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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2: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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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john316.or.kr |
요한복음(72) 죽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요 12:20-24)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그 상황을 목격하고 헬라인 몇 사람이 빌립을 통해 예수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20-21절). 왜 면담을 요청했을까요? 전후 상황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헬라 지역으로 모셔서 최고의 스승으로 삼고 명예와 부귀영화를 약속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때 헬라인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얘기를 듣자 주님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절).” 기회가 왔으니까 헬라 지역으로 가서 이름을 날려 보자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리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죽을 생각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절).”
한 알의 밀은 ‘자기희생과 자기부인’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축복을 좋아하지만 희생이 없는 축복은 가치가 없고, 겉으로 보기에는 축복같이 보여도 진짜 축복이 아닙니다. 희생하고 헌신해야 축복이 진짜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고난을 위해 불림 받았습니다(벧전 2:21). 성도의 고난은 세상의 고난과 본질이 다릅니다. 세상의 고난은 ‘당하는 것’에 가깝지만 성도의 고난은 ‘행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신학주제 중에 <The Passion of Christ>란 주제가 있습니다. 한국말로 ‘그리스도의 수난’이라고 번역합니다. 주님의 ‘수난의 때’는 ‘최후의 만찬 후부터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때 일어났던 사건과 의미를 다룬 주제가 <The Passion of Christ(그리스도의 수난)>란 주제입니다. 그런데 passion은 한국말로 ‘정열’로 주로 뜻풀이됩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수난은 그리스도께서 ‘정열적으로 맞이한 것’이란 뜻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단순히 어려운 환경을 견디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순교 콤플렉스를 조장하는 수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고난은 성도로서 열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고난’은 ‘성도의 수난’입니다. 이제 고난 앞에서 당황하지 말고, 더 나아가 고난을 포용하십시오. 고난을 포용하고 고난당하는 자를 포용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 죽는 길이 사는 길 >
십자가의 헌신이 없는 행복은 없습니다. 축복의 필수 요소는 십자가의 헌신입니다. 십자가를 회피하면 축복도 그를 회피합니다. 반면에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도 기꺼이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거룩한 일이 생각나거든 “하나님! 이 필요를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한번 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하고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반드시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영광과 축복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과 축복도 없습니다. 죽어야 살고, 헌신해야 복 받습니다.
어떤 분은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죽었는데 문제는 풀리지 않고 더 어려워진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완전히 죽지 않고, 죽은 체 한 것이 문제입니다. 가끔 좋은 결심을 합니다. “내가 죽자!” 그런 훌륭한 결심 후에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어느새 자기가 살아나 하나님께 따집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헌신하고 죽었는데 왜 아직도 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까?” 사람에게도 따집니다.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죽은 줄 알았더니 벌써 살아나 있습니다. 알고 보니까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체 한 것입니다. 죽은 곳에서는 많은 열매가 맺어지지만 죽은 체 한 곳에서는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선거철에 입후보자들은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어느새 허리가 펴지고 머리가 뻣뻣해집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체 한 것’입니다. 그런 정치꾼과 같은 신앙꾼이 되지 마십시오.
한 알의 썩어져 가는 밀알이 되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복의 원리를 멀리서 복잡하게 찾지 마십시오. 중요한 진리일수록 단순합니다. 축복은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변명하지 말고 더 이상 이해해달라고도 하소연하지 마십시오. 고통스럽지만 그냥 깨끗이 죽으십시오. 자기를 희생하고 부인할 때 축복의 열매가 많이 맺혀집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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