 대한 욕심은 결국 예수님을 대제사장에 팔아넘기고 돈을 챙기는 데까지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이처럼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탐욕을 이기지 못하여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가룟 유다가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믿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자기 뜻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열심당은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 존재했던 한 분파인데, 로마의 지배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된 후 예수님의 생각은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자기의 생각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유다가 그렇게 했더라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뜻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에 부딪칠 때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말씀이 당신의 생각과 다릅니까? 설교를 들을 때 부딪치는 것이 있습니까? 겸손하게 자신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며, 우리의 신앙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인생의 목적과 내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단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만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고 풍요롭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씀을 진지하게 듣겠습니까?
그러나 진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떤 말씀이든지 한 마디도 그냥 흘려듣는 법이 없습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듣는지 모릅니다. 이런 성도가 어떻게 믿음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돈은 꼭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지나치면 돈은 우리를 멸망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보다 주님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하십시오. 내 뜻과 주장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십시오.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에게 진실된 믿음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믿음이 날마다 아름답고 견고하게 성장해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
예수님께서는 이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매우 고통스러워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이 배신자에게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로 이 가룟 유다가 나를 배신하고 팔려고 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없는 곳에서 “저 유다 때문에 내가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모르겠다. 저 자는 결국 나를 팔 사탄의 앞잡이야.”라고 욕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들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워있던 제자에게 그가 누구냐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23-24) 여기서 사랑하시는 자는 요한을 가리킵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그가 누구냐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어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26절) 당시 떡에 소스를 찍어서 주는 것은 특별한 애정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이렇게 하신 것을 보고도 제자들은 아무도 그가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다른 제자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끝까지 유다를 보호해주시며 그의 인격을 존중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유다를 공개적으로 지목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제자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유다를 비난했을 것입니다. 유대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억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대로 더욱 반발했을 것입니다. 혹시 유다가 회개했다 해도 그것은 강제적인 것이지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직 유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다른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가룟 유다 자신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나는 네 생각을 다 알고 있다. 너는 지금 가장 악하고 불행한 생각에 빠져 있다. 속히 그 생각을 버리고 돌이키도록 해라.” 주님께서는 유다가 스스로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유다만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결단은 유다 자신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주님께서는 나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남이 보는 앞에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어 공격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만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강력하고 노골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나의 가장 깊숙한 죄와 문제를 드러내시고 분명하게 도전하시고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회개를 거부함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가룟 유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끝까지 지극한 사랑을 보이시면서 유다의 양심에 호소하셨습니다. 떡에 소소를 찍어서 주시면서 “유다야, 너는 반드시 회개해야만 한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유다는 분명히 알아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떡에 소스를 찍어서 주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다는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배반하고 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이렇게 끝까지 사랑하시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십니까?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주시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유다가 이렇게 회개했더라면 그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갈등을 억누르고 회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태연히 예수님께서 건네주시는 떡 조각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27상) 이 순간이 유다의 운명을 가르고 말았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오직 나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나의 죄와 잘못을 지적하시며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수치스러운 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사랑입니까? 그러나 만일 우리가 유다처럼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서도 회개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매우 불행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 설교를 통해서 오직 나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를 버리고 돌이키라고 노골적이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치부와 추악한 죄를 드러내시지 않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주님 앞에 내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십니다. 유다가 마지막 기회를 거부했을 때 사탄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는 영원한 멸망으로 나아가고 말았습니다. 유다처럼 하지 말고 이 시간 결단하십시오. 주님께서 사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주실 것입니다. 나를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진정으로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주님께서는 요13장에서만 가룟 유다에게 4번이나 경고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10절)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1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2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26절)
그러나 유다는 주님의 경고를 무시했고 마지막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유다가 마지막 주님의 말씀을 거부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27하) 이 말씀은 마침내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버리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돌이키기를 거부하는 유다를 사탄에게 내어주셔서 이제는 정말 자기 맘대로 행동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유다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영원한 멸망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요한은 가룟 유다가 나갈 때 밤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30절)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그 시간이 밤이었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유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은 앞으로 유다의 앞에 전개될 운명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다는 이제 아무 소망도 없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이나 당신의 마음대로 하기를 좋아하십니까? 부모의 간절한 충고도 무시하고, 목사의 고민어린 권면도 무시하고, 심지어는 성령님의 간섭과 책망도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도 한 때는 아무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을 답답하고 야속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강하게 붙잡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자유요 은혜인 줄로 아십시오. 죄인인 우리가 자기 맘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곧 멸망길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자기 맘대로 살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목사의 권면을 달게 받아 순종하십시오.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어린 충고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자기 맘대로 살지 말고 돌이키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당신을 보호하시고 복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들었지만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자기의 뜻과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그 대가로 은 삼십을 받았습니다. 유다는 그렇게 더러운 돈을 받고서 시침을 떼고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만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노골적이고 분명하게 수차례나 경고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절했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사탄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는 결국 비참한 멸망의 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으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모든 것, 마음속 깊은 생각까지도 낱낱이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분명한 메시지로 나의 죄와 잘못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주시는 이 기회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힘입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용서하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