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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요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4489 추천 수 0 2010.11.11 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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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9:1-7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요한복음 9장 1-7절)

< 볼 수 있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

 미국에 51년 동안 소경으로 지냈던 밥 이든스(Bob Edens)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세계는 소리와 냄새만 있는 암흑세계였는데 의술의 발달로 개안수술을 통해 마침내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보이는 세계에 압도당했습니다. “노란색이 저런 색이었구나! 내가 제일 좋아했던 빨간색이 저런 색이었구나!” 그는 달을 보고 감격했고, 제트기를 보고 감각했고 일출과 일물과 밤에 빛나는 별에 감격했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이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격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런 감격과 감사로 살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소경 된 사람보다는 낫고 성경의 욥보다는 낫습니다. 저도 힘들 때 욥을 읽으면서 “그래도 내가 이렇게 행복한 존재였구나!”라고 생각하며 깊이 감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 가는 가련한 존재와 같습니다. 살다 보면 상처받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상처당한 현대인’이란 말은 현대인의 삶을 잘 나타내줍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는 상처를 수반합니다. 그 상처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한’이 되어서 영적생활과 실제적 삶에 지장을 줍니다. 어떻게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영혼의 깊은 상처는 사람의 위로로 잘 아물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그 상처에 임해야 아물 수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이끌어 내려면 어떤 믿음이 필요할까요?

1. 미래 지향적인 믿음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나옵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것은 고난 중에 고난입니다. 세계가 밤의 세계와 낮의 세계로 이뤄졌다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절반의 세계를 영원히 잃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눈의 가치가 얼마나 큽니까? 눈은 육신의 등불입니다. 사람 가격이 천원이라면 눈의 가치는 오백 원쯤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처럼 귀한 육신의 등불이 꺼진 고난당하는 자 앞에서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2절).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 때문입니까? 자기 때문입니까? 부모 때문입니까?” 소경 앞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없이 신학적 논쟁을 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철이 없는 모습입니까? 심한 고난을 당하는 자 앞에서는 일단 언행부터 겸손해야 합니다. ‘불행의 원인 찾기’와 ‘탓 돌리기’는 대개 언어 폭행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조금 더 성경을 알고 조금 더 교회에 많이 나왔다고 해서 남의 고난을 쉽게 해석하고 쉽게 충고하지 마십시오. 그런 해석과 충고가 고난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고난당하는 자 앞에서는 침묵하며 몸과 마음으로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소경 앞에서 “그의 고난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신학적인 논쟁을 벌이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불손한 삶입니까?

 또한 제자들은 “부모 때문입니까?”라고 하며 과거로 고난의 원인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 식으로 과거를 들추다가 심지어는 ‘전생’까지 들먹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모습입니까? 그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사고체계에 혁명의 폭탄을 던지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제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 과거로 향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시선을 미래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소경의 고난을 신학적 논쟁거리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나타나는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그처럼 시선을 미래로 향하십시오. 사람이 낙심하는 이유는 현재의 고난이나 미래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대개 과거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병이 있어도 시선을 미래로 향하면 심지어는 병조차 오히려 감사제목이 됩니다.

 왜 사람이 병들게 됩니까? 병에는 대개 5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죄’때문입니다. 둘째 ‘사탄의 공격’때문입니다. 셋째 ‘자신의 부주의’때문입니다. 과음하고 과식하고 쉬지 않고 일하면 병에 걸립니다. 넷째 ‘하나님이 허락하신 병’도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병’도 있습니다. 그런 여러 원인의 병을 통해서도 시선을 미래로 향하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한 병’은 회개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사탄의 공격에 의한 병’은 사단을 쫓아내는 권세를 행사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병’은 절제의 은사를 받게 되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병’은 그것을 통해 정금성도가 되니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도구로 쓰이니 감사합니다. 그처럼 고난 중에도 미래로 시선을 향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창조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2. 땀을 아는 믿음

 본문 4-5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축복의 기회를 잡지 못합니까? 기회는 보통 땀과 함께 오기 때문입니다. 기회와 운수는 다릅니다. 운수는 운만 좋아도 잡히지만 기회는 땀이 있어야 잡힙니다.

 왜 정신병원에 여자가 많을까요? 요새는 아이를 적게 낳는 세태가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없이 한가하니까 옛날 애인 생각도하고, 학창시절을 그리며 술도 한잔 하고, 밖으로 돌며 춤바람이 났다가 무엇이 잘못되어 충격 받고 정신병원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신병원에 애를 5명 이상 낳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자녀를 낳고 키우고 시집 장가를 보낸 후에는 손자까지 봐주니까 정신이 병들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헌신과 봉사가 주는 또 하나의 축복이 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드리면 죄와 질병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듭니다. 이제 교회에 한 가지 이상 봉사할 것을 찾아보십시오. 성가대와 주일학교와 안내를 위해 봉사하고, 설거지와 청소도 하고, 무엇보다 전도와 선교와 구제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죄와 질병의 가능성이 줄고 축복의 가능성은 현저하게 높아질 것입니다.

