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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3:3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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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7·12·22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가 시골에 있는 어느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수업을 받고 있는 1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 지금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중 노란 옷을 입은 소녀와 저기 저 소년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천재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주신다면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교사는 이 유명한 교육학자의 말을 따라서 지극 정성으로 그 두 아이를 보살폈습니다. 그 결과 두 아이는 졸업할 때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에 감동한 교사는 그 교육학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육학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교사에게 보내왔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사실 그 두 아이는 제가 전혀 모르는 학생들입니다. 저는 다만 눈에 띄는 아이 두 명을 골라 선생님에게 부탁했을 뿐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사랑보다 우리의 삶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제 몇 시간 후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남겨두고 떠나실 것을 생각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안 계실 때 제자들을 지탱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줄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었습니다.
영광의 십자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전혀 눈치 챌 수 없었지만 유다만큼은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거듭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나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직감적으로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만찬을 마치신 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실 작정이셨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가룟 유다는 틀림없이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을 이끌고 그 곳으로 올 것이며, 거기서 주님은 그들에게 잡혀 십자가의 길로 가시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제 십자가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31-32절)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처형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란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단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당시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구원을 이루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지상에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예수님의 가장 큰 기쁨이었고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죄인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시는 것을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하여 성자 예수님만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도 영광을 얻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에 성자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 성부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영광을 얻으셨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께 영광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를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32절) 여기서 영광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인류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그 비참한 상태에 결코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고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올리사 처음의 영광을 회복시키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얼마나 확실히 믿으셨던지,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씀입니까?
가룟 유다는 끝까지 이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능력이 많으시고 못하실 일이 없으신 분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없이 죽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고, 지금 제자들에게 자랑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시 주실 것이며, 세상의 심판주로 세우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성자 예수님께 영광이었고, 성부 하나님께도 영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영광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아무 소망도 없었고,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영광중에 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도 영광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유언과 대책
예수님께서는 잠시 후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제자들을 떠나가시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오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길을 예수님과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내가 일찍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너희에게도 이르노라”(33절)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에게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유언을 남기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자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어떤 조직이나 처세술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주신 마지막 유언과 대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34-36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시는 것은 제자들에게 큰 위기이면서 동시에 큰 기회였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따라다녔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도 예수님께서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새롭게 열어주셔서 하나님 나라와 구원에 대해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엄청난 좌절과 절망과 공황상태에 빠질 것입니다. 그들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붙잡아주실 주님은 이제 안 계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스스로 좌절하여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비난하고 싸우다가 흩어져 버릴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 대책은 오직 사랑밖에는 없었습니다. 서로가 사랑으로 위로하며 붙들어주고 하나가 될 때, 제자들은 이 모든 위기를 이겨낼 수가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할 때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강하게 역사하실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세상에 그들의 선생님이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여주며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던 것입니다.
새 계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왜 새 계명일까요? 구약의 율법도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을 요약한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어떻게 새 계명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제부터 이 계명을 지키는 동기가 전혀 새롭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동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기가 새롭기 때문에 이 계명은 새 계명입니다. 이제부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특징은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선생이며 주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주장하시 않으시고 기꺼이 섬기셨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자들은 더 이상 높아지기를 다투지 말고 주님처럼 자기주장과 권리를 포기하면서 먼저 종이 되어 섬김으로써 서로 사랑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 계획을 가지고 있던 가룟 유다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제자들은 서로 사랑하되 상대방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약점이 많은 자들입니다. 그 약점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그 약점들을 비난하고 거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추악한 죄와 허물과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먼저 종이 되어 섬김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남의 약점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납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려면 우리는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서로를 탓하며 다투기를 잘합니다. 그렇게 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우리는 더욱 힘들고 불행해집니다. 특히 가까운 가족들끼리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끼리 함부로 대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용서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분명히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어려움을 당하면 과거의 일들까지 끄집어내서 서로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용서할 때 가장 유익을 얻는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신입니다. 용서는 서로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용서하면 나 자신이 살고, 자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웃이 함께 삽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바로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요즘 사회가 얼마나 힘들고 피곤합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인간관계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피를 말리는 것 같은 생존경쟁 속에서 압박을 받습니다. 그렇게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집에 들어옵니다. 아내는 어떻습니까? 집안일도 힘들지만 늘 밖에 있는 남편을 걱정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엇 하나 알아서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 돌보기가 더 피곤하고 힘듭니다. 아이들도 나름대로 공부와 경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사춘기까지 겹치면 감당할 수가 업습니다. 모두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긴장상태에 있습니다. 이럴 때 가족끼리 서로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서로 위로할 때 가정은 포근한 안식처가 됩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도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인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참아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약점과 성숙되지 못한 면과 부족한 점들을 참아주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참아주지 않고 비난하고 싫어한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은 참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비결
이 설교를 들으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성도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주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리라고 결단하곤 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용서하고 참아 주리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잘 되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런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 사랑은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마음에 은혜가 충만해져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고 녹아진 성도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으면 우리 마음이 넉넉해지고 너그러워집니다. 그러나 은혜가 메마르면 마음이 완악해지고 좁아집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늘 잊지 마십시오. 나 같은 죄인을 무조건적으로 무한정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더욱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 프란시스는 자신을 사랑의 도구로 써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형제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몇몇 성도들이 정성껏 돈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달라고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그것이 어려운 형제에게 전달될 때 그것은 형제에게 기도응답이 될 수 있고, 그를 어루만지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만듭니다.
직장과 일터에서 시달린 남편을 위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로 쓰임 받는 아내가 되시기 바랍니다. 늘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며 가정을 이끌어오느라고 지친 아내를 위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로 쓰임 받는 남편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더욱 참아주며 용서하고 위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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