 이제 곧 인생의 밤이 옵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나태한 삶을 버리고 축복의 지경을 넓히십시오. 신학자 몰트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태는 자신의 존재를 원하지도 않고, 자기가 진정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를 바라지도 않는 것이다. 나태는 참된 자기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인간성에 대한 인간의 배신이다. 그래서 나태는 죄악이다.” 그처럼 나태를 죄로 여기고 열심히 땀을 흘려서 축복의 기회를 잡으십시오.

3. 순종하는 믿음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소경을 치료하면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랐습니다. 아무리 소경이지만 그런 낌새를 느끼면 보통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 뭐하세요? 소경의 눈은 눈이 아닌 줄 아세요?” 그러면서 기분 나쁘다고 그곳을 떠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의 소경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처럼 주님의 손길에 자신을 가만히 내맡기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가끔 보면 고통 중에 울부짖으며 스스로 고통을 해결하려다 얽힌 매듭을 더 엉키게 만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이제 그만 해라. 지금 내가 네 매듭을 풀고 있단다.” 고통 중에 가만히 있는 것도 믿음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구조대원이 그를 구하러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는 않고 한참 동안 옆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탈진되자 비로소 그를 구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이 왜 바로 구해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분이 스스로 물에서 헤어 나오려 발버둥 치면 구할 엄두도 못 내고 구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도 영적인 의미에서 물에 빠진 후에 혼자 헤어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처럼 사람은 자신에게 곰팡내 나는 빵 껍질 하나만 있어도 그것 때문에 하늘의 만나를 의지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자신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부서져야 비로소 그 부서진 터에서 하늘의 맨션이 지어집니다.

 그처럼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후에 주님은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때 소경은 “오늘은 일진이 참 나쁘네!”라고 불평하지 않고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결국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기적 이전에 꼭 순종하는 믿음을 보십니다. 계산적인 헌신은 ‘아부’이고 비계산적인 헌신은 ‘순종’입니다. 아부가 아닌 순종은 축복의 길에서 꼭 거쳐야 할 필수코스입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기적은 환경과 의지를 넘어서 순종할 때 생깁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이 자신의 경험과 맞지 않아도 순종하십시오. 니체는 기독교를 약자의 종교이고 나사렛 예수는 쓰레기 인생들만 데리고 다녔다고 혹평했습니다. 그런데 니체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은 약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쓰레기 인생을 불러 천국 일꾼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너무 높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빡빡하게 살면서 스스로 인물이 되겠다고 하나님을 구경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인물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만듭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면 오히려 은혜는 멀어집니다. 일단 순종부터 배우십시오.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으시고 단 한 가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순종‘입니다.

 두 명의 종이 있었습니다. 한 종은 똑똑했고 다른 종은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때 주인은 어느 종에 더 은혜를 주실까요? 말 잘 듣는 종입니다. 그처럼 순종이 훈련된 사람에게 은혜가 펼쳐집니다. 기업가 맥도널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종은 모든 문의 열쇠다.”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과 섭리에 흡수되어 고난 중에서도 그를 목적지까지 능히 인도하는 초석이 됩니다.

4. 감사하는 믿음

 하나님의 기적을 이끌어내는 또 하나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 바로 감사입니다. 축복은 감사로 끝나야 진짜 축복입니다. 특히 감사할 때는 외적인 축복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사실 소경의 고난을 생각하면 모든 삶이 감격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감격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감사는 환경과 조건과 처지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과 시야와 인격에 좌우됩니다.

 좋은 환경이 행복과 감사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자살한 사람들 중에 소경이 생을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 뜬 건강한 사람들이 생을 비관하고 자살합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은 일곱 살까지 일어날 수 없었고 열 살이 되어서야 겨우 숟가락을 혼자 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죽으려고 했지만 모태신앙으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열일곱 살 때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필사적 금식기도를 드립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에게도 많은 것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노래했습니다. 그 중에 ‘나’란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남이 갖고 있는 것 갖지 않았으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또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려울 때는 감사하고/ 슬플 때는 기뻐하십시오/ 즐거울 때는 애통하고/ 기쁠 때는 근신하십시오.” 또한 그녀는 자기의 고통에 대해서도 이렇게 감사노래를 했습니다. “만일 주께서 내게 고통을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주님의 고통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고통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녀의 시는 외적인 조건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웅변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 속에서 감사할 것을 깨닫고 사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도 당하지만 그래도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그런 감사거리를 잘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행복이고, 그런 마음이 내일의 놀라운 축복을 예비합니다.

 일전에 어떤 분이 50세에 전도사가 되고 17년 후에 은퇴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주님! 저 같은 것을 데리고 17년 동안 일하시느라고 많이 힘드셨죠?” 직접적인 감사표현은 없지만 감사고백이 물씬 담겨 있는 고백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며 산다면 그는 결코 행복을 놓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일은 행복하고 편하니까 쉽게 잊고 불행한 일은 마음에 맺혀 오래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으면 불행했던 일보다 행복했던 일이 더 생각나고 감사거리들이 더 생각납니다. 그런 행복과 희망을 주시려고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삶 자체를 감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처럼 마음과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 마음과 생각을 넓히십시오 >

 요새 사람들은 키가 큰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 키보다 마음의 키가 커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슴 흉곽(chest)’이 넓은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 ‘품는 가슴(bosom)’이 넓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눈이 큰 것을 좋아하지만 ‘보는 눈’이 커도 ‘보는 시야’가 좁으면 행복의 크기도 작아집니다. 사실 소경보다 더욱 불쌍한 존재는 영적인 소경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붙잡고 꼭 얻어 누려야 할 축복이 바로 영적인 눈을 뜨는 축복입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면 고난 중에도 영광을 볼 수 있게 되고 마음도 넓어지고 시야도 넓어집니다.

 저도 목사가 되고도 30대 중반까지 지역 편견이 꽤 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과 생각 속에 지역편견이 전혀 없습니다. 목회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니까 지역편견의 논리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편견을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편견의 동물입니다. 편견처럼 편한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딱지를 확 붙여버리면 자신은 저절로 올라가는 느낌이 드니까 얼마나 좋은 공격무기입니까? 그러나 그 무기를 버리지 않으면 자신도 나중에 당합니다.

 이제 영적인 소경의 자리를 털고 말씀과 성령의 실로암 못에서 새롭게 영안이 열리기를 기도하며 끊임없이 편견과 싸우십시오. 서쪽만 보지 말고 동쪽도 보고 동쪽만 보지 말고 서쪽도 보십시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 되는 훈련의 최적의 장이 바로 교회이고, 그 하나 됨의 최고 의식이 바로 성찬식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 다시 한 번 철든 신앙을 다짐하고 ‘선악’은 분별하되 ‘차이’는 넓은 마음으로 용해시키십시오.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면 남을 쉽게 판단하기 쉽고, “나는 옳다!”는 확신은 “남은 그르다!”는 확신으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광어는 몸체가 넓어서 ‘광어(廣魚)’라고 하지만 눈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서 어떤 분은 ‘편견이 심한 물고기’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광어족에서 탈피하십시오. 자기를 긍정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자기 긍정’이 너무 지나치면 ‘타인 부정’이 됩니다. 결국 ‘긍정의 힘’을 앞세우는 삶보다 더욱 복된 삶은 ‘화합의 힘’을 앞세우는 삶입니다.

 자기 긍정이 지나치면 눈에 비늘이 드리워지지만 화합하려고 하면 눈길부터 부드러워집니다. 더 나아가 작은 풀꽃 속에서도 깊은 진리와 강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그처럼 시야를 넓히면 모든 삶이 신비입니다. 그때 행복감도 커집니다. 주님에게 마음이 열리면 신기하게 마음의 눈도 열립니다. 주님에게 열린 마음은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선교하는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선교를 외면하면 결코 복된 삶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서 영적인 눈을 뜨고 자신 앞에 준비된 찬란한 세계를 보십시오. 그리고 이웃을 살피며 그 세계로 힘차게 나가십시오. 살다 보면 때때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그 밤의 이유를 정확히 몰라도 진실한 성도들이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잠 못 이루는 고난의 밤 건너편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스럽고 찬란한 새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처럼 내일의 찬란한 영광을 소망하며 고난 중에서도 보다 많은 영혼을 돕고 섬기며 살겠다는 꿈과 비전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면 현재의 고난은 반드시 내일의 찬란한 영광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헬렌 켈러에게 물었습니다. “헬렌! 보지 못하는 삶에 대해서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시력(sight)을 잃어버린 것보다 비전(vision)을 잃어버린 것이 더 불행한 일이지요.” 그녀는 시력은 잃었지만 비전을 잃지 않았기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적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때로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비전을 잃지 마십시오. 그때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십시오. 그래서 미래지향적인 신앙, 열심히 땀을 흘리는 신앙,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으로 삶에서 수시로 다가오는 고난의 질곡을 넘어 결국 예수 믿고 인물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